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Chapter 51
‘이, 이런 무력이라니?!’
길드의 안내인이자 플래티넘 랭크의 미셸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평범한 모험가라고 생각했다.
돈이나 벌어 볼까 하고 용병에 등록하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 볼 수 있는 평범한 이들.
물론 어깨 위에 있는 봉제 인형과 기이하게 꾸물대는 미꾸라지가 조금 ‘특색’ 있다고도 볼 수 있었으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이상하게 꾸미고 다니는 이들을 보는 건 흔하디흔한 일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1층’이긴 하나 그곳에 있는 모든 용병들을 순식간에 쓰러뜨렸다.
단순한 모험가, 그냥 지나가는 이들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자, 잠시만요.”
양해를 구한 그녀는 다급히 쓰러진 용병들의 상세를 살폈다.
‘죽진 않았어.’
다행히 죽은 이들은 없었다.
인지의 영역을 벗어난 움직임이었으나, 파괴력은 조절한 것이다.
‘그게 더 무서워.’
모름지기 속도가 빠르면 자연스레 힘도 붙기 마련.
하지만 의문의 모험가는 그런 놀라운 속도를 발휘하면서도 파괴력을 조절하여 기절할 정도의 충격만 주었던 것이다.
‘내 선에서 처리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다.’
과연 플래티넘 랭크는 하늘만 보며 딴 건 아닌 듯 순식간에 파악을 끝냈다.
“용병의 자격은 훌륭히 입증하셨습니다. 하지만…….”
잠시 말끝을 흐리는 그녀.
“이 정도의 무력을 보일 정도의 분을 판단할 권한이 제게는 없어서 말이죠.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얼른 윗선에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기다리지.”
다행히 허가가 떨어졌다.
미셸은 다급히 몸을 움직여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
나선형의 계단을 오르자, 북적대던 1층과는 대비되는 조용한 분위기가 펼쳐졌다.
1층보다 훨씬 넓고, 칸막이를 통해 개인적인 공간이 마련된 그곳은 오직 골드 랭크 이상의 용병들만이 머무를 수 있는 곳, 길드의 2층이었다.
“미셸? 갑자기 무슨 일이지?”
기별도 없이 올라온 미셸을 본 2층의 안내인 가일.
“죄송합니다. 사안이 시급하여 미리 연락을 넣을 시간이 없었습니다.”
“긴급한 사안이라. 대체 무슨 일이지?”
슬쩍 주변을 둘러본 미셸은 가일의 귀에 대고 조금 전 자신이 목격한 광경을 간략히 말해 주었다.
“일격에 1층 용병 전부를?”
“그렇습니다. 제가 파악할 수 없는 영역의 일격이었습니다.”
“네가……?”
가일은 그리 말하는 미셸을 바라보았다.
비록 플래티넘 랭크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그 재능이 비범하여 길드의 안내인으로 임명된 미셸이었다.
안목이 뛰어난 이 녀석이 인지하지 못했다는 건 공격을 펼친 그 누군가가 플래티넘 이상의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뜻하는 것.
“내려가자.”
거짓을 고할 이는 아니었지만, 당장은 믿을 수 없는 말투성이였다.
아무래도 직접 눈으로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았다.
미셸을 대동한 가일이 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갔다.
“저기…….”
미셸이 한 곳을 가리켰고, 가일 또한 그곳에 시선을 두었다.
‘청발에 미남자? 설마 왕족은 아닐 테고. 인상착의로는 신분을 파악할 수 없군.’
견식이 넓은 가일이었기에 상대의 용모를 통해 정체를 파악하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그래서 그다음으로 선택한 건 쓰러진 용병들의 상세를 살피는 것이었다.
‘이것이 일격이라고?’
보고를 듣지 않았다면 절대 일격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각각에 가해진 힘이 다르다.
정확히 힘을 조절하여 기절할 수 있을 정도로만 타격을 가했다.
만약 미셸의 보고가 없었다면, 이들 모두가 일대일로 싸우다 당했다고 말해도 믿을 정도로 정교한 수법이었다.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2층의 관리인 가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내 용병 등록은 대체 언제쯤 처리가 되는 거지?”
생각보다 지체된 시간에 사내가 조금 짜증을 부렸다.
“지금 바로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위층으로 오르시지요.”
과연 능숙한 가일.
곧장 공손한 자세를 보이며 사내와 일행을 2층으로 안내했다.
*
“…….”
시선이 꽂힌다.
1층에서 마주했던 것과 비슷한 시선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2층에는 그나마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는 이들이 모여 있다는 것 정도?
그냥 낯선 이에 대한 미약한 관심일 뿐, 그 외에는 어떠한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신입의 실력 증명이라는 절차가 없는 2층은 타인에 대해서 조금은 무관심한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시선은 잠시 후 바뀌었다.
“이쪽으로.”
가일이란 녀석이 안내한 장소.
2층에 마련된 독방에 들어간 순간, 신입을 향하던 시선들에 호기심이란 감정이 깃들었다.
뭔가 이 방이 특별한 구석이라도 있는 건가?
“앉으십시오.”
가일의 권유에 따라 의자에 앉으며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사무를 볼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마련되어 있는 곳. 특별한 구석 없이 그냥 손님을 접대하기 위한 공간인 것 같다.
“용병 등록을 위해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그게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지만.”
일부러 쏘아붙였다.
아까 듣기에 무척 간단히 용병으로 등록할 수 있는 것 같던데, 자신의 경우는 상당히 지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귀찮은 건 딱 질색인데 말이야.
“죄송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보통은 1층의 용병을 상대하는 것으로 용병 등록이 가능하지만…….”
“그런데?”
“특별하신 분에 한해서는 조금 까다로운 절차가 있어서 말입니다. 바로 제 앞에 계신 분같이 말입니다.”
“아부는 됐어. 그래서 용병 등록은 언제 완료되는 거지?”
“지금입니다.”
다행히 말귀를 꽤 알아먹는 녀석인 것 같다.
턱.
녀석이 테이블 위에 놓은 건 은색의 패였다.
검과 방패가 정교하게 새겨진 그것은.
“용병패입니다.”
용병 길드에 소속되어 있음을 상징하는 패.
“흠. 그런데 색이 좀 다른 것 같네.”
동색이 아니라 은색?
그 어떤 경우라도 신입 용병은 브론즈 랭크에서 시작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네, 최근 저희 업계에도 많은 변화가 있어서 말입니다.”
“용병 등록도 바뀌었다고 하더니 뭔가 많이 바뀌긴 했나 보네.”
“시대가 바뀌고 있으니 당연히 우리 길드도 바뀌어야죠. 최근에 많은 것이 개편되었고, 이것 또한 그 개편된 시스템 중 하나입니다. 실력에 맞는 대우. 아, 물론 고객님의 현재 실력이 실버 랭크라는 건 아닙니다. 제가 보기엔 골드, 아니 플래티넘 랭크 이상이신 것 같으나 실적 없이 받을 수 있는 랭크는 실버가 한계라서 말입니다.”
말하는 게 청산유수다.
게다가 상대의 기분까지 헤아리는 게 아무래도 길드에서도 꽤 중책을 맡고 있을 것 같다.
“그럼 내 일행은?”
나는 양옆에 앉은 타일로와 킬리아를 가리켰다.
1,315호와 미꾸라지야 일행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모양새니 그렇다고 치고, 나머지 일행에 대한 시험은 따로 치러야만 하는 건가?
“그래서 준비했지요.”
척척.
가일은 망설이지 않고 두 개의 패를 꺼내었다.
나와 같은 실버 랭크를 상징하는 은색 패였다.
“개편된 사항에는 일행 중 한 사람만 실력을 증명해도 똑같은 패를 지급 받을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어서 말입니다.”
“그렇군.”
“아, 이것을…….”
서랍장을 연 가일이 하나의 서류를 내밀었다.
“이름, 소속 국가, 주 활동 영역 등 간단한 인적 사항이 필요해서 말입니다. 생략할 부분은 생략하셔도 되지만, 여기 붉게 칠해져 있는 부분은 용병 등록에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니 거짓 없이 사실대로 적어 주시면 됩니다.”
가일의 능숙한 일 처리 덕분에 용병 등록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미 용병패는 지급 받았고, 인적 사항을 간단히 적은 후 그것으로 끝.
“이제 임무를 받을 수 있는 건가?”
내가 물었고.
“물론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실버 랭크니 받을 수 있는 임무의 제한이 있을 겁니다.”
알고 있다.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하는 게 용병이라는 직업의 특성이었지만, 그래도 개죽음을 막기 위하여 길드에서는 임무에 제한을 두고 있었다.
임무가 내려오면 길드 내부에서 해당 임무에 대한 위험도를 측정하고 그 임무를 감당할 수 있는 랭크의 용병들에게만 문서를 열람할 수 있도록 제한을 뒀다.
쉽게 말해서 실버 랭크에 불과한 내가 수행할 수 있는 임무는 별로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워낙 실력이 출중하시니 제한된 임무 중에서도 고난도의 임무만 수행하신다면 금방 골드, 플래티넘까지 승급하실 수 있을 겁니다.”
가일의 조언을 들으며 다시금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아직은 실버 랭크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2층에는 출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벌써 치웠군.’
조금 전 내 손에 의해 쓰러진 용병들이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용병 길드라고 해서 조금 무시했는데, 나름 체계가 잘 잡혀 있는 집단 같다.
“오셨습니까?”
미셸이 나를 반겼다.
“임무는 어디서 확인할 수 있지.”
“이쪽으로 오시죠.”
빠른 걸음으로 한 곳으로 나아간 미셸.
“이곳에 오시면 현재 랭크에서 받을 수 있는 모든 임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벽에는 핀으로 고정된 임무지가 잔뜩 박혀 있었다.
“왼쪽은 비교적 쉬운 임무, 그리고 오른쪽으로 갈수록 위험 임무가 있으니 원하는 난이도의 임무를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미셸의 설명을 들음과 동시에 바로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가장 오른쪽.
“음?”
그곳에서 눈에 띄는 임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위험 등급: 측정 불가』
모든 임무에는 F, E, D, C, B, A, S 등의 위험 등급이 붙었다.
그런데 측정 불가의 임무가 1층의 제일 오른쪽을 장식하고 있었던 것.
‘상당히 오래된 임무 같은데?’
벽에 붙은 임무서의 상태가 너덜너덜하다.
많은 이들의 손때를 탔다는 건 그만큼 벽에 붙은 지 꽤 오래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미해결로 남은 임무.
호기심이 일었고, 곧장 그 임무지를 자세히 읽었다.
『저택 침입 괴한 제압(수정), 신이라 불리는 사내
임무 목표: 무단으로 저택에 침입한 괴한 제압 및 처치
임무 내용: 홀연히 오슬렌 가문 저택에 침입하여 자신을 신이라고 칭하는 사내를 제압 혹은 처치할 것.
임무 등급: E(수정), D(수정)… 측정 불가
임무 보상: 10골드(수정), 100골드(수정), 1,000골드(수정), 의뢰자와 협상 가능
임무 포인트: 100P(수정), 200P(수정), 500P(수정), 길드 관리인과 협의 가능』
수정에 수정을 거친 임무지.
이 임무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의견이 오갔는지 금세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건…….”
“실례지만, 그건 맡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임무지를 본 미셸의 안색이 굳어졌다.
“왜지?”
“그 임무는 반년 동안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던 임무라서 말이죠. 의뢰인은 물론 길드 내에서도 반쯤은 포기한 상태예요.”
호오.
그러니까 더 흥미가 가는데.
더욱이 임무를 완료했을 때의 보상이 어마어마했다.
“이걸로 할게.”
“하아…….”
굳히지 않을 것 같은 내 고집을 느꼈기 때문일까.
한숨을 토한 미셸은 나를 짧게 응시하더니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알겠어요. 어차피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니 더는 말리지 않겠습니다. 그럼 임무에 필요한 정보를…….”
“아니, 됐어. 녀석이 어디 있는지 알 것 같거든.”
임무를 본 순간부터 기감을 확장해 수상쩍은 기운을 감지한 터였다.
이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 뭔가 이질적인 기운.
분명 그 기운이 이번 임무와 관련된 ‘신이라고 불리는 사내’일 터.
【공간 이동】
마기를 발현하여 곧장 공간을 뛰어넘었다.
슈슉!
주위 사물이 빠르게 변화했고, 곧이어 거대한 저택을 바로 눈앞에 둘 수 있었다.
꽤 부유한 호족인 듯 으리으리한 규모를 자랑하는 저택.
‘재밌는 기운이네?’
그런데 그 저택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보통이 아니었다.
위압적이거나 절대적인 그런 종류의 기운이 아니다.
뭐랄까. 마치 있어서는 안 될 듯한 종류의 이질감.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미지의 기운이었다.
다시금 그 기운을 느끼며 문에 손을 가져가자.
끼익- 마치 누군가가 열어 준 것처럼 저절로 문이 열렸다.
“재밌네.”
재밌는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예감을 하며 문 안으로 진입했다.
쾅!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문이 닫혔다.
그 소리를 뒤로한 채 주변을 살폈다.
“…….”
온통 어둠에 잠식된 공간.
단련된 내 시야로도 아무것도 확인할 수 없는 특이한 공간이었다.
그렇게 주위를 살피고 있을 무렵.
화악!
나는 볼 수 있었다.
찬란한 광채에 휩싸인 어떤 형체를.
「나는 신이다.」
자신을 신이라고 소개하는 미치광이 녀석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