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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68화 (68/161)
  • 68화 Chapter 67

    별이 머무는 자리.

    오직 신의 격을 이룬 자만이 닿을 수 있는 드높은 곳.

    무한히 뻗은 순백의 공간에는 엄청난 존재감을 발하는 존재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광기가 소멸했다.」

    옅은 황금색을 발하는 존재가 말했고.

    「광기라면 과거 판데모니움에 당한 머저리 녀석 아니었던가?」

    「녀석은 진즉 소멸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흰색과 노란색 빛의 존재가 의문을 표했다.

    광기. 과거 판데모니움에 속한 ‘고통’과 싸우다가 소멸한 것으로 전해졌던 나약한 존재였다.

    「아니. 굳이 알리지는 않았지만 녀석은 소멸하지 않았었다. 고통을 피해 몸을 숨겼고, 다행히 존재는 유지할 수 있었지.」

    황금 신격의 말에 토를 다는 이는 없었다.

    그들은 판테온의 지도자들. 고작 신격 하나의 소식에 예민하게 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불행의 시작이었다. 광기는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고대의 망령에게 잡아먹혔다.」

    「하!」

    「머저리 같은!」

    그 순간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들 판테온에 소속된 신격 모두가 가장 혐오하는 집단이 두 군데 있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판데모니움이 그 첫 번째며 두 번째는 고대의 망령들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차마 신이라는 격을 부여할 수 없는 그 망령들을 더 혐오한다.

    그런 그들에게 명색이 신격이라 불리는 존재가 먹힌다?

    그것은 더할 수 없는 수치.

    그렇기에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들도 탄식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감히 금지된 탐식을 행한 고대의 망령을 향한 벌을 내리려 했지만 굳이 세계의 법칙, 인과율을 건드릴 필요 없이 법칙을 비튼 자가 나서 주었지.」

    판테온 소속의 신격이 당했으니 응당 이에 대한 벌을 내려야 할 터.

    하지만 황금의 신격이 나설 필요는 없었다.

    법칙을 비튼 자. 세계의 법칙을 비튼 그중 하나가 나서서 금기를 범한 고대의 망령을 봉인했기 때문이다.

    소멸까진 아니어도 충분히 강력한 봉인으로 벌을 주었으니 더는 그 일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전 광기를 먹어 치운 고대의 망령이 소멸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판데모니움의 소행인가?」

    그건 지극히 이성적인 생각에서 나온 판단이었다.

    비록 머저리 같다고 비난했지만 광기는 판테온 내에서 최하급의 신격은 아니었다.

    중하급 정도의 신격으로 나름 충분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신격이었기에 그 권능을 흡수한 고대의 망령을 상대하려면 최소한 판데모니움에서 중위급 이상의 신격이 나서야만 했던 것.

    「나도 판데모니움에서 손을 썼다고 판단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놀랍게도 고대의 망령을 소멸시킨 존재는 필멸자였다.」

    「무슨……?」

    「지금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린가?」

    단 한 번도 황금 신격에 의문을 표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의문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필멸자. 고작해야 100년도 살지 못하는 필멸의 존재이며 나약하기 그지없는 벌레와 같은 존재.

    그들이 살아가는 이유라는 것도 신앙과 믿음을 통한 에너지 충전 때문이지 그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살아갈 이유가 없는 미약하고 하찮은 존재에 불과했다.

    「법칙을 비튼 자가 끼어든 게 아니고?」

    그렇기에 당연히 법칙을 비튼 자의 개입을 예상했다.

    「아니 그 흔적을 살펴본 결과 필멸자를 제외한 그 누구도 끼어들지 않았다.」

    「으음…….」

    「필멸자가 벌써 그러한 영역에 닿았단 말인가?」

    「놀랍군.」

    필멸자의 성장에 대부분이 걱정하는 투의 말을 꺼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필멸자는 그들에게 에너지를 전해 주는 존재여야만 하지 그 이상의 영역을 넘봐선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필멸자가 누구지?」

    흰색 신격이 물었고.

    「모른다.」

    황금 신격은 너무도 당당하게 말했다.

    「모른다? 그대가 모르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다들 흰색 신격의 말에 동의했다.

    황금 신격은 그야말로 만능의 권능을 지닌 존재. 그가 모르는 것이 있을 턱이 없지 않은가.

    「의도적으로 흔적을 지웠다. 내가 아니었다면 필멸자가 개입했다는 사실도 발견할 수 없었겠지.」

    그 말은 사실이었다.

    세계의 법칙에 위배되지 않도록 사도를 보낸 황금 신격은 그곳에 강림하여 직접 권능을 펼쳐 세계의 기억을 살폈다.

    하지만 누군가 의도적으로 흔적을 지운 그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다.

    그나마도 황금 신격의 권능이 없었다면 아무런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작 필멸자가 그대의 이목을 속일 수 있다니.」

    「다른 누구도 아니고 그대의 말이니 믿지 않을 수도 없고.」

    아마 다른 신격이 그러한 말을 지껄였다면 헛소리로 치부했을 것이다.

    그러나 판테온의 대리인을 맡고 있는 황금 신격이 괜한 거짓말을 할 턱이 없었다.

    그가 그렇다면 그것은 곧 진실일 수밖에 없는 것.

    「신격을 탐식한 고대 망령의 소멸은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배후에 있는 존재에 대한 경계도 빼놓을 수 없는 게 사실이다.」

    만약 진짜로 필멸자가 탐식한 고대의 망령을 소멸시켰고, 게다가 황금 신격의 이목마저 속일 수 있다면 심각한 사안인 게 분명했다.

    「해서 이번 일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한 조사대를 파견하고자 하는데, 그대들의 의견을 어떤가?」

    황금 신격의 말에 다들 침묵했다.

    고작 필멸자를 위해 조사대를 파견하는 게 합당한 일인가?

    「…내가 가지.」

    모두가 침묵하는 가운데 누군가 자신이 가겠다며 의사를 표명했다.

    「그대가?」

    웬만해선 놀라지 않는 황금 신격이었지만 의사를 표명한 신격을 보는 순간 감정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전쟁, 그대가 직접 말인가?」

    판테온 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무력을 자랑하는 전쟁의 신격.

    그가 직접 중간계로 내려가 이번 사건을 조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문제라도 있나?」

    「아니. 문제 될 것은 없지. 오히려 그대가 나서 준다면 안심이야.」

    판테온 내에서도 상위급에 속하는 전쟁이 나서 준다면 이번 일은 해결된 것이나 다름없다.

    「귀찮음을 감수하며 나서 준 그대에게 특별히 한 가지 권한을 허락하니.」

    황금 신격이 손을 휘젓자.

    사르르- 빛의 가루가 검붉은 존재를 갖춘 전쟁의 신격의 위로 떨어졌다.

    「세계의 법칙을 한 번 피할 수 있는 면제권을 부여한다.」

    그 빛의 가루는 인과율의 법칙을 한 번은 피해 갈 수 있는 면제권.

    즉, 전쟁의 신격은 중간계에서 한 번 본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물론 중간계를 파괴할 정도로 심각한 법칙을 위반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본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

    「뜻밖의 수확이로군. 면제권은 고맙게 받겠다.」

    그리 말한 전쟁의 신격은 오랜만에 기쁨이란 감정을 나타냈다.

    최근 들어 허무를 느끼고 있었던 전쟁의 신격.

    하지만 광기를 식탐한 고대의 망령을 처치한 필멸자라는 부분에서 자그마한 경쟁심을 느낄 수 있었다.

    ‘내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존재였으면 좋겠군.’

    그가 조사대를 자처한 이유는 단 하나.

    실력자를 만나 아무 생각 없이 통쾌하게 겨뤄 보는 것.

    그리고 이번 사건을 일으킨 필멸자가 그러한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

    “노, 놀랍군요. 고작 하루 만에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를 해결하시다니…….”

    놀라움에 눈을 동그랗게 뜬 이카리안.

    그는 내가 행한 일을 믿을 수 없었던지 손에 든 보고서를 보고 또 살펴봤다.

    “완벽합니다. 더는 저주받은 의지도 전해지지 않고, 주변을 죽음으로 물들이던 기운도 사라졌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강력한 저주로 인해 버려졌던 저택이 이제는 본연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임무를 완료했다는 건?”

    “네, 영광스러운 마스터 랭크의 자격이 아서 님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드륵-

    서랍을 연 그는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칠색의 용병패를 꺼냈다.

    조금은 조악한 황금패와는 달리 검과 방패, 그리고 그 주변을 장식하고 있는 드래곤까지 아주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보나 마나 드워프의 솜씨일 것이다.

    녀석들이 다른 건 몰라도 손재주 하나는 끝내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소원 중 하나에 그게 있었지.’

    마스터 랭크를 달성한 순간 새로운 원정대원의 염원을 떠올릴 수 있었다.

    대장장이의 아들이었던 콘웰.

    아버지의 가업을 잇지 않기 위해 가출하여 병사가 된 녀석.

    하지만 피는 못 속이는지 싸우는 것보다 무구를 고치고, 손질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던 원정대의 대장장이.

    녀석은 죽음의 순간에서야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역사에 세기에 남을 무구를 제작하여 그것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는 것.

    ‘드워프라면 녀석의 염원을 이뤄 줄 수 있겠지.’

    손재주가 뛰어난 녀석들이라면 아마도 콘웰의 바람을 이루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자, 아서 님. 이것으로 아서 님은 대륙에서 11명 존재하는 마스터 랭크의 용병이 되셨습니다.”

    이카리안이 건네주는 칠색의 용병패, 마스터 용병패를 받았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별다른 감상은 없다.

    다만 아스웰의 염원을 이뤘다는 기쁨이 조그맣게 자리했다.

    “그 용병패를 보인다면 어떤 나라든, 어떤 도시든 별다른 검문 없이 통과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아서 님에 대한 신분 증명을 용병 길드가 대신하는 셈이니 모쪼록 행동거지에 조금은 주의를 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먼저 건드리지 않는 이상 제가 손을 쓰는 일은 없을 테니 안심하시길.”

    아닌 게 아니라 먼저 건드리지 않는 이상 누군가를 해하는 일은 없다.

    문제는 주변에서 나를 계속 건드린다는 것이어지만.

    “그런데 이 용병패면 모르아 둔에서도 신분이 증명되는 겁니까?”

    “모르아 둔… 말입니까?”

    “네.”

    모르아 둔.

    대륙의 서쪽, 그르칸 산맥에 세워진 드워프 왕국.

    “그건 좀 곤란합니다. 아무리 용병 길드가 온 대륙에 영향을 미친다고는 하나 그건 인간에게만 한정된 것입니다. 이종족, 드워프나 엘프, 오크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는지라.”

    “혹시 그럼 그들에게 신분을 증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많은 건 모르나 그들이 상당히 폐쇄적이라는 것은 안다.

    특히 인간에 대해서는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라 함부로 그곳에 방문했다가는 좋은 꼴을 보기 힘들게 분명했다.

    ‘무섭지는 않지만 그곳을 멸망시킬 수는 없으니까.’

    내 성격을 알아서 그러는데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그곳에 찾아갔다간 모르아 둔 왕국은 대륙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선 최대한 협조적으로, 대화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준비가 필요했다.

    “드워프들의 신용을 얻고자 한다면 드래곤과의 친분이 필수일 것 같습니다. 모르아 둔 왕국이 세워진 배경에는 몇몇 드래곤의 협조가 있었다는 사실이 전해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드워프와 드래곤이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럼 간단하겠군요.”

    “네?”

    간단하다는 말에 의문을 표하는 이카리안.

    “아닙니다. 그럼 볼일은 끝났으니 이만.”

    나는 곧장 집무실을 나왔다.

    해결책을 알았으니 이제는 그것을 실행해야 할 때.

    슈욱!

    뇌리에 기억된 좌표를 떠올리며 곧장 공간을 뛰어넘었다.

    「누구냐?」

    처음에는 경계하는 반응.

    「다, 당신은!」

    이어서 나온 건 경악에 가까운 비명이었다.

    내가 찾아온 곳은 넓은 공동. 얼마 전 내 손에 의해 운명을 달리한 드래곤 로드의 레어였다.

    우연인지 모르겠는데 그곳에는 새로운 지도부로 보이는 몇몇 드래곤이 자리하고 있었다.

    “모두 만나서 반갑고. 내가 부탁할 일이 하나 있는데 들어줄 거지?”

    나는 씨익 웃으며 녀석들을 향해 말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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