91화 Chapter 90
“마, 말도 안 되는……!”
절대라 믿었던 보호막이 부서지자 녀석은 할 말을 제대로 잇질 못했다.
“말도 안 되긴. 그렇지 않아도 이 말을 해 주고 싶었는데…….”
나는 녀석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세상에 절대라는 건 없어. 이것 봐라. 네가 절대적으로 믿었던 보호막도 내 주먹질에 그냥 깨져 버리잖아?”
그것은 세상의 진리라는 것이다.
‘절대’나 ‘무적’ 이따위 말을 꺼내는 순간 어김없이 그것은 깨어진다.
진짜로 절대적인 것이라 생각한다고 해도 그 단어를 내뱉었다간 이렇게 형편없이 깨지고 마는 것.
하지만 그 진리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헛소리!”
설혹 알려 준다고 해도 이렇게 같잖은 반응을 보일뿐.
“그래. 생각하는 건 네 자유니까.”
뭐,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귀에 새겨 넣지 않는다면 소용없는 일.
게다가 녀석은 이제 삶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굳이 그 사실을 알아도 좋을 건 없을 것이다.
팟!
은빛 가면 녀석의 육신이 꺼지듯 사라졌다.
“우리의 대의를 방해한다면 그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
순간 이동을 발현하여 순식간에 공간을 넘었다.
그러나.
“어딜 보고 이야기하는 거야?”
“헙!”
나는 이미 녀석의 옆에 서서 어깨동무하고 있었다.
그 찰나의 움직임을 인지하지 못한 녀석은 화들짝 놀라며.
콰앙!
손에서 마력의 광선을 발사했다.
“소용없어.”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광선.
하지만 나는 그 궤적을 정확히 파악한 후 손으로 쳐냈다.
콰앙!
튕겨져 반대편으로 날아간 광선은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뭐, 뭐라고!”
순간적이지만, 초월의 힘을 담아 낸 마력 광선이 튕겨졌다.
그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가면 사이의 눈이 더없이 크게 확장되었다.
“우리 쓸데없는 힘 싸움은 하지 말고…….”
말을 하는 도중에 손을 움직여.
꽈악!
“컥!”
녀석의 멱살을 잡았다.
물론 그와 동시에 마기를 주입하여 녀석의 마력을 봉쇄하는 걸 잊지 않았다.
“커커컥!”
마력을 다룰 수 없게 된 녀석은 평범한 인간과 다를 바 없다.
멱살이 잡혀 올라가면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런 평범한 인간 말이다.
“내가 조금 전에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는데 말이야.”
내가 움직인 건 검왕을 살려야 한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 결정적인 건 하나의 단어로 인해서였다.
“현자. 너 분명 현자라는 단어를 꺼냈지?”
현자(賢者).
말 그대로 현명한 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이 대륙에서 현자라는 단어는 웬만하면 잘 쓰이지 않는 단어이기도 하다.
이 대륙에서 현자라는 의미의 단어를 쓸 수 있는 건 단 한 명이기 때문이다.
‘샘의 현자.’
서쪽 대륙, 황금의 제국 아틀란의 궁정마법사이며 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예언자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그 녀석, 수상하단 말이지.’
내가 지금껏 언급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 누구보다 수상쩍게 생각하는 녀석이 바로 그였다.
‘예언도 틀렸고, 그리고 용사 일행이 보인 수상쩍은 그 움직임도…….’
과거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수상쩍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굳이 그 일을 묻고 있었던 것은 예언이라는 것이 반드시 맞는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대륙에서 샘의 현자의 예언이라면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예언이라는 게 원래 두루뭉술하고, 보통은 틀리는 경우가 많은 것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다짜고짜 찾아가 네 예언이 틀렸으니 좀 맞자고 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예언이 위대한 일원이라는 단체에 소속되어 뭔가 목적을 위해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럼 이야기가 달라지지.’
평소에는 대륙을 위하여 노력하는 성인으로 비추어지는 샘의 현자.
하지만 만약 그가 음흉한 단체를 이끌고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면 녀석의 죄를 물을 명분을 충분했다.
“커헉…….”
하지만 녀석은 숨이 막혀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쿠웅!
그렇기에 힘을 주어 녀석을 패대기쳤다.
“경고하는데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만약 내 말을 어겼다가는…….”
콰아아아!
나는 내 존재의 일부분을, 의지의 힘을 녀석에게 조금이나마 보여 주었다.
“으으으…….”
조금 전까지만 해도 대륙 최강자 중 하나인 검왕을 가지고 놀며 절대적인 힘을 자랑했던 녀석은 고작해야 내 일부분을 보고서는 의지를 상실하고 말았다.
아무리 초월의 영역에 발을 들였다고 해도 그것도 사람 나름이다.
내게 있어서 녀석은 애송이, 그 이상의 존재가 아니었다.
「말해라. 네가 언급했던 현자가 샘의 현자가 맞느냐?」
나는 녀석이 거부할 수 없도록 의지를 실어 물었다.
“으으으…….”
하지만 분명 의지가 제압되어 사실을 털어놔야 할 녀석은 망설이면서 선뜻 입을 열지 않았다.
「말해라!」
이번에는 좀 더 강렬한 의지를 실었다.
그러자.
“으아악!”
녀석의 이마에 있는 힘줄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왔구나!’
그건 일전에도 봤던 현상이다.
이 위대한 일원이라는 녀석들은 비밀이 새어 나가지 못하도록 금제를 걸어 두었다.
당시에는 그것을 몰라 반응하지 못했지만.
“어딜!”
이미 대비하고 있었던 터라 순간적으로 마수를 풀었다.
「크헝…….」
무려 5마리의 마수를 풀었으나 전과 달리 포효하는 녀석들의 울음을 들을 수 없었다.
‘신격을 흡수한 덕인가?’
변화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전과는 달리 완전히 다른 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는다.
물론 마치 제삼자를 보는 것과 같은 이질적인 기분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았다.
확실히 이렇게 신격을 흡수해 성장하다 보면 전혀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멈춰,」
마수를 깨운 그 절정의 힘을 이용하여 시간을 멈췄다.
뚝!
내 의지에 의해 세계의 흐름이 잠시나마 멈췄다.
저벅- 멈춰진 시간 속에서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건 나뿐이었다.
파직, 파지직!
비록 세계의 법칙을 거스른 탓에 그 저항이 일어나고 있었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잠깐의 시간만 사용할 것이니 말이다.
가까이 다가간 나는 녀석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그 순간.
스으으으-
내 몸에 있던 마기로 녀석의 머리를 헤집었다.
그건 단지 두뇌를 거친 것뿐만 아니라 녀석의 의식 깊숙한 곳까지 침투했다.
“빙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질적인 기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위대한 일원이라는 조직에 대한 비밀을 발설할 시 죽게 만드는 강력한 금제였다.
“한 번 당하지, 두 번 당하겠냐.”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는다.
콰앙!
나는 녀석의 무의식에 심어진 그 금제를 확실히 제거하였고, 그와 함께 시간은 정상적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쿨럭!”
시간의 흐름이 정상을 찾은 뒤, 녀석은 한 움큼의 선혈을 토했다.
아무래도 억지로 금제를 제거한 탓에 녀석의 몸에 무리가 간 것 같다.
하지만 녀석의 몸 상태는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
「네 녀석의 금제를 풀었다. 그러니 이제 말해라.」
위대한 일원을 옥죄고 있던 금제를 풀었다.
더는 녀석들이 내게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이 사라진 셈이다.
“으으… 그는… 샘의 현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정작 나온 말은 예상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어라?’
대륙에 오직 하나의 현자만 존재하지 않았던가?
「대륙에는 하나의 현자만 존재할 텐데?」
“아닙니다… 그분은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은자(隱者).”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존재라.
하지만 현자라는 칭호를 얻기 위해서는 각 대륙에 존재하는 마탑의 동의를 얻어야만 하는 것 아니었나?
“그분은… 마탑이 존재하기 전부터 대륙에서 활동해 오셨던 분. 태초의 현자… 그 명칭은…….”
중요한 순간이기에 어떠한 소리도 내지 않은 채 경청하던 그 순간.
“컥!”
푸확!
그것은 갑작스러운 변화였다.
녀석은 인간의 육신에 있는 구멍이란 모든 구멍에서 피를 쏟아 냈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마지막 비밀을 말하려는 순간 더욱더 은밀하게 숨겨져 있었던 또 다른 금제가 발동하고 말았던 것.
털썩.
힘없이 쓰러진 녀석은 온기를 잃은 시체가 되었다.
“이건… 예상 못 했는데?”
설마 내가 눈치채지 못한 다른 금제가 있었던가?
아니, 그게 아니다.
잠시 후에야 그것이 금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스으으으-
쓰러진 시체에서 새어 나온 핏빛 안개가 형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마침내 완전한 형상을 이룬 건.
“오호라!”
그것은 눈동자였다.
이번에 처음 본 것이 아니라 일전에도 본 적이 있는 형태.
그건 분명 아몬을 처치하고 나타난, 불쾌하지 그지없는 기운을 담은 미지의 눈동자였다.
「누가 180호를 소멸시켰나 했더니, 구면이로군.」
놀랍게도 일전과는 달리 눈동자는 또렷한 의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넌 누구지?”
일단 질문을 던졌다.
사실 그건 답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시간을 끌며 눈동자 너머의 존재를 추적하려는 것이었지만.
「하하하. 나를 찾는 것인가? 소용없다. 여기에 남겨진 건 본체와 연결된 것이 아니라 180호에 심어진 잔재일 뿐이니까.」
“쯧!”
녀석의 말이 맞다.
찰나의 순간 그 근원을 쫓았지만, 흔적이 연결된 곳이 없었다.
“설마 존재의 일부마저 심어 둘 줄이야. 얼마나 숨길 게 많은 단체면 이렇게 지독한 금제를 걸어 놓을 수 있지.”
「숨길 게 많다라.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내가 조직한 이 단체는 누군가에게 들키면 굉장히 곤란한 상태라서 말이야.」
“호오. 그 정도 실력을 지니고도 숨어 지내야 한다고? 그건 좀 의외인데?”
「그대라면 알 텐데. 이 대륙은 저 먼 곳에서 내려다보자면 먼지와도 같이 하찮은 곳임을.」
“지배자를 말하는 건가?”
「호오. 지배자까지 알고 있다고? 기껏해야 관리자 정도에 닿았을 정도로 생각했는데, 지배자를 알고 있다니. 이거 예상외인데?」
눈동자에 담긴 존재의 일부는 내게 흥미로운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파스스- 눈동자 형상이 무너지며 먼지로 화하고 있었다.
「이런, 벌써 시간이 다 됐나?」
본래 은빛 가면 녀석에게 심겨져 있었던 존재의 일부였기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급격히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일부 진실을 알고 있는 듯하지만, 아직 많은 것을 모르는 눈치로군. 그러니 제안하겠다. 그대여, 우리 위대한 일원으로 들어오지 않겠는가?」
갑작스러운 제안.
평상시라면 당장에 거절했을 테지만, 이번에는 조금 흥미가 생긴다.
“위대한 일원이라. 근데 나는 너희가 뭘 하는 단체인지 모르는데?”
「그렇군.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는 그들로부터 완전한 해방을 위해 모인 이들. 그대도 진실을 알고 있다면 그들이 언제든 우리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테지. 우리는 잔혹한 그들로부터 대륙을 지키려는 결사대이다.」
“그들이라면 지배자를 말하는 거겠지?”
「궁극적으로는 그렇다. 비록 그 여정은 더없이 힘이 들겠지만, 진실을 아는 이들이 뜻을 한데 모은다면 희망이 생길 터. 우리는 그 희망을 쫓아 억겁의 세월 동안을…….」
“말 끊어서 미안한데, 하나만 물어보자.”
「무엇이지?」
“너희가 이처럼 비밀 유지를 하는 건 지배자라는 녀석이 무서워서, 지금은 그 녀석에게 덤빌 힘이 없어서 그런 거겠지?”
「하하하. 불편한 진실이지만 그렇다. 모든 것의 위에 있는 지배자, 그들을 감당하는 일은 지금으로선 불가능한 일. 그렇기에 우리가 힘을 모으면…….」
콰앙!
하지만 나는 녀석의 말을 듣지 않은 채 곧장 눈동자를 부숴 버렸다.
「어째서……?」
거의 형체를 잃어버린 녀석이 희미한 의지를 전했다.
“고작 지배자한테 쫄아서 숨어 있는 곳에 들어갈 일이 있겠냐?”
뜻은 알겠다.
하지만 나는 나보다 약한 녀석들이 있는 곳에는 절대 들어갈 마음이 없었다.
“그러니까 개소리 지껄이지 말고 꺼져.”
위대한 뜻은 개뿔.
힘도 없는 주제에 은밀하게 움직이며 소속된 일원들을 소모품처럼 죽이는 녀석들이 무슨 대의를 외칠 수 있단 말인가.
「너… 후회할… 반드시…….」
눈동자에 깃든 존재의 일부가 뭐라고 말했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이미 약한 녀석들에 대한 관심을 껐다.
지금 내가 관심이 있는 건.
“으음…….”
이제야 정신을 차리며 깨어나고 있는 검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