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Chapter 68
‘스승님과 장로님들을 죽인 원수!’
아서를 본 일족 모두가 공포에 몸을 떨고 있을 무렵, 한 존재는 공포나 좌절이 아닌 강렬한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강력한 황금색 아우라를 발산하는 금발의 미남자.
그는 소멸한 로드를 대신하여 새로운 로드의 직에 오를 것으로 예정되어 있던 골드 드래곤 아리우라스였다.
고작해야 10,000년의 세월을 산 비교적 젊은(?) 드래곤임에도 불구하고 로드에 내정될 수 있었던 건 그가 천룡(天龍)의 피를 이어받은 고귀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초월적 존재들과 마찬가지로 혼돈에서 탄생한 태초의 드래곤 천룡.
드래곤의 시초라 할 수 있는 그 존재의 피를 이어받을 수 있는 건 제한된 극소수뿐. 그리고 아리우라스는 그러한 천룡의 피를 이어받은 선택받은 드래곤이었다.
그렇다면 천룡의 피라는 게 대체 무엇인가?
소위 말하는 ‘재능’이라는 것이었다.
지상 최강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드래곤은 육체와 정신 그리고 각종 권능을 타고난다.
그리고 천룡의 핏줄은 지상 최강이라는 드래곤 중에서도 선택받은 존재. 그렇기에 그 재능은 경이로울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일족의 모든 이가 로드와 장로들을 죽인 인간을 향해 두려움을 느낄 때도 오직 그만이 분노를 느낄 수 있었던 것도 뛰어난 재능에 기인한 것.
특히 전대 로드라 하면 그에게 많은 것을 가르쳤던 스승이자 부모와도 같은 존재였기에 그 원한을 클 수밖에 없었다.
「잘됐군. 그렇지 않아도 네 녀석에 대한 처분을 논의하고 있던 터였다.」
아리우라스가 아서를 향해 말했다.
이곳에 일족이 모인 이유는 로드와 장로들을 죽인 건방진 인간의 처벌을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소멸 직전 이 일을 불문에 부치라는 전대 로드의 명령이 있었지만 아리우라스를 비롯한 대부분 일족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혈족의 복수.
드래곤에게 내려오는 그 절대의 규칙을 지키기 위하여 강경하게 인간을 처벌하자는 의견이 나오던 중이었다.
그런데 웬걸?
당장 쳐들어가도 부족할 판에 사건을 벌인 원흉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처분? 무슨 처분?”
하지만 아서는 처음 들어 본다는 것처럼 고개를 갸웃했다.
「네 녀석이 무고한 전대 로드와 장로들을 무참히 학살하지 않았더냐!」
아리우라스가 용언을 실어 말했다.
에인션트에 이른 드래곤도 전력을 다해야만 발현할 수 있는 고대의 힘. 하지만 천룡의 피를 이어받은 아리우라스는 그 능력을 너무도 쉽게 사용했다.
다만.
“무참히 학살?”
아서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아마 보통의 인간이었다면 용언의 무게에 짓눌려 입도 떼지 못한 채 공포에 몸을 떨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절대적인 의지로 아서에게는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말은 똑바로 해야지. 그 새끼가 먼저 내 뒤통수를 쳤거든.”
아서가 전대 로드와 장로들을 죽인 이유는 명백했다.
고대 신을 처리해 달라는 임무를 수행하는 도중 오히려 뒤통수를 쳐서 고대 신과 함께 그를 봉인하려고 했다.
서로의 목적을 위한 거래긴 했지만 임시로 맺은 동맹을 파기한 것은 로드 쪽이었던 것.
「그것은 대의를 위한 일이었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당연히 균형의 수호자인 우리의 통제를…….」
“응. 아니야.”
하지만 아서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대의라는 걸 왜 너희가 멋대로 정하는 거지? 신의를 저버렸으면서 그게 대의였다. 누군가를 죽이고 그것이 대의였다. 누가 정하지도 않은 대의를 들먹거리면 모든 게 해결이 될 것 같아?”
드래곤의 입맛에 맞춘 대의는 사실상 핑계일 뿐이었다.
“그나저나 누가 같은 종족 아니랄까 봐 어떻게 똑같은 개소릴 지껄이네. 균형? 수호? 아주 지랄을 하세요.”
자기들이 통제할 수 없는 힘은 모두 균형을 위배하는 것인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발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뭐? 내 처분을 위해서 모였다?”
아서는 슬슬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누가 누굴 처분해. 이것들이 정말 주제를 모르네.”
일전, 드래곤 로드의 배반 이후 녀석들을 멸족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전대 로드와 장로들만 일을 벌였지 나머지 일족은 그에 대해서는 모르지 않는가.
그렇기에 잘못한 녀석들만 벌하는 것으로 끝냈다.
그런데 머저리 드래곤들은 주제도 모른 채 아서의 처벌을 논의하고 있었다.
참으로 건방지게도 말이다.
「흥! 전대 로드께서 이번 일을 불문에 부치라는 명을 내리긴 하셨지. 하지만 나는 네 녀석이 두렵지 않다.」
고오오오!
앞으로 한 발자국 나선 아리우라스가 강렬한 기운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뿌드득!
찰나의 순간 본체로 돌아간 아리우라스는 기존의 드래곤과는 전혀 다른 엄청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호오?”
그것은 나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보통의 드래곤이라 함은 속성에 따라 비늘 그리고 뿜어 대는 오라의 색이 결정된다.
그런데 녀석은 어느 쪽에도 편중되지 않은 일곱 빛깔 찬란한 오라를 뿜어 대고 있었다.
단지 오라의 색깔만이 아니다.
비늘도 칠색으로 영롱하게 빛나는 건 물론 덩치도 일반적인 드래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다.
그야말로 ‘돌연변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놀라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어쩐지 자신감 있게 나댄다고 했더니. 좀 특별한 녀석이었나 보네.’
다른 녀석들과는 달리 자신감이 넘친다고 생각했더니 뭔가 다른 놈인 것 같긴 하다.
「여기서 전대 로드와 장로들을 죽인 인간에 대한 처벌을 결정하겠다.」
살벌한 기운을 흘린 녀석이 선언한다.
「소멸형. 그리고 녀석과 관련된 모든 존재를 살상하겠다.」
그리고.
콰콰콰콰콰콰!
녀석이 뱉어 낸 칠색의 숨결이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그 말 감당할 수 있겠냐?”
나는 다가오는 칠색의 숨결을 보면서 녀석에게 말했다.
「…….」
하지만 녀석은 아무런 대답도 없다.
그저 하찮은 벌레를 바라보듯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당연히 내가 숨결에 소멸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응, 아니야.”
그래서 녀석의 기대를 산산이 부숴줄 생각이다.
「돌아가라.」
그리 말하며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그 순간.
스으윽-
나의 의지는 세계의 법칙을 바꿨다.
나를 향해 맹렬한 속도로 다가오던 칠색의 숨결은 그것을 내뱉은 용가리를 향해 되돌아가고 있었다.
‘확실히 강해졌어.’
그 순간 나는 느꼈다.
내 의지가, 세계를 지배하는 지배의 힘이 더욱더 커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기에 야수를 깨우지도 않고 의지를 발현한 것이었다.
이 같은 사실을 느끼기 시작한 건 광기의 신격을 흡수한 고대 신을 흡수한 뒤였다.
녀석을 흡수한 순간 내게 다가오는 운명의 확연히 약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운명의 힘이 약해졌다는 건 그만큼 내 의지가 강해졌다는 것.
그리고 지금의 의지를 통해 그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강해졌다.’
나는 더욱더 강해졌다.
내 안에 봉인한 야수를 깨우지 않은 상태에서도, 나라는 인간 자체가 더욱더 강해졌음을 말이다.
「뭐, 뭣!」
되돌아온 칠색의 숨결을 본 용가리 녀석이 경악한다.
하지만 놀랄 틈이 없다.
뿜어질 때보다 더욱더 빠른 속도로 되돌아가는 숨결을 파훼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크아압!」
깜짝 놀란 녀석은 다급히 숨결을 내뱉었고.
콰콰콰콰콰쾅!
두 절대적인 기운이 충돌하며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휘이잉!
가볍게 손을 휘저어 폭발의 흔적을 날렸다.
폭발의 영향 범위에 들어갔으나 녀석은 멀쩡했다.
다만.
「크으으…….」
「끄윽…….」
그 주변에 있던 다른 용가리는 그렇지 못했다.
전력이 담긴 녀석의 숨결, 그 폭발의 범위에 들어간 용가리들은 폭발의 힘을 이겨 내지 못한 채 쓰러져 있었다.
“어이, 나 하나 죽이려다가 너희 일족이 죽게 생겼는데?”
「…….」
녀석은 매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다들 물러나십시오.」
특별한 힘이 담긴 의지를 발현하였다.
그러자.
슈슈슉!
그 힘이 주변에 있던 모든 용가리를 다른 공간으로 이동시켰다.
막을 수도 있지만 굳이 막진 않았다.
어차피 눈앞에 있는 녀석 하나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과연 전대 로드와 장로님들을 해할 수 있는 실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군. 아마도 네 녀석도 법칙을 비튼 자 중 하나겠지.」
그래. 왜 이 말이 안 나오나 했다.
“마음대로 생각해. 네가 무슨 생각을 하든 결과는 달라질 일이 없을 테니까.”
굳이 토종 대륙인이라고 설명하지 않았다.
어차피 멋대로 생각할 게 뻔하니 입 아프게 설명할 이유는 없었다.
「네 녀석의 불행이라고 한다면 하필 이 시대에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숨결이 통하지 않았음에도 녀석은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비장의 카드를 숨겨 놓은 것 같다.
「내가 일족을 피신시킨 이유는 자칫 위험한 싸움에 휘말릴 것을 대비한 것도 있지만…….」
궁금증을 유발시키려는 듯 다음 말을 잇지 않은 녀석은.
「…내 진정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이기도 하다.」
그 순간.
쿠쿠쿠쿠쿠!
녀석이 발산한 기운에 의해 대기가 비명을 지르며 대지가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기 전.
고작 기세를 방출하는 것만으로도 차원이 뒤흔들릴 정도의 파급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뿌득, 뿌드득!
칠색 비늘의 용가리, 녀석은 또 한 번 변신을 시작하였다.
영롱한 비늘을 가시처럼 뾰족하게 솟아났으며 한 쌍의 날개는 다섯 쌍의 날개로 늘어났다.
굵직한 꼬리는 갈라져 7개가 되었고, 심지어 머리는 3개로 불어나는 것이었다.
보통의 드래곤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어떻게 보면 괴물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이것이 바로 천룡의 피를 이은 나의 진체이니.」
「이 기괴한 모습을 본 이는 절대 살아 돌아갈 수 없다.」
「네 녀석은 여기서 소멸하게 될 것이다.」
세 개의 머리가 각자의 의지를 전달했다.
확실히 녀석이 진체를 보여 주길 꺼려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아마 같은 일족이라고 해도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본다면 괴물이라면서 두려워할 것이 뻔했으니까.
“고작 외형 좀 변했다고 상당히 나대네.”
물론 변한 건 외형만이 아니다.
조금 전과 비교하면 족히 수십 배는 강해졌다.
하지만 개미가 수십 배 강해져 봐야 조금 강한 개미일 뿐.
“나도 더는 시간 끌 생각이 없거든. 그러니까…….”
팟!
말을 하는 도중 공간을 넘었다.
녀석이 인지할 수 없는 영역의 빠르기.
내 육신은 공간을 뛰어넘었고, 곧장 거대한 녀석의 머리 위에 당도할 수 있었고.
휘익!
다음 순간 내 주먹은 자신감 넘치는 녀석의 안면을 가격했다.
「어리석은! 내 비늘은 그 무엇도…….」
단단한 비늘을 자랑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다음 순간 녀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퍼억!
「커헉!」
비늘을 뚫고 들어오는 충격에 형편없이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일단 죽이지는 않으마. 하지만 차라리 죽는 게 좋다고 느껴질 정도로 좀 맞자.”
녀석에게 얻어야 할 것이 있으니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건방지게 나를 처벌하네 뭐 하네, 지껄인 응분의 대가는 충분히 치러야만 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