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Chapter 77
“맙소사. 대륙에 이런 재료가 존재하고 있었다니…….”
지면을 뒹굴고 있는 재료들을 살펴보던 3황자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나름 고귀한 피를 타고난 난쟁이니 웬만한 대장장이보다는 나은 실력을 지니고 있을 터.
내가 꺼낸 재료의 가치를 한눈에 알아봤을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대륙에 존재하는 건 아냐. 마계, 환계 등 다양한 세계에서 공수해 온 물품이거든.”
“마계와 환계… 말입니까?”
“왜, 못 믿겠어?”
뭐, 녀석의 반응이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다.
마계나 환계는 대륙의 그 어떤 종족이 간다고 해도 단 1초도 버틸 수 없는 혹독한 세계니까 말이다.
게다가 그 세계에 방문했다는 것도 아니고 보물을 강탈해 왔다고 한다면 3황자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과, 과연 귀인이십니다. 그 혹독한 세계에서 이런 대단한 보물을 가지고 오다니.”
물론 놀라운 실력을 확인한 녀석은 내 말을 철석같이 믿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 정도면 역사에 남을 만한, 사상 최고의 무구를 제작할 수 있을까?”
나는 다시금 물었고.
“여기서 단언하겠습니다. 지금껏 그 누구도 제작하지 못한 사상 최고의 무구를 반드시 제작해 보이겠습니다.”
녀석은 단언했다.
“그런 마음가짐 좋아. 확실히 네 녀석을 선택한 보람이 느껴지네.”
“감사합니다.”
어떻게 보자면 굴종이라고도 보일 수 있으나 녀석은 비굴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확실히 황제나 황태자가 아니라 녀석의 편을 들어준 걸 잘한 것 같다.
“그럼 네가 말했던 그 최고의 대장장이는 언제 소개해 줄 셈이지?”
이왕 말이 나온 거 대장장이도 직접 보고 싶었다.
“지금 보고 계시지 않습니까.”
“음?”
순간 녀석의 말을 이해하질 못했다.
“보고 있다고?”
하지만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3황자를 제외한 다른 난쟁이를 찾아볼 수 없다.
“그게 무슨…….”
순간 의문이 떠올랐다가.
“…설마?”
나는 녀석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렇습니다. 제가 바로 모르아 둔이 낳은 최고의 대장장이, 귀인께서 찾던 바로 그 존재입니다.”
어라?
이건 예상하지 못한 전개인데?
나는 눈만 끔뻑이며 자신을 최고의 대장장이라 소개하는 난쟁이 3황자를 빤히 응시했다.
*
깡, 까앙!
청아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맑은 망치질 소리가 계속 울려 퍼지는 곳.
촤아아아-
그곳은 모르아 둔 가장 깊숙한 곳에 마련된 홍염의 대장간.
모르아 둔이 자랑하는 신비한 대장간이었다.
가장 뜨거운 마그마 열기를 이용하여 무구를 제작할 수 있는 이 천연의 대장간은 오직 제국 황제의 승인이 떨어져야만 사용할 수 있는 신비한 장소다.
본래는 황제 클라이크의 승인이 떨어져야만 하나 이미 그는 전(前) 황제였다.
나의 도움을 통하여 새로이 황제의 위에 오른 황제 아르콴이 홍염의 대장간에서 열심히 망치를 두드리고 있었다.
“정말 대단한 완력이네요. 어떻게 저 거대한 망치를 저렇게 간단히 휘두를 수 있는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타일로가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아르콴이 담금질을 위해 두드리고 있는 망치는 보통의 망치와는 차원이 달랐다.
5m에 달하는 거대한 길이, 심지어 가장 무거운 금속 중 하나인 아다만티움을 통째로 사용해 만든 그것은 모르아 둔 황가에 내려오는 거신의 망치.
드워프 중에서도 선택된 이들만이 다룰 수 있는 명장(名匠)의 망치였다.
“물론 완력이 센 것도 맞지만 저런 기물을 다루기 위해 필요한 건 완력만이 아니야.”
아르콴의 완력을 부러워하는 타일로를 향해 말했다.
“완력이 아니면 뭐가 필요한 겁니까?”
“너 그런 이야기 들어 본 적 없어. 신병이기라 불리는 무구는 스스로 주인을 선택한다고.”
“물론 들어는 봤습니다. 하지만 그건 소설에나 나올 법한 허무맹랑한 이야기 아니었습니까? 애초에 철에 불과한 무구에 의지가 깃든다는 것 자체가…….”
“쯔쯧. 너는 아직 멀었다. 그리 좁은 세계에 갇혀 있으니 실력도 늘질 않지.”
“아니, 갑자기 왜 실력 이야기를…….”
무구 이야기에서 갑자기 실력 이야기로 넘어가는 것이 못내 억울한 듯했다.
“내가 말한 건 심상의 영역을 말하는 거야. 내가 전에 말했지. 한계를 두지 말라고. 그건 여기서도 마찬가지야. 세상에는 네가 생각하지 못하는 온갖 기이한 일이 많이 일어날 수 있어. 그런데 그것에 한계를 둬 버리면 모든 게 허상, 즉 거짓이 되어 버려 힘을 잃어버리게 되지.”
나는 녀석에게 깨달음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흐음. 그렇습니까?”
그런데 이 녀석 태도가 별로다.
어딜 봐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게 역력했던 것.
하긴. 이런 모자란 녀석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는 백 마디 말보다 직접 보여 주는 게 낫다.
츠츠츠츠-
아공간을 열어 그곳에 보관되어 있던 스톰브링어를 꺼냈다.
“이거 보여?”
“이 예기. 범상치 않은 검이로군요.”
그래도 보는 눈은 있는지 곧장 스톰브링어의 가치를 꿰뚫어 봤다.
“이게 조금 전에 말했던 주인을 선택하는 기물이라는 거야. 아, 물론 기물보다 더 뛰어난 신물이긴 하지만.”
스톰브링어는 기물보다 뛰어난 신물에 속하는 검.
“자, 받아 봐.”
그리고 나는 그 보물을 서슴없이 타일로에게 건넸다.
“어어……?”
날아오는 검의 손잡이를 낚아채는 녀석.
하지만.
“끄으윽!”
검의 손잡이를 잡은 녀석이 손을 덜덜덜 떨기 시작했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녀석은 스톰브링어에 잠든 폭풍의 혼, 그 거대한 존재에게 위협을 받고 있을 것이다.
“지금 네 녀석을 위협하고 있는 폭풍의 혼이 바로 스톰브링어의 의지라는 거다. 고작해야 쇳덩이 따위에 깃드는 의지지.”
“끄윽… 이, 이것을 좀…….”
폭풍의 혼을 이기지 못한 녀석의 눈이 붉게 충혈되었다.
신물의 의지 중에서도 스톰브링어는 굉장히 사나운 편에 속하는 녀석.
원치 않는 이가 만진다면 건방진 침입자의 정신을 그대로 터뜨려 버릴 수도 있다.
“돌아와.”
나는 스톰브링어에 의지를 전달했다.
웅웅!
검명을 토한 스톰브링어가 나의 손에 돌아왔다.
“헉, 허억…….”
그제야 폭풍의 혼에서 벗어난 녀석은 거친 숨을 토해 내며 심상을 진정시켰다.
“도, 도대체 이게 무슨……?”
“말했잖아. 신물에 깃든 의지라고. 네 녀석이 허무맹랑하다고 믿었던 쇳덩이에 깃든 혼.”
“맙소사. 그 거대한 존재감이 그 검의 의지였다는 말입니까?”
“그래. 아마 내가 조금만 늦었어도 내 정신을 터져서 백치가 되고 말았을걸?”
“으으…….”
생각만 해도 끔찍한지 도리질을 치는 타일로.
물론 그건 녀석을 위협하기 위한 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녀석의 심상은 스톰브링어를 견뎌 낼 수 있을 정도로 단련이 되어 있지 않았다.
정말 조금만 늦게 반응했어도 녀석의 정신은 무한한 미망을 헤매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앞으로 쇳덩이가 어쩌니저쩌니 말은 하지 마라. 너도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한계를 두지 않는 걸 명심하는 게 좋을 거야.”
“명심… 하겠습니다.”
이걸로 확실히 깨달았을 테니 앞으로는 의도적으로라도 한계를 두진 않겠지.
이것으로 시작이다.
누군들 처음부터 한계를 두지 않을 수 없으니 녀석도 조금씩 달라져 갈 것이다.
“…….”
과연 깨달음을 준 보람을 증명하듯 녀석은 골똘히 생각에 잠기며 자신의 심상을 넓혀 가기 시작했다.
‘확실히 주는 보람이 있는 녀석이란 말이지.’
깨달음을 주기 위해 던진 화두.
아마 보통 다른 사람이었다면 진의를 파악하지 못한 채 그냥 듣고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녀석의 재능은 평범과는 거리가 먼 것.
그렇기에 한계를 넓힌다는 생각을 가지기 무섭게 깨달음을 얻기 시작했다.
‘이 여정이 끝나게 되면 괴물 하나가 탄생하겠군.’
아마도 이 여정이 끝났을 때 대륙은 내가 아닌 다른 괴물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물론 아직 그 정도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까앙!
생각에 잠긴 녀석을 뒤로한 채 담금질에 열중인 아르콴을 응시했다.
깡깡깡!
점점 손이 빨라진다.
그리고 마침내.
까앙!
혼신을 담은 마지막 망치질과 함께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후우…….”
모든 정신력, 그리고 녀석이 지닌 재능을 발휘하여 만든 것을 응시했다.
“이건 좀 논란이 있겠는데?”
분명 녀석에게 대륙에서는 볼 수 없는 아주 진귀한 재료를 모두 가져다 주었다.
그런데 담금질을 마친 무기는 쥐를 잡을 때 쓰는 몽둥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뭉툭한 쇳덩이에 불과했다.
“분명 조금 전에 무기를 만들어 준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의문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녀석을 응시, 아니 노려봤다.
만약 이것이 완성되었다고 하는 날에는 당장 녀석의 멱살을 잡고 쥐 잡듯이 잡을 것이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네, 완성된 게 맞습니다.”
“…….”
하지만 이어지는 녀석의 말에 할 말을 잇질 못했다.
“이게 완성된 거라고?”
아무리 내가 참을성이 많다고 해도 이건 못 참겠다.
기껏 온갖 진귀한 재료와 최고의 대장장이를 찾아왔더니 뭐?
고작해야 몽둥이가 완성된 것이라고.
고오오오!
나도 모르는 새에 흘러나온 기세가 주변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장난칠 기분이 아니라서 말이야. 다시금 묻겠는데 이게 완성된 게 맞아?”
“하하하… 장난이었습니다.”
그제야 실토하는 녀석.
“그래. 장난이었어야지.”
“그런데 완전히 장난은 아닙니다. 이것은 제가 생각하는 무기의 초안. 한 가지 과정을 제외하면 완성된 게 맞습니다.”
“고작 이런 몽둥이가?”
“지금은 그렇지만 한 가지 과정을 거치게 된다면 전혀 다른 무기로 탄생하게 될 것입니다.”
고작 한 가지 과정이 남은 몽둥이가 도대체 변화하면 얼마나 변화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불신이 담긴 눈빛으로 녀석을 응시했다.
“나머지 남은 과정이 뭐지?”
“귀인의 피를 이 무기에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피?”
“그렇습니다. 생명의 피는 존재의 근원. 귀인께 맞는 무구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피를 흡수시켜 잠재된 혼을 깨우는 것입니다.”
“흠. 그러고 보니 들어 본 것 같군. 무기에 혼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과정이 필요하다고 하더니…….”
“그렇습니다. 이렇게 그릇이 완성되면 피를 흘려보내어 아직 깨어나지 않은 혼을 일깨우는 것이죠. 쉽게 말하자면 식물에 물을 줌으로써 새싹을 틔우게 하는 과정이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그렇군.”
그제야 이 과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아직 완전히 의심을 거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혼을 깨우는 과정이라고 하니 한번 믿어 보는 수밖에.
스윽.
손에 쥔 스톰브링어를 이용하여 손아귀를 베었다.
의지의 보호를 받지 않은 살은 너무도 간단히 갈라져 선혈이 흘러나왔고.
뚝뚝.
곧장 아래에 있는 몽둥이를 향해 떨어졌다.
“됐습니다. 이제 조금 시간이 지나면 혼이 깨어나…….”
아르콴은 시간이 조금 흘러야 혼이 깨어난다고 했으나.
“물러서!”
나는 녀석이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제지했다.
“왜……?”
“깨어났다.”
녀석의 말은 틀렸다.
「나는 전능하다!」
내 피를 흡수한 몽둥이의 혼이 깨어났다.
그것도 장내가 떠나가도록 선명한 의지를 전달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