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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53화 (53/161)
  • 53화 Chapter 52

    물론 나야 미치광이라고 표현했지만, 아마 보통의 사람들이 본다면 그를 신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도 광채를 발하는 육신.

    심지어 그 빛은 신성하여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범접하기 힘든 위엄을 발산하고 있었다.

    「감히 지엄한 신을 정면으로 쳐다보다니. 무엄하구나.」

    그 순간이었다.

    ‘이것 봐라?’

    자칫 방심했으면 고개를 숙일 뻔했다.

    종종 느끼곤 했던 세계의, 운명의 법칙이라는 것이 내게 고개를 숙이라고 강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버텼다.

    신격이 되기를 강요하던 그 압박과 비교하면 사실상 강도가 약했기에 버티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네 녀석… 운명을 거스를 작정이냐?」

    운명을 언급하는 것을 보니 녀석도 자신의 힘이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냥 잔챙이는 아니란 소리지.

    “운명을 거스르는 게 내 특기라서.”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이미 100년이 넘도록 운명에 거부하고 있다.

    이 정도면 누군가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내 특기가 아닐까?

    「지엄한 신의 명이다, 꿇어라!」

    녀석은 의지를 실어 더욱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쿵!

    거대한 돌을 얹은 것처럼 장내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는다.

    거역하면 이대로 몸이 터져 죽을 것만 같은 극심한 압박감.

    그건 일반인이 버텨 낼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의문이 든다.

    ‘이 정도라면 난리가 나도 진즉 났어야 할 텐데…….’

    많은 이들이 이번 임무를 받고 저택에 방문했다고 했다.

    그런데 어째서 ‘신’에 대한 소문이 퍼지지 않은 걸까.

    이 정도 위엄을 발산할 수 있는 존재라면 신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이 생기는 건 당연한 거고, 한바탕 난리가 났을 텐데.

    「이놈!」

    쿠쿠쿠쿵!

    반응하지 않자, 녀석은 더욱더 기세를 높였다.

    사납게 요동치는 기운. 나는 그 기운을 밀어내지 않고 몸 안으로 받아들였다.

    이질적인 기운을 받아들인 부작용으로 조금은 따끔한 감각이 파고든다.

    흠. 고통이라는 감각을 느껴 본 적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눈을 감은 채 밀려들어 오는 기운을, 녀석의 기세를 분석했다.

    「대답해라. 감히 내게 거역할 셈이냐!」

    압박감은 더해 갔지만, 그건 내게 그리 큰 위협이 될 수 없었다.

    “그러면 그렇지.”

    감았던 눈을 뜨며 녀석을 응시했다.

    “거짓된 위엄이었군. 어쩐지 뭔가 이질적이라고 했더니.”

    「감히 나를 거짓된 존재로…….」

    「닥쳐!」

    녀석의 정체를 짐작했기에 곧장 의지를 발현했다.

    「…….」

    녀석은 내 의지를 거스르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네가 원해서 그렇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정신 차려. 네 녀석은 지금 누군가의 장난에 놀아나는 노리개일 뿐이야.”

    받아들인 기운을 통해 ‘누군가’의 의념을 엿봤다.

    그건 자신을 신이라고 주장하는 녀석의 것이 아니었다.

    녀석은 누군가의 장난으로 인해 지금과 같은 거짓된 위엄을 얻었고, 또한 정신을 세뇌당해 지금과 같은 이적을 행하고 있었다.

    「무엄하구나. 감히 누가 있어 나를, 신을 조종할 수 있단 말이냐.」

    “누구긴 누구야. 진짜 신격이지.”

    안타깝게도 그는 내가 원했던 고대 신과는 다른 부류의 존재였다.

    선천적이든, 아니면 수행을 쌓았든, 아니면 어떤 의지가 빚어낸 결과물이든.

    이유야 어찌 됐든 권능을 발현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로 거듭난 신격인 것.

    「내가 바로 신…….」

    고오오오!

    더는 녀석의 헛소리를 용인하지 않았다.

    의지를 확장하여 이질적인 기운으로 뒤덮인 공간에 나의 존재를 덧씌웠다.

    그러자.

    콰챠챠챵!

    유리가 깨지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겉보기에는 아무것도 깨지지 않았으나 내 눈에는 보인다.

    주변을 감싸고 있던 고유의 영역이 무너져 내리는 광경이 말이다.

    「어… 어……?」

    어둠에 잠겨 있던 공간이 다시금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먼지가 잔뜩 쌓인, 마치 오래도록 방치한 듯한 저택의 모습으로.

    “이, 이게 무슨 일이지……?”

    그리고 그 변화는 자신을 신이라고 칭하던 존재에게도 일어났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찬란한 광채를 발하던 그는 어느새 본연의 모습, 때가 탄 옷을 입은 사내로 돌아갔다.

    “이제야 본모습이 나왔군.”

    지금까지 보여 준 거짓 신의 형상은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었다.

    “누, 누구시죠? 그리고 여긴… 주인님의 저택인데.”

    “주인님? 여기서 일하던 사람이었나?”

    “네, 네. 오슬렌 가문의 하인 조드릭입니다. 그런데 이게 갑자기 어떻게 된 일인지…….”

    내 물음에 당황하면서도 곧장 대답했다.

    ‘흠. 이대로 돌아가도 임무는 완료인데…….’

    순간 고심했다.

    임무지의 내용을 보자면, 저택을 제멋대로 점령한 ‘신이라 칭하는 사내’를 처리한 것으로 임무는 완료였다.

    하지만 조금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다.

    ‘신격이 개입했단 말이지.’

    굳이 귀찮은 일을 떠맡고 싶지 않았지만 문제는 이 일의 배후에 신격의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대놓고 세계에 개입할 정도로 욕심이 많은 녀석인 만큼 분명 놔뒀다간 더 귀찮은 일을 벌일 것이다.

    한동안 이곳에서 용병 생활을 해야 할 테니 미리미리 정리해 두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하나만 물어보자.”

    그렇기에 곧장 하인을 향해.

    “혹시 어떤 제단이나 뭔가 특별한 장소에서 소원 같은 걸 빈 적이 있지 않아?”

    짐작하고 있는 바를 물었다.

    “제단이요? 그러고 보니 조금 전 고목 안에 제단과 비슷한 것에 소원을 빌긴 했습니다.”

    역시!

    아마 녀석이 생각하는 조금 전은 이렇게 변하기 전, 그러니까 반년 전의 일일 것이다.

    “혹 그 소원의 내용이 신과 같은 전지전능한…….”

    “헉!”

    놀란 표정의 하인.

    “어, 어떻게 그것을?!”

    예상대로 정확히 들어맞았다.

    아마 녀석은 우연히 신격이 깃든 제단을 발견했을 테고, 무의식적으로 그곳에서 소원을 빌었을 것이다.

    제단을 향한 소원 빌기야 대륙에 흔한 풍습이었으니까.

    신이 되고 싶다는 그 허무맹랑한 소원을 통하여 녀석은 거짓 신이 되었고, 자신이 주인으로 섬기던 오슬렌 가문에서 신의 권능을 행사하는 존재가 되었겠지.

    “정확히 그 장소가 어디지?”

    신격이 깃든 제단.

    그것을 처리하면 모든 게 해결이 될 것이다.

    *

    “이것 봐라?”

    오슬렌 가문의 하인이 말해 준 장소에 도착했다.

    과연 녀석이 말했던 대로 오래되고 거대한 나무가 자리하고 있었다.

    고오오!

    평범한 나무가 아니었다.

    일반적인 나무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렬한 의지와 힘이 깃들어 있었다.

    그 힘이 느껴지는 근원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빙고!”

    힘이 새어 나오는 곳을 찾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무언가를 감추기 위한 공간, 눈을 속이는 환영 마법을 걷어 내고 인위적으로 마련된 나무 안의 공간을 향해 들어섰다.

    지이잉-

    감각을 속이는 기운이 사라진다.

    그와 함께 차원의 왜곡이 일어나 나를 전혀 다른 공간으로 인도했다.

    ‘이런 공간이?’

    파릇한 잔디가 깔린 넓은 공동이었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이 무한하게 뻗은 공간.

    ‘신격은 다르다 이거지.’

    이 정도로 감쪽같이 공간을 왜곡할 정도면 그 권능 또한 보통이 아닐 터.

    확실히 이곳에 오길 잘한 것 같다.

    이 정도 힘을 지닌 존재가 설친다면 내가 예상하지 못한 변수를 일으킬 수도 있으니.

    그런 일이 없도록 가능한 싹을 미리 잘라 두는 게 좋다.

    「어서 오거라… 나는 위대한… 너의 바람을… 소원… 이루어질 것이다.」

    걸음을 떼기 무섭게 신격의 의지가 뇌리에 전달되었다.

    그래, 그렇지 않아도 갈 참이었다.

    사람을 홀리는 의지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인이 말했던 제단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무수히 많은 손이 떠받치고 있는 듯한 형상의 제단은 오랜 세월 동안 방치되었다는 사실을 드러내듯 숲 이끼가 잔뜩 끼어 있었다.

    「말해라.」

    조금 전까지만 해도 희미하게 들리던 의지가 명확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너의 소원을 말해라. 아무런 조건 없이 그 소원을 이루어 줄 테니.」

    놀랍게도 제단에 깃든 신격은 아무런 조건 없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공언했다.

    “무슨 소원이든 들어준다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으로는 행할 수 없는 이적을 발휘하는 신격.

    그러나 아무리 그들이라고 해도 ‘조건 없이’ 권능을 발현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세상에는 인과율, 즉 운명의 법칙이라는 것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고정된 힘, 정해진 절댓값을 넘어가는 이적을 행할 경우 운명의 반동을 받게 된다.

    그 운명의 반동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권능의 일부를 잃을 수도 있고, 아니면 진체의 일부분을 헌납해야만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지금 이 신격은 제물이나 아무런 조건 없이 이적을 행하겠다고,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었다.

    ‘소멸하고 싶은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그러고 보니 제한된 공간이긴 하지만 신의 권능을 갖게 된 하인도 제물이나 기타 조건에 대한 이야길 하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이 신격이 거짓 신이 되는 이적을 아무런 조건 없이 해 주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 물론 어느 정도는 소원을 비틀어서 해석하는 고약한 형태인 것 같지만 말이다.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빨리 본모습이나 드러내.”

    비틀린 해석의 소원 따위는 필요 없다.

    내가 원하는 건 녀석의 정체. 이따위 장난을 치는 신격의 신명(神名)이었다.

    「…네 녀석, 목적을 가지고 내게 접근한 것이냐?」

    그제야 내가 지나가던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녀석이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그걸 이제 알았냐? 네 의지에 홀리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을 텐데. 생각보다 멍청한 것 같네.”

    「무엇이?!」

    쿠르릉!

    별안간 공간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녀석이 분노를 띠었다는 것만으로도 공간이, 왜곡시켜 놓은 차원이 흔들리고 있었다.

    「감히 하찮은 필멸자 주제에!」

    쯧.

    하여간 초월체건 신격이건 이놈의 하찮은 타령은 사라지질 않네.

    「신을 모욕한 네게 천벌이 있으리라. 울부짖어도, 후회해도 소용이 없으니 너는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저주로 인해 끝없는 고통 속에서 죽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저주하는 말이 아니었다.

    스으으으- 제단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기운이, 저주를 형상화한 신격의 의지가 나를 감쌌다.

    「고통 속에서 참회하라!」

    같은 신격이 아닌 이상에야 피할 수 없는 강렬한 의지이자 저주.

    “지랄하고 자빠졌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예외가 있는 법.

    솨아아!

    곧장 의지를 발현하여 녀석의 저주를 몰아냈다.

    「뭐, 뭣이?!」

    무효화된 저주를 확인한 녀석은 경악했고.

    “나오기 싫으면 나오게 해 주지.”

    저주를 몰아낸 후 곧장 제단을 향해 다가갔다.

    「네, 네 녀석 무슨 짓을 하려고…….」

    하지만 녀석은 자신의 의지를 끝까지 전달하지는 못했다.

    콰콰쾅!

    힘을 주어 내리친 내 주먹으로 인해 녀석이 깃든 제단이 순식간에 무너져 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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