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Chapter 79
「어, 어……?」
어리둥절한 몽둥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당연히 소멸할 수밖에 없는 폭발 속에서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건 내가 의도한 바였다.
녀석이 살 수 있도록 권능의 방향, 그리고 힘을 조절한 것.
만약 그대로 권능의 폭격에 맞았다면 몽둥이는 그 자리에서 바로 소멸하고 말았을 것이다.
“어이, 도구.”
나는 녀석을 불렀고.
「…….」
몽둥이가 넋이 나간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설마 아직도 주제 파악이 덜 된 건 아니겠지?”
소멸시킬 작정이었다면 진즉 소멸시켰다.
그러지 않은 건 ‘온전한’ 상태의 녀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사상 최강의 무구를 제작하는 것이 콘웰의 바람.
적어도 내가 보기에 눈앞에 있는 몽둥이의 혼은 그러한 바람에 어울리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건방지기 그지없는 녀석을 살려 둘 수밖에 없다.
“비록 필요해서 네 녀석을 살려 두긴 했지만 더는 건방을 떨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귀찮아서 그렇지 얼마든지 네 녀석을 대체할 무구를 제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까 말이야.”
그리 말하며 다시금 권능을 발현했다.
쿠쿠쿠쿠쿠쿠!
의식의 세계를 지배하는 강렬한 기운.
조금 전 발현했던 것보다 더욱더 많은 의지의 무기가 생성되어 몽둥이를 위협하고 있었다.
조금 전 공격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내 실력이 아득한 경지에 도달해 있음을 직접적으로 보여 준 것이다.
털썩!
그 힘의 차이를 느낀 녀석이 결국, 무릎을 꿇었다.
「아이고,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그리고 몽둥이의 태도가 180도로 바뀌었다.
「제가 주제도 모르고 주인님의 힘을 시험했습니다요. 부디 넓은 아량을 베풀어 용서해 주시길…….」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로 두 손을 삭삭 비빈다.
“으응……?”
전형적인 간신배의 모습.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기가 무슨 세계의 지배자니 위대한 존재니 떠들어 댈 때는 언제고, 바뀌어도 너무 급작스럽게 바뀐 것 아닌가?
“너… 태세 전환이 굉장히 빠르다?”
「아이고,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요. 이렇게 위대한 힘을 지닌 주인님을 맞이한다면 저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혼이 탄복하고 말 겁니다. 암, 그러고 말고요.」
“뭐, 어쨌든 내게 굴복하겠다는 거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기꺼이 주인님의 충실한 도구가 되겠습니다요.」
녀석은 자신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스르르르-
먼지로 화하며 의식의 세계에 남겨진 자신의 흔적을 지워 버렸다.
그제야 나는 의식을 벗어나 본래의 시야를 회복할 수 있었다.
“귀, 귀인이시여. 괜찮으신 겁니까?”
그 변화를 눈치챈 아르콴이 다가와 안부를 물었다.
“당연하지. 내가 고작 이딴 몽둥이에 굴복할까 봐?”
“아! 역시 무구의 혼을 굴복시키셨군요!”
작은 단서였지만 철석같이 알아들은 녀석이 감탄한다.
웅웅웅!
그 말에 반응하여 몽둥이가 울음을 토하기 시작했다.
상당히 불쾌한 그 의지는 내가 아니라 아르콴을 향해 있었다.
비록 내게는 굴복했지만 나를 제외한 다른 존재에게는 아니었다.
“히이익!”
그 사나운 기세에 놀란 아르콴이 황급히 내게서 멀어졌다.
“인마, 내 허락 없이 날뛰지 마. 안 그러면 확 부러뜨려 버리는 수가 있으니까.”
우웅!
약간의 불만이 느껴지긴 하지만 그래도 금방 수긍했다.
확실히 힘의 차이를 보여 주니 길들이기가 훨씬 용이하다.
“아르콴.”
“네, 네. 말씀하십시오.”
“설마 이 몽둥이가 완성된 무구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나는 몽둥이를 쥔 손을 들어 녀석에게 흔들어 보였다.
비록 무구에 깃든 혼은 합격이었지만 이 상태가 완성된 형태라면 곤란하다.
내 기준에서 역사상 가장 강력한 무구라는 건 외형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상 최강의 무구가 이런 몽둥이라면 곤란하지.’
아마 죽은 콘웰도 이 몽둥이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어디 가서 이야기하기도 부끄러운 외형의 몽둥이는 내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당연히 그건 완성된 형태가 아닙니다. 저는 그저 무구의 그릇만 만들었을 뿐, 나머지는 귀인의 몫입니다.”
“나의 몫이다?”
“그렇습니다. 조금 전 피를 흘려보내 혼을 완성했듯 이번에는 귀인의 기운을 주입하면 무구가 그 기운을 받아들여 스스로 형태를 만들 것입니다.”
“오호라!”
그제야 몽둥이가 왜 몽둥이 형태가 되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 이유라면 합격.
‘기운을 주입해야 한단 말이지.’
아마도 어떤 기운을 주입하느냐에 따라 무기의 종류, 그리고 형태가 결정될 터.
“…….”
고심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내가 발현할 수 있는 기운, 그리고 의지의 종류는 다양하다.
모든 존재를 굴복시킬 수 있는 패기(覇氣).
살아 있는 존재는 죽이기 위한 살의(殺意).
단지 적대적인 감정뿐만 아니라 희생, 치유 등 다양한 권능을 부여할 수 있다.
‘글쎄, 그런 게 나와 어울리나?’
돌이켜 봤을 때 이런 것들이 나와 어울리는가, 나를 대표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
숱한 시련을 겪으며 성장하면서 느낀 게 하나 있다.
내게 어울릴 만한 것, 나를 대표하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라는 것을.
‘운명 또한 내게 이 격을 부여하려고 했지.’
과거, 내게 찾아온 세계의 운명은 이 ‘격’을 부여하려고 했었다.
그렇기에 이것은 나를 대표하는 힘이며 그것이야말로 내 존재를 대변하는 것.
「크허허허헝!」
콘웰의 바람을 들어주기 위한 일.
그렇기에 감히 경시하는 마음 없이 내 안에 있던 7마리의 마수를 모두 깨웠다.
지이잉-
그 순간 운명의 압박이 시작되었다.
‘인제 그만 포기하고 운명을 받아들여라.’
‘너는 인간이 아닌 존재.’
‘더는 이 세계에 남아 있을 수 없다.’
나를 향해 끊임없이 속삭인다.
아마 예전이었다면 그 말에 굴복하여 신격이 되는 운명을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닥쳐. 내게는 아직 이뤄야 할 소명이 있다.’
내 의지는 전과 비교할 바 없이 커졌다.
고대 신을 흡수하여 운명에 저항하는 힘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꺼져!’
나는 거세게 압박해 오는 운명을 걷어 냈다.
솨아아아-
비록 잠시뿐이긴 하지만 압박이 사라졌고.
스으으으-
나는 내 안에 숨겨진 그 기운을 몽둥이에 부여했다.
그러자.
웅웅웅웅웅!
마치 환희에 젖은 것처럼 몽둥이가 웅후한 울음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라운 변화가 시작되었다.
텅, 터터텅!
마치 묵은 때를 벗겨 내듯 몽둥이를 구성하고 있던 금속 일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오오!”
들어 본 적은 있으나 그 과정을 직접 지켜본 것은 처음인 아르콴은 감탄사를 내뱉었고.
“아니, 이게 무슨……?”
“정말 신비한 광경이네요.”
타일로와 킬리아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광경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숨죽여 그것을 지켜보았다.
나는 기운이 끊기지 않도록 계속해서 그 의지를 주입하였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드, 드디어!”
아르콴의 탄성이 나타내듯 몽둥이는 환골탈태하여 새로운 모습을 드러냈다.
‘창이로군.’
그것은 창이었다.
보통의 창과는 달리 창끝이 양쪽으로 갈라진 형태의 창.
단지 외형만 다른 게 아니다.
나의 기운을 완전히 흡수한 창은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이질적인 회색의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
“무, 무슨 기운이…….”
“이건 대체…….”
그간 나를 겪어 온 타일로와 킬리아도 당황하여 주춤 물러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내가 창에 부여한 기운은 운명이 내게 부여한 격, ‘파멸(破滅)’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 행보를 보면 알 수 있다.
비록 그것이 온전한 내 의지가 아니었다고 해도 내가 가는 곳마다 파멸의 행위가 벌어졌다.
마계에서는 72마신을 비롯하여 수많은 마족을 죽였다.
환계에서는 모든 마수를 두드려 패며 그들을 굴복시켰다.
천계도, 돌아온 대륙에서도 마찬가지.
내가 걸어가는 길은 그야말로 파멸의 길.
그리고 그러한 내 존재의 기운을 부여받은 몽둥이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파멸의 기운을 발산할 수밖에 없었다.
웅웅웅!
하지만 몽둥이, 아니 도구 녀석은 무엇이 불만인지 계속 울어 댔다.
“귀인이시여. 당신의 창이 이름을 원하고 있습니다.”
7마리 마수를 깨운 덕분에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는 내게 용케 접근한 녀석이 말했다.
과연 대장장이답게 무구의 완성을 위하여 두려움을 떨친 것이다.
“이름이라…….”
그래.
평범한 무구가 아니라 혼까지 부여되었으니 존재의 각인이 새기기 위해서는 이름이 필요하다.
‘인제 그만 잠들어라.’
나는 살벌한 분위기를 풀기 위하여 깨어난 마수를 다시금 잠재웠다.
어떻게든 계속 깨어나 있으려는 녀석들을 내리누른 후.
“파멸.”
내 파멸의 의지를 받아들였으니 당연히 녀석의 이름 또한 파멸이었다.
웅웅!
거창한 이름은 아니나 그것이 마음에 드는 듯 파멸이 그 이름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화악!
완성을 알리는 회색의 기운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그건 찰나에 불과했고, 파멸은 어느새 평범한 창으로 돌아와 내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귀인이시여!”
어느새 다가온 아르콴.
“무, 무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 창을, 파멸의 창을 한 번 만져 볼 수 있겠습니까?”
황홀한 듯이 파멸의 창을 바라보고 있는 녀석.
아마도 대장장이로서의 본능으로 인해 창을 만져 보고 싶은 것이겠지만.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
“네? 어째서……?”
“너도 알고 있잖아. 무구에 깃든 혼은 한 번 인정한 주인이 아닌 이의 손길을 거부한다는 것을.”
“괜찮습니다. 설사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찾아온다 해도 그것을 견뎌 낼…….”
“죽음보다 더한 고통은 무슨. 아마 넌 파멸을 만지는 순간 가루가 되어 버릴걸?”
농담이 아니다.
내 파멸의 기운을 흡수한 녀석은 닿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힘을 품게 되었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녀석을 만지는 순간.
‘파삭!’
한 줌의 가루가 되어 소멸하고 말 것이다.
그것은 녀석을 완성한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괜한 소리 하지 말고 최고의 무구를 제작한 것에 만족해. 너는 그냥 대장장이가 아니라 모르아 둔을 이끌어야 하는 황제잖아?”
나는 아르콴에게 진심이 어린 충고를 해 주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제가 너무 주제를 몰랐던 것 같습니다.”
녀석은 순순히 수긍했다.
평범한 대장장이였다면 목숨을 잃을지언정 파멸을 만지려고 했을 테지만 모르아 둔의 황제라는 신분이 그것을 막은 것.
“대신 파멸의 힘을 보여 주시지 않겠습니까?”
만질 수는 없어도 그 위력을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
“그 정도라면야.”
다른 녀석의 부탁이었다면 당장 거절했을 테지만 그래도 명색이 파멸의 그릇을 완성한 대장장이 아닌가.
그렇기에 녀석의 요청을 수락했다.
스윽!
그리고 가볍게 파멸을 휘둘렀다.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그저 허공에 휘두른 것에 불과했지만.
쩌억!
다음 순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기운이 담긴 파멸은 가를 것이 없자 공간을, 차원을 갈라 버린 것이었다.
휘오오오오!
갈라진 차원의 틈새로부터 이질적인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거…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되겠는데?”
솔직히 말해서 나도 당황했다.
아니 고작 휘두르는 것만으로 차원을 갈라 버리는 게 말이나 되는가.
“…….”
“…….”
그것은 이를 바라보고 있던 이들도 마찬가지.
말도 안 되는 광경을 선보인 파멸의 위력에 넋이 빠진 것처럼 입을 쩍하고 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