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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82화 (82/161)
  • 82화 Chapter 81

    “왕성 앞까지 당도했다고?”

    “네.”

    펠리드의 말에 얼른 의지의 영역을 넓혔다.

    ‘음?’

    즉각 감지할 수 있었다.

    적의, 그리고 살의를 담아 움직이는 대규모 병력을 말이다.

    그런데.

    “이것들 인간 맞아?”

    느껴지는 기세가 인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정도의 적의와 살의, 그리고 적을 향한 투기라면 마족이나 다른 초월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네, 그렇지 않아도 말씀을 드리려 했습니다.”

    미간을 찡그린 펠리드.

    녀석은 현재 귀족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던 정보를 발설했다.

    “국경을 넘어온 순간부터 지금까지 전진해 오는 병력과 몇 차례 충돌이 있었습니다.”

    정보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펠리드니 만큼 그들의 병력 이동을 빠르게 감지했을 것이고, 곧장 전투를 벌였을 것이다.

    “혹 왕국에 피해가 올까 염려되어 나름 신경 써서 육성한 정예 병력을 보냈지만…….”

    “패했겠지.”

    “그렇습니다.”

    이 정도의 투기를 자랑하는 군대라면 아무리 펠리드가 애써서 키워 낸 병력이라 해도 소용이 없었을 터.

    “하지만 여기서 더 놀라운 사실은… 몇 차례의 전투에 그들이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맙소사!”

    “그런 일이!”

    펠리드의 발언에 경악하는 귀족들.

    ‘투기가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더니 역시!’

    하지만 어느 정도는 예상한 바였다.

    이 정도의 투기를 뿜어내는 병력이라면 평범한 인간의 병력으로는 어림없다.

    ‘최소한 7성, 혹은 7써클 이상으로만 이루어진 최정예 병력으로 맞서야만 하겠지.’

    그렇기에 전쟁의 승패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펠리드.”

    “네, 형님.”

    “오만하구나.”

    “…….”

    나는 녀석을 질책했다.

    단지 녀석이 진군해 오는 병력을 막지 못해서가 아니다.

    “왜 내게 진즉 연락하지 않았지? 분명 변고가 생기면 연락하라고 그것을 줬을 텐데?”

    나는 눈짓으로 펜던트를 가리켰다.

    실제로 이 펜던트로 인해 먼 곳에서도 바로 달려올 수 있지 않았던가.

    “우리의 힘만으로 충분히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나는 녀석의 말을 더 듣지 않았다.

    꽈악!

    내게 죽음을 맞이한 이들처럼 녀석의 멱살을 잡아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대, 대공 전하!”

    “아니됩니다!”

    “지, 진정을!”

    아무리 내가 실질적인 권력자라 해도 왕의 멱살을 잡는 건 도를 넘은 행위.

    눈치를 보던 귀족들도 분분히 일어나 나를 만류하려고 했다.

    그러나.

    “쓰읍!”

    내 눈짓 한 번에 녀석들은 포식자를 눈앞에 둔 먹이처럼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펠리드.”

    “…네, 형님.”

    “내가 지금 너무하다고 생각하느냐?”

    “아닙니다.”

    “아니긴. 아무리 너라도 해도 지금 상황은 당혹스럽겠지. 실제로 그래야만 하고. 하지만 말이다. 네 녀석의 판단 실수로 인해 죽어 간 사람들에 대한 죗값은 어떻게 할 셈이지?”

    이건 무언가를 끌어내기 위한 연기가 아니다.

    나는 진심으로 녀석에게 실망했다.

    녀석이라면 영특하기 그지없는 녀석이라면 첫 대전을 통해서 자신의 힘이 적에게 미치지 않는단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만약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그 정도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면 왕위에 올라설 자격도 없는 것이니까.

    그렇기에 녀석이 당연히 상대의 전력을 간파했다고 가정할 수밖에 없다.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순간 불렀어야지. 왜 왕성 앞에 도달해서야 나를 불렀냐는 말이다.”

    끝까지 자존심을 앞세우다가 자신이, 왕국이 위기에 처하자 나를 불렀다.

    내 입장에서는 백성들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변명할 말이 없습니다. 죄송…….”

    “폐하의 잘못이 아닙니다, 대공 전하.”

    사과하려던 펠리드의 말을 막은 귀족이 있었다.

    “시리우스?”

    그는 시리우스 백작, 아니 이번에 공을 인정받아 후작이 된 이였다.

    “대공 전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전력의 차이를 일찍 알았다면 전하를 호출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몇 번의 교전 때도 폐하는 전력의 차이를 인지하지 못하셨습니다.”

    “지금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건가? 그게 더 큰 문제라는 걸 모르진 않겠지?”

    “어찌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그것이 조작된 정보라면 어떻겠습니까. 애초에 상대의 전력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그 말뜻은?”

    “그렇습니다. 폐하께서는 당초 전력을 파악하기 위하여 병력을 보냈고, 이를 파악하게 지시했으나 누군가가 일부러 전력의 차이를 조작하여 보고했습니다.”

    내 시선은 자연스레 회의장의 오른쪽, 벌벌 떨고 있는 중년의 사내에게 향했다.

    “키엘리스 후작!”

    현재 펠리드의 눈과 귀가 되어 주고 있는 정보부의 수장인 키엘리스 후작.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감히 변명할 생각도 없이 납작 엎드린다.

    “그, 그것이 상대의 병력이 생각보다 대단치 않아서. 충분히 우리 병력만으로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하여…….”

    “그래서 일부러 전력을 축소해 전달했다 이 말이로군.”

    나는 키엘리스 후작에게서 시선을 돌려 펠리드를 응시했다.

    “왜 말하지 않았지?”

    “신하의 잘못은 곧 군주의 잘못이기도 합니다. 그를 앞세워 저의 잘못을 감추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긴.

    참된 군주라면 마땅히 신하의 잘못 또한 자신의 잘못으로 여겨야겠지.

    하지만 녀석의 방식은 잘못되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엎드린 키엘리스 후작은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다.

    후작이나 되는 고귀한 귀족이 이마를 찧으며 사죄한다.

    아마 보통의 경우라면 잘못을 뉘우치는 그를 용서했겠지만.

    “죽을죄를 지었으면 죽어야지.”

    “네, 네? 그게…….”

    하지만 그는 말을 잇질 못했다.

    스걱!

    장내의 그 누구도 인지하지 못한 손날검이 그의 목을 베었고.

    툭, 데구루루.

    키엘리스 후작의 목이 지면을 굴렀다.

    “…….”

    “…….”

    펠리드도 그리고 장내의 그 누구도 그 참혹한 광경에 말을 잇질 못했다.

    “펠리드, 네가 조금 전에 말했듯 신하의 죄는 군주의 잘못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끝까지 뉘우치지 않는 비겁한 소인배 녀석에게 의리를 지켜 줄 필요는 없지 않겠냐.”

    녀석은 혼신의 연기를 펼쳤겠지만 그 특유의 기운을 속이진 못했다.

    심안을 통해 녀석의 속마음을 읽었고, 키엘리스 후작이 당장의 위기를 넘기기 위해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죽을죄를 지었음에도 한 점의 반성도 없이, 이 상황을 빠져나가기 위해 연기를 펼친 것이다.

    펠리드가 가리고 가려서 뽑은 인재니만큼 능력 면에서는 더할 나위 없겠지만.

    “능력이 되어도 인성이 개차반이라면 포기하는 게 맞다.”

    나는 펠리드를 향하여 진심으로 충고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깨달았습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새기고, 또 되새기겠습니다.”

    조금 전 연기했던 녀석과는 다르다.

    펠리드는 진심으로 이번 실수를 자책하고 있었고, 또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발전할 것이다.

    ‘오히려 이번 일이 기회가 될 수도 있겠어.’

    실패 없이 항상 성공만을 했던 펠리드다.

    물론 그 배후에 내 도움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내가 왕위를 내려놓고 여행을 하는 도중에도 끊임없이 왕국을 발전시켜 왔다.

    그런 녀석에게 처음으로 시련이 찾아온 것이다.

    본래 쇠는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강해진다.

    지금까지 녀석이 성공만을 거듭했던 유리였다면 이제는 한 번의 담금질로 새로운 영역을 구축할 수 있을 터.

    “그래. 그거면 됐다.”

    만족하며 녀석의 멱살을 풀어 주었다.

    “그리고 시리우스 후작 말인데…….”

    녀석의 옷을 털어 주는 척하면서 가까이 다가가 귓속말을 전했다.

    “…앞으로 중용해도 좋을 것 같아. 그나마 이 자리에 있는 녀석 중에서는 가장 쓸 만한 녀석일 테니.”

    “알겠습니다.”

    펠리드 또한 마찬가지의 생각이었던 총명한 눈동자를 번뜩였다.

    과거에는 그냥 눈치만 보는 쥐새끼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강단이 있고, 무력적인 측면 이외에도 정치적으로도 쓸모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내게 인정을 받았다는 건.

    “시리우스 후작.”

    “네, 대공 전하.”

    “받아.”

    나는 녀석을 향해 가지고 있었던 물건 하나를 던졌다.

    5성에 이른 기사답게 날아오는 그것을 가볍게 낚아챈 시리우스 후작.

    “이것은… 허억!”

    곧장 그것을 확인한 시리우스 후작은 경악성을 내뱉었다.

    웅웅!

    검명을 토하고 있는 그건 검이다.

    물론 보통의 검이 내 아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턱이 없지.

    그것은 얼마 전 대륙 최고의 대장장이, 모르아 둔의 황제인 아르콴에게 의뢰하여 제작한 검중 하나였다.

    워낙 많은 재료를 가지고 있었던 터라 파멸의 창 이외에도 여러 가지 무구를 제작했었다.

    지금 시리우스 후작이 손에 들고 있는 건 그중에서도 중급의 품질에 속하는 양산형 검 백룡(白龍).

    환계에서 설치던 백룡 크리악을 쥐어패고 얻은 뿔을 재료로 해서 만든 검이었다.

    물론 내게는 양산형이었지만.

    “세상에!”

    “어찌 저런 명검이!”

    “참으로 어마어마한 예기구나!”

    정작 놀란 건 시리우스 후작이 아니라 그 검을 바라보던 귀족들이었다.

    안목이 좋지 않은 범인이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검.

    아마 그들의 입장에서 백룡은 대륙에 전해지는 10개 신기와 비견될 정도의 보물일 것이다.

    뭐, 10개 신기를 본 적이 없어서 그 무구가 얼마 만큼 강력한 무군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백룡이 그 무구보다 품질이 떨어질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전설에서나 나올 법한 예기를 풍기는 검.

    그것을 직접 보고 있으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대, 대공 전하. 이, 이것을 제게…….”

    얼마나 놀랐는지 말까지 더듬는다.

    “그럼 구경하라고 줬을까. 네가 펠리드에게 진심 어린 충언을 해 줬기에 주는 보상이야.”

    그리 말하며 주위를 둘러본다.

    “벌은 벌로 다스리지만 공을 입증하면 그만큼의 보상이 돌아간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 아니었던가?”

    왕을 생각하는 충의도 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희생이 동반되는 법.

    그렇기에 눈치만 보는 녀석들에게 좋은 자극제를 던져 줬다.

    공을 인정받으면 너희도 백룡과 같은 대단한 무구를 얻을 수 있다.

    ‘이 정도로 미끼를 던졌으니 이제는 알아서 하겠지.’

    지금까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움직였다면 이제는 보상에 눈이 뒤집혀 서로 공을 얻기 위하여 최선을 다할 것이다.

    당장은 그것만으로도 만족이다.

    “그럼 아끼는 아우가 힘들게 불렀는데, 남은 일을 처리해야겠지?”

    펠리드를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준 후.

    팟!

    곧장 지면을 박차며 이동을 시작했다.

    ‘공간 이동을 방해하는 결계를 펼쳤을 정도면 보통 놈이 아니라는 소린데.’

    공간 이동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다가오는 병력 주위로 펼쳐져 있는 결계 때문.

    고유 결계를 펼쳤을 정도면 심상치 않은 적이 그곳에 있음을 의미하는 것.

    “그래 봤자 너희가 맞이할 건 죽음뿐이다.”

    건방지게 내 동생을, 그리고 감히 내 영역 안에 있는 백성들을 죽였단 말이지?

    장담하는데 녀석들은 곱게 죽지 못할 것이다.

    쉬이익!

    나는 한 마리 비조가 되어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적 병력, 무적의 군대라 불리는 녀석들을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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