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Chapter 78
‘과한 자신감은 아니었나 보네.’
강렬한 의지를 전달하는 몽둥이(?)를 보다가 힐끗 아르콴을 응시했다.
조금 전에도 말했던 것처럼 녀석은 최고의 대장장이가 확실하다.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는 게 이토록 선명한 의지를 전달할 수 있는 자아라니.
마계의 신물인 스톰브링어, 그리고 무수히 많은 신물도 접촉해야만 그 의지를 발현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 몽둥이가 얼마나 강력한 자아를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자아가 강하다는 것은 곧 무구에 깃든 혼이 그만큼 강력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다면.
「하찮은 것들. 무릎을 꿇어라. 나는 전지전능한 존재이며 세상을 지배할, 모든 것의 위에 있는 존재니!」
깨어난 혼이 너무도 건방지기 이를 데 없다는 사실이다.
“저거 내 피를 머금고 탄생한 것 맞아?”
“으으…….”
하지만 내 질문에 아르콴은 대답하지 못했다.
비록 일부긴 하지만 내 영혼을 담은 무구. 그렇기에 기세가 너무도 강렬했기 때문이다.
부웅!
나는 녀석의 주위로 기세가 접근할 수 없는 보호막을 만들어 주었다.
“헉, 허억!”
그제야 참았던 숨을 토해 내는 아르콴.
“저 녀석 내 피를, 그러니까 내 혼의 일부를 담은 게 맞지?”
“네? 네,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저렇게 건방지지?”
“아마도 귀인께서 인지하지 못하는 어떤 부분이 반영된 것이 아닐는지…….”
“흠. 그렇단 말이지.”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영혼에는 나도 모르는 여러 가지 성격이 있다.
실제로 7마리의 마수 또한 나이지만 내가 아닌 또 다른 자아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러니 내 영혼에 어떤 성향이 숨어 있는지는 나도 알 수 없는 것.
“그런데 하필 저런 오만하고 건방진 녀석이 나올 건 뭐냐.”
얌전하고, 순종적인 녀석이었다면 무구를 다루는 게 쉬웠을 텐데.
“쯧.”
아쉬움에 혀를 차며 앞으로 나아갔다.
「호오? 이 녀석 봐라?」
다가오는 나를 확인한 몽둥이가 의지를 전달했다.
‘어째 말하는 게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순간적으로 든 그 생각을 애써 부정하며 천천히 녀석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위대한 존재를 보고서도 무릎을 꿇지 않는다니. 참으로 건방진 녀석이로다!」
쿠콰콰콰콰!
지금까지는 장난이었다는 듯 녀석이 발산하는 기세가 더욱더 사납게 변했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확실히 역사상 최고의 무구는 맞는 것 같다.
건방진 것 하나는 역사상 최고라고 단언할 만하다.
“놀고 있네.”
뚝!
내 의지가 바라기에 녀석의 기세가 사라졌다.
「으응?」
조금은 놀란 듯한 몽둥이.
“네가 말이야, 아무리 내 영혼의 일부가 담겨 있다고 해도 도구에 불과하거든.”
무구에 아무리 강력한 혼이 깃든다고 해도 어차피 도구는 도구일 뿐.
“그러니까 건방 떨지 말고 본분에 충실해.”
기세를 물리친 후 곧장 녀석을 잡았다.
그러자.
「하하하! 멍청한 녀석. 감히 나를, 이 위대한 존재를 다룰 수 있는 이가 존재하리라 생각한단 말이냐. 어리석구나, 정녕 어리석어. 너는 지금 이 몸의 우아한 몸을 잡은 것을 후회하게 되리라.」
그것은 단지 말뿐인 허세가 아니었다.
스으으-
접촉한 곳을 통하여 몽둥이가 발산하는 혼의 힘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뭐랄까.
마치 내 혼을 밀어내고 그곳을 차지하려는 무단 침입과 같은 느낌이었다.
「으하하하하! 그렇지 않아도 적당한 그릇이 필요했는데 말이야. 네 녀석의 몸뚱이를 이 위대한 존재께서 긴히 사용해 주도록 하마.」
“유, 육체 강탈!”
놀란 아르콴이 소리친다.
‘아! 그거였구나.’
어쩐지 익숙하다고 했더니.
과거에도 이런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발뭉. 그 빌어먹을 마검.’
6마신 발레포르를 처치하여 얻은 그 검에 깃든 혼은 내 육신을 차지하기 위하여 강력한 저주를 걸었더랬다.
당연히 그 주인이 되는 마신을 죽였기에 무구에 깃든 혼을 손쉽게 이겨 내리라 생각했지만 양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갔다.
발뭉에 깃든 혼은 매우 강력한 것이어서 심상에 멋대로 침범하여 내 정신을 서서히 갉아먹기 시작했다.
세간에서 말하는 ‘심마(心馬)’라는 형태로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 것.
결과적으로는 덕분에 더욱더 단단한 심상을 만들 수 있었지만 자칫 잘못했으면 발뭉의 혼에 먹혀 피만을 추구하는 살육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이 몽둥이는 주인도 몰라본 채로 내 육신을 가로채기 위하여 멋대로 심상에 침입하고 있었다.
꾸물꾸물.
흘러들어 온 녀석의 기운이 곧 특별한 형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흐흐흐흐. 이제 네 녀석의 육신은 내 것이다.」
완성된 형태는 인간이었다.
산발한 머리, 갈기갈기 찢겨 넝마가 된 옷.
그리고 찢긴 옷 사이로 보이는 수많은 생채기와 흉터, 그리고 검게 굳어 버린 딱지.
놀랍게도 그 모습은 과거 마계를 방랑했을 때의 나였다.
내 의식에 침입한 녀석은 과거의 내 모습을 한 채로 육신을 차지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방법?
간단하다.
나의 의식 깊숙한 곳에 마련된 중심부를 차지하면 된다.
몽둥이 녀석은 아무런 방해 없이 의식의 깊숙한 곳으로 이동했고, 결국은 그중심부에 도달했다.
「이곳이 이 녀석의 중심지로군.」
혼에 불과한 녀석은 곧장 알아챘다.
중심부에 놓인 왕좌. 그곳에 앉게 되면 자신이 육신을 차지할 수 있단 사실을.
저벅-
녀석은 왕좌를 향해 다가갔지만 나는 몽둥이가 내 육신을 차지하도록 내버려 둘 마음이 없었다.
스스스.
정신을 집중하여 의식 깊숙한 곳에 나의 분신을 만들었다.
물론 그건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한 일. 적어도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러야만 만들 수 있는 화신체였다.
“너.”
나는 다가오는 녀석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무래도 네 녀석을 다루기 전에 제대로 정신 교육 좀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이건 건방지기가 아주 하늘을 찌른다.
여기서 제대로 교육시켜 놓지 않는다면 또 언제 지랄발광할지 모르니 아주 제대로 밟아 줘야 할 것 같다.
「크크큭. 너야말로 주제를 모르는구나.」
하지만 녀석은 갑작스러운 나의 등장에도 비웃기 바빴다.
마치 당연히 승리를 앞둔 듯한 여유로운 모습.
「육신에 적응한 네 녀석이 혼인 나와 의지의 싸움을 벌이겠다는 말이냐? 으하하하하! 수준이 다르다는 것을 몸소 느끼게 해 주마.」
녀석이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는 존재의 차이다.
나는 육신이라는 그릇에 혼이 얽매여 있었으나 녀석은 혼, 그 자체로 만들어진 존재. 그렇기에 육신이 필요 없는, 의지의 싸움에서는 당연히 승리할 것이라 장담하는 것이다.
곧 그것이 아주 멍청한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겠지만 말이다.
「보아라, 이것이 내 의지의 검이다!」
부우웅!
녀석의 의지는 한 자루의 검을 만들었다.
검은, 아니 자세히 보면 파란 기운이 섞인 오묘한 색으로 빚어진 의지의 검.
그 검은 끝을 알 수 없도록 길게 뻗어 있었고, 발산되는 기운은 모든 것을 파괴할 듯 맹렬한 기세를 품고 있었다.
「닿는 모든 것을 파괴하는 파멸의 검 부르트강. 이것이 네 녀석은 물론 너의 의식 자체를 완전히 파괴할 것이다!」
“부르트강?”
솔직히 조금은 놀랐다.
설마 부르트강을 구현할 줄이야.
과연 내 영혼의 일부가 들어간 녀석다운 권능의 발현이었다.
짝짝.
그래서 나도 모르게 손뼉을 치고 말았다.
‘확실히 잘 만들었네.’
물론 그건 눈앞에 있는 머저리 몽둥이를 향한 것이 아니라 녀석을 제작한 아르콴을 향한 것이었다.
「으하하하하! 지금에서야 현격한 격의 차이를 느낀 것이냐? 하지만 소용없다. 네 녀석은 위대한 존재에 대한 예를 표하지 않았으니 죽어 마땅하다.」
쿠쿠쿠쿠쿵!
끝을 알 수 없는 파멸의 검이, 그 끝이 나를 향하여 겨눠지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한 순간.
「죽어라!」
피잉!
마치 시위에서 화살을 발사한 듯한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쐐애액!
무한한 길이를 자랑하는 부르트강의 검 끝이 시간을, 공간을, 차원을 절단하며 내게로 쇄도했다.
의지가 닿은 순간 내 화신체는 이미 부르트강의 검 끝에 꿰뚫려 쓰러져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부르트강이 지닌 고유의 권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이이이잉-
내 의지는 주변의 시간을 비틀었고, 차원과 공간, 그리고 운명마저도 비틀었다.
스윽!
그리고 절대로 빗나갈 턱이 없는 부르트강의 검 끝은 나를 꿰뚫지 못했다.
「어라?」
부르트강의 권능을 잘 알고 있는지 검끝이 빗나간 것에 놀라는 몽둥이.
「이게… 이럴 턱이 없는데?」
“맞아. 본래는 이러면 안 되지. 바로 이렇게.”
쿠쿠쿠쿵!
나는 곧바로 녀석이 발현한 것과 같은 무한한 길이의 검 부르트강을 발현하였다.
하지만 조금 전의 녀석이 발현했던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파직, 파지직!
검은, 그리고 푸른 기운이 섞인 녀석과는 달리 나의 부르트강은 순백으로 빛나고 있었으며 검신 주변을 황금색 스파크가 둘러싸고 있었다.
‘모습도 과거 모습이라고 했더니 권능도 과거의 권능에 불과하네.’
아마 녀석에게 주입된 내 영혼의 일부는 과거 마계를 방랑했을 때의 기억인 것 같다.
현재도 아니고, 과거의 모습이라면 내가 질 이유가 없지.
아니 애초에 일부에 불과한 영혼 가지고 내게 대적하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닌가.
“어디 한번 받아 봐.”
쐐애액!
나는 녀석을 향해 부르트강을 찔렀고.
푸욱!
「크아악!」
나와는 달리 녀석은 부르트강의 검끝을, 그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어, 어째서 이런 권능을…….」
무한한 검 끝에 꿰뚫린 채 대롱대롱 매달린 녀석일 눈을 부릅뜬다.
“의지의 싸움이라면 당연히 네가 이길 줄 알았나 보지?”
「그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 나는 혼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래. 보통은 그렇겠지. 근데 그거 알아? 과거 나는 말이야 네 녀석과 마찬가지로 혼만을 지닌 채 억겁의 시간 동안 단련을 했거든. 혼으로서의 경력만 해도 너보다 훨씬 더했으면 더했지 모자라지 않단 말이지.”
마신들의 음모에 당해 영혼만 떠돈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심지어 몇 번은 내 육신을 찾기 위하여 오랜 시간 동안 방랑을 거듭했던 적도 있었다.
그렇기에 육신이든지 혼이든지 의지든지 나는 완전무결하다.
「그럴 리가 없다. 나는, 나는 위대한 존재. 절대 굴복하지 않는…….」
“굴복하지 않아?”
부르트강에 꿰뚫렸으면서도 여전히 입이 산 녀석을 응시하며 권능을 발현하였다.
쿠콰콰콰콰콰콰! 나의 의식, 무한한 영역을 가득 장식하는 게 있었으니.
「마, 맙소사!」
천천히 하강하고 있는 멸화의 검 레바테인.
반드시 적의 목숨을 앗아 가고 마는 필중의 창 궁니르.
모든 악한 존재를 멸하는 정화의 창 롱기누스 등.
주변을 장식한 건 오랜 시간 연마한 의지의 무기.
하나만 해도 능히 몽둥이 따위를 소멸시킬 수 있는 강력한 의지의 무기가 수십, 수백 개가 주변을 포위하고 있었다.
“본래는 조금 봐줄까도 생각했지만 안 되겠다. 일단 좀 맞고 시작해 볼까?”
「자, 자자자자잠깐……!」
하지만 나는 녀석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내 명령과 함께 움직인 의지의 검이 그대로 몽둥이를 향해 쇄도했고.
콰쾅, 콰콰콰콰콰쾅!
녀석의 모든 것을 날려 버릴 수 있는 대폭발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