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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65화 (65/161)
  • 65화 Chapter 64

    ‘그렇지 않아도 찾고 있었는데, 잘됐군.’

    남들에게 고대 신은 마주하기 힘든 존재겠지만, 내게는 아니다.

    마모되어 가는 내 인간성을 되찾아 줄, 신격으로 가는 것을 막아 줄 동아줄과 같은 존재다.

    스으으으- 곧 기감을 확장하여 녀석의 존재를 살폈다.

    ‘찾았다!’

    의지를 보낸 이상, 그 흔적을 찾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늘 그랬듯 곧장 녀석을 향하여 공간을 뛰어넘으려고 했지만.

    “음?”

    그 시도는 실패하고 말았다.

    놀랍게도 내 행사는 방해를 받았다.

    주변으로 펼쳐진 고유 결계. 그것이 공간을 넘지 못하도록 강제하고 있었다.

    잠들어 있는 내 안의 야수를 깨운다면 결계의 방해를 뚫을 수 있을 테지만.

    ‘그럼 녀석이 눈치채고 도망가겠지.’

    아무리 나라고 해도 작정하고 도망치는 신격, 혹은 고대 신을 잡는 건 어려운 일.

    당장은 녀석의 장단에 맞춰 주면서 기회를 잡는 게 옳은 선택일 것이다.

    “가, 가야 해…….”

    잠깐 상념에 빠진 새 변화가 일어났다.

    타일로. 몽롱한 눈을 한 녀석이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쯔쯔. 요즘 수련을 게을리 하더라니.”

    그 현상이 무엇인지는 뻔했다.

    타일로 녀석은 조금 전 전해진 의지로 인해 심령이 제압되었다.

    물론 고대 신의 의지에 저항할 만한 인간이 얼마나 되겠느냐마는 문제는 그 의지가 직접적으로 전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직접 진체를 드러낸 것도 아닌, 그저 의지에 저항하지 못한 채 홀린 꼴이라니.

    아무래도 이번 일이 끝나는 즉시 혹독한 수련에 돌입해야 할 것만 같다.

    “타일로?”

    홀려 버린 타일로와 달리 킬리아는 멀쩡한 상태였다.

    여기서 둘의 수준 차이가 드러난다.

    아무리 타일로가 단숨에 성장했다고 해도 광명의 성녀라 불리는 그녀의 경지까지 도달하려면 한참 멀었던 것.

    딱!

    검지와 엄지를 마찰하여 소리를 내자.

    “으허헉?!”

    제압된 심령에서 깨어났다.

    “으으… 갑자기 머리가…….”

    갑자기 몰려오는 두통에 인상을 쓰는 녀석.

    “으이그, 이 모자란 녀석아. 너 어디 가서 재능 있다고 까불기만 해 봐. 그냥 뒤통수에 구멍이 나도록 때려 줄 테니.”

    고작 그 의지 하나를 이겨 내지 못한 녀석에게 면박을 주며 걸음을 옮겼다.

    “뭐 하고 있어. 얼른 안 따라오고?”

    “네, 네. 갑니다.”

    멍하니 선 둘을 이끌었다.

    본래는 두고 갈까도 생각했지만, 이참에 실전 훈련을 시키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저항하지 마라… 네 녀석의 주인은 내가 될지니…….」

    걸음을 옮길수록 녀석의 의지가 더 강해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내가 향하고 있는 곳, 오래전 귀족의 저택으로 지어졌을 법한 그곳이 고대 신의 근원지였기 때문이다.

    끼이익.

    저택의 문을 열자, 수북이 쌓인 먼지로 인해 온통 회색빛으로 변한 내부가 드러났다.

    “무슨 먼지가…….”

    타일로 녀석이 불평했다.

    아닌 게 아니라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

    눈처럼 소복이 쌓인 먼지를 뚫고 전진하는 건 무척이나 불쾌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나마 다행한 일이라면 먼지 속에서 뒹굴며 전투를 벌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저택 내부를 꽤 많이 돌아다녔으나 좀처럼 적과 마주할 일은 없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

    휘오오오!

    저택의 지하, 누군가 인위적으로 뚫어 놓은 벽면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은 음습하고 또한 불쾌한 냄새를 담고 있었다.

    「오너라… 나의 축복을 받아… 새로이 태어나리라…….」

    전해지는 의지가 더욱더 강해졌다.

    내가 은연중 펼친 영역의 보호가 없었다면 타일로뿐만 아니라 킬리아도 심령을 제압당할 정도로 강렬한 의지였다.

    그리고 의지가 강해지고 있다는 건 내가 가야 할 길이 바로 여기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건… 매우 불쾌한 기운이 느껴지는군요.”

    킬리아가 인상을 찡그렸다.

    아무리 조작된 것이라고 해도 나름 신성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그녀를 자극하는 기운이라고 한다면 ‘부정한’ 힘일 것이다.

    “어. 아마 이 지하 던전에 있는 녀석이 광기를 다루는 녀석이라 그럴걸.”

    의지가 전해진 순간부터 고대 신이 다루는 힘의 근원이 무엇인지 파악한 상태였다.

    광기(狂氣).

    심령을 제압하여 본능만을 추구하는 짐승으로 만들어 버리는 권능.

    “광기… 말입니까?”

    “어. 내가 조금 전에 손을 쓰지 않았다면 너도 광기에 지배당한 채로 한 마리 짐승을 면치 못했을걸.”

    “그, 그렇군요.”

    농담이 아니었다.

    이 고대 신이 정확히 어떤 존재인지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심령을 제압하는 권능만은 상당히 강력하다.

    나름 수련을 쌓고 심상을 단련한 타일로도 단숨에 제압될 정도면.

    ‘그런데 왜 활동을 하질 않는 거지.’

    여기서 생기는 의문점 하나.

    왜 이토록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으면서 지하 던전에서 벗어나지 않느냐는 점이다.

    얼마 전 마주했던 고대 신 아슈르테카도 신앙과 믿음을 잊어버린 대륙을 벌하기 위하여 직접 활동을 시작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보다 더 강력한 힘을 지닌 이번 고대 신은 이상하게 오랜 시간 동안 지하 던전을 벗어나질 않고 있다.

    ‘뭐, 만나 보면 알게 되겠지.’

    여러모로 녀석과의 만남이 기대가 된다.

    “그럼, 가야지?”

    나는 멀뚱히 타일로를 응시했다.

    “…네?”

    내 반응에 의문을 표하는 타일로.

    “가자고.”

    “제가요?”

    “그럼 너 말고 누가 있는데.”

    “아니, 아서 님이…….”

    “내가?”

    “네.”

    “무슨 소리야. 이번 임무를 받은 건 다 너의 성장을 위해서인데.”

    “제 성장을 위해서… 말입니까?”

    “조금 전에 봤지? 그간 수련을 얼마나 게을리 했으면 이딴 나약한 의지에 홀랑 넘어가서는. 이렇게 허약해서 내가 널 어떻게 데리고 다니겠냐. 아무래도 조금은 빡쎄게 단련할 필요성이 있다는 말이지.”

    “설마 그 단련이라는 게……?”

    “맞아. 이번 던전 임무는 웬만해선 내가 끼어들지 않을 테니 둘이서 잘 헤쳐 나가 봐.”

    의미심장한 내 미소에 두 사람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

    저벅.

    긴장된 한 걸음을 내딛는 타일로와 호흡을 맞추듯 나란히 걸어가는 킬리아.

    “자자, 빠르게 가 보자고.”

    나는 유유자적 뒤에서 두 사람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왔구나… 어서… 어서 나에게 오너라…….」

    한 걸음을 내딛기 무섭게 울려 퍼지는 의지가 있었다.

    “크으으…….”

    심령을 제압하는 강렬한 의지에 타일로가 인상을 찡그리며 멈춰 섰다.

    “그 정도도 저항하지 못해선 곤란한데. 좀 더 정신을 가다듬어. 녀석의 의지를 밀어낸다는 생각으로 호흡하고.”

    둘을 보호하는 내 의지의 영역을 옅게 만들었기에 광기의 의지가 좀 더 강렬하게 들릴 것이다.

    물론 그건 녀석을 괴롭히려는 의도가 아니라 심상을 단련시키기 위한 훈련의 일종이었다.

    녀석은 대단한 재능을 지녔기에 지닌 실력에 비해 심상을 단련하지 못했다.

    물론 굳이 그것을 단련하지 않아도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테지만.

    ‘그렇게 되면 반쪽짜리, 허울만 좋은 멍청이로 거듭나겠지.’

    심상을 단련하지 않은 채 육신의 힘만 쌓는다면 그것은 유리로 만든 갑옷과 다를 바 없다.

    겉은 화려해 보여도 자그만 충격에도 쉽게 깨어지고 마는 유리 갑옷.

    나는 녀석을 그렇게 허울만 좋은 녀석으로 만들 생각이 없었다.

    ‘혹여 내가 사라지게 되면 펠리드를 보좌해야 할 녀석이니까.’

    귀찮음을 감수하고 녀석을 단련시키는 이유는 어느 날 내가 사라진다고 해도 펠리드를 지킬 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뭐, 지금 당장은 사라질 마음이 없지만 어디 세상사라는 게 내 뜻대로 되던가.

    항상 만약의 경우를 대비할 수밖에 없고, 그런 면에서 보자면 타일로만 한 녀석이 없다.

    내가 보기에도 놀라운 재능을 타고난 천재 검사이니까.

    녀석을 제대로 단련시킨다면 후에 펠리드의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 줄 수 있을 터.

    ‘특히 위대한 일원, 사시지외 녀석들은 위험하단 말이야.’

    내가 생각한 것보다 대륙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

    그렇기에 펠리드와 원정대원의 가족들을 지켜 줄 울타리를 더욱 공고히 만들 작정이었다.

    “머, 머리가 너무 아픕니다…….”

    “쯧. 멍청아, 그렇게 가만히 있지 말고 기를 운용해. 네 머리를 보호하듯이 의지의 침범을 막으란 말이야.”

    너무 힘들어하기에 조금 힌트를 줬다.

    “후우…….”

    그래도 기를 운용하는 능력은 탁월하기에 금방 내 말에 따라 자신의 심령을 보호했다.

    “아, 그리고 이제 달려올 테니까 준비해.”

    “네? 뭐가……?”

    하지만 녀석은 의문을 표하지 못했다.

    “으갸갸갹!”

    “꺄아아아!”

    괴성과 함께 멀찍이서 달려오는 무리가 있었다.

    “이런!”

    당황한 타일로는 급히 허리춤에 달려 있던 검을 빼 들었다.

    “이들은……?”

    하지만 녀석과는 달리 조금은 침착한 모습의 킬리아. 그녀는 차분히 달려오는 이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괴성과 함께 달려오는 건 사람이었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과 다른 점이라면 그 누구도 옷을 입지 않은 태초의 상태라는 것과 길쭉한 손톱, 발톱, 송곳니 그리고 붉게 충혈된 눈이었다.

    “광기에 지배당한 사람들이겠지?”

    감정의 편린이 전혀 느껴지지 않은 것을 보면 꽤 오랜 시간 광기에 노출되어 완전히 이성을 잃어버린 듯 보인다.

    “그렇다면 광기에서 벗어나게 해 줘야 하지 않습니까?”

    “불가능.”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내가 대단해도 광기에 지배당한 저 사람들을 구제할 방법은 없어. 그러니까 그들을 위한다면 안식을 선사해 줘.”

    그들을 구제할 방법은 하나.

    죽음. 오직 죽음만이 그들을 안식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알겠습니다.”

    스릉-

    마침내 결심한 타일로 녀석이 검을 빼어 들었지만.

    “근데 조심해야 할걸. 광기에 지배당했다는 건 녀석의 권능이 일부 전이됐다는 거고, 그건 곧 일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괴력을 보일 수 있다는 말이니까.

    “캬아악!”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달려든 광기의 하수인 하나가 손을 휘둘렀다.

    카카캉!

    “크윽!”

    엄청난 충격에 뒤로 밀려나는 타일로.

    “무슨 힘이……?!”

    “거봐. 내가 조심하라고 했잖아. 광기의 권능은 육신의 힘을 폭발적으로 상승시키니까 방심하면 너도 당할 수밖에 없을걸?”

    그리고 문제는.

    “캬악!”

    “키익!”

    녀석이 감당해야 할 이가 한둘이 아니라 무려 수십에 달한다는 것이다.

    광기에 지배된 광기의 하수인 수십이 나와 일행을 찢어발기기 위해 매섭게 쇄도하고 있었다.

    “음?”

    하지만 다음 순간, 나는 그들에 대한 관심을 거뒀다.

    저 멀리, 희미한 무언가가 손짓하듯 나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기운의 정체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광기의 주인. 이 던전을 지배하고 있는 고대 신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팟.

    던전의 주인이 부르니 달려가는 게 인지상정.

    순식간에 공간을 좁혀 녀석이 부르는 장소에 도착했다.

    “오호라?”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본 순간, 나는 왜 고대 신 녀석이 활동하지 못하고 있었는지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선택받은 자여… 나의 봉인을… 이 검을 뽑아라…….」

    아름다운 미녀의 형상을 한 고대 신.

    그녀는 이끼가 잔뜩 낀 나무에 묶여 있었는데, 그 육신을 사선으로 관통한 하나의 검이 있었다.

    바로 그것이 고대 신을 던전에 묶어 두었던 매개체.

    누군가가 목숨을 바쳐 완성한 봉인의 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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