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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72화 (72/161)
  • 72화 Chapter 71

    “네 아버지와 형을 죽여 달라고?”

    나는 어처구니없는 시선으로 난쟁이 황자를 응시했다.

    “그렇습니다.”

    잘못 들었나 싶었는데 아니다.

    녀석은 지금 내게 아버지와 형을 죽여 달라는 부탁을 하고 있었다.

    “그게 처음 본 사람에게 할 만한 부탁인가?”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각별한 인연이 있다면 모를까, 녀석과 나는 처음 만난 사이다.

    아니 어떤 미친 녀석이 처음 본 사람에게 다짜고짜 아비와 형을 죽여 달라는 부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어차피 곧 죽을 목숨. 많은 것을 가릴 사정이 아니라서 말이죠.”

    그리 말한 녀석이 쓴웃음을 지었다.

    복잡한 감정이 깃든 웃음. 아무래도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다.

    “곧 죽을 목숨이라. 황제와 황태자의 압박을 받는 건가?”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대충 견적 나온다.

    녀석은 3황자다. 쉽게 말해서 황위 계승권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자리인데.

    ‘자질이 너무 뛰어나단 말이지.’

    오래 보아 오지 않은 나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자질이 범상치 않다.

    녀석에게서 펠리드의 모습을 떠올렸던 건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왕재를 지녔으나 계승권과 거리가 멀기에 그것을 감추어야만 하는 가엾은 운명.

    아마도 녀석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황제와 황태자의 수없이 많은 견제를 받으며 자랐을 게 틀림없었다.

    “쯔쯧. 알 만하다. 황궁이라는 곳이 원래 참 사람 살기 힘든 곳이란 말이지.”

    내 말에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빛을 보내는 3황자.

    “귀인께서도 혹시……?”

    “맞아. 제국은 아니어도 왕국의 1왕자였거든.”

    굳이 그 의문에 부정하지 않았다.

    인간 세상이라면 밝히는 것을 꺼렸겠지만 그 대상이 난쟁이라면 이야기는 다르기 때문이다.

    어차피 한 번 방문하고 다시는 오지 않을 곳.

    내 신분을 밝힌다고 해서 문제가 발생할 일은 전혀 없었다.

    “그렇군요…….”

    “그런데 왜 나지? 내가 어떤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를 텐데.”

    “귀인께서는 현 용족의 로드 후보인 아리우라스 님의 비늘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 자존심 강한 용족, 그것도 로드 후보인 분의 비늘을 가지고 올 인간이라면 굳이 그 능력을 확인하지 않아도 어떠한 분인지 짐작할 수 있지요.”

    난쟁이라고 해서 조금 편견을 지니고 있었는데, 꽤 머리를 굴릴 줄 아는 것 같다.

    “게다가 조금 전 통신 마법을 통해 들은 바도 있고 말입니다.”

    “뭐, 그건 그렇다고 치고. 그래서. 내가 만약 네 아비와 형을 죽여 준다면 너는 내게 뭘 해 줄 수 있지?”

    빙빙 돌려서 하는 이야기는 질색이다.

    녀석이 곧장 본론을 꺼냈으니 나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귀인께서 모르아 둔에 방문하신 목적이 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물론 그렇지.”

    “그 목적이 무엇이든 아버지와 형이 해 줄 수 있는 것보다 제가 더 많은 것을 드릴 수 있을 겁니다. 일단 제게는 생명의 은인이 될 테니 말입니다.”

    “하하하!”

    나는 웃었다.

    아주 당돌한 녀석이 아닌가.

    하지만 그 당돌함이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다.

    ‘확실히 펠리드와 닮았어.’

    머릴 굴리는 것 하며 대담한 행동까지.

    확실히 이 녀석은 될 놈이다.

    그리고 이런 녀석이 지배하는 제국은 꽤 안정적인 발전을 이룩할 수 있을 터.

    물론 난쟁이 제국이 어떻게 되든 내 알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는가.

    “네 부탁을 염두에 두도록 하지.”

    하지만 곧바로 승낙하진 않았다.

    “그 말씀은?”

    “거래라는 건 한쪽 말만 듣고선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네가 매력적인 제안을 건넸듯이 상대방도 말도 한 번은 들어 봐야지.”

    녀석이 마음에 들긴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그 제안을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다.

    상대방, 즉 황제와 황태자의 제안도 들어 봐야 할 것 아닌가.

    현재 지배권을 쥐고 있는 그들이 3황자보다 더욱더 매력적인 제안을 할 수도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확실한 거래를 위해서는 다방면에서 조건을 따져 봐야 하는 법이죠.”

    ‘이것 봐라?’

    자신에게 불리한 말인데도 불구하고 여유가 넘친다.

    허세인가?

    아니. 흔들리지 않는 녀석의 마음은 그것이 허세가 아님을 나타내고 있었다.

    ‘자신이 있다, 이거지.’

    아마도 이번 거래에서 반드시 승리할 자신이 있는 것 같다.

    지금 당장은 그 자신감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뭐,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

    어차피 곧 황궁에 도착할 테니 녀석이 자신감을 가지는 근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황성에 도착했습니다, 3황자 전하.”

    “알겠다.”

    끼이익- 도착했다는 말과 함께 마차의 문이 열렸다.

    “맙소사!”

    “어떻게 이런 성이!”

    눈앞에 펼쳐진 성을 확인한 타일로와 킬리아는 찢어질 듯 눈을 부릅떴다.

    “이곳이 바로 모르아 둔 제국이 자랑하는 황성입니다.”

    3황자 또한 자랑스럽다는 듯 황성을 손으로 가리켰다.

    하나의 아름다운 조각처럼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거대한 성.

    그것은 단순한 성이 아니라 예술 작품이라고 칭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제국 최고의 건축가인 드레이긴 님이 수백 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그야말로 하나의 작품이지요.”

    자부심 가득한 음성.

    하지만 그 말에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면 제국 최고가 아니라 대륙 최고라 불러도 손색이 없겠는데?’

    확실히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는 황성을 바라봤다.

    “자, 이쪽으로.”

    하지만 황성 구경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나와 일행은 3황자의 안내를 받으며 황성 안으로 들어섰다.

    *

    끼이익-

    거대한 알현실의 문이 열렸다.

    “…….”

    열린 문 안.

    그곳에는 수많은 난쟁이가 양측으로 갈라진 채로 나와 일행을 응시하고 있었다.

    저벅- 걸음을 옮기는 내내 그들의 시선은 고정되어 있다.

    ‘이것들 봐라?’

    그런데 분위기가 조금은 이상하다.

    3황자의 환대와는 달리 녀석들에게서 ‘적의’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노골적으로 나타내진 않았지만 분명 녀석들은 나에게 그리고 일행에 대한 적의를 은은히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애써 무시한 채 걸음을 옮겼고.

    “모든 드워프를 다스리는 황제 클라이크 텔 그룩을 뵙습니다.”

    무릎을 꿇은 3황자가 예를 표했다.

    정면 그곳에는 온갖 보석이 치장된 황좌에 앉은 한 난쟁이가 있었다.

    난쟁이들의 권력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땋은 수염이 지면에까지 닿은 단단한 체구의 난쟁이. 녀석이 바로 모르아 둔을 다스리는 모든 난쟁이의 황제 클라이크였다.

    “흐음…….”

    녀석의 시선이 나와 일행에게 닿았다.

    “어째서 너희는 짐에게 예의를 표하지 않는 것이지?”

    오만한 그 시선이 바라는 것은 명백했다.

    황제에 대한 예의.

    3황자가 그러했듯 무릎을 꿇고 예를 표하라는 것이었다.

    “예의?”

    그 순간 나는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예의라니.

    보통의 경우라면 황제에게 예의를 표하는 게 맞겠지만 지금은 경우가 달랐다.

    그들을 보호하고 있는 용족, 그것도 로드 후보인 아리우라스의 비늘을 가지고 왔다.

    애초에 용족과 난쟁이는 대등한 관계가 아니었기에 로드의 상징물을 가져온 나는 예의를 표할 입장이 아니었던 것.

    “폐하의 말이 듣지 못한 것이냐? 당장 예를 표해라!”

    황제를 대신해 나선 것은 마찬가지로 땋은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난쟁이였다.

    ‘황태자로군.’

    수염의 길이를 통해 녀석의 지위를 짐작했다.

    “…….”

    그리고 의미심장한 시선을 3황자에게 보냈다.

    씨익.

    고개를 숙인 녀석은 웃고 있었다.

    마치 지금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이다.

    ‘이걸 믿고 있었군.’

    나름 거래 대상이라고 생각했던 황제와 황태자 녀석들이 내게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녀석은 이러한 상황을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너희를 보호하고 있는 용족, 게다가 로드 후보의 상징을 가지고 온 내게 예의를 표하라?”

    내가 어이없다는 듯이 묻자.

    “용족의 상징물을 가져온 자를 귀히 대하는 것. 그것은 과거의 악습일 뿐이다. 특히 그 상징물을 가지고 온 게 더러운 인간이라면…….”

    말을 끝까지 잇지 않은 황제는 나를 빤히 응시했다.

    그 시선 속에 담긴 감정은 명백했다.

    경멸과 혐오.

    녀석은 인간에 대한 강력한 불신을 지니고 있었다.

    “너희 인간을 황성에 데리고 온 것만으로도 귀히 대접해 준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위대한 황제께 예의를 표하지 않을 생각이냐. 지금 당장 부복하여 황제에 대한 예의를 표하라!”

    그것은 황태자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만만한 이유가 있었네.’

    그제야 모든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번 난쟁이의 황제 및 수뇌부는 인간에 대한 강렬한 적의를 지닌 이들이 선별된 것 같다.

    ‘게다가 용족에 대한 불신도 있는 것 같고.’

    심지어 그들을 보호하는 관계인 용족에 대한 불신도 어느 정도는 읽을 수 있었다.

    항상 기울어진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용족과 난쟁이 사이의 변화.

    그것이 나타내고 있는 것은 하나다.

    ‘용족을 무시해도 될 만한 강력한 힘을 얻었다는 소리겠지.’

    용족의 보호가 더는 필요 없을 정도의 힘을 얻었으니 이토록 당당하게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건 조금 전 봤던 동력으로 움직이는 마차 등의 개발과도 연관이 있을 터.

    현재 난쟁이 녀석들이 어떠한 생각을 품고 있는지 그 행적이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한다.

    “당장 무릎을 꿇어라!”

    “무릎을 꿇어 예를 표해라!”

    황태자의 선창과 함께 드워프 귀족들이 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어이, 3황자.”

    나는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모르쇠하고 있는 3황자를 불렀다.

    “…….”

    하지만 녀석은 내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그대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조금 전 거래, 받아들일게.”

    그 순간이었다.

    휙!

    그제야 숙이고 있었던 고개를 든 녀석이 몸을 돌린 채 나를 바라봤다.

    “탁월하신 결정입니다.”

    “탁월한 결정은. 이미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으면서.”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녀석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감히! 3황자 네 녀석이 무슨 망발을 지껄이고 있는 것이냐!”

    “여봐라, 당장 이것들을 포박하여라!”

    끼익, 쿵!

    알현실의 문이 열리고 미리 대기하고 있던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호라?”

    그리고 그들을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난쟁이 녀석들이 왜 이토록 자신감이 넘쳤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칠흑 광택의 위용을 드러낸 골렘.

    아니 그건 평범한 골렘 따위가 아니었다.

    조금 전 보았던 마차와 같이 마동력을 통해 움직이고 있는 탑승형 기체.

    가슴 부근에 보이는 네모난 유리 너머로는 그 기체에 탑승한 난쟁이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보아라, 이것이 우리 제국이 자랑하는 고대의 병기 타이탄이니라!”

    과거 대륙에 한 번 나타난 적 있는 고대의 병기 타이탄.

    단 한 기만이 등장했을 뿐이지만 대륙을 피로 물들였던 그 살육의 기계가 난쟁이들의 손에 의해 재현된 것이었다.

    쿵쿵쿵!

    그것도 1기가 아니라 수십 기에 달하는 타이탄이 알현실 주변을 빼곡히 포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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