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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51화 (51/161)
  • 51화 Chapter 50

    『원정대 마계 진입 12년 9개월 차.』

    짜악!

    아서가 손바닥이 누워 있던 중년인의 볼을 세게 쳤다.

    “아스웰, 정신 차려라! 여기서 정신을 잃으면 끝이다.”

    “으으… 와, 왕자님…….”

    고통에 눈을 뜬 중년인.

    하지만 평소와 달리 그의 갈색 눈동자는 초점을 잃은 건 물론이고, 흐릿하게 변하고 있었다.

    죽음이 그를 찾아오는 중이었다.

    사실 진즉에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반듯하게 누운 그의 하반신은 강력한 힘에 뜯겨 없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군요.”

    만약 마기로 상처 부위의 출혈을 막지 않았다면 벌써 죽음에 이르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마기가 줄줄 새다 못해 아예 육신에서 빠져나가고 있었기 때문.

    “비록 원하지 않는 마계로의 차출이었으나 왕자님을, 그리고 동료들을 만나 잠시나마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쿨럭!”

    한 차례 터져 나온 기침.

    주르륵- 그 기침에는 내장과 검은 피가 섞여 있었다.

    단지 기침에 섞여 나온 게 아니다. 마기로 막아 두고 있었던 끊어진 허리의 내장도 슬그머니 핏빛 자태를 드러내는 중이었다.

    이젠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기에 마지막 ‘수단’을 사용하기 전 할 말을 전해야만 했다.

    끄아아아아아!

    마치 그때를 알리듯 멀리서 들려오는 끔찍한 괴성.

    아니, 비명인 것 같으면서 소름이 끼치는 괴성이기도 하다.

    처음에 그 소리는 떨어진 거리를 나타내듯 아련히 들려왔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점차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아직 포기하지 마라, 아스웰. 마기라면 얼마든지 주입해 줄 테니…….”

    경황된 와중에도 아서는 아스웰의 심장을 통해 마기를 주입하고 있었다.

    마기를 계속 공급하여 상처를 봉합하겠다는 목적이었으나.

    “왕자님, 사람인 이상 언젠가는 죽는 법. 그 운명을 거스를 순 없는 법입니다.”

    그리 말하는 아스웰의 눈동자가 탁하다 싶을 정도로 변했다.

    바라지 않던 때가 왔다.

    “한때 저는 용병 길드 소속으로…….”

    “아니, 듣고 싶지 않다. 지금 너의 과거 이야기는…….”

    “들으셔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원정대의 규칙. 왕자님은 반드시 죽어 가는 이의 바람을 들으셔야만 합니다.”

    듣기 싫어하는 아서를 향하여 담담히 내뱉는다.

    냉정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그 모든 건 아서를, 앞으로 생존해 갈 원정대원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마지막 순간 자신의 바람을 전하여 그들이 혹여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

    “나름 골드 랭크를 받을 정도로 잘나가는 용병이었습니다.”

    숨을 내뱉기도 힘든 상황에서 아스웰은 태연히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골드 용병인 아스웰에게는 수년간 함께 임무를 수행했던 동료들이 있었다.

    그들은 파티(Party)라 불렸던 일종의 팀으로 브론즈 랭크부터 시작해서 함께 성장해 온 소중한 동료들이었다.

    “…저의 무지로, 찰나의 실수로 인해 임무 수행 도중 모든 동료를 잃고 말았지요. 함께 플래티넘 랭크로 가자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그 말을 끝으로 몽롱하게 변해 있었던 눈동자가 아서에게 향했다.

    “왕자님, 이것은 단지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과거부터 지금까지 저는 단 한 번도 이 꿈을 저버린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마계에 와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지금도 마찬가지.

    “저를 대신하여 꼭 이루어 주십시오. 용병 최고의 랭크, 대륙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자에게 주어진다는 마스터 랭크를 말입니다.”

    탁한 눈동자에 힘이 깃든다.

    꺼지기 직전의 촛불이 맹렬하게 타오르듯 생명이 경각에 달렸다는 신호다.

    “알겠다. 내 반드시 대륙으로 돌아가 너의 염원을 이루어 주마.”

    아서는 입술을 씹으며 말했다.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도, 그리고 그 마지막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으하하하하하!”

    돌연 큰 웃음을 토하는 아스웰.

    “그럼, 그럼 되었습니다. 이 아스웰, 이제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염원이 전달되었다.

    왕자라면, 마계에서 꽃을 피운 이 찬란한 인재라면 능히 그 염원을 이루어 줄 수 있으리라.

    “끄아아아악!”

    이윽고 들려오는 괴성은 어느새 지척까지 닿아 있었다.

    “가십시오. 제 마지막을 보이고 싶지 않습니다.”

    아스웰이 아서 왕자를 밀었다.

    “…알겠다. 너의 염원은 반드시…….”

    끝내 말을 잇질 못한 아서가 고개를 숙였다.

    “왕자님, 이제 가셔야만 합니다.”

    지금까지 방관하고 있던 셀론이 나섰다.

    아스웰의 마지막을 지켜 주기 위해 잠자코 있었으나 더는 힘들다.

    “가자.”

    아서 또한 더는 지체할 생각이 없었다.

    타탓!

    원정대원 모두가 마기를 발휘하여 그곳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끼아아악!”

    멀리 날아가는 도중 들려오는 괴성에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아서는 볼 수 있었다.

    손과 발이 기형적으로 긴, 인간과도 흡사한 괴물이 난폭하게 다가오고 있는 것을.

    얼굴이 없는 자. 아니, 정확히는 없어야만 하는 자.

    자신의 얼굴을 본 모든 이를 죽여 버리는 난폭한 성정을 지닌 존재로 원정대는 이미 그 얼굴을 봐 버리고 말았다.

    아스웰이 자신을 희생하지 않았다면 원정대는 이미 저 길쭉한 팔과 다리에 찢겨 전멸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는 다시금 강력한 괴물과 대치했다.

    하반신이 뜯긴 채 상반신만 남은 상태로 말이다.

    “우오오!”

    하지만 아스웰에게도 마지막 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마기의 폭주.

    마계에서 쌓은 마기를 폭주시켜 일시적으로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역천(逆天)의 행위.

    츠츠츠츠츠!

    제어하지 않은 마기가 뇌까지 장악한 순간.

    “크하하하하하!”

    광소가 터져 나왔다.

    눈은 검게 물들었으며 외부로 뿜어져 나온 마기가 하반신을 대신했다.

    “끼아아아악!”

    그리고 충돌.

    얼굴 없는 자와 마기를 폭주시킨 아스웰은 지금껏 본 적이 없는 강력한 기파를 줄기줄기 발산하며 접전을 이루었다.

    아서는 그 마지막 광경을 응시하다가 이내 눈을 돌렸다.

    ‘대륙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반드시…….’

    그의 바람을 이루어 주리라는 다짐과 함께 말이다.

    *

    “폐하… 아니 대공 전하……?”

    상념을 일깨우는 음성에 정신을 차렸다.

    “아, 미안. 용병 길드를 보고 있자니 상념이 떠올라서 말이야.”

    킬리아를 향해 사과했다.

    조금 전 녀석은 내게 왜 굳이 용병 길드로 가느냐고 물었고, 그로 인하여 과거에 묻어 두었던 상념이 떠올랐던 것.

    “용병으로 소속되어 있으면 편하잖아. 신분 세탁을 하기도 쉽고, 더욱이 당장 한 푼도 없는 신세라서 말이야.”

    나는 주머니를 뒤집어 보이며 말했다.

    용가리 녀석들을 죽이고 얻은 보물은 모두 왕국에 쾌척했다.

    게다가 평소 가지고 다니던 재물도 없었던 터라 지금 나와 일행은 그야말로 빈털터리였다.

    “설마 황금을 하나도 챙겨 오지 않으신 건……?”

    의구심이 든 타일로가 물었고.

    “어. 하나도 안 챙겼어. 우리 거지야.”

    “맙소사!”

    경악한 타일로가 비명을 질렀다.

    아마도 녀석은 그래도 선대의 왕인 나와의 여행이 꽤 풍족하리라고 짐작했을 것이다.

    맛있는 것도 먹고, 여유롭게 유람하는, 그야말로 유유자적한 여행. 그러나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황금이야 벌면 되고, 식사야 배만 채우면 되는 것 아닌가?’

    아마도 그건 오랜 마계 생활이 가져온 습관과도 같은 것.

    나를 따라온 녀석들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아마 이번 여정은 그리 편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린 채 밑바닥에서 시작이라. 참으로 재밌을 것 같네요.”

    나와 마찬가지로 호화로운 삶을 살았을 킬리아가 웃음을 띤 채 말했다.

    하긴, 곧 죽을 녀석이니 이런 것도 새로운 경험이라고 기꺼워할 만하지.

    「오옷! 이것이 말로만 들었던 용병이라는 것이로군요. 임무를 받아 그 임무를 해결해 랭크를 올리고 보상을 얻는다. 캬, 이 얼마나 단순하고 아름다운가!」

    「흠. 하지만 이건 만수의 왕께 너무 하찮은 행위로군. 알아서 랭크를 올려 줘도 모자랄 판에 감히 그 누가 만수의 왕의 실력을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시끄럽게 쫑알쫑알 떠들어 대는 1,315호와 미꾸라지의 음성을 흘려들으며 용병 길드의 내부로 들어섰다.

    딸랑- 입구의 문을 열자 문 위에 설치되어 있던 알림종이 맑은 소릴 냈다.

    그 순간.

    “…….”

    “…….”

    좌중의 시선이 일제히 나와 일행에게로 쏠렸다.

    그 시선을 흘리며 장내를 빠르게 훑었다.

    꽤 넓은 공간 곳곳에는 앉을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그 많은 자리가 다 차 있었다.

    ‘과연.’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용병답게 자리한 그들은 인간만이 아니었다.

    아름다운 용모와 뾰족한 귀의 엘프.

    평균 신장의 반도 되지 않는 작은 키와 단단한 몸을 지닌 드워프.

    인간과 도마뱀의 형상이 뒤섞인 리자드맨.

    인간과 오크의 피가 섞인 하프 오크 등, 다양한 종족들이 눈에 들어왔다.

    고작 왕성을 나왔을 뿐인데도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새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확실히 지루했던 왕성 생활보다는 이쪽이 내게 더 잘 맞겠군.

    만족감에 고개를 끄덕이며 정문 옆에 마련된 접수처로 다가갔다.

    “어서 오세요. 테스엘 용병 길드입니다.”

    사람들의 호감을 사기 위해서인 듯 눈부신 미모를 자랑하는 황금색 머리칼의 엘프 안내인이 반겼다.

    이곳 용병 길드의 지부장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꽤 머리를 쓰는 자인 것 같았다.

    저 정도 미모의 엘프가 항상 저런 웃음으로 반기고 있으면 용병을 할 마음이 없다가도 저절로 생길 테니 말이다.

    “용병으로 등록하고 싶은데.”

    “아, 용병 등록을 원하시는군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

    호기심이 섞인 장내의 시선이 돌변했다.

    경계, 냉소, 적의 등 처음과는 전혀 다른 기세를 띠었다.

    “용병으로 등록하기 위해서는 모름지기 실력을 증명해야 하지요.”

    물론 그렇지.

    종족, 성향, 그 모든 것을 배제한 채 오직 실력만 보는 게 용병이었으니까.

    예상해 보자면, 아마 당장 밖으로 나가 적당한 몬스터 한 마리를 처리하라는 임무가 나오지 않을까.

    “과거에는 영지 밖에 있는 몬스터를 처리하는 인증식이 있었지만, 요즘은 그런 구태의연한 방법은 사라졌습니다. 대신…….”

    그녀의 미소가 짙어졌다.

    “…이곳에 자리한 용병 중 아무나 한 명을 상대하여 실력을 입증해 보세요. 설령 패한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브론즈 랭크의 실력만 입증하면 정식 용병으로 등록이 가능하니 말이죠.”

    혹 귀찮은 일을 시키는 게 아닐까 걱정했는데, 그거라면 다행이다.

    “실력 평가는 누가 하지?”

    그래서 곧장 물었다.

    실력을 입증해야 한다고 했으니 마땅히 그 실력을 평가할 사람이 필요한 것 아니겠는가.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시길. 제가 두 눈 똑똑히 뜨고 지켜볼 테니 마음껏 실력을 발휘해 보세요.”

    싱긋 웃는 엘프.

    ‘역시 그렇군.’

    사실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접수처 안내인이라고 하기엔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힘이 지나치게 강했던 탓이다.

    나는 몸을 틀어 수많은 용병이 자리한 곳을 훑었다.

    “이봐, 나를 선택하라고. 단숨에 네 녀석의 허리를 두 동강을 내줄 테니까.”

    “어이, 나는 어때? 물론 그 대가로 팔 하나를 가져가겠지만.”

    “나야, 나. 네 녀석을 영원히 용병 업계에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만들어 줄 사람이 바로 나라고!”

    “와하하하하!”

    각자 강렬한 적의를 보이며 압박한다.

    과장되게 행동하는 것을 보니 어딜 가나 있는 신입 환영, 뭐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아무나 처리하면 되는 건가?”

    “네, 누구를 선택해도 상관은 없어요. 하지만 선택은 신중해야 할 거예요. 괜히 강자를 선택했다가는 제 실력을 발휘하기도 전에…….”

    그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스윽- 나는 그저 가볍게 손을 뻗었고.

    퍼퍼퍼퍼퍼퍽!

    그 결과는 절대 가벼운 게 아니었다.

    “…이, 이건……?!”

    놀라 신음을 내뱉는 안내인.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나를 도발하던 장내의 모든 용병이 내 주먹에 맞고 모두 쓰러져 버렸기 때문이다.

    “시끄러운 건 질색이라서.”

    나는 경악하고 있는 안내인을 향해 담담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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