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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6
투쾅!
육안으로는 인지할 수 없는 속도로 지나간 혈선.
오직 그것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잔영으로만 무언가가 움직였다는 것을 인지한 킬리아는 곧 놀라운 광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파스스스스-
그 무엇도 파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거대한 기운.
그 어떤 것도 파괴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심판의 망치가 빛의 먼지가 되어 흩날렸다.
“저게 정말 인간이 발현할 수 있는 힘인가요?”
순수한 의문을 담은 그의 질문에.
「보통의 인간에게는 무리지.」
「음. 그렇지. 솔직히 저 힘은 인간의 영역을 아득히 벗어났지.」
마찬가지로 그 광경을 확인한 1.315호와 그락이 말했다.
“그럼 아서 폐하는 인간이 아닌 건가요?”
결국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은 하나.
「한때는 인간이었지만, 지금은 인간이 아닌 존재. 그렇게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오, 맞아! 그게 맞을 것 같네.」
그락의 말에 격하게 동의하는 1,315호.
“인간이 아닌 존재라는 말은...?”
「인간으로 규정할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말이지. 예를 들면 너희가 알을 봤을 땐 알이라고 하지 새의 새끼라고 하지 않지 않느냐. 하지만 알을 깨고 나오면 그제야 새의 새끼라 부르지. 만수의 왕께서도 마찬가지다. 한때는 나약한 인간이었으나 그 한계를 초월하여 전혀 새로운 존재가 되었으니 인간이 아닌 존재라는 것이지.」
그제야 그락의 말을 이해한 킬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초월의 영역에 도달했다는 말이로구나.’
초월자.
말 그대로 인간이 지닌 한계를 초월하여 전혀 새로운 영역에 도달한 이들을 가리킨다.
하지만 그 영역은 그녀가 생각한 것과는 조금 달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금껏 대륙에는 초월자라 불리는 강자들이 꽤 많이 존재했었다.
심지어 육망성 중 하나인 그녀도 ‘초월자’라는 말을 듣곤 했었다.
하지만 진짜 초월자는 달랐다.
그녀가 바라본 아서는 그야말로 초월의 영역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괴물이었다.
「음? 마신왕님의 흔적이 사라졌는데?」
창공을 가득 메운 심판의 망치가 사라진 후.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고 있던 아서의 흔적이 땅으로 꺼진 것처럼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순간 천계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아무래도 만수의 왕께서 천계로 가는 차원의 문을 연 게 아닐까 의심이 된다만...」
하지만 그락도 확신할 수 없었던지 고개를 저었다.
「음. 마신왕께서 상당히 진노하신 것 같으니 그럴 수도 있겠군.」
하지만 그락과는 달리 1,315호는 오히려 확신하고 있었다.
과거 마계를 뒤집어 놓았던 그 전적을 알고 있기에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천계요? 그게 사실이라면 위험한 거 아닌가요?”
두 존재의 말을 듣고 있던 킬리아가 놀라 펄쩍 뛰었다.
천계라니.
천상의 성역은 조금 전 맞이한 역천사보다 훨씬 강력한 존재가 득실거리는 곳이 아닌가.
「말려?」
「왜 그래야만 하지?」
하지만 킬리아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묻는 1,315호와 그락.
“아무리 폐하라 해도 천상의 성역은 위험하잖아요. 그곳은 인간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금단의 영역일 텐데.”
「위험? 인간 계집아. 참으로 재밌는 소릴 하는구나.」
「크하하하! 이렇게 재밌는 농담은 오랜만에 듣는군.」
“아니, 지금 농담이 아니라...”
「인간 계집. 쓸데없는 걱정이다. 천계가 위험하다? 웃기지도 않는군. 그분은 홀로 마계의 72계층을, 그곳을 지키는 72마신을 쓰러뜨린 마신왕.」
「그리고 홀연히 환계에 난입하여 나의 아버지 폭룡 베헤모스를 비롯한 일곱 군주를 모조리 제압하여 만수의 왕에 오르신 유일무이한 분이시다.」
“...”
그 순간 킬리아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게 말이 돼?’
대단한 존재라고는 생각했다.
그런데 두 존재의 말을 들어보니 이건 대단한 정도가 아니라 그냥 괴물, 아니 괴물이라는 표현도 어색하다. 그야말로 ‘신’의 영역에 도달한 존재가 아닌가.
「낄낄. 그 비둘기 녀석들이 추락하는 모습을 봤어야 하는데.」
「그렇군. 참으로 멋진 광경이 펼쳐질 텐데. 참으로 아쉽군.」
1,315호와 그락은 천계에 간 아서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거기서 펼쳐질 풍경, 천계의 추락을 바라보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고 있었다.
*
포옥-
차원의 문을 열고 나온 나를 반긴 건 푹신한 지면의 감각이었다.
슬쩍 아래를 바라보자.
“오!”
평범한 지면이 아닌 구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꼴에 천계라고 신경 좀 썼나 보네?”
펼쳐진 구름 위로 슬쩍 발을 올렸다.
보통 생각하는 구름과는 달리 적당한 단단함을 지니고 있어서 걷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발을 디딘 후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보이는 것이라곤 구름뿐. 아무리 시야를 확장해도 달리 보이는 건 없었다.
펄럭!
아니, 금방 다른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빛으로 이루어진 2쌍의 날개를 펼치며 다가오는 빛의 덩어리.
인간의 육신에 기생할 필요가 없는 그들은 진체, 그러니까 빛으로 뭉쳐진 형상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까 비둘기보다는 빛의 파리 정도가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인간,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발을 들여놓았느냐!」
아마도 천계를 지키는 수문장들인 듯 빛의 삼지창을 위협적으로 휘두른다.
「말하라. 차원의 파동을 일으킨 녀석은 어디에 숨었지?」
그런데 녀석들은 나를 안중에 두지 않았다.
아마도 차원의 문을 연 게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라 생각하는 것 같다.
“여기서 제일 높은 새끼는 어디에 있지?”
물론 나도 녀석들과 말할 게 없다.
고작해야 집 문을 지키는 개새끼.
내가 대면하고자 하는 천계의 결정권자.
소위 말하는 대가리에게 해줄 말이 있어서 온 것이다.
「...」
잠깐의 정적 후.
펄럭!
날개를 활짝 펼친 녀석들이 빠른 속도로 쇄도했다.
「건방진!」
「소멸의 형에 처한다!」
새끼라는 내 말에 상당히 열 받은 듯 삼지창이 환한 빛을 발하고 있다.
“그래. 말이 안 통할 건 알고 있었어.”
나도 대화하려고 온 건 아니다.
이것들이 내 왕성을 엉망으로 만들려고 했으니 똑같이 갚아줘야 할 터.
스윽- 부활의 힘을 지닌 듯하기에 곧장 미스틸테인을 꺼냈다.
그리고.
서걱!
빛의 삼지창과 함께 그대로 천사 녀석의 진체를 베었다.
「...」
그것으로 끝이었다.
빛으로 태어난 녀석은 빛의 가루가 되어 흩날렸고, 그렇게 천계를 지키는 수문장 하나가 소멸했다.
「마, 맙소사!」
「무슨 말도 안 되는...」
얼마나 놀랐는지 공격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흩어지는 빛의 가루를 바라보는 녀석들.
전장에서 한눈을 팔다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란 말인가.
물론 친절한 나는 그 교훈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줄 참이었다.
스윽.
별다른 것 없는 단순한 횡 베기였다.
다만 더할 수 없이 빠르고, 또한 정교했으며 모든 것을 베어버리는 절대적인 위력을 품고 있을 뿐.
파스스스-
어김없이 빛의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녀석들.
단 한 번의 횡 베기로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수십의 빛의 파리 녀석들을 모두 처리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펄럭!
연락이 닿았는지, 아니면 수상쩍은 기운을 감지했는지 조금 전보다 배는 많은 빛의 파리가 날아오고 있었다.
“뭐, 적당히 죽이다 보면 알아서 나오겠지.”
여기는 천계.
내가 지켜야 할 사람도, 그리고 인간성이 마모되는 것을 걱정할 필요도 없는 세계였다.
쿠쿠쿠쿠!
그렇기에 광기를 드러냈다.
누가 죽을 걱정할 필요 없이, 오직 적만이 가득한 세계에서만 발휘할 수 있는 학살의 광기를 말이다.
*
성역의 지휘부 천공의 성.
「음?!」
멀리서부터 피어나는 광기를 감지한 치천사(Seraphim)가 불쾌한 감정을 품는 순간.
화르륵!
하얀 불꽃이 피어났다.
그 불꽃은 치천사를 중심으로부터 퍼져나가 모든 것을 태우려 했으나.
「미카엘. 그만!」
촤아악!
그의 옆에 있던 치천사, 가브리엘이 물의 권능을 이용하여 불꽃을 제압했다.
치이이익- 불과 물이 만나 매캐한 연기가 자욱하게 장내에 퍼졌다.
물론 가벼운 손짓으로 인해 그 연기는 금방 소멸하였지만.
「어, 미안. 또 내가 흥분해버렸나?」
머쓱한 듯 적광의 날개 8쌍을 펄럭이는 황금빛의 천사.
그는 단 한 존재를 제외한, 모든 천사에 대한 명령권을 가진 성역의 총사령관, 그리고 사방을 수호하는 사대 천사 중 하나인 미카엘이었다.
「미카엘. 넌 다 좋은데 툭하면 흥분하는 그 성미 좀 고쳐. 그 뜨거운 적화(赤火)에 당한 천사가 한둘이 아닌 거 몰라?」
청광의 날개 8쌍을 지닌 가브리엘.
미카엘을 도와 천사들을 지휘하는 부사령관이자 마찬가지로 사방을 수호하는 사대 천사 중 하나.
비록 지위는 미카엘이 높으나 탄생했을 때부터 함께 생활해 온 남매이자 친우였기에 사석에서는 굳이 지위를 따지지 않고 편히 말을 하고 있었다.
「애초에 내 근원의 힘이 적화인 걸 어쩌냐. 이게 너무 강력해서 내 마음대로 조절이 되지 않는걸.」
「쯧. 대법관님께서는 어쩌다가 이런 녀석을 총사령관으로 삼아서는...」
물론 그건 진심이 담긴 말이 아닌 친우끼리의 장난에 불과했다.
「그래서. 갑자기 왜 또 적화가 발현된 건데?」
「너 못 느꼈어?」
「뭘?」
「조금 전에 엄청 불쾌한 기운이 나왔거든. 좌표가...」
「아, 그거? 인간 하나가 침입했다고 이미 보고가 들어왔어.」
「인간? 그게 인간이 발현할 만한 게 아니었는데?」
「그게 뭐가 중요해. 어차피 인간일 뿐인데. 조금 발악이 거세다고는 하는데, 어차피 첫 번째 시련을 넘지 못하고 사라질 거야.」
천계에 마련된 9개 시련.
지금껏 꽤 많은 침입자가 있었지만, 그 누구도 이 9개의 시련을 넘지 못했다.
특히 인간이라면 절대 첫 번째 시련을 넘을 수 없다.
그 ‘미혹’을 이겨낼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괜한 것에 신경 쓰지 말고 대법관님이 명한 업무에 집중해」
「음...뭐, 그래.」
유달리 신경이 쓰이긴 하나 확실히 인간이라면 첫 번째 시련을 이겨낼 수 없을 것이다.
가브리엘의 말처럼 신경을 끈 미카엘은 대법관 메타트론의 명령서를 받았다.
「중간계로 보낼 정화의 사도 파견이라. 음? 얼마 전에 세리엘을 보내지 않았던가?」
천계의 언어로 쓰인 보고서를 확인하던 미카엘이 의문을 표했다.
얼마 전 그가 직접 세리엘을 내려보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평소 보고서를 열심히 읽으라고. 그거 실패했다고 이미 보고가 내려왔잖아!」
가브리엘이 타박을 줬다.
미카엘은 총사령관 신분에 맞지 않게 세심한 면이 부족했다.
그렇기에 그녀가 항상 붙어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있었던 것이다.
「아, 그래? 세리엘이 실패하다니. 중간계에 그런 강자가 있었던가?」
「어쩌면 우리가 주시하고 있는 ‘그들’의 소행일 수도 있고. 확실히 세리엘은 조금 부족한 판단이긴 했어.」
「그런가?」
「그렇지. 그리고 이번 실패로 대법관님께서 상당히 분노하신 것 같으니까 이번에는 확실한 패를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아.」
「확실한 패라. 그럼 주품 둘을 주축으로 해서 능품 병력을 보내지.」
그건 유래를 볼 수 없는 대규모 병력의 파견이었다.
주천사 하나로도 충분히 중간계를 정화할 수 있는데, 주천사 둘에 심지어 휘하 병력은 능천사다.
정화가 아니라 충분히 중간계를 소멸시킬 수도 있는 막강한 병력의 구성이었던 것.
「그러는 게 좋을 것 같네. 어차피 이번에는 협정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으니 문제는 되지 않겠지.」
본래는 칠계의 협정으로 인하여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일.
하지만 메타트론은 이번만큼은 협정에 관해서는 생각하지 말고 확실히 임무를 다할 수 있는 천사를 파견하라 명하였다.
「그럼 지금 바로 병력을 파견할게.」
가브리엘은 중간계로 보낼 인원을 선정하기 위해 자신의 머릿속에 든 천사들을 하나하나 추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가 파견 병력을 모두 정하는 날. 그날은 정화를 가장한 중간계의 대학살이 일어나는 끔찍한 날이 될 것이 분명했다.
*
스팟!
내 손에서 피어난 칠흑의 검광이 빛의 날파리를 모두 베어냈다.
파스스-
어김없이 빛의 먼지가 되어 흩날리는 녀석들.
“방비가 너무 허술한데. 아직도 사태 파악이 안 됐나?”
수백이 넘는 잔챙이들을 상대했음에도 여전히 비슷한 능력을 지닌 천사들이 날아와 애꿎은 생명을 소모할 뿐이었다.
슬슬 시간의 낭비라고 생각이 되어갈 때쯤.
스스스슥.
구름만 존재하던 주변 환경이 빠른 속도로 뒤바뀌기 시작했다.
“호오?!”
그건 결계였다.
공간을, 아니 차원을 완전히 단절 시켜 버리는 강력한 결계.
모처럼 일어난 변화에 흥미로운 눈으로 그 광경을 응시했다.
「인간이여, 어찌하여 그대는 성역에서 소란을 일으키는가.」
태초의 우주를 형상화한 듯한 칠흑의 공간.
보이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그 허무의 공간을 가득 울리는 음성이 있었다.
“소란은 너희가 먼저 피웠고. 어휴, 됐다. 이제는 설명하기도 귀찮으니까. 딱 말해. 여기 대가리 좀 만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
어차피 잔챙이들과는 대화가 되지 않을 걸 알기에 곧장 물었다.
「건방진 인간이로군. 하지만 이 자비로운 좌천사 나 아르티엘은 그대에게 길을 알려주겠다.」
어휴. 자기가 자기를 높이는 저 꼬락서니하고는.
「사대 천사, 그리고 대법관님이 머물고 계시는 천공의 성으로 가기 위해서는 9개의 시련을 통과해야만 한다. 지금껏 그 누구도 통과하지 못한 9개 시련을 통과하면 자연스레 인간, 너에게 천공의 성으로 통하는 길이 열릴 것이다.」
“시련이 9개나 있다고...?”
「그렇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 없다, 인간이여. 그대는 미혹의 시련을 지키고 있는 나 아르티엘을 넘어서지 못할 테니 말이다.」
스으으!
그 말을 끝으로 다시금 변화가 일어났다.
저벅.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형상.
「왕자님...」
「왕자님. 왜 우릴 버리셨습니까.」
통곡하듯 구슬픈 음성을 내뱉는 그들은 내게 너무나도 익숙한 이들이었다.
과거 마계에서 수십 년간 생사고락을 함께해왔던 원정대원들.
팔과 다리가 잘리고, 온몸에 흉터가 가득한 끔찍한 형상을 한 그들이 느릿한 속도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인간이여, 너의 잠재된 곳 깊숙한 곳에 있는 공포가 너를 잡아먹을 것이니. 어디 한 번 이 심마의 환영을 이겨내 보거라.」
다시금 울리는 아르티엘의 음성.
아마도 녀석이 준비한 시련이라는 건 사람의 마음속에 내재한 공포를 환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9개 시련이라니...”
하지만 나는 내 눈앞에 나타난 원정대원, 그러니까 심마의 환영에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심마 따위에 흔들릴 정도로 내 심상은 나약하지 않다.
다만 짜증 날 뿐이다.
이런 짓을 무려 9번이나 반복해야 한다는 짜증.
“그래. 애초에 좋게 말하려고 한 내가 병신이지.”
조금 소동을 일으키면 결정권자를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아무래도 이 천계라는 곳은 부하의 생명쯤은 도구 정도로 생각할 정도로 아주 잔혹한 세계인 것 같다.
그러니 방법을 달리할 수밖에.
「꺼져라.」
숨겨두고 있었던 기세와 의지를 실은 외침에.
솨아아아-
아르티엘 녀석이 만든 심마의 환영이 사라졌다.
아니, 단순히 환영이 사라진 것뿐만이 아니라.
콰챠챵!
그 공간에 펼쳐져 있었던 결계가 박살 났다.
「어, 어찌 이런...?」
그리고 드러난 진실의 공간.
내 눈앞에는 은빛으로 빛나는 5쌍의 날개를 지닌 천사 하나가 서 있었다.
“시련을 통과하라고? 오냐. 그럼 통과해주마.”
시련을 통과해야 대가리를 만날 수 있다고 하니 그렇게 해주마.
다만 차례차례 통과할 생각은 없다.
한 방에 가자.
콰아아아!
아공간에서 나온 ‘그것’으로 인해 주위의 공간이, 천계 자체가 격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네, 네놈. 그것은?!」
내 손에 쥐어진 신기를 본 아르티엘은 경악하며 주춤 뒤로 물러난다.
“응. 맞아. 네놈들이 마계에 떨어뜨린 죄악의 천사 루시퍼. 녀석의 신물인 롱기누스의 창.”
흑과 백이 조화된 창.
그것은 과거 천계의 모든 이들이 우러러봤던 치천사 루시퍼의 신물이자 천계의 비밀 병기이기도 한 롱기누스의 창이었다.
본래는 성창이었으나 루시퍼의 분노가 깃들어 모든 천계의 기운을 파괴하는 파괴의 창이 되었으니.
“루시퍼. 네 녀석이 그토록 바랬던 염원을 풀어주마.”
누명을 받아 마계로 떨어져야만 했던 비운의 천사.
내 목적을 다함과 동시에 녀석의 바람을 들어주기 위하여 롱기누스의 창에 내 모든 마기를 한껏 담았고.
쐐애액!
있는 힘을 다해 투창했다.
「컥!」
그것은 건방지게 앞을 막고 있던 아르티엘을 꿰뚫었으며.
콰콰콰콰콰콰!
마치 모든 것을 탐식하는 괴물처럼 날아가 천계에 펼쳐진 모든 결계와 구조물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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