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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59화 (59/161)
  • 59화 Chapter 58

    뚝!

    세계의 법칙에 의해 반드시 흘러가야만 하는 시간이 멈췄다.

    그 같은 현상은 법칙을 거스르는 존재가 나타나야만 벌어지는 것.

    「…….」

    그리고 세계의 법칙을 거스르는 존재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붉은 기운에 휩싸인, 그 진면목을 알아볼 수 없는 빛의 형상이었다.

    스윽.

    마치 유령처럼 미끄러지듯 천천히 나아간 그 존재는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사도들의 희생이 있었구나.」

    자신의 권능을 일부 이양 받은 사도들의 희생으로 강림한 것을 깨달은 그는 ‘불쾌함’이란 감정을 느꼈다.

    누군가 자신의 사도를 제거했다는 사실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시선이 닿은 곳.

    그곳에는 이 모든 일의 원흉인 존재가 있었다.

    스르륵- 의지가 움직인 순간, 그 형상은 시선이 머문 곳에 당도했다.

    「흐음…….」

    눈앞의 필멸자를 응시했다.

    「뭔가 이 녀석을 보니 굉장히 불쾌한 상념이 떠오르는군.」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알고 있다.

    지금 이곳에 강림한 그는 ‘완전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떠오르지 않는 과거의 어떤 사건으로 인하여 그는 불완전한 존재가 되었다.

    문제는 그 사건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

    분명 아주 큰일이 있었지만 불완전한 존재가 되어 기억이 온전치 않았다.

    「상관없겠지.」

    어차피 하찮은 필멸자와의 인연이 대단해 봐야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불쾌해?

    그렇다면 소멸시켜 버리면 그만이다.

    츠츠츠!

    모든 생명체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살육의 기운이 그의 손에 맺혔다.

    스으으- 뒤이어 그의 손이 느릿한 속도로 필멸자를 향해 다가갔다.

    그 손길이 닿는 순간, 모든 생명체는 죽음에 이르고 말 테지만 그 순간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오랜만이다?”

    「……?」

    찰나를 무한히 늘린 그 시간을 녀석이 움직인다.

    「어떻게?」

    세계의 법칙을 거스르는 일을 고작 필멸자 따위가?

    하지만 그, 아서의 행동은 말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텁- 법칙을 무시한 아서의 손이 다가오는 신격의 팔을 낚아챘다.

    “어이, 살육.”

    팔을 낚아챈 상태로 코앞까지 다가간 아서.

    “너, 나 기억 못 하는 거냐?”

    그는 의문에 가득 찬 물음을 던졌다.

    *

    「…네 녀석 평범한 필멸자가 아니로군.」

    내 물음에는 답하지 않은 살육 녀석이 기운을 발산한다.

    고오오오오!

    찰나의 순간, 장내를 장악한 거대한 의지.

    “이건 또 뭐야?”

    하지만 나는 그 의지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왜 이렇게 약해졌냐?”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과거 겪었던 살육에 비하면 너무도 나약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지만 그래도 그때의 나를 소멸 직전까지 몰고 갔던 게 이 녀석이었다.

    그런데 이런 나약한 의지라니.

    「무슨…….」

    “무슨 말이긴.”

    순간 의지를 확장하여 녀석이 장악한 장내의 지배권을 내게 가져왔다.

    “이런 말이지.”

    「…….」

    내 의지로 덮어 버린 공간.

    녀석은 할 말이 잃은 것처럼 침묵을 지켰다.

    의지는 곧 존재의 크기다.

    존재의 크기는 곧 힘을 상징하는 것.

    녀석이 발현한 의지가 내 의지에 의해 사라졌다는 것은 곧 녀석의 존재가 나보다 하등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정도의 존재라면 네 녀석, 회귀자인가?」

    “또 그 법칙을 비튼 자 타령이냐?”

    여기도, 저기도, 조금 힘만 보였다 하면 법칙을 비튼 자들 타령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이 대륙 토종이거든. 아니, 그보다 너 정말 기억 못 하는 거냐?”

    「우리가 만난 적이 있던가?」

    하!

    이 녀석, 정말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인데?

    하긴, 그 기억을 떠올렸으면 이렇게 편히 대화를 나누진 못했을 것이다.

    당장 피 튀기는 접전을 벌이며 싸우고 있었겠지.

    ‘진체의 소멸이 상당히 큰 영향을 준 모양이네.’

    원인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당시 녀석은 억겁의 세월 동안 그릇으로 삼고 있던 진체로 강림했었고, 내 손에 의해 소멸당하고 말았다.

    물론 신격을 소멸시킬 만한 힘이 없었기에 진체의 소멸로만 그쳤는데, 아마도 그 영향으로 인해 기억을 잃어버린 것 같다.

    “기억 안 나면 됐다. 어차피 기억한다고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테니.”

    「불쾌하군.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나는 기억하는데 자기는 기억 못 하고 있으니 그 사실이 못내 궁금한 것 같다.

    뭐, 그렇게 궁금하다면야 알려 주는 게 인지상정.

    “별거 아냐.”

    그리 말하며 나는 씨익 웃었다.

    “건방진 네 녀석이 하찮은 필멸자인 내 손에 의해 진체가 작살났다는 것.”

    「무엇이?!」

    “그리 놀랄 필요는 없어. 이번에는 진체가 아니라 아예 존재 자체를 소멸시켜 버릴 테니까.”

    쉬이익!

    의지가 움직인 순간, 이미 주먹은 녀석의 면상을 강타하고 있었다.

    그러나.

    스윽- 내 주먹은 녀석의 면상을 그냥 통과할 뿐이었다.

    「하찮은 필멸자 따위가 내 존재에 닿을 것 같으냐.」

    그건 단순한 통과가 아니었다.

    녀석의 형상 주변으로는 시간, 그리고 공간의 법칙을 비틀어 버린 강력한 결계가 존재했다.

    그 결계를 깨지 않는 이상, 아무리 강력한 공격도 녀석의 형상에 닿지 못할 것이다.

    “진짜 기억 못 하긴 하는 모양이다. 어떻게 그때와 똑같은 소릴 하냐?”

    하지만 나는 이 상황이 웃길 뿐이었다.

    지금 녀석이 한 말은 과거 녀석과 처음 만났을 때와 한 치도 다르지 않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연기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린 게 확실하다.

    쾅!

    「크윽!」

    시간과 공간을 왜곡한 그 결계를 넘어 곧장 녀석의 면상에 주먹을 꽂았다.

    놀란 녀석이 비틀대며 물러난다.

    “어딜!”

    하지만 이 정도로 만족하지 않는다.

    팟.

    공간을 접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손과 발을 이용하여 무수히 많은 잔영을 만들어 냈다.

    순식간에 공간을 모두 점한 나의 손과 발이 살육 녀석의 형상을 무자비로 강타했다.

    콰쾅, 콰콰콰쾅!

    녀석의 형상이 불안하게 흔들린다.

    충격에 의해 발산하는 빛이, 존재감이 점차 옅어지고 있었다.

    「내게 거짓말을 했군.」

    하지만 녀석은 연이은 충격에도 조금은 태평한 모습이었다.

    「고작 이 정도의 힘으로 내 진체를 소멸시켰다? 어림도 없는 일.」

    확신하듯 말한 녀석이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화악!

    충격에 의해 옅어졌던 빛이 더욱더 강렬하게 바뀐다.

    빛만이 아니다.

    쿠웅!

    마치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처럼 녀석의 존재감이 장내를 가득 채웠다.

    살육이라는 신격을 상징하는 핏빛의 형상을 완성한 녀석은 숨겨 두고 있었던 자신의 모든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네 녀석이 법칙을 비튼 자이든 무엇이든 관심 없다. 같은 격을 지닌 존재가 아닌 이상 나를 해할 수 없으니.」

    웅웅!

    녀석의 형상이, 그 의지가 거대한 대검을 만들었다.

    살육의 대검 이클립스. 과거에도 발현한 바 있는 녀석의 권능으로 벼려 낸 검이다.

    「죽어라!」

    힘을 주어 검을 휘두르는 순간.

    쿠아아아아아!

    의지가 담긴 거대한 파도가, 모든 존재를 멸하는 살육의 파도가 쇄도했다.

    ‘확실히 장난의 신 녀석과는 다르긴 하네.’

    모든 것을 잠식하며 다가오는 살육의 파도는 과연 신격에 걸맞은 힘을 담고 있었다.

    얼마 전 만났던 장난의 신격, 녀석이 발휘한 힘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크허허허헝!」

    나는 잠자는 마수를 깨웠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동시에 깨어난 마수들이 포효하며 내 심상은 갉아먹기 시작했다.

    나의 심상은 녀석들에 의해 흔들리고 있지만, 그로 인하여 전해지는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것은 모든 것을 꿰뚫고, 또한 모든 것을 파괴하는 필상의 창이라.」

    나의 의지는 필중의 창 궁니르를 생성하였고.

    팟!

    그것은 쇄도하고 있는 살육의 파도를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의지와 의지가 충돌했다.

    촤아악!

    하지만 녀석의 의지는 내 의지를 뛰어넘을 수 없었다.

    그대로 파도를 갈라 버린 궁니르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 살육 녀석에게 접근했다.

    「흐읍!」

    기합을 터뜨린 녀석의 대검이 궁니르를 갈랐다.

    파스스- 그대로 흩어지는 궁니르.

    「…….」

    하지만 녀석의 감정은 요동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힘을 낼 수 있는 거지? 아무리 법칙을 비튼 자라고 해도…….」

    녀석은 파르르 떨리는 팔을 부여잡았다.

    비록 소멸하긴 했으나 녀석은 궁니르에 깃든 힘을 온전히 파쇄하지 못한 것이다.

    “다시금 말하지만 법칙을 비튼 자가 아니라 대륙 토종이라고.”

    물론 믿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당황하는 녀석을 한 차례 응시한 후 아공간을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스아아아아!

    엄청난 기운이 몰아치며 장내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조금은 놀란 듯한 감정을 보이는 살육.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녀석도 알고 있는 것이다.

    나의 양손에 쥐어진 빛과 어둠의 검, 그 진정한 힘의 정체를 말이다.

    “맞아. 그람과 발뭉. 슬픔과 고통의 검이지.”

    72마신, 그중에서도 7마신 아몬과 9마신 파이몬을 상징하는 그들의 신기.

    본래는 한 쌍이었던 2개의 검은 슬픔과 고통의 신격이 두 마신에게 내려 준 강력한 보물이었다.

    콰앙!

    디딤발에 힘을 주어 순식간에 살육에게 당도.

    스윽, 스스슥!

    빛과 어둠의 궤적을 그렸다.

    허공에 그려지는 수많은 궤적.

    「…….」

    녀석은 감히 그 검의 궤적에 대응하지 못한 채 피하기 바쁜 모습이었다.

    녀석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람과 발뭉, 각기 슬픔과 고통이라 불리는 두 개 검은 신격에게도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단순한 고통이 아니지.’

    그 단어의 뜻처럼 검에 상처를 입으면 어마어마한 슬픔과 고통이라는 심상의 상처가 남는다.

    아무리 녀석이라고 해도 그 고통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쉽게는 안 되지.’

    하지만 나는 녀석이 그것을 피하도록 놔둘 생각이 없었다.

    「떠올려라. 녀석이 과거 저질렀던 그 살육을…….」

    증오의 마수.

    내가 풀어 버린 녀석은 과거에 있었던 일, 살육이 벌였던 그 잔혹한 행위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흐아압!”

    여섯 마리 마수가 깨어나면서 힘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리고 나의 심상은 녀석들에게 갉아먹혀 점차 삭막하게 변했다.

    하지만 괜찮다.

    어차피 찰나를 무한히 늘린 이 시간 속에서 움직일 수 있는 건 녀석과 나뿐이니까.

    녀석을 상대하는 데 손속에 사정을 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파파파파팟!

    빛과 어둠의 궤적이 살육의 형상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녀석은 비명을 지르며 고통에 몸을 떨었다.

    증오의 의지가, 그리고 슬픔과 고통의 권능이 녀석의 존재를 갉아먹는다.

    「이, 이놈!」

    좀처럼 겪어 보지 못한 존재의 고통에 분노하는 녀석.

    그러나 녀석의 반항은 내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다.

    서걱, 서걱!

    그저 나의 검에 의해 존재의 상처가 늘어날 뿐.

    「어찌, 어찌 이런 힘이…….」

    마구 난도질을 당한 녀석의 형상은 불안하게 점등하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빛을 잃어버릴 것만 같은 그 현상은 녀석이 소멸에 이르고 있다는 증거.

    “그만 사라져라, 하찮은 것.”

    무심히 내뱉으며 그대로 발뭉을 휘둘렀고.

    서걱!

    녀석의 목과 몸통이 분리되었다.

    아니, 그게 끝이 아니다.

    스스스스스슥!

    이어서 움직인 궤적이 녀석의 육신을 조각조각, 아예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분해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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