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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67화 (67/161)
  • 67화 Chapter 66

    “…….”

    소멸한 녀석을 보면서도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감정뿐만 아니라 공기도, 보는 것도, 그 무엇도 내게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냥 이 세계와는 전혀 다른 곳에 홀로 동떨어진 기분.

    일곱 마리의 마수를 모두 깨울 때면 항상 느꼈던 홀로 된 기분이었다.

    스슥, 스스슥!

    무심의 상태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지켜봤다.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감히… 소멸… 없다.」

    내 의지는 분명 녀석의 소멸을 원했으나 녀석은 재생하고 있었다.

    “…….”

    과연 신격을 흡수한 녀석답게 끈질기다.

    그러나.

    「흩어져라.」

    다시금 의지를 발현하여 뭉쳐지고 있는 녀석의 형상을 흐트러뜨렸다.

    보통의 경우라면 그것으로 끝나야만 했지만 녀석은 불사의 존재처럼 다시금 재생을 시작했다.

    「소용없는 짓. 불사… 영원한 생명을…….」

    녀석은 내 행동이 소용없는 짓이라고 말했다.

    「헛소릴 지껄이는군.」

    하지만 나는 녀석이 거짓을 말하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다.

    불사의 영역은 녀석과 같은 신격이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래서 기감을 확장했다.

    화악!

    녀석이 지배하고 있던 영역의 지배권이 내게 넘어왔다.

    찰나라고 부를 수 있는 아주 짧은 순간, 나는 녀석이 불사처럼 행동할 수 있는 근원을 찾아낼 수 있었다.

    「생명을 다른 곳에 옮겨 두었군.」

    녀석은 연기했다.

    마치 자신이 불사의 존재인 것처럼.

    하지만 실상은 리치의 라이프 베슬처럼 자신의 생명력은 담은 근원을 옮겨 둔 것이었다.

    「네 녀석…….」

    재생하고 있던 녀석이 놀란 의지를 전달했지만.

    팟!

    이미 나의 육신은 생명의 근원을 향해 움직였다.

    그곳은 검은 항아리가 놓여 있는 제단이었다.

    누가 봐도 수상하기 그지없는 장소에 자신의 생명을 옮겨 담은 것이었다.

    「놈!」

    위기감을 느낀 녀석이 형상의 재생 중에 위협적인 권능을 발산하였다.

    콰콰콰!

    다급한 상황 때문인지 아낌없이 힘을 부여하여 파도와도 같은 재앙이 쇄도한다.

    「하찮군.」

    그러나 지금의 내게는 그것이 하찮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아마 6마리의 마수를 개방했을 때만 해도 그러한 감정을 느끼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7마리 마수를 모두 깨웠을 때는 나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모든 게 하찮게 느껴지는 절대자.

    그것이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의 정체였다.

    콰콰콰콰콰!

    다가올수록 강력해지는 녀석의 권능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흐읍!」

    기합을 내질렀다.

    그러자.

    파앗!

    녀석이 발현한 권능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맙소사!」

    얼마나 놀랐는지 경악성을 내지르는 녀석.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위급한 순간에 온 힘을 다하여 공격했으나 그것이 허무하게 소멸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전력을 다한 일격에 고작 기합 한 번에 소멸하면 아무리 신격이라고 해도 감정을 추스르긴 힘들 것이다.

    쨍그랑!

    녀석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항아리를 깼다.

    그러자 드러난 것.

    고오오오!

    그것은 기하학적인 문양이 새겨진 구체였다.

    일전에 보았던 장난의 신격, 녀석의 진체를 소멸시키고 봤던 구체와 똑같은 생명의 근원이었다.

    하지만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근원을 감싸고 있는 봉인의 인이었다.

    옮겨 두는 것만으로는 불안했던지 엄청난 권능과 힘을 쏟아 가며 강력한 봉인을 구축해 놓았다.

    신격이라고 해도 그 봉인의 힘을 깨드릴 수 없을 테지만.

    콰직!

    나의 손짓 하나에 봉인의 인은 형편없이 깨졌다.

    「안 돼! 그것을 건드리면…….」

    재차 경악한 녀석이 나를 향해 다가온다.

    뚝!

    하지만 나는 찰나를 무한정으로 늘린, 비틀린 시간을 만들었다.

    「…….」

    시간의 축이 달라졌다.

    녀석에게는 찰나에 불과한 순간도 나에게는 억겁과도 같이 길게 느껴지는 시간의 차이.

    흘깃 녀석을 응시한 후 다시금 생명의 근원을 바라봤다.

    고오오오!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건 붉은 오라를 발산하는 구체였다.

    광기의 힘이 섞인 구체.

    망설이지 않고 그것에 손을 가져갔다.

    그 순간.

    화악!

    구체 속에 깃든 기억을 엿볼 수 있었다.

    광기와 함께 섞여 있는 녀석의 근원은 ‘모든 곳을 지켜보는 자’였다.

    고대 신 중 하나인 녀석은 신격을 흡수할 정도로 강력한 권능을 가진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녀석이 지닌 권능, 가만히 앉아서 세상의 모든 것을 지켜보는 그 권능을 이용하여 소멸의 위기에 처한 광기의 신격을 찾았다.

    판데모니움과의 전투에서 심각한 상처를 입고 도망친 광기의 신격.

    그것을 지켜보던 만 개의 눈 이카르디아는 섭식의 권능을 이용하여 광기의 신격을 흡수했다.

    비록 녀석은 고대 신 중에서도 최하급의 권능을 지닌 존재에 불과했으나 신격 중에서도 꽤 상위의 힘을 갖춘 광기를 흡수하면서 강력한 존재로 거듭나게 되었다.

    스스로는 전지전능한 존재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깨져 버렸다.

    대륙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던 그는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하기도 전에 저지당했다.

    그것도 하찮게만 여겼던 필멸자의 손에 의해서 말이다.

    자신을 글라디로 소개한 무명의 영웅. 세간에는 알려지지 않은 영웅에 의해 봉인을 당하게 된 것.

    ‘법칙을 비튼 자로군.’

    스며 들어오는 기억의 편린을 통해 그의 정체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신격마저도 넘을 수 있는 오랜 시간을 걸어온 자.

    그는 법칙을 비튼 자 중에서도 상위의 존재에 속하는 환생자였다.

    환생자는 그간 갈고닦은 힘을 발휘하여 대륙의 위협이 될 이카르디아를 봉인하였다.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말이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지.’

    목숨을 대가로 바쳤으나 그는 환생자.

    다시금 새로운 육신을 얻어 탄생하였을 게 틀림없었다.

    「그렇군.」

    생명의 근원에 담긴 기억을 통하여 꽤 많은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판테온이나 판데모니움과 관련된 기억이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것은 내가 취사선택할 수 없는 영역.

    조그만 의문을 푼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성과였다.

    지이잉-

    잠깐 상념에 빠져 있는 사이 기이한 이명이 파고든다.

    ‘서둘러야겠군.’

    그 현상이 무엇인지는 빤했다.

    육신을 탈피하여 신격에 도달하기 직전의 과정.

    만약 이 과정을 그대로 지켜본다면 나는 더는 이 세계에 속할 수 없게 된다.

    그렇기에 힘을 주었다.

    파삭!

    나의 손에 쥐어져 있던 생명의 근원은 힘을 견디지 못한 채 부서졌고.

    「아, 안 돼…….」

    완전히 형상을 재생한 이카르디아, 만 개의 눈을 가진 고대 신은 소멸하고 말았다.

    콰아아아아!

    그리고 바라던 현상이 찾아왔다.

    생명의 근원이 내게 흡수되면서 그릇을 넓혀 주기 시작한 것.

    본래는 아주 잠깐도 신격을 감당할 수 없었던 육신은 고대 신을 흡수하면서 더욱더 확장되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들리던 이명이 사라졌다.

    그리고 아주 조금이지만 7마리의 마수를 깨운 이 순간에도 세계에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만… “꺼져.”

    잠깐이지만 세계에 소속되어 나의 음성을 냈다.

    그리고 고대 신의 흡수로 잠잠해진 마수를 잠재웠고.

    “후우.”

    그제야 무심에서 벗어나 겨우 ‘나’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서… 님?”

    조금 전까지만 해도 광기의 하수인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타일로와 킬리아.

    두 사람은 조심스레 내게 접근하여 말을 건넸다.

    “뭘 그렇게 낯설게 대해.”

    물론 그 이유를 짐작하고 있지만 아무렇지 않게 물었고.

    “아뇨. 조금 전에 완전 딴사람이 된 것 같아서…….”

    “진짜 제가 알고 있던 아서 님과는 전혀 다른 사람인 것 같았습니다. 뭐랄까, 범접할 수 없는 신과 같은 느낌?”

    왜 아닐까.

    잠깐이지만 나는 신격의 영역에 도달하여 내가 아닌 존재가 되었으니 말이다.

    “실없는 소리는. 그보다 타일로.”

    애써 모른 척하며 말을 돌렸다.

    “네, 네네.”

    “하수인 녀석들은 얼마나 처리했지?”

    내가 녀석을 굳이 이곳에 데려온 건 수련을 위한 것.

    얼마나 처리했는지 그 성과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녀석들이 소멸하기 전까지 대략 2명 정도는…….”

    그리 말하며 내 눈치를 본다.

    “2명이란 말이지.”

    조금 전 광기의 하수인들 상태를 봤을 땐 분명 5성의 초입 정도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5성의 완숙에 이른 타일로 정도면 충분히 2명을 상대할 수 있어야만 하는 것.

    그러니까 내 기준에서 보자면 녀석은 소소한 결과를 냈을 뿐이다.

    “고작 둘이라니. 너 안 되겠다. 앞으로는 좀 더 강하게 훈련 들어가자.”

    “네? 아니, 그래도 수십 명의 적을 상대로 이 정도 성과를 낸 거면 나름 괜찮은 것 아닙니까?”

    녀석을 반발했지만.

    “괜찮긴 개뿔. 인마, 네가 누구에게 훈련을 받고 있는지 잊은 건 아니겠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나라고. 제 재능에 내 훈련법을 더한다면 둘이 아니라 적어도 다섯 정도를 쓰러뜨렸어야지. 게다가 혼자서 한 것도 아니고 킬리아가 붙어 있었는데, 그걸 못 해?”

    녀석의 재능은 내가 인증할 수 있을 정도로 천부적이다.

    그런 놀라운 재능을 가지고 있고, 심지어 그것을 다듬어 주는 게 나인데 그 정도 성과라면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노력하지 않는 것.

    물론 녀석은 노력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녀석의 기준에서 생각했을 때의 결과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 녀석이 노력했다고 평가를 받을 정도면 지금보다 배는 더 나은 성과를 냈어야만 했다.

    “맞아요. 제가 보기에도 타일로님은 재능에 비하여 제대로 된 성과를 내는 것 같진 않아요.”

    “네?”

    킬리아도 내 말을 동조하고 나섰다.

    “제가 지금껏 지켜본 바에 의하면 타일로님은 어마어마한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 재능을 꽃피워 줄 대단하신 스승님도 있으니 지금의 결과에 안주하면 안 될 겁니다. 장담하는데 부단히 연마를 계속하신다면 타일로님은 수행을 통하여 신격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오!

    킬리아의 안목이 생각보다 좋다.

    나도 그녀와 같은 생각이다.

    타일로. 녀석이 만약 부단히 연마한다면 나와 같이 신격의 영역에도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무리 대단한 재능이라도 해도 신격의 영역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갈 테지만 말이다.

    “제, 제가 신격의 영역에……?”

    “그래 인마. 그러니까 부단히 연마해. 너 정도면 검의 신격에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재능을 지니고 있으니까.”

    물론 신격에 도달하기 전까지 옆에서 펠리드를 도와야 할 테지만.

    “알겠습니다. 가르쳐만 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신격의 영역이라는 말에 꽤 흥분한 듯 눈을 빛낸다.

    하긴. 보통의 인간이라면 초월자가 된다는 말이 엄청난 동기 부여 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 그 사실을 말해 주는 건데.

    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다행이긴 하지.

    “그보다 임무는 이것으로 끝났으니 이제 돌아가 볼까?”

    누구도 해결하지 못한 저택의 지하 던전 클리어.

    길드에서 내려 준 임무를 완료했으니 이제는 그 대가를 받아야 할 때다.

    아스웰의 염원. 용병 길드 마스터 랭크가 바로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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