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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49화 (49/161)

49화 Chapter 48

“어, 어떻게 신룡검의 봉인을……?”

로드 녀석은 진심으로 놀랐는지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눈을 부릅떴다.

“그깟 봉인이 나한테 통하겠냐?”

아마 녀석들은 진심이었겠지만, 내게는 일종의 유희에 불과했다.

“시도는 좋았어. 그런데 말이야. 그런 시도도 사람을 가려 가면서 했어야지.”

솔직히 이건 선을 넘었다.

차원을 수십 겹으로 꼬아 왜곡시켜 버린 차원의 미로.

만약 그곳에 갇힌 게 내가 아니라 다른 존재였다면 평생을 그곳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미쳐 버리거나 혹은 몰려오는 피폐함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새끼들은 나를 봉인하려는 게 아니라 죽으라고 등을 떠민 것이다.

“인간, 그것은 대의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로드를 대신하여 앞으로 나서는 녀석을 응시했다.

붉은 머리칼. 색을 보니 알겠다.

얼마 전 상대했던 붉은 용가리보다는 더욱 강력한 힘을 소유한 또 다른 붉은 용가리였다.

“그대는 너무도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강한 힘? 그러니까 너무 강한 것도 죄다?”

“그게 아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불완전한, 혼돈을 품고 있는 존재. 그들이 언제 어떤 일을 벌일지 알 수 없기에 통제를 받아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 용족은 그러한 초월한 인간의 불안정성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뭔 개소릴 이렇게 정성스럽게 지껄이고 있는 거지?

“그러니까 너희의 역할이라는 게 힘세고 잘난, 멀쩡히 잘 살아가고 있는 사람한테 갑자기 와서 너는 괴물이 될 테니까 사라져라. 이렇게 협박하는 역할이라는 거지?”

“그, 그것이 아니다.”

“아무리 들어도 내게는 그렇게 들리는데?”

내 말에 당황한 듯 로드와 눈을 마주치는 붉은 용가리.

찰나의 순간, 의지가 오가는 것이 느껴졌으나 굳이 그것에 간섭하진 않았다.

잠시 의견을 교환하던 붉은 용가리는 마침내 결심한 듯 이야기를 꺼낸다.

“인간, 그대는 과거 역사에서 지워진 사건을 모르기에 그리 편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사건?”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솔직히 말하면, 미로에서 나오자마자 녀석들의 멱을 딸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목숨줄을 잠시만 연명해 주기로 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들어 이 대륙에 내가 모르는 ‘사연’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그런데 알아서 비밀 이야기를 해 준다고 하니 흥미가 동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 한번 지껄여 봐.”

나는 고개를 거만하게 올리며 녀석에게 말했다.

“인간, 그대들 세계에서 드래곤 슬레이어 그락, 그리고 초대 제국의 황제인 레이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그락과 레이안이라.

“역사에 남을 영웅?”

역사에 남을 위대한 영웅.

갑자기 그들의 이름이 나와서 당황스럽긴 하지만, 그것이 세간에서 말하는 두 사람에 대한 평이었다.

당시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었던 지상 최강의 생물 드래곤 사냥에 성공한 드래곤 슬레이어 그락 비르탄.

대륙에서 최초의 제국 이스마리아를 건국한 황제이자 최초로 9성에 도달한 검왕(劍王) 레이안 드락슬러.

감히 그 누가 이들을 영웅이라 부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 물론 지금의 나와 비교하면 햇병아리도 이런 햇병아리가 없겠지만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건 조금 무리가 있으니까.

선구자는 선구자에게 맞는 대우를 해 줘야지.

“그래. 그렇게 생각하겠지. 그러나 그건 잘못된 역사다. 사실 그 두 인간은 초월의 힘에 손을 대었고, 감히 신격을 탐하여 재앙을 일으켰다.”

오호라?

이거 슬슬 흥미로워지는데.

그러고 보니 전설적인 두 인물에 관한 재밌는 사실이 있다.

두 사람 모두 말년에 대한 이야기가 역사에서 쏙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역사가 전하는 사실은 새로운 마룡을 찾아 모험을 떠났다거나 평화를 위해 왕자에게 선위한 후 평생 제국을 지키는 수호룡이 되었다거나 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들뿐이었다.

‘결국, 무언가를 숨기기 위해 급급히 이야기를 지어냈다는 말이지.’

그렇다면 지금 붉은 용가리가 말하는 게 오히려 사실일 확률이 높았다.

“그들은 신격을 손에 넣기 위하여 끔찍한 학살을 저질렀다. 너희 인간을, 수많은 동족을 제물로 바친 건 물론이고 유니콘 그리고 용족 등 강력한 영혼을 지닌 이들의 영혼을 연성하여 마침내 불안정한 신격을 손에 넣었지.”

“신격을 손에 넣었어?”

“그렇다. 하지만 그것은 불안정한 것. 공허에 접근한 그들은 불안정한 신격을 손에 넣었고, 공허를 위한 파괴의 괴물이 되었다.”

어쩐지!

공허에까지 손을 댔다면 광기에 물드는 건 당연하다.

그 깊은 심연에서 제정신을 차리는 건 웬만한 심상으로는 견디기 힘드니 말이다.

“그래서 너희가, 균형의 수호자들이 나섰단 말이지?”

“그대로 뒀으면 대륙은 공허에 물들어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을 테니까.”

그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보통의 인간, 그러니까 대륙의 기준으로 말하는 성과 서클이라는 기준에 얽매여 있는 인간들의 힘으로 신격을 손에 넣은 존재를 막는 건 불가능하니 말이다.

“어쨌든 네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네.”

나는 녀석은 물론 장내에 있는 로드와 색색의 용가리를 한 차례 훑었다.

“인간은 불안정한 존재다. 그러니까 강력한 힘을 지닌 게 무서우니 우리 균형의 수호자는 혹시 만약의 가능성이라도 악해질지도 모르는 인간을 제거하는 게 사명이다. 맞지?”

“그렇게 곡해…….”

“곡해는 개뿔.”

이것들이 보자 보자 하니까 아주 염병을 떨고 있네.

“그렇게 따지면 너희는? 너희도 타락해서 마룡이 되어 대륙에 피 칠갑 좀 하고 다니지 않았나?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보자면, 오히려 너희가 언제든 변심할 수 있는 무서운 녀석들인데?”

“무슨 그런……!”

“네 논리가 그렇잖아. 어차피 너희도 타락할 수 있는 입장인데, 왜 너희는 되고 인간은 안 된다는 거지? 당장 여기 있는 로드만 해도 대륙에 있는 인간 전체를 말살할 힘이 있는데 말이야.”

“어찌 감히 일족과 하찮은 인간 따위를 비교할 수 있단 말이냐.”

녀석이 빽 하고 소릴 질렀다.

“그래. 그거지. 차라리 솔직하게 말해. 어차피 너희 용족은 위대하지만 인간은 불안정하다. 아니, 좋게 말해 불안정하다는 거지 솔직히 말하면 하찮게 여기고 있잖아. 괜히 포장하지 말고 그냥 솔직히 말해. 하찮게 보고 있는 인간이, 너희보다 강해지는 게 꼴 보기 싫어서 제거하는 거라고.”

“…….”

내 말에 녀석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정곡이 찔렸을 테니까.

결국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녀석들은 인간을 벌레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벌레로 생각하고 있던 인간이 자신들의 머리 위에 있다?

기분이 나빠서라도 강제로 끌어내려야 하지 않겠는가.

그게 다다.

녀석들은, 용족은 그런 존재들이다.

“기대했던 이야기는 생각보다 재미없었고, 개소리는 듣기 싫으니까 이제 그만하자.”

나는 감춰 두고 있었던 기세를 방출했다.

콰콰콰콰콰!

“흡!”

“크흡!”

장내를 압도하는 지독한 살의에 노출된 용가리들이 몸을 떤다.

“노여움을 거두어 줄 수 없겠는가. 우리는 균형의 수호자로서 그 본분에 충실했을 뿐이야.”

드디어 입을 떼는 로드를 응시했다.

“그 본분이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지. 게다가 난 말이야…….”

잠깐 말을 끊었다.

녀석들이 굳이 자존심을 굽혀 가며 시간을 끄는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녀석들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내 시선이 향한 곳은 바닥.

“…한 번 통수 친 놈은 반드시 다시 통술 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거든.”

콰앙!

오른발로 진각을 밟으며 바닥에 강한 충격을 주었다.

그러자.

쩌저저적!

지면에 균열이 일었고, 그제야 보이지 않던 마법진이 드러났다.

“…으음.”

신음을 내뱉은 용가리들.

녀석들은 대화를 이어 가는 척하며 바닥에 몰래 마법진을 그리고 있었다.

보나마나 봉인, 혹은 결계와 같은 차단의 마법진일 것이다.

물론 완성된다고 해도 나를 가둘 수는 없겠지만, 더는 녀석들과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죽여, 죽여 버려!」

「고문해, 녀석의 살점을 뜯어 버려!」

조금 전 깨운 마수들이 살육을 원하며 마구 난동을 피웠다.

평소 같았으면 그 의지에 강하게 저항했겠지만, 조금은 그 의지를 받아들였다.

적어도 지금 이 공간에 죽이지 말아야 할 녀석은 없으니까.

뚝!

마수들의 의지와 내 의지가 합쳐지는 순간, 침묵이 장내를 지배했다.

극에 이른 살의는 오히려 정적을 이끌었고.

팟!

나는 공간을 넘어 용가리의 우수함을 떠들던 붉은 용가리를 눈앞에 두었다.

“무슨……?!”

녀석은 더는 말을 잇질 못했다.

콰앙!

머리를 쥐어 잡은 채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았기 때문이다.

그 엄청난 충격에 바닥에는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정녕 피를 보겠다는 것이냐!”

“노옴!”

동료가 당하는 것을 본 용가리 녀석들이 고함을 내질렀다.

단지 고함을 내지른 것이 아니라.

슈우욱!

인간 형태에서 벗어나 본래의 용가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콰콰콰쾅!

사방에서 각 불덩이, 번개, 냉기 등 강력한 속성 마법이 작렬했다.

하지만 그 모든 건 내 육신을 감싸고 있는 투지의 갑옷을 뚫지 못했다.

“…….”

무적의 갑옷을 입은 전사처럼 그 강력한 마법을 모두 받아 내며 지면에 파묻힌 붉은 용가리를 꺼냈다.

“크윽…….”

내 의지로 인해 모든 행동이 구속된 녀석은 그저 신음만을 흘릴 뿐이었다.

쾅, 콰콰쾅!

주변에는 여전히 다른 용가리가 발현한 마법이 작렬하고 있었지만, 그딴 사소한 것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스스로 아주 대단한 종족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꽈악.

“컥!”

힘을 주자 손가락이 녀석의 목, 살점에 파고들었다.

“…잘 봐라. 그 대단한 너희 일족이 네 녀석의 죽음 하나 지켜 주지 못할 테니까.”

콰콰콰콰쾅!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자 녀석들의 공격이 거세진다.

하지만.

「멈춰.」

이 중요한 순간에는 소란이 일지 않는 것을 원한다.

“…….”

찰나의 순간, 모든 시간이 멈췄다.

그 멈춰진 시간 속에서 움직일 수 있는 건 오직 나 하나.

“죽어라, 하찮은 용가리.”

콰직!

그와 함께 손아귀에 힘을 주어 목을 터뜨려 버렸다.

툭.

중력에 의해 바닥에 떨어지는 붉은 용가리의 목.

「알세이라!」

「으아아아!」

내 의지에 지배당하여 그 광경을 똑똑히 목격한 녀석들이 비명을 질렀다.

소중한 동료가 죽어 가는데도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는 무력감. 아마 그 절망적인 감정이 녀석들을 지배하고 있을 것이다.

츠츠, 츠츠츠츠!

나의 의지는 붉은 기운에 휩싸인 창을 만들어 냈다.

일전에도 선보인 바 있는 필살, 그리고 필중의 창인 궁니르.

내가 목표로 정한다며 우주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반드시 심장을 꿰뚫고 마는 추격의 창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 속에서 죽어라.”

그것이 내가 너희에게 주는 벌이니.

팟!

마치 마술처럼 공중에 떠 있던 궁니르의 흔적이 사라졌다.

아니, 그건 사라진 게 아니다.

푸욱!

「끄윽!」

어느새 푸른 용가리의 심장을 꿰뚫은 궁니르.

그것은 정해진 운명. 인과율의 법칙마저도 예외로 만들 수 있기에 의지를 굳힌 순간, 반드시 심장이 꿰뚫릴 수밖에 없었다.

푹, 푸푸푸푹!

그것은 나머지 용가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순식간에 11마리의 용가리의 심장을 꿰뚫어 생명을 끊어 놓았다.

「…….」

남은 건 죽음을 직감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선 로드 하나.

「죽기 전에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되겠나?」

나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녀석을 응시했고.

「부디 일족의 멸족만은 막아 주게. 이번 일은 모든 내가 계획한 것. 그들은 아무 죄가 없으니.」

“내가 무슨 종족을 멸족시키는 존재라도 되는 줄 아 나. 덤비지 않으면 죽이진 않을 테니 개소리 말고 뒈져.”

푸욱!

마지막으로 버티고 서 있던 로드마저도 궁니르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

주위를 둘러본다.

원래 던전의 주인이었던 아슈르테카도, 그리고 갑자기 침입한 용가리들도 모두 죽었다.

하지만 아직 내 일이 끝난 건 아니다.

‘어디 보자.’

정신을 집중하여 용가리들과 연결된 어떤 흔적, 정확히는 아공간을 탐색했다.

그 작업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오케이!”

짧은 시간이 지났을 때 녀석들이 보물을 숨겨 둔 아공간을 모두 내 소유로 이전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왕국 살림을 꾸려 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

무려 13마리의 드래곤이 지니고 있었던 보물을 모조리 털었으니 한동안 왕국 재정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리라.

이제 정말 모든 일이 끝났다.

던전에서 고생하고 있을 타일로와 킬리아에게 이동하려던 그 순간이었다.

웅웅웅!

나를 애타게 부르는 공명음.

“아!”

그제야 한 가지를 잊고 있었단 사실을 떠올리며 품속에 넣어 두었던 ‘그것’을 꺼냈다.

그건 황홀하기 그지없는 칠색의 광채를 뽐내고 있는 주먹만 한 구체였다.

조금 전 상대했던 고대 신, 아슈르테카라 불린 녀석의 파편이 깨지고 나온 구체.

그것은 나를 향해 강렬한 의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나를… 흡수… 새로운… 힘…….」

바로 자신을 흡수해 달라는 어처구니없는 의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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