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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81화 (81/161)
  • 81화 Chapter 80

    쉬이이익!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유성.

    하지만 그것은 평범한 다른 유성과는 달리 붉은빛을 띤, 재앙을 상징하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지상을 향해 낙하하던 유성은.

    콰앙!

    지면과 충돌하며 폭발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 크기에 비해 그리 거대한 폭발은 아니었다.

    본래라면 지름 5m 정도의 크레이터가 아니라 1km 근방은 초토화됐을 테지만 붉은 유성에 깃든 힘은 의도적으로 충격을 최소화했다.

    타탓!

    그리고 유성을 향해 다가가는 그림자.

    “분명 이곳에 떨어졌던 것 같은데…….”

    조금은 낡은 은빛의 갑옷을 착용한 중년의 기사.

    그는 트리안 왕국 내 그란 영지의 일등 기사였던 베론이었다.

    영지의 수비를 총괄하던 중책을 담당하고 있었으나 영주의 폭정에 이기지 못하고 결국 그곳을 떠나야만 했던 정의로운 사내.

    목표를 잃고 정처 없이 왕국을 방랑하던 그는 우연히 밤하늘을 가르던 붉은 유성을 발견하고서는 이 자리까지 온 것이었다.

    운이 좋다면 운철을 얻어 강력한 무구, 혹은 여정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할 수도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으음?”

    그리고 베론은 볼 수 있었다.

    엄청난 충격으로 인해 바닥에 새겨진 크레이터와 그중앙에 박힌 붉은 구체를.

    “빛을 발하는 유성이라. 이런 건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건만…….”

    그렇기에 더욱더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베론은 잠시 멈췄던 걸음을 재촉하며 붉은 구체를 향해 다가갔다.

    웅웅웅!

    처음에는 가만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구체가 베론의 걸음에 반응하듯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 진동은 베론이 가까워질수록 강해졌고, 마침내 그가 가까이 접근했을 때.

    화악!

    장내를 집어삼키는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으헉!”

    깜짝 놀란 베론이 빛을 가리기 위해 손을 올릴 때였다.

    “…….”

    찰나의 순간 붉은빛은 사라졌다.

    빛이 사라진 것만이 아니라 빛의 근원지인 붉은 구체도 자취를 감추었다.

    “흠.”

    그리고 감았던 눈을 뜨는 베론.

    번쩍!

    조금 전의 갈색 눈동자와는 달리 그의 눈에서는 순간적인 혈광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시작되는 기이한 행동.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주먹을 쥐었다 폈다, 그리고 발을 한 차례 터는 등 세밀하게 자신의 몸을 살폈다.

    “필멸자의 육신은 참으로 나약하군.”

    베론, 아니 그의 육신을 지배한 초월의 존재가 말했다.

    사실 유성처럼 보였던 붉은 구체는 유성이 아니라 신의 격을 이룬 존재의 혼(魂)이었다.

    모종의 임무를 위해 드높은 곳에서부터 떨어진 존재는 세계의 법칙으로 인해 필멸자의 육신을 강탈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익숙하지 않은 육신을 점검하고 있을 때였다.

    “크오오오!”

    장내에 울려 퍼지는 괴성.

    쿵쿵쿵!

    그리고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이 뒤따랐다.

    한차례의 소란 때문에 깨어난 오우거가 포효하며 다가오고 있었던 것.

    수풀을 헤치며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오우거.

    그런데 이 괴물의 피부는 보통의 오우거와는 달리 갈색을 띠고 있었다.

    번식하지 못하는 대신 거대한 덩치와 근력을 지니게 된 변종 오우거였다.

    인근 영역에서 군림하고 있는 지배자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크아아아아!”

    쿵쿵!

    모습을 드러내기 무섭게 하찮은 인간을 향해 뛰어간다.

    비록 날랜 몸놀림은 아니었으나 워낙 보폭이 컸기에 순식간에 인간에게 접근할 수 있었고.

    후우웅!

    변종 오우거의 몽둥이가 인간의 정수리를 향해 떨어졌다.

    콰앙!

    얼마나 충격이 강했던지 충돌과 함께 강렬한 충격파가 장내를 휩쓸었다.

    “크크킄.”

    변종 오우거는 웃었다.

    이번 일격으로 인간은 잘 다져진 고기가 되어 그의 일용한 양식이 되어 줄 것이기 때문에.

    하지만.

    “크오?”

    변종 오우거는 보았다.

    누구도 벗어나지 못했던 괴력의 몽둥이를 맞고서도 멀쩡히 서 있는 인간을 말이다.

    “네 녀석.”

    베론의 몸을 강탈한 초월적인 존재가 오우거를 응시했다.

    그리고 그 순간.

    퍼억!

    일대를 지배하고 있었던 오우거의 튼튼한 육신을 핏덩어리가 되어 사방으로 흩날렸다.

    “주제도 모르는 미물은 죽어야 마땅하지.”

    씨익.

    냉소를 지은 그는 주변을 장식한 오우거의 잔해를 무시한 채 걸음을 옮긴다.

    “우선은 그란 영지라는 곳을 방문해야겠군.”

    그가 드높은 곳에서부터 이곳에 현신한 이유는 ‘누군가’를 제거하기 위한 것.

    그러기 위해서는 작은 소동을 일으킬 필요가 있었다.

    전쟁이라는 그의 격에 가장 잘 어울리는 소동을 말이다.

    *

    찌르르, 찌르르-

    풀벌레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히고.

    사아아-

    시원한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간다.

    “…….”

    풀숲에 누운 채로 하늘을 올려다보자 밤하늘에 박힌 수많은 별이 반짝이며 나를 반긴다.

    모처럼 훼방꾼들을 뒤로한 채 홀로 맞이하는 풍경.

    확실히 네가 말했던 것처럼 꽤 좋은 풍경이구나.

    고요한 기분을 만끽하며 원정대원 중 하나였던 론의 바람을 떠올린다.

    ‘왕자님, 데이엔 호수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의 풍경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부디 대륙으로 돌아가시게 되거든, 저를 대신해 그곳의 풍경을 바라봐 주지 않겠습니까? 어렸을 때 봤던 그 풍경을 아직도 잊을 수 없군요…….’

    론.

    푸른 사신의 또 다른 희생자인 녀석은 원정대원을 위하여 기꺼이 자신을 희생했다.

    평소에도 존재감을 잘 드러내지 않았던 유약한 녀석.

    그런 녀석의 바람 또한 그리 대단치 않은, 어찌 보면 사소한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너의 바람이 지금 내게는 가장 감동을 안겨 주는구나.’

    아직 많은 이의 바람을 들어주진 못했지만 어쩐지 이 사소한 바람이 지금은 가장 크게 다가왔다.

    아마도 그건 내가 사소한 부분을 놓치며 살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래.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가자.’

    새삼 깨달음을 얻으며 가만히 눈을 감고 주변의 풍경 소리에 집중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삐이이이-

    내가 항상 목에 차고 다니는 소라 껍데기 펜던트가 경고음을 발했기 때문이다.

    “음?”

    감응의 소라.

    그것은 나와 인연을 맺은 이들에게 나눠 준 일종의 연락 도구였다.

    위급한 순간이 오면 마력을 부여하여 신호를 줄 수 있게 한 것.

    마음속의 고요를 뒤로한 채 감응의 소라를 손에 쥐었다.

    ‘펠리드?’

    그 근원지는 펠리드였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아끼는 동생의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 둬야 하는 것.

    슈슈슉!

    곧장 공간을 넘어 신호를 보내온 펠리드에게 이동했다.

    “형님!”

    곧장 들리는 펠리드의 음성.

    어느새 뒤바뀐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대공 전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펠리드만이 아니라 회의장을 가득 채운 귀족들이 나를 반겼다.

    곧장 상석에 앉은 펠리드를 바라보며.

    “무슨 일이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트리안 왕국에서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내 성격을 익히 아는 녀석이었기에 어떠한 사족도 없이 핵심을 꺼냈다.

    “트리안 왕국이?”

    나라 간 전쟁은 언제 일어나도 이상할 건 없다.

    애초에 인간의 본성이라는 건 남을 밟고 일어서려는 정복욕이 우선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예상 중에 트리안 왕국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 계집이 미치지 않은 이상에야 공격할 턱이 없을 텐데?’

    나의 힘을 빌려 전대 왕에게서 왕위를 찬탈한 플레아.

    그 계집이 제정신이 박힌 이상에야 전쟁을 일으킬 턱이 없었다.

    비록 일부에 불과하나 내 실력을 어느 정도 확인했으니 말이다.

    “혹시 플레아가 미쳤다거나 그런 소식은 없었어?”

    혹시나 해서 물었고.

    “현재 트리안 왕국의 왕은 그녀가 아닙니다.”

    조금은 어처구니없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플레아가 왕이 아니라고?”

    “네.”

    “설마 그 짧은 사이에 왕이 또 바뀌기라도 했단 말이야?”

    “네, 그녀는 갑작스레 일어난 반란으로 왕위에서 내려왔고, 감옥에 투옥되었습니다.”

    “허!”

    아무리 나라도 이 소식에는 기가 찰 수밖에 없었다.

    바보도 아니고 어떻게 왕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반란을 허용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알기로 그 계집은 꽤 철저한 성격이었는데.’

    더욱더 의문인 건 플레아의 성격이었다.

    그녀 또한 찬탈하여 왕위를 얻지 않았는가.

    정당한 왕위를 잇지 못한 이들은 언제든 반란을 생각하기 마련이었고, 그녀의 의중에는 그러한 게 모두 들어 있었다.

    그런데 바보같이 반란을 허용하다니.

    아니 내가 알기로 트리안 왕국에는 반란을 일으킬 만한 세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무슨 일인지 간략하게, 핵심만 짚어서 말해 봐.”

    유추할 수 있는 게 없기에 다시금 펠리드에게 물었다.

    “저도 정확히 트리안 왕국의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녀석은 왕의 신분이었지만 내게 존대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에 대해서 불만을 제기하거나 혹은 이상하게 생각하는 이가 없다.

    ‘쯧. 아직 한참 멀었다, 동생아.’

    티를 내진 않으면서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내가 만든 왕이라 해도 현재 나는 대공의 신분. 즉, 펠리드가 그들이 모셔야 할 왕이었다.

    그런데 누구 하나 존대하는 펠리드에게 어떠한 의문도 제기하지 않는다.

    아직 진정한 신하들을 만나지 못한 것이다.

    ‘뭐, 아직은 시간이 많이 지난 게 아니니. 녀석이라면 차차 자신의 왕국을 만들어 가겠지.’

    상념은 그것으로 끝.

    건방진 귀족들에 대한 생각을 멈춘 채 이어지는 펠리드의 말에 집중했다.

    “다만 최근 들어온 첩보에 의하면 반란을 주동한 이는 베론이라는 기사라고 합니다.”

    “베론?”

    반란을 주동하여 왕위를 찬탈할 정도면 대단한 인물일 게 틀림없다.

    그런데 베론이란 이름은 단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이름이었다.

    “네, 트리안 왕국 변방 영지의 일등 기사 출신이라는 것 말고는 알려진 게 없는 자입니다.”

    “그러니까 변방 영지의 일등 기사 따위가 반란을 획책했고, 그것이 성공했단 말이지? 7써클에 이른 마도사인 전대 왕을 물리치고?”

    “그것도 반란을 주도한 지 고작 하루 만에 벌어진 일입니다.”

    하루라.

    그건 또 예상하지 못한 부분인데.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범상치 않은 녀석이라곤 분명하네. 그래서 지금 상황이 어떻기에 나를 소환했지?”

    비록 플레아와 인연이 있다지만 펠리드는 공과 사가 분명한 녀석이다.

    타 왕국의 반란이 일어나든 말든 그것에 큰 상관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다급하게 나를 부른 건 조금 전 말했듯 트리안 왕국의 전쟁 선포로 인한 것일 터.

    웬만해선 내게 손을 빌리지 않으려는 녀석이 얼마나 다급했기에 나를 불렀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

    하지만 녀석은 좀처럼 말을 꺼내질 못했다.

    “…….”

    “…….”

    그리고 나머지 귀족들 또한 침묵을 지킨 채 내 눈치를 보기 바쁘다.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는 게 뭔가 크게 잘못한 게 분명하다.

    “똑바로 말해.”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나는 미간을 찡그린 채 말했고.

    “형님…….”

    마침내 펠리드가 떨어지지 않는 입을 뗐다.

    “…죄송합니다, 형님. 조금 전 크리아 요새가 점령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뭐!”

    곧장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크리아 요새라고 한다면 왕성으로 가는 최후의 관문 아닌가.

    그곳이 점령되었다는 뜻은.

    “현재 적 병력이 왕성 앞까지 밀어닥친 상태입니다.”

    난공불락의 요새인 크리아 요새의 점령.

    그것은 곧 적 병력이 왕성 앞, 그러니까 지금 바로 코앞까지 당도했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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