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60화 (60/161)
  • 60화 Chapter 59

    그람과 발뭉은 신격에도 타격을 줄 수 있는 신기다.

    그 증거로 내 손에 의해 녀석의 형상체는 갈가리 찢기다 못해 흔적조차 남기지 못했다.

    그러나.

    ‘존재는 여전히 남지.’

    괜히 신격을 이룬 존재가 아니다.

    그들의 존재는 세계 곳곳에 남아 있고, 그 모든 신앙과 믿음, 그리고 흔적을 지우지 않는 이상 어느 때건 다시 부활할 수 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형상체를 조각내어 흔적조차 남지 않도록 소멸시켰으나 그 존재의 기운이 여전히 사방에 퍼져 있었다.

    이대로 녀석을 내버려 둔다면 과거와 같이 다시금 부활하게 될 터.

    「이것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반드시 돌아와 네 녀석을, 그리고 너와 관련된 모든 존재를 멸할 것이니…….」

    그 증거로 저렇게 주둥이를 털고 있지 않은가.

    “그래. 과거에는 너를 소멸시킬 만한 힘이 없어서 놓쳤었지.”

    그 순간, 잊고 있었던 상념이 떠오른다.

    과거 마계에서의 피폐한 생활 중 살육의 신명을 가진 녀석은 내게 접근하여 자신의 사도가 될 것을 제안했다.

    물론 그 대가로 강력한 권능을 약속했고, 원정대의 복수를 위하여 힘이 필요했던 나는 그 제안을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녀석의 제안은 거짓이 아니었다.

    단숨에 오랜 세월 동안 쌓은 힘을 얻은 나는 그 힘을 바탕으로 마족과 마신들을 쓸어버렸다.

    하지만 그것은 조건 없는 힘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피에 굶주린 혈귀가 되어 닥치는 대로 모든 생명을 살육했고, 나의 인간성은 마모되어 괴물로 변화하고 있었다.

    만약 그대로 살육의 괴물이 되었다면 나는 녀석이 원하는 대로 강림을 위한 그릇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녀석의 진정한 목적은 살육에 물든 나를 먹어 치우고 그 육신에 강림하여 유희(遊戲)를 즐기려던 것.

    하지만 마지막 순간, 나의 의지가 녀석의 강림을 거부했다.

    그 힘은 원정대원의 숙원 때문이었다.

    만약 원정대원의 바람이 내게 힘을 실어 주지 않았다면 그대로 살육을 행하는 괴물이 되어 나의 의지와 자아는 소멸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릇으로 삼으려는 신격에 저항했고, 육신을 차지하기 위한 정신세계의 전투를 벌였다.

    현실에서는 찰나에 불과한 순간. 하지만 정신세계에서는 억겁의 세월이라 할 수 있는 오랜 시간 동안 끊임없이 싸웠다.

    그로 인하여 나의 심상은 무한히 확장되었고,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안타까운 사실은 당시의 내게는 신격을 소멸시킬 만한 힘이 없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는 다시 돌아올지니…….」

    녀석의 존재가 점차 희미해진다.

    그러나 나는 녀석을 이대로 보낼 생각이 없었다.

    「처음 그는 한없이 나약한 존재에 불과했다.」

    여섯 마수를 깨운 상태에서 의지를 움직였다.

    「격을 얻은 위대한 존재에 비하면 티끌만큼의 가치도 보이지 않는 너무도 나약한 존재.」

    나의 의지는 영역을 확장하여 자취를 감추려던 살육 녀석을 그대로 붙잡았다.

    「이건……?」

    존재를 흩어 버리려는 녀석의 시도는 무산되었다.

    나의 의지가 그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절대의 영역. 적어도 이 영역 안에서는 아무리 대단한 신격이라고 해도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인고의 단련을 통하여 마침내 새로운 영역의 길을 개척하였으니.」

    웅웅웅!

    의지로 벼리고 벼려 만든 검.

    빛으로 반짝이는 의지의 검이 웅후한 검명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모든 존재를 멸하는 힘을 지닌 ‘승리의 검’이라.」

    오직 승리만을 바라는 내 의지가 벼려 낸 그 검은 바로 승리의 검.

    신격이든, 무엇이든, 모든 존재를 멸하여 승리를 가져다주는 의지의 검이었다.

    「무, 무슨 짓이냐!」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한 살육 녀석이 다급히 의지를 전달하려 했지만.

    “무슨 짓이긴. 너의 존재를 완전히 멸할 짓이지.”

    나의 의지가 승리를, 살육 녀석의 소멸을 바라고 있었다.

    팟!

    그 순간, 섬전처럼 튀어 나간 승리의 검이 살육 녀석의 존재가 뭉쳐진 곳을 베었다.

    “…….”

    무언가를 베는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승리의 검은 정확히 살육 녀석을, 신격의 존재 자체를 베어 버렸다는 사실을.

    「이건,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어찌 필멸자 따위가 신격을 해할 수…….」

    “그래. 네 녀석들은 소멸할 때마다 꼭 그런 소릴 내뱉더라.”

    「…그렇다면 네 녀석, 과거 자취를 감춘 신격을 소멸시킨 게…….」

    “맞아. 그 모두가 내 손에 당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많은 신격들을 소멸시켰지.”

    눈앞에 있는 살육 녀석은 놓쳤지만, 신살의 힘을 얻은 이후 나를 이용하려고 했던 모든 신격을 소멸시켰다.

    「이 사실을 판테온에게 알려야만…….」

    하지만 녀석은 그 말을 끝까지 이을 수 없었다.

    푸스스스- 보이지 않으나 분명 존재하던 녀석의 존재가 먼지가 되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것은 존재의 소멸. 신격의 완전한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파앗!

    신격의 소멸과 함께 멈춰진 시간의 흐름이 다시금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으음, 적이 숨어 있었군.”

    “도대체 저길 어떻게 발견한 거지?”

    트리탄을 포함한 용병들은 내가 죽인 살육의 사도들을 바라보며 침음성을 삼키고 있었다.

    그들이 확인한 건 일곱 사도의 죽음뿐.

    지금 내가 살육이라는 신격을 소멸시킨 일에 대해서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아쉽네. 신격을 소멸시켰을 정도면 꽤 큰돈을 만질 수 있었을 텐데.’

    순간 큰 아쉬움이 몰려왔다.

    만약 신격을 소멸시킨 사실이 알려진다면 어마어마한 돈을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아, 물론 신격을 금화로 책정한다면 그것을 지불할 능력이 이 가난한 영지에는 결코 없겠지만 말이다.

    “전투는 끝났습니다.”

    뒤돌아선 나는 전투의 끝을 알렸다.

    뒤이어서 진군하고 있던 언데드 군단은 일곱 사도의 죽음으로 모두 소멸을 맞이했다.

    모든 음모의 배후에 있었던 살육의 신격마저 처치했으니 이번 사태는 이것으로 마무리된 것.

    “그, 그렇군요. 덕분에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무사히 영지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은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트리탄이 무릎을 꿇었다.

    그것은 결코 비굴한 굴종의 자세가 아니었다.

    영지에 있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마땅히 위에 앉은 자가 해야 할 당당한 태도였다.

    “뭐, 감사의 인사는 됐습니다.”

    감사 인사를 받고자 나선 게 아니다.

    단지 검지와 엄지를 동그랗게 말아 트리탄에게 보여 주었다.

    “이것만 제대로 챙겨 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죠.”

    “알겠습니다. 지금 영주님께서 잠시 업무로 자리를 비우셨으니 보수에 대해서는 충분히 상의를 해 보겠습니다.”

    “흐음…….”

    나는 그의 말에 턱을 쓰다듬었다.

    분명 그는 ‘상의’라는 표현을 썼다.

    어쩐지 이번 보수 건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은 단순한 예감만은 아닐 것 같다.

    *

    “오오! 그대가 바로 언데드 군단을 물리친 그 영웅인가?”

    알렉슨 브리아둔.

    일스테인 영지의 영주이자 자작의 직위를 받은 귀족.

    사건이 일단락되자 부리나케 영지로 다시금 돌아온 녀석은 축하연을 베풀어 이번 사태에서 활약한 이들을 불렀다.

    문제는 활약상을 펼친 게 나뿐이라는 점이다.

    다른 용병들이 손쓸 틈도 없이 모든 적을 제거해 버린 탓에 축하연에는 나 혼자만 초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먹으면 몸집을 저렇게 찌울 수 있는 거지?’

    나는 공을 치하하는 자작을 힐끗 응시했다.

    꽤 넓어 보이는 의자에 앉은 그의 푸짐한 몸집은 뒤의 의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대했다.

    아니, 그냥 비대한 정도가 아니라 마치 살점이 흘러내릴 것처럼 파도를 치고 있었다.

    아무리 귀족이 하는 일 없이 먹을 것만 축낸다고 하지만 이건 심해도 너무 심했다.

    “별거 아닌 일이었습니다. 그 정도 일에 영웅이라니 과찬이십니다.”

    그리 말하며 슬쩍 녀석의 눈치를 살폈다.

    “하하하. 겸손하기까지 하다니. 실로 영웅의 표본이 아닌가?”

    녀석은 트리탄의 동의를 구하는 듯 그를 한 차례 응시했고.

    “그렇습니다. 제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였는데, 그야말로 영웅이라 칭할 만한 대단한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암, 그렇고말고. 으하하하!”

    아무런 피해도 없이 영지를 보전한 것이 무척이나 좋은 듯 크게 웃음을 터뜨린다.

    ‘다행히 모르는 것 같네. 하긴 이런 변방의 영주가 내 얼굴을 알 턱이 없지.’

    내가 걱정하고 있었던 건 혹시 녀석이 내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변방의 영지는 자치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왕성에 들를 일이 거의 없다. 그렇기에 알렉슨 자작은 내 얼굴을 모르고 있었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우리 영지를 지켜 준 영웅에게 소홀히 대접할 수 있나. 자자, 어서 드시게.”

    그는 계속 영웅이라 추켜세우며 어서 음식을 들기를 권했다.

    사양할 필요가 있나. 그렇지 않아도 오랜만에 힘을 써서 에너지 섭취가 필요한 터였다.

    식탁에 가득 차려진 음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출생지가 어디라고? 지금 용병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혹 영지의 기사가 될 생각은 없나? 내 대우는 섭섭지 않게 해 줄 테니…….”

    알렉슨 자작은 끊임없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물론 하나같이 가당치도 않은 제안이라 정중히 사양했고, 그렇게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어둑해진 창밖을 본 알렉슨 자작이 가볍게 혀를 차며.

    “계속 축하연을 베풀고 싶으나 우리 영웅께서 상당히 피곤할 테니 이만 자리를 파하도록 하지.”

    짝!

    그가 가볍게 손뼉을 치자 대기하고 있던 성의 하인들이 다가와 음식을 치우기 시작했다.

    “다시금 우리 영지를 구해 줘서 고맙네. 내 이 은혜는 두고두고 갚도록 하겠네. 자네도 내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하하하.

    녀석이 무슨 수작을 벌이고 있는지는 빤했다.

    계속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보수를 지급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 의도는 ‘귀족인 내가 이렇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데 설마 보수 이야길 꺼내겠어.’ 정도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지.

    “아, 알렉슨 자작님.”

    다급히 자리를 파하려는 알렉슨을 불렀고.

    “음? 무슨 일인가?”

    녀석의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곧바로 결정타를 날렸다.

    “약속했던 보수에 대한 이야기가 없어서 말입니다.”

    “…….”

    내 말에 급속도로 얼굴이 굳어지는 자작.

    “…보수 말인가?”

    “네, 분명 이번 일의 활약에 따라 보수를 지급한다고 약속을 받았는데 말이죠.”

    그리 말하며 힐끗 트리탄을 응시했다.

    “…….”

    무언가 언질을 받은 게 있었는지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태도를 취하는 트리탄.

    “보수라. 그 무슨 섭한 말을 하고 그러는가. 내 거듭 그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지 않았나. 게다가 수백, 수천 명의 영지민 목숨이 달린 일을 어찌 돈으로 환산할 수 있단 말인가.”

    살이 뒤룩뒤룩 찐 게 욕심이 가득한 것 같더니.

    내심 이렇게 될 줄 알았기에 별반 다른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꽈악!

    “커, 컥!”

    나는 단숨에 거리를 좁혀 녀석의 목을 움켜쥐어 지면에서 들어 올렸다.

    “여, 영주님!”

    “무슨 짓이냐!”

    주위를 지키고 있던 트리탄과 호위 병사들이 무기를 빼 들며 접근한다.

    “무슨 짓이긴. 정당한 보수를 받아 내려는 거지.”

    정당한 대가도 없이 노동만 시키려는 악덕 영주의 참교육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