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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54화 (54/161)

54화 Chapter 53

「무, 무슨?!」

놀란 녀석의 의지가 파고든다.

그럴 수밖에.

보통의 힘으로는 흠집조차 낼 수 없는 신격의 제단이 부서지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을 테니까.

푸쉬쉬!

부서진 제단 사이로 옅은 녹색 빛이 도는 안개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이 현재 세계에 머무는 신격의 정체다.

당연하게도 진체는 아니다.

제단이라는 상징체를 통하여 이 세계에 잠깐 머무는 형태인 것.

「네놈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구나.」

조금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분노가 담겨 있다.

그도 그럴 게 상징체인 제단의 파괴로 인해 녀석이 이 세계에서 발휘할 수 있는 영향력이 줄어 버렸기 때문이다.

「감히 신성한 제단을 파괴한 대가를 치르게 되리라.」

괜한 위협이 아니다.

상징체가 파괴되었다는 건 신격에도 꽤 큰 타격을 준다.

당연히 제단을 파괴한 자에 대한 합당한 벌을 내릴 수 있다.

츠츠츠츠!

사방으로 흩어져 있던 녹색 빛의 안개가 뭉치며 하나의 형체를 이루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뭔가 대단한, 위압적인 형상이 나타날 것으로 기대했으나.

“어엉?”

정작 완성된 형상은 무척 자그마한 신장의 어린아이였다.

그것도 양손으로 자신의 몸만 한 봉제 인형을 들고, 양 갈래 머리를 귀엽게 땋은 5살가량의 귀여운 여자아이 말이다.

‘잠깐!’

비록 진체는 아니나 신격을 형상화한 저 모습을 보니 무언가가 떠오른다.

‘소원을 비틀어 버리는 악의적인 행동. 게다가 어린아이의 모습이란 말이지…….’

대충 녀석의 신명이 무엇인지 윤곽이 잡혀 간다.

물론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너의 사지를 찢어 주마.」

저주의 말을 내뱉은 녀석이 손에 든 곰돌이를 높이 던졌다.

쿠웅!

그리고 바닥에 떨어졌을 때 그 곰 인형은 더는 ‘인형’과 같은 하찮은 물건이 아니었다.

「크르르르…….」

찰나의 순간, 공동 안에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 그건 괴물이었다.

뾰족한 발톱, 날카로운 송곳니 그리고 붉게 물든 안광.

5m가 넘는 덩치를 자랑하는 거대한 곰 괴물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가라, 레블로. 녀석의 사지를 찢어 나에게 공물로 바쳐라.」

「크허허허헝!」

명령을 받은 곰돌이, 레블로라고 불리는 괴생물체가 움직인 순간.

팟!

공간을 도약했다.

「크헝!」

뒤에서 들리는 섬뜩한 울음.

찰나의 순간, 공간을 도약한 녀석은 내 뒤를 잡았다.

그리고.

후우웅!

대기를 찢어 버릴 듯 강력한 앞발 휘두르기.

아마 보통의 상대였다면 그 바람만으로도 몸이 찢겨 나가겠지만, 불행하게도 상대는 나다.

쾅!

가볍게 팔을 들어 곰돌이의 앞발을 막았다.

파앙!

그 충돌로 인한 충격파가 한 차례 장내를 휩쓸었다.

「크헝?」

설마 팔을 들어서 막을 줄 몰랐는지 고개를 갸웃하는 곰돌이.

아마 내 팔이 멀쩡한 것이 녀석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네 솜뭉치 팔이나 걱정해.”

나는 그런 녀석을 향해 웃어 주며 힘을 주었다.

찌이익!

「크허허헝!」

뜯겨 나간 건 내 팔이 아니라 곰돌이의 팔이었다.

흉측한 외형과는 달리 그대로 찢긴 부위에서는 피와 살점 같은 것이 아니라 솜뭉치가 빼꼼 튀어나와 있었다.

“꺼져.”

힘을 주어 녀석의 복부를 향해 발로 찼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곰돌이의 육신은 주르륵 밀려 한참이나 멀리 날아갔다.

「크헝…….」

절묘한 힘의 분배로 녀석이 도착한 곳은 아이의 모습을 한 신격의 옆.

「…….」

당황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뜬 녀석이 곰돌이와 나를 번갈아 응시했다.

「이게 뭔……?」

아마 곰돌이가 녀석이 부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권속일 것이다.

그런 녀석이 너무 형편없이 당하니 순간 당황한 것일 터.

저벅- 나는 당황한 녀석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네 녀석… 판데모니움의 사도냐?」

다가오는 나를 본 녀석이 의구심 가득한 시선을 보냈다.

“판데모니움? 그건 또 뭔데?”

판데모니움?

태어나서 처음 듣는 단어였다.

「판데모니움 소속이 아니라고? 그럼 네 녀석 판테온이냐? 아니,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느껴지는 기운에 다른 신격이 느껴지지 않는다. 분명 필멸자에 불과하건만…….」

이 새끼, 아까부터 이상한 소리만 지껄이고 있네.

“네가 뭔 소릴 지껄이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어디에 소속되어 있거나 한 사람이 아니라서 말이야.”

그리 말하며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것은 공간을 뛰어넘는 행위.

슉!

눈 깜짝할 사이에 나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신격을 눈앞에 두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있지. 나는 신격이라 불리는 존재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과 특히 너처럼 세계에 간섭하려는 녀석들은 딱 질색이라는 점.”

초월체도 싫지만 특히 싫어하는 건 이 녀석과 같은 신격이었다.

과거 마계에서도 신격에 속하는 몇몇 녀석들을 만난 적이 있었다.

처음 그들을 발견했을 때 그들이 나를 구원해 줄 것으로 생각했다.

적어도 당시의 내게 신격이란, 즉 신이란 존재는 모든 이들을 구원해 주는 전지전능한 이였으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그들은 어떻게든 세계의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나를 이용했고, 나는 시련을 가장한 그들의 놀음에 빠져 한동안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을 허우적댔었다.

나중에야 그들이 인간을, 필멸자에 속한 모든 대상을 그저 도구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녀석들은 그 응분의 대가를 받았지만, 신격에 대한 불신은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만 사라져라.”

고작해야 권능의 일부밖에 발휘하지 못하는 형상체를 향해 주먹을 뻗으려 했으나.

「자, 잠깐!」

그 기색을 느낀 녀석이 다급히 소릴 지르며 내 행동을 저지했다.

「제안할 것이 있다. 잠깐, 잠깐이면 되니 내 말을 들어 줄 수 없겠느냐.」

“…….”

슬쩍 손을 내렸다.

「그, 그래. 이건 네게도 무척 좋은 제안이다. 너에게 특별히 강력하기 그지없는 나의 권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도(使徒)의…….」

“…라고 할 줄 알았냐?”

녀석들의 제안이라고 해 봐야 다 뻔한 것.

그렇기에 망설이지 않고 녀석의 머릴 내리쳤다.

콰직!

의지를 실은 강맹한 일격이었기에 녀석은 그 일격을 버티지 못했다.

스스스스- 머리를 잃은 녀석의 육신은 다시금 녹색 빛의 안개가 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놈, 감히…….」

세계에 묶일 수 있는 상징체인 제단의 파괴.

그리고 그곳에 숨겨 둔 형상체마저 소멸당한 녀석은 더는 중간계에 머무를 수 없었다.

「감히 신을 모욕하다니. 네 녀석이 행한 불경을 똑똑히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나의 사도들이 네 녀석을 찾아낼 것이니 그때까지 기다려라. 너는 신을 모욕한 벌을,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에 울부짖게 되리라.」

“그래. 주제도 모르는 너희 신격이란 것들은 꼭 그렇게 복수를 다짐하곤 하더라.”

마계에서 마주친 여러 신격도 저렇게 복수를 다짐하곤 했었다.

물론 그렇게 복수를 다짐한 녀석들 중 실제로 복수를 행한 녀석은 없었다. 오히려 녀석들 모두가 내 손에 소멸되었지.

“굳이 나를 찾을 필요는 없어, 장난의 신.”

「……!」

흩어지는 형상체에서 느껴지는 건 당혹감이었다.

「네 녀석, 어찌 나의 신명을……?」

하하하.

사실 그냥 찔러 본 거였는데, 알아서 의문을 풀어 준다.

하여간 이 녀석들은 단순해서 좋다니까.

“기회가 되는 대로 너의 권역에 들를 테니 목 씻고 기다리고 있으라고. 그 잘난 진체를 소멸시켜 다시는 나대지 못하도록 만들어 줄 테니까.”

「네 녀석, 대체 정체가…….」

하지만 녀석은 그 의문을 마저 내뱉지 못했다.

힘을 다한 형상체가 완전히 소멸을 맞이하여 이 세계에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드드드득!

형상체가 사라짐과 동시에 강렬한 진동이 일어났다.

아무래도 이곳 자체가 녀석의 권능으로 탄생한 임시 권역이다 보니 형상체의 소멸로 인해 공간 역시 소멸하고 있는 것.

【공간 이동】

가만히 있다간 나도 공간의 미아가 될 수 있기에 곧장 공간 이동을 발현하여 그곳을 빠져나왔다.

*

길드의 1층 사무실.

손님 접대용 의자에 앉은 타일로와 킬리아는 미셸이 내어준 차를 마시며 가만히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건가요?”

줄곧 눈치를 보고 있던 미셸이 물었다.

“가만히 안 있으면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킬리아가 답했다.

그 태연한 태도에 고개를 가로젓는 미셸.

“동료분께서 지금 무척 위험한 임무를 하고 계신데, 같이 가 봐야 하는 게 아닌가 해서요.”

“위험이요?”

그 말에 반응한 건 타일로였다.

놀랍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 그는 미셸을 빤히 응시했다.

“네, 이번 임무에 대해서 잘 모르고 계신 것 같은데, 신이라 칭해지는 그 사내를 끌어내는 건 길드 내에서도 측정 불가 항목으로 분류한 고위험군의 임무로…….”

“킬리아 님, 우리 내기할까요.”

거듭된 충고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전혀 미셸의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않고 있었다.

“무슨 내기 말인가요?”

“아서 전…….”

전하라는 말을 꺼내려던 타일로는 얼른 입을 다물고는 호칭을 정정했다.

“아서 님이 언제 임무를 해결하고 돌아올 것인지 맞히는 겁니다.”

“그거 재밌겠네요.”

미셸은 태연히 내기하는 두 사람을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불가해의 난이도를 이리 쉽게 생각한다고?’

비록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으나 반년간 그 누구도 해결하지 못했던 불가해의 임무였다.

그 임무에 나선 이들 중에는 다이아몬드 랭크의 용병도 있었는데도 해결을 하지 못했건만.

그러나 미셸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내기는 계속되었다.

“그럼 제가 제안했으니 저부터 하죠. 그러니까 지금부터 정확히 3분 이내에 돌아오실 것 같습니다.”

타일로는 3분을 이야기했고.

“그럼 저는…….”

킬리아는 곰곰이 생각하던 중.

“…바로 지금.”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슈욱!

“우왁!”

공간을 넘어선 누군가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뭘 그리 놀라고 그럴까.”

물론 갑작스레 난입한 이는 아서였다.

장난의 신에게 크게 한 방을 먹여 준 그는 타일로와 킬리아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공간을 넘어온 것이었다.

“제가 이겼군요.”

“…그, 그렇군요. 대단하십니다.”

사실은 공간을 도약하는 그 이질적인 기운을 느끼며 답한 것이었지만, 어쨌든 이번 내기의 승자는 킬리아가 되었다.

“뭔 내기? 설마 너희, 내가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다니고 있었는데 여기서 편히 쉬면서 내기나 하고 있었던 건 아니지?”

“…….”

“…….”

타일로와 킬리아는 침묵했다.

아서의 성격상 그렇다고 대답했다간 제 명에 살기 힘들다는 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흐음…….”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아서.

하지만 이내 둘에게서 시선을 거둔 그는 미셸을 응시했다.

“이봐.”

“네, 네네.”

“임무 해결했어.”

“…네?”

갑작스레 전하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다.

“못 알아들어? 임무 해결했다고.”

“벌써… 임무를 해결하셨다는 겁니까?”

“못 믿겠으면 오슬렌 가문에 사람을 보내 봐. 아주 깔끔하게 처리해 뒀으니까.”

“아,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 확인한 후 보상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하나 더.”

다급히 움직이려는 미셸을 저지한 아서.

“이번 임무와 같이 측정 불가, 혹은 오랜 시간 동안 방치된 임무 있지? 그런 것 있으면 바로 말해 줘. 어떤 임무건 종류에 상관없이 다 해결해 줄 테니까.”

아서가 노리는 건 지금껏 길드에 쌓인 측정 불가의 임무였다.

물론 그 임무에 대한 보상이 높게 책정된 이유도 있었으나.

‘꼴 보기 싫은 신격 녀석들을 싹 다 몰아내 줄 테니까.’

인간을 도구로 생각하면서 세계 곳곳에 기생하고 있을 신격. 그 건방진 녀석들을 깨끗이 청소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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