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Chapter 45
「이런 말도 안 되는 권능이라니! 네 녀석은, 아니 그대는 정녕 인간이 맞는 건가?」
인간이 맞느냐고 묻는 말도 이제 식상하다.
그도 그럴 게 나와 대면하는 거의 모든 적이 똑같은 질문을 해댔기 때문이다.
“순수 혈통 100% 인간이니까 그딴 의심은 집어치우고.”
녀석의 질문에 간단히 답한 후.
“그보다 연락은? 너희 전부 여기서 허무하게 뒈지고 싶지 않으면 빠르게 연락하는 게 좋을걸?”
내가 원하는 건 포로가 되어 버린 머저리들과의 대화가 아니라 재물을 내어줄 수 있는 드래곤 로드와의 협상이다.
이미 잡아 놓은 물고기… 는 아니고, 용가리들에게는 신경 쓸 마음이 없었다.
「감히! 우리가 너의 손아귀에 떨어졌다고 생각하느냐!」
분노한 적색 용가리가 자신을 가둔 감옥을 향하여 거센 불길을 내뿜었다.
하지만.
「앗, 뜨거!」
「루베르, 그만!」
벽면에 막힌 녀석의 불꽃이 오히려 같은 용가리를 공격했다.
쯔쯧, 고작해야 용가리의 권능으로는 내 의지로 만든 감옥을 파괴할 순 없다.
“근데, 너 아까부터 왜 자꾸 나대는 거지.”
나는 루베르를 빤히 응시했다.
“고작해야 내 힘의 일부로 펼친 권능조차 파괴하지 못하는 주제에.”
「갑작스러운 기습에 당했을 뿐이다.」
“아, 그래?”
장담하건대, 이 녀석은 내 권능이 제어 효과만 강력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까지 몰린 상황에서 저런 자신감을 보일 턱이 없었다.
“그럼 나와.”
주제도 모르는 머저리에게 설명해 주는 건 입만 아픈 일.
츠츠츠- 감옥의 문을 열고 적색 용가리 하나를 빼냈다.
「이런!」
나머지 용가리가 그 틈을 노려 나오려고 했지만, 내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녀석들은 그곳을 절대 빠져나올 수 없다.
「건방진!」
적색 용가리의 기운이 사방을 지배한다.
화르륵!
눈 깜짝할 사이 내 주변에 수백 개에 달하는 불덩이가 생성되었다.
「소멸해라!」
마력과 용언.
자신의 모든 힘을 활용하여 맹공을 펼쳤다.
“응. 안 죽어.”
나는 녀석을 바라보며 씨익 미소 지었고.
“흡!”
한 차례 기합을 터뜨리며 일대를 내 의지의 지배하에 놓았다.
뚝!
그러자 나를 향해 쇄도하던 수백 개 불덩이가 멈췄다.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불덩이는 꿈쩍도 하지 않은 채 그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
경악한 적색 용가리는 눈을 부릅뜬 채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녀석으로서는 감도 잡을 수 없을 것이다.
“불장난은 여기까지.”
의지를 실어 손을 가볍게 휘저었고.
솨아아아- 마치 파도에 무너지는 모래성처럼 주변을 장식한 수백 개의 불덩이는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이게 대체 무슨……?」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영혼이 반쯤 빠져나간 게 아마도 현실 감각이 사라진 것 같다.
“뭐긴 뭐야, 수준 차이지.”
녀석도 어느 정도 힘을 갖춘 용가리이니 지금 내가 만들어 낸 광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지금쯤은 깨달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퍽!
「크흡!」
가볍게 뻗은 주먹이 녀석의 불룩한 배에 꽂혔다.
녀석이 인지할 수도 없을 만큼 빠른 속도와, 단단한 비늘을 뚫고 들어오는 파괴력에 놀라서 비틀댄다.
퍼퍽!
공간을 옮겨 다니며 녀석의 몸체에 주먹 마사지를 해 줬다.
「으으… 이놈!」
분명 수준의 차이를 깨달았을 텐데도 끝까지 반항한다.
화르륵.
녀석이 내뿜은 불줄기가 사방을 뒤덮기 시작했다.
내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니 아예 이곳을 불바다로 만들 생각인 것.
하지만 이미 이 영역은 내 지배하에 들어온 지 오래다.
“하압!”
다시금 터져 나온 기합과 함께.
팟!
넓게 펼쳐져 있던 불바다가 바람 앞에 촛불이 꺼지듯 사라지고 말았다.
“하여간 머저리 같은 도마뱀 같으니.”
퍽!
“수준을 알았으면 말이야.”
퍼퍼퍽!
“승복이라도 하든가. 괜히 되지도 않는 자존심만 내세워서는.”
퍼퍼퍼퍽!
조금 전보다 더욱 힘을 주어 녀석의 몸을 두드렸고.
「크어어…….」
만신창이가 된 녀석은 날개를 펼 힘도 없는지 그대로 추락했다.
그러나 소중한 포로를 허무하게 잃을 순 없는 일.
추락하는 녀석을 잡아서는 그대로 감옥에 가뒀다.
「그대는 단순한 초월자가 아니로군. 이 절대적인 힘. 그대는 혹 방문자인가? 아니, 귀환자나 회귀자 아니면 환생자일 수도 있겠군.」
그 일전을 모두 지켜본 흑색 용가리가 물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다.
방문자는 뭐고, 귀환자나 회귀자 그리고 환생자라는 게 어떤 존재를 의미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물론 관심도 없고 말이다.
“뭔 소릴 하는지 모르겠지만,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내가 뭔가 특별한 존재인 건 아냐. 그리고…….”
나는 살의를 쏘아 보내 녀석들을 위협했다.
만약 이 이상 시간을 지체할 생각이라면 미련 없이 녀석들을 죽일 것이다.
물론 그로 인해 내 보물 사냥이 끝나는 건 아니다.
녀석들을 죽이고 나면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드래곤을 찾아가 협박해 반드시 식량을 구하는 데 필요한 재물을 받아 낼 생각이다.
결국, 이 녀석들은 보물 사냥의 시작일 뿐 마지막이 될 순 없었다.
「그대는 어떡해서든 그 목적을 달성할 속셈이로군.」
“잘 봤어. 여기서 너희가 목숨을 버린다고 해도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너희 용가리 녀석들은 편히 지내지 못할 거야.”
「그렇군…….」
뭔가 고민하는 눈치.
하지만 이내 결심한 듯 고개를 들어 나를 응시했다.
「로드께서 그대를 데리고 오라고 명하셨다.」
호오, 이렇게 빨리?
생각보다 화끈한 용가리들일세.
“이건 혹시나 해서 경고해 두는 건데. 만약 주제도 모르고 또 나를 건드렸다가는…….”
백 번 말을 하는 것보다 한 번 보여 주는 게 더 나은 법.
쿠쿠쿠쿠쿠!
비록 내 안에 잠들어 있는 마수를 해방하진 않았지만 지금 상태에서의 전력을, 내가 품은 잠재력을 개방하여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대륙에서 너희 용가리 모두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나는 녀석들의 뇌리에 지울 수 없는 존재의 흔적을 새겼다.
「…아, 알겠습니다.」
흑색 용가리를 포함한 모든 용가리가 두려움에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녀석들이 지상 최강의 생물이라는 자긍심이 있어도 절대적인 존재 앞에서는 나약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 내가 드러낸 존재감은 대륙에서는 볼 수 없는, 그야말로 ‘절대적’이라고 할 만한 것.
자존심 강한 용가리라고 해도 결국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 그럼 바로 가자.”
완전히 굴복시킨 후에야 녀석들을 구속하고 있던 감옥을 해제했다.
「…….」
그제야 자유를 되찾게 된 용가리들.
하지만 내 존재감에 눌린 녀석들은 감히 어떠한 행동도 하지 못한 채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빨리 안 움직이지?”
「네, 네. 알겠습니다.」
내 말 한마디에 시선을 교환하는 용가리들.
「그럼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래.”
기가 꺾인 녀석들은 감히 내 말을 거역하지 못한 채 마법을 펼쳤다.
슈슉!
주변 사물이 빠른 속도로 뒤섞이는 익숙한 광경과 함께.
“어서 오시게.”
그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고, 곧 거대한 하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만나서 반갑네. 내가 현재 로드의 직을 맡은 아나키리안일세.”
어깨까지 내려오는 백발과 가지런히 기른 수염을 쓰다듬고 있는 노인.
하지만 그 왜소한 모습에도 숨길 수 없는 거대한 존재감이 느껴진다.
‘상당한데?’
관측자나 관리자 그리고 지배자라고 불린 그 이상한 녀석들을 제외하면 내가 만나 본 녀석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묵직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 정도 존재감이라면 마신, 그리고 사대 천사보다 더 강력한 힘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설마 중간계에 이러한 힘을 숨기고 있는 녀석이 있을 줄이야.
확실히 다른 녀석들과는 달리 로드쯤 되니 뭔가 특별하긴 하구나.
“설마 중간계에 이 정도 존재의 크기를 가진 자가 있을 줄은 몰랐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일세. 선천적인 권능을 받은 일족도 아니고, 설마 인간 중에서 자네와 같은 괴물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건만…….”
“그건 인정. 내가 좀 특별해서 말이야.”
그리 말하며 주변을 슬쩍 훑었다.
아마도 녀석의 레어인 듯 보이는 거대한 공동에는 별다른 구조물이 없었다.
함께 이곳으로 이동한 용가리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뭐, 언제든 잡아낼 수 있으니.’
공간의 축을 비틀어 녀석들을 빼돌렸다는 건 이미 감지한 바.
얼마든지 다시 잡을 수 있는 용가리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중요한 건 눈앞에 있는 이, 드래곤 로드와의 협상이었다.
“서로 얼굴에 금칠하자고 만난 게 아니니 각설하고. 그래서 포로비는 어떻게 됐지?”
비록 이 자리에는 없으나 내게 건방을 떤 10마리 용가리의 포로비에 대한 말을 꺼냈다.
“에인션트 드래곤 열에 대한 보답이라면…….”
딱!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손가락을 튕기는 로드.
촤르르륵- 그와 함께 나와 같은 아공간에서 쏟아진 보물이 공동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황금과 보석, 그리고 온갖 골동품이 지면을 장식했다.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 어떤가?”
엄청난 보물의 향연.
“좋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감을 표했다.
에인션트 드래곤에 대한 목숨값이 얼만지는 모른다.
다만 이 넓은 공동을 채울 정도의 막대한 보물이라면 충분할 만큼의 식량을 확보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소튼 왕국의 왕 아서여, 그대가 가져간 이 보물이 눈앞에 닥친 어려움은 해결할 순 있어도 앞으로 일어날 재앙을 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 눈빛을 반짝이는 로드가 나를 응시했다.
그 눈동자가 모든 걸 말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대흉의 원인을 알고 있나 보네?”
“얼마 전에야 그 실체에 접근할 수 있었지.”
역시.
갑자기 대흉이 일어났다기에 뭔가 수상쩍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면에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다.
“보물은 얼마든지 내어줄 수 있네. 그러나 그것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
이것들 봐라?
이건 어딜 봐도 귀찮은 일을 내게 떠넘기려는 모양새인데?
“괜찮아. 문제의 원인을 해결할 순 없어도 당장 굶주리고 있는 백성들의 배만 채워 주면 되니까.”
“…….”
“그리고 그 문제의 근원을 알고 있는 네가 직접 나서면 되는 것 아냐?”
이것들이 어디서 귀찮은 일을 떠넘기려고.
내가 여기 온 건 어디까지나 식량과 바꿀 보물을 얻기 위한 것.
그 이상의 일에 개입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나는 나설 수 없네.”
“설마 고고하신 양반이라 이런 하찮은 일에는 나설 수 없다는 건 아니겠지?”
“내가 나선다고 해도 그 일을 해결할 자신이 없기 때문일세.”
“응?”
그 말은 예상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이리 대단하신 우리의 로드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고?
“대흉을 일으킨 원인은 고대 신. 신의 격을 가진 이가 부활하여 대륙 대지의 정기를 빨아들이고 있네.”
“고대 신?”
그 말에 조금은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고대 신이라면 과거 대륙에서 막강한 힘을 과시했던, 말 그대로 신의 격을 지닌 존재들을 일컫는다.
물론 지금은 ‘믿음’을 지닌 이들이 사라져 과거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할 순 없지만, 그래도 명색이 신격을 자랑하는 존재들이니만큼 그 권능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만약 그를 이대로 방치했다간 대지는 메마르다 못해 죽음의 땅이 될 테고, 대륙의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가 죽음에 이르고 말 걸세.”
쯧.
보물이나 얻으려고 왔는데, 갑자기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그렇다고 너희가 해결하라고 던져 놓기엔 사안이 너무 심각했다.
대륙의 멸망을 방치할 생각은 없다.
적어도 원정대원들의 바람을 이루기 전까지 대륙은 온전해야만 하니까.
“그래서. 그 고대 신이라는 게 어디 있는데?”
결국, 그 고대 신이 있는 곳을 물을 수밖에 없었고.
“대지를 메마르게 하는 자, 그 고대 신은 지금 아롯사 왕국의 북쪽 던전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네.”
흠.
아롯사 왕국의 북쪽 던전이라.
어, 잠깐?
아롯사 왕국의 북쪽이라 하면.
“설마 일스테인 영지의…….”
“맞네. 인간들은 그곳을 돌아올 수 없는 던전이라 부른다고 하더군.”
“미친!”
순간 욕설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아롯사 왕국의 북쪽, 일스테인 영지의 돌아올 수 없는 던전이라고 하면.
‘알로의 형이 죽었던 바로 그 던전이잖아?!’
원정대원이었던 알로를 통해 지겹도록 들었던 명칭.
그곳은 알로의 실수로 인해 형을 잃었던, 녀석의 바람이 담긴 던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