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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62화 (62/161)
  • 62화 Chapter 61

    『원정대 마계 진입 41년 2개월 차』

    두두두두-

    핏빛 대지를 검게 물들이는 움직임이 있었다.

    “우우우!”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울음을 토하는 흑색의 무리는 바로 검은 털을 지닌 늑대 무리.

    족히 수백은 되어 보이는 늑대. 하지만 그건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늑대와는 전혀 다른 외형을 지니고 있었다.

    마치 쇠 가시처럼 빳빳한 털과, 얼굴을 모두 가릴 정도로 큰 입, 그리고 두 눈은 붉게 충혈되어 당장에라도 피를 흘릴 듯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특징이라면 덩치다.

    보통의 늑대보다 족히 다섯 배는 커 보이는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녀석들이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모습은 마치 끔찍한 재앙이 실체를 띠고 움직이는 것과 같았다.

    이 늑대 무리는 핏빛 대지의 포식자 중 하나인 ‘검은 재앙’이었다.

    수백이 무리를 지어 이동하며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먹어 치우는 재앙.

    핏빛 대지의 최상위 포식자들 중 하나인 녀석들은 평소라면 위풍당당하게 이동하고 있었을 테지만, 오늘은 무언가 달랐다.

    “헥헥!”

    거친 숨을 토해 내며 달리기에 여념이 없다.

    그 모습을 뭐랄까.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사냥감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가리온, 네 쪽으로 간다!”

    잠시 후 검은 재앙의 뒤편에서부터 울리는 쩌렁쩌렁한 목소리.

    “네, 확인했습니다!”

    검은 재앙이 향하고 있는 방향. 겁도 없이 그 앞을 막고 있는 이가 있었다.

    오랫동안 자르지 않아 길게 기른 검은 머리칼을 기른 20대의 사내.

    어딜 봐도 왜소해 보이는 체구의 사내는 달려오는 검은 재앙에 의해 금방이라도 찢길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하압!”

    힘찬 기합을 터뜨리며 디딤발을 내딛는다.

    콰앙!

    한 차례의 굉음과 함께 그가 디딘 대지에 균열이 일어났다.

    힘을 싣는 디딤발에 깃든 파괴력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그 힘을 고스란히 담은 일격이 펼쳐졌다.

    스윽!

    사내의 손에서 피어난 붉은 검광.

    세간에서는 오러 블레이드라 불리는 강력한 기술이 사내의 손에 의해 발현된 것.

    “케헥!”

    “캬악!”

    절정에 이른 검격은 매섭게 쇄도하던 수십의 검은 재앙을 순식간에 반 토막 냈다.

    “으라라챠챠!”

    이에 그치지 않고 몸을 공중으로 띄운 사내는 검은 재앙 무리에 난입하여.

    서걱, 서걱!

    에테르칸의 송곳니를 연마하여 만든 조악한 검을 이용해 학살의 장을 펼치기 시작했다.

    “크르릉!”

    “컹컹!”

    그래도 명색이 핏빛 대지의 최상위 포식자들 중 하나.

    제 발로 굴러들어 온 적을 향해 사나운 공격을 펼친다.

    하지만.

    쿵, 쿵!

    흑발의 사내가 쓰러지는 일은 없었다.

    “허약하다, 허약해!”

    오히려 그는 오랜만에 제대로 된 운동을 한다는 듯 상쾌한 표정을 지으며 달려드는 검은 재앙을 베어 낼 뿐이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웬만한 공격을 모두 튕겨 내는 검을 상대로 튼튼하고 질긴 검은 재앙의 가죽조차 좀처럼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마치 무를 베듯 너무나도 쉽게 갈라지는 그들의 육신은 정말 이들이 그토록 포악한 검은 재앙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

    웅웅웅!

    검명을 토하는 사내의 검에 깃든 오러 블레이드 덕분이다.

    무려 2m 가까이 솟아난 오러 블레이드의 위력은 대륙에서 평하는 흔한 오러 블레이드의 수준이 아니었다.

    9성, 그것도 완숙의 경지에 이른 이들만이 발휘할 수 있는 완벽한 오러 블레이드로 인하여 절삭력과 파괴력이 상승해 단단하기 그지없는 검은 재앙의 가죽을 마치 종이 베듯 쉽게 베어 낼 수 있었다.

    “오늘은 고기 파티다!”

    뒤이어 난입하는 두 명.

    그들은 바로 지금까지 살아남은 마계 원정대의 생존자.

    사실상 원정대의 주축이라 할 수 있는 아서 왕자와 셀론이었다.

    파파파팟!

    두 사람이 펼쳐 내는 아름다운 검광과 함께.

    투투툭.

    사지가 잘린 검은 재앙이 지면에 허물어졌다.

    “우우우…….”

    두려움을 느낀 검은 재앙 몇몇이 도주하기 위하여 몸을 튕겼다.

    그러나.

    “어딜!”

    아서 왕자는 이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스윽!

    가볍게 휘두른 그의 검이 공간을 갈랐다.

    투욱.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두려움에 도주하려던 검은 재앙은 목이 잘린 채로 움직임을 멈추고 말았다.

    “이거 오랜만에 제대로 고기를 포식할 수 있겠는데요.”

    신이 난 흑발의 사내, 마계 원정대의 마지막 생존자 3인 중 하나인 가리온.

    그는 모처럼 미소를 지은 채로 주변에 쓰러진 검은 재앙의 고기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척척.

    독성이 깃들어 먹지 못하는 얼굴과 팔, 다리, 그리고 내장 부분을 제거하여 포대에 옮겨 담는다.

    오랜 마계 생활로 인해 고기 손질에는 이미 익숙해져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엄청난 양의 고기를 확보한 후.

    “한판 벌일까요?”

    가리온이 웃으며 말했고.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그 말을 받은 셀론이 곧장 아서 왕자를 응시했다.

    “망설일 것 없지.”

    “예스!”

    곧바로 조촐한 파티가 시작되었다.

    검은 엔트를 처치하여 얻은 장작을 쌓아 두고 마기를 부여하여 모닥불을 피웠다.

    타닥타닥.

    보통의 나무와는 다르게 엄청난 화력을 자랑하는 검은 엔트의 가지로 인하여 검은 재앙의 고기는 순식간에 익었다.

    “키야! 이 맛이지. 다른 건 몰라도 검은 재앙 녀석들의 고기는 일품이라니까요.”

    손에 든 고기를 게걸스럽게 먹던 가리온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마계의 여러 포식자들을 먹어 봤지만 검은 재앙만큼 맛이 있는 고기는 찾기 힘들었다.

    “참, 세월이 흘렀다는 게 실감이 나는군. 과거에는 녀석들을 피해 도주하다가 많은 원정대원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말이야.”

    가리온과는 달리 감상에 젖은 셀론이 말했다.

    “그랬었지. 과거에는 그 검은 물결만 봐도 꽁지가 빠지게 도망 다녔었는데. 지금 이 힘을 조금 일찍 가질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아서 또한 감상에 젖은 듯 눈이 몽롱하게 변했다.

    “에이, 왜 또 갑자기 감상에 젖어 그러실까.”

    갑작스레 돌변하는 분위기에 가리온이 머리를 긁적였다.

    모처럼 고기를 먹는 날인데 이렇게 분위기가 가라앉아서야 어디 고기 먹는 기분이 나겠는가.

    “아! 그러고 보니 제가 그 이야기를 하다 관뒀었죠?”

    그리고 지금의 분위기를 바꿀 한 가지 방법을 떠올릴 수 있었다.

    “제가 법칙을 비튼 자들 중 하나인 방문자라는 건 이제 아실 테고.”

    그 말에 아서와 셀론의 눈빛이 변했다.

    얼마 전 그들은 말단 병사에 불과했던 가리온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밀을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그가 법칙을 비튼 자라고 불리는 ‘특별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법칙을 비튼 자는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른 엄청난 재능을 기본적으로 부여 받습니다. 제가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도 그러한 재능이 있었던 덕분이죠.”

    밝혀진 사실은 하나같이 놀라운 것이었다.

    가리온의 본래 이름은 최현성.

    대한민국이라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온 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이차원에 진입했고,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방랑자를 거쳐 병사가 되어 지금의 마계 원정대에 소속될 수 있었다.

    처음에 그는 정말 하잘것없는 병사에 불과했다.

    하지만 말했던 것처럼 엄청난 재능을 바탕으로 빠른 속도로 성장했고, 결국에는 마지막 생존자 3인이 될 수 있었다.

    아무도 관심조차 없었던 일반 병사에서 고작 40년 만에 9성, 그것도 완숙의 경지에 이른 것.

    이계를 넘어오면서 받은 재능의 축복이 없었다면 결코 달성할 수 없는 빠른 성장 속도였다.

    “그건 지난번에도 했던 이야기지. 그보다 궁금한 건 법칙을 비튼 자들 중에는 가리온, 너보다 더 강력한 힘을, 아니 재능을 가진 자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가만히 듣고 있던 셀론이 물었다.

    그가 가장 놀란 건 이 경이로운 성장 속도를 보인 가리온보다 더욱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이들이 있다는 점이었다.

    “네, 맞아요. 사실 법칙을 비튼 자들 중에서 제가 속한 방문자는 제일 하급, 어떻게 보면 가장 낮은 재능의 존재라고 볼 수 있죠.”

    “으음…….”

    “너의 재능이 하급이라니.”

    침음성을 터뜨리는 아서와 셀론.

    저 괴물 같은 재능이 가장 낮은 하급의 재능이라니.

    그렇다면 도대체 가리온보다 더 나은, 상급의 재능을 가진 이들은 얼마나 더 괴물이란 말인가.

    “하급에는 방문자, 빙의자 정도가 있고, 중급에는 게이머와 환생자가 있어요.”

    “중급이면 너와는 어느 정도의 차이가 나는 거지?”

    “한 단계만 높아져도 하늘과 땅 정도의 차이가 나죠. 재능만 따지면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이죠.”

    “그 정도로?”

    “네, 물론 어느 정도 후천적인 환경의 영향도 있겠지만 일단은 가장 좋은 상황을 가정했을 때는 그 정도로 차이가 벌어져요. 하지만 법칙을 비튼 자들 중에서도 특히 조심해야 할 자는 바로…….”

    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러 말끝을 흐린 가리온.

    그는 아서와 셀론을 슬쩍 바라보고는 말을 이어 갔다.

    “…회귀자예요.”

    “회귀자?”

    “네, 수없이 많은 생을 반복하는 이들이죠. 심지어 어떤 이는 죽었을 때 가지고 있었던 무력을 그대로 다음 생까지 이어 가기도 해요. 수천, 수만 년을 수련한 이들도 있다고 하니 진짜 괴물 중의 괴물이라도 불릴 만한 존재들이죠.”

    “…….”

    가리온의 설명에 두 사람은 할 말을 잇질 못했다.

    죽어도 다시금 과거로 돌아가 삶을 시작하는 이들.

    그런데 그 힘을 그대로 이어받아 다시금 생을 시작한다면 도대체 얼마만큼 강해질 수 있단 말인가.

    “신이라 말할 수 있는 존재이겠군.”

    “종종 신의 격을 얻은 이들도 있다곤 하는데, 직접 보지 못해서 모르죠. 그러니까 두 분도 혹시 대륙으로 가게 되거든 조심하세요. 저와 같이 흑발에 흑안, 그리고 이질적인 기운을 풍긴다? 그럼 100%니까 함부로 시비를 걸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관심을 돌리는 데 성공한 가리온은 웃으면서 검은 재앙의 고기를 맛있게 먹어 치웠다.

    *

    법칙을 비튼 자.

    사실 그 명칭은 정확히 정해진 게 아니라 ‘운명을 거스르는 자’라든지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 자’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하지만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명칭이 법칙을 비튼 자였기에 편하게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네 녀석, 어떻게……?”

    녀석도 그 명칭을 알고 있었던지 눈을 부릅떴다.

    빙고!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한낱 인간에 불과한 녀석이 그 명칭을 알고 있을 턱이 없지.

    그 놀라는 반응을 통해 녀석이 법칙을 비튼 자들 중 하나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서 네 녀석은 뭐지? 시답지 않은 실력을 가진 것을 보니 방문자인가?”

    “…….”

    녀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흐트러진 그 기세는 한 가지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가리온 녀석과 실력이 비슷하더니 역시.’

    그건 확신이 아니라 유추였다.

    하지만 그 질문에 놀란 녀석의 기세가 흐트러지며 곧장 그 답을 얻어 낼 수 있었다.

    “뭐, 네가 누구든 상관없어. 중요한 건 건방지게 내 물건을 뺏으려고 했다는 거지.”

    게다가 감히 내게 칼을 들이댔다.

    녀석이 뭐 하는 녀석이건 내게 적의를 보인 이상, 이를 그냥 넘어갈 마음이 없었다.

    ‘게다가 이 녀석들은 법칙을 뒤흔드는 존재들이니.’

    이참에 제거하는 게 대륙의 안정을 위한 길일 것이다.

    쉬익!

    “컥!”

    찰나의 순간, 녀석의 목을 움켜잡았다.

    인지의 영역을 벗어난 빠르기에 대응하지 못한 녀석의 육신이 공중으로 올라갔다.

    “죽어라!”

    나는 조금 전 녀석이 내뱉었던 말을 전하며 손아귀에 힘을 주려고 했지만.

    “그 손을 놔라!”

    콰앙!

    누군가의 훼방으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호오?”

    공간을 넘어 내게 다가온 이를 응시했다.

    쉴 새 없이 육수를 뿜어내던 영주. 그가 비정상적인 몸놀림을 보이며 내 팔을 걷어찬 것.

    놀라운 변화는 그만이 아니었다.

    고오오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 기세도 감당하지 못하던 트리탄과 병사들.

    녀석들이 어마어마한 기운을 발산하며 나를 포위하고 있었다.

    “빙의자들이로군!”

    처음과는 전혀 다른 기운, 아니 존재가 바뀐 듯한 기세를 발산하는 그들을 보며 곧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마음대로 다른 존재에게 빙의하는, 법칙을 비튼 자들 중 하나인 빙의자.

    놀랍게도 그 녀석들은 한둘도 아니고 수십이나 모습을 드러낸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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