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35화 (35/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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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34

    “정말 천상의 성역을 방문하신 적이 있으세요?”

    뾰족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음성의 근원지. 그곳에는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것만 같이 여리여리한 미모의 여인이 있었다.

    하늘거리는 하늘색 원피스가 어울릴 것만 같은 외모.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외모를 활용(?)하지 않은 채 험악한 풀 플레이트 아머를 착용했다.

    어디 그뿐인가.

    등에 메고 있는, 그녀의 몸보다 더욱더 거대한 철퇴 ‘정의(Justice)’는 당장에라도 쇄도해 사람을 뭉개버릴 것처럼 압도적인 위용을 뽐내고 있다.

    광명의 성녀 킬리아 에스텔라.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소튼 왕국의 별궁에 잠시 머물게 된 그녀는 초롱초롱한 눈을 들어 한 존재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깟 천상의 성역이 뭐 그리 대단한 곳이라고. 나도 나름 전장을 굴렀던 몸. 영원한 분쟁인 마천(魔天) 대전을 통해 성역에 몇 번 들어섰던 적이 있었지.」

    정면에 있는 건 인형이었다.

    어울리지 않게 거만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곰돌이 봉제 인형은 마신 서열 72위 안드로말리우스의 후보 1,315호였다.

    「마천 대전? 뭔가 말이 이상한데. 보통은 천마 대전이라 부르지 않나?」

    대화의 중간 공중을 날아다니던 미꾸라지(?), 암룡 그라시아스가 끼어들었다.

    「쯧. 그러니까 네 녀석보고 근본이 없다는 거다. 천마 대전이라니. 허 참, 기도 안 차서. 당연히 마가 먼저 와서 마천 대전이지.」

    1,315호가 비아냥거렸다.

    마계와 천계. 영원한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 두 세계는 단어 하나에도 치열한 신경전이 펼쳐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 별 시답지 않은 것에 집착하는군.」

    하지만 지극히 이성적인 그라시아스는 1,315호의 비아냥에도 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시답지 않아?」

    「고작 단어 하나에 집착하다니. 쯔쯧. 아직 어리군.」

    「오냐. 그럼 하나만 물어보자. 만약 환계와 요계가 전쟁을 벌인다고 쳐. 그럼 그 전쟁을 요환 전쟁이라고 부르면...」

    「환요 전쟁!」

    「그것 봐. 네 녀석도 집착하잖아.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이 작은 차이가 무척 중요하다고.」

    「아주 좋은 비유였다.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

    평소 잘 맞지 않는 두 존재였으나 1,315호의 적절한 비유로 공통점을 끌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어떤가요? 성역은 무척 아름답고 웅장한 곳이라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평소 천상의 성역에 가보는 것이 꿈이었던 킬리아가 기대에 차서 물었고.

    「성역? 거기 별거 없는데. 그냥 휑하니 볼 것도 없는 곳이 무슨. 차라리 마계의 환락 지역인 35계층이라면 모를까, 성역은 진짜...어휴.」

    1,315호는 킬리아의 기대를 산산이 부쉈다.

    「그 말에는 나도 동의한다. 아버지를 따라 몇 번 성역에 들른 적이 있지만, 구름과 양 떼 말고는 볼 게 없는 곳이었다.」

    사람들은 미지의 영역에 대한 환상을 품곤 한다.

    특히 고결한 존재라 인식되는 천사들의 거주 지역인 천상의 성역에 대한 소문은 무성할 수밖에 없었다.

    대륙의 유명 음유시인 중 하나인 데일락의 표현을 따르자면.

    ‘그곳은 온갖 아름다운 기화요초에 무지개는 항상 하늘에 떠 있고, 마시면 영생을 얻게 되는 물이 흐르는 꿈의 낙원이다.’

    막연히 유명 인사가 떠든 내용으로 인해 성역은 어느새 낙원이 되어 있었다.

    물론 실제는 전혀 달랐지만 말이다.

    천상의 성역은 인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모든 것이 펼쳐진 낙원이 아니었다.

    구름으로 이루어진 지면, 그리고 그곳을 돌아다니는 수많은 양 떼.

    성역의 주민들에게 주어지는 건 작은 몸을 누일 수 있는 작은 집 하나뿐이었다.

    마치 새의 우리를 연상케 하는, 칸칸이 들어서 있는 집은 감옥과도 같이 답답한 풍경을 자아낸다.

    “그런가요? 제가 상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것 같네요...”

    환상이 무너지자 조금은 시무룩해진 킬리아.

    「흐음...」

    1,315호는 그런 킬리아를 유심히 응시했다.

    「그런데 너희 인간들을 보며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

    “착각이요?”

    「어. 조금 전에 네가 말했잖아. 천계는 무슨 온갖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만 펼쳐져 있을 거라며?」

    “그야 사람들이 막연히 그린 상상의 그림이라...”

    「그럼 마계는? 마계는 어떨 거로 생각하는데?」

    “마계요. 그건...”

    킬리아는 1,315호의 눈치를 보며 선뜻 말을 잇질 못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마계는 ‘지옥’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유황불과 지독한 가스로 가득한 열지옥.

    고통에 찬 사람들의 비명과 괴물들의 아우성이 뒤섞인 끔찍한 세계. 그것이 바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마계였다.

    「대충 표정만 봐도 알겠네. 천계는 아름답고 웅장한 곳. 반면 마계는 끔찍한 괴물들만 가득한 곳.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부정할 수 없네요. 실제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리 생각했으니까요.”

    킬리아는 순순히 인정했다.

    「호오? 인간들은 그리 인식하고 있는 건가? 참으로 어리석은 판단이로군.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천계보다 마계가 훨씬 아름다운 곳이다. 물론 모든 계층이 그런 건 아니지만, 적어도 몇몇 계층은 놀랍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엄청난 풍경을 자랑하고 있지.」

    모처럼 1,315호의 말을 돕는 그라시아스.

    아니, 돕는 게 아니라 솔직한 자신의 감상을 말했을 뿐이다.

    「그것뿐일까. 천계는 선, 마계는 악. 천사는 선한 존재, 마족은 악한 존재. 이게 중간계에 만연한 것 같더라고.」

    신이 난 1,315호가 말했고.

    「맙소사! 정말 인간들은 어리석기 그지없군. 세상에 그 비둘기 녀석들을 선한 존재라 생각하다니.」

    「비둘기? 킥킥. 그거참 잘 어울리는 별명이네. 비둘기, 비둘기...키키키킥.」

    “천사가 선한 존재가 아니라고요?”

    상식을 깨는 말에 킬리아가 물을 수밖에 없었다.

    「뭐, 선악이라는 게 각자의 기준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너희 인간들 기준에서 천사는 결단코 선한 존재가 될 수 없다.」

    그라시아스가 근엄히 말했다.

    “어째서죠?”

    「이것 봐. 아직도 영문을 모르고 있다니까.」

    「비둘기 녀석들이 제대로 세뇌한 것 같군.」

    「역사를 왜곡하는 게 녀석들 특기니까 말이야.」

    어처구니없다는 듯 서로를 바라보던 둘.

    그리고 1,315호가 입을 뗐다.

    「너도 인간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겠지. 천벌이 내려졌다면서 갑자기 많은 사람이 죽거나 혹은 왕국 하나가 벼락에 통째로 구워졌다는 소문을.」

    “네. 신이 노하였다며 천벌이 내려졌다는 역사의 기록을 본 적이 있어요.”

    대륙의 역사에 종종 소개되곤 하는 신의 분노.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져 왕국 하나가 사라졌다거나 혹은 강렬한 빛이 쏟아져 수만 명의 사람이 타죽었다는 것.

    물론 실제로 본 적은 없다.

    그 모든 일은 몇백 년, 혹은 몇천 년도 더 지난 과거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거 다 천계, 정확히는 천사들이 벌인 짓이야.」

    그리고 1,315호는 충격적인 말을 전했다.

    「걔들은 심심하면 중간계, 그러니까 인간들이 타락했다면서 종종 ‘정화의 날’을 정하거든. 그 역사에 기록되었다는 신의 분노는 천상의 군대가 내려와 인간들을 학살하며 벌인 일이지.」

    “...”

    놀라운 사실에 킬리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 말을 믿을 수 없다는 게 맞을 것이다.

    「이것 봐라? 못 믿는 눈치네? 너 내가 마족이라서 천계를 음해한다고 생각하고 있지?」

    “...아뇨. 그렇지 않습니다.”

    「아니긴. 표정만 봐도 바로 답이 나오는데.」

    답답했는지 자신의 가슴을 탕탕 치는 1,315호.

    「어이, 미꾸라지. 내 말이 틀렸냐?」

    그렇기에 그라시아스에게 물었다.

    「곰돌이의 말은 단 하나의 거짓도 없는 사실이다. 고지식한 비둘기 녀석들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인간들을 학살하면서 그것을 정화라는 말로 포장하곤 하지.」

    그 말에 킬리아는 조금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1,315호의 말이었다면 거짓으로 치부할 수 있겠지만, 천계와 그리 부딪칠 일이 없는 환계의 그라시아스의 말이었다.

    중립적인 입장의 그라시아스가 그리 확신할 정도라면 지금껏 들었던 모든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뜻했다.

    「그래서 종종 중간계로 유희를 오면 어이가 없다니깐. 어떻게 자신들을 학살하는 천계 녀석들을 그리 추앙하는지. 게다가 우리처럼 가만히 놀다가 가는 평화주의자(?)를 뭐? 악마? 괴물? 진짜 듣다 보면 열불이 뻗쳐서 정말...」

    천사와 마족의 편견에 대한 울분을 토하던 1,315호.

    하지만 그는 계속 자신의 억울함을 풀 수 없었다.

    「이건?!」

    넓게 펼쳐진 그의 기감에 잡히는 수상쩍은 기운 때문이었다.

    「온다!」

    마찬가지로 그 기운을 느낀 그라시아스가 위를 올려다보며 외쳤다.

    “네? 뭐가...”

    하지만 전혀 무언가를 느끼지 못한 킬리아가 물으려 했으나.

    쉬쉬쉬쉭!

    어느새 주변을 가득 채운 빛나는 깃털 형상으로 인해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이, 이건?!”

    그것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진 모르겠으나 빛나는 깃털 하나에 깃든 파괴력은 그녀의 상승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마족, 죽어라!」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의지와 함께.

    콰콰콰콰콰쾅!

    쇄도한 깃털로 인한 엄청난 연쇄 폭발이 일어났다.

    「웃기고 있네!」

    보통은 그 폭발에 휘말려 소멸을 맞이했겠지만, 1,315호와 그라시아스의 전력은 약한 게 아니었다.

    부우웅- 어느새 펼쳐진 보호막이 본인은 물론 킬리아도 보호하고 있었다.

    「어디서 비둘기 비린내가 나는가 했더니 네 녀석 때문이었군.」

    1,315호의 눈이 허공을 향했다.

    그 시선을 따라가자 빛으로 이루어진 날개를 활짝 펼친 존재를 볼 수 있었다.

    “뒤블링 성하?!”

    익숙한 얼굴에 경악하는 킬리아.

    빛의 날개를 단 그는 너무도 익숙한 이, 바로 그를 길러준 뒤블링 교황이었다.

    「...」

    하지만 뒤블링은 그녀의 말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킬리아가 아니라 강렬한 마기를 뿜어대고 있는 1,315호와 또 하나의 존재.

    「환계의 용족?」

    그라시아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최상위 마족과 함께 환계의 용족을 소환하다니. 타락해도 너무 타락한 곳이로구나!」

    상식적으로 중간계에 최상위 마족과 용족에 속하는 환수를 소환할 정도면 엄청난 영혼의 제물이 필요하다.

    균형을 깨는 소환은 타락의 증거.

    이에 분노를 느낀 뒤블링, 아니 강림한 세리엘의 몸에서부터 어마어마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오늘 소튼 왕국을 멸하고, 타락한 중간계를 깨끗이 정화하리라!」

    이 순간 세리엘은 결심했다.

    과거와 달리 근원을 없애는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중간계를 깨끗이 정화하겠다고.

    「지랄하고 있네.」

    「고작해야 네 녀석 따위가? 우습지도 않군.」

    폭발하는 빛의 기운 속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는 1.315호와 그라시아스.

    최상위 마족, 그리고 환계의 용족인 둘은 역천사의 권능을 자랑하는 세리엘을 그리 두려워하지 않았다.

    「너희 또한 마찬가지. 함부로 중간계를 넘은 그 벌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세리엘은 둘을 안중에 두지 않았다.

    파파파파팟!

    공간을 도약하여 넘어온 이들, 그와 같이 눈 부신 빛의 기운을 발산하는 천상의 군대 때문이었다.

    「어어...?」

    「음...」

    비록 역천사인 세리엘보다는 약하나 모두가 권천사의 권능을 자랑하는 천계의 전사들. 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수백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천상의 군대였다.

    “이런 기운이라니...”

    그 광경을 응시하고 있던 킬리아는 힘이 빠진 것처럼 주저앉고 말았다.

    중간계를, 타락한 인간들을 정화하기 위하여 수백의 천사가 파견되었다.

    그 누가 있어서 이 엄청난 군대를 막을 수 있을 것인가.

    만약 세리엘의 말처럼 대규모 정화가 일어난다면 대륙에 존재하는 대부분 인간은 소멸하고 말 것이다.

    「그런 말 함부로 내뱉으면 안 되는데.」

    「동의한다. 지킬 수 없는 말은 함부로 내뱉는 게 아니지.」

    하지만 킬리아와 달리 1,315호와 그라시아스는 지극히 태연한 모습이었다.

    세리엘을 비롯한 막강한 전력을 자랑하는 천상의 군대를 보면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여유가 느껴질 정도였다.

    「허세를 부려봐야 소용없는 일. 지금 여기서 소멸하라!」

    물론 세리엘은 그들의 허세를 안중에 두지 않았다.

    쿠쿠쿠쿠쿵!

    그들이 펼친 권능에 의해 마치 태양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불꽃의 구가 왕성을 향해 하강하기 시작했다.

    ‘정화의 구’라 불리는 그것은 천사들의 힘이 밀집된 파괴의 권능.

    과거 타락한 제국과 왕국을 흔적도 없이 날려버렸던 원인이기도 했다.

    정화의 구가 완성된 이상 소튼 왕국의 파멸은 약속된 것.

    「그럼 이동...」

    천상의 군대를 향해 이동을 명령하려던 그때였다.

    “쯧. 한창 낮잠 자고 있는 데 더럽게 시끄럽네.”

    장내에 울리는 낭랑한 음성과 함께.

    팟!

    한 줄기 피어난 검광이 정화의 구를 베었다.

    그리고.

    스스스- 정화의 구는 본래의 형체를 잃어버린 채 빛의 기운이 되어 허공에 흩어졌다.

    「이 무슨...?」

    정화를 위하여 생성된 절대적인 권능이 이리 허무하게 사라지다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란 말인가.

    하지만 세리엘의 놀람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촤촤촤촤!

    그의 주변을 호위하던 천상의 군대, 권천사의 권능을 자랑하는 천계의 전사들의 육신이 조각조각 나뉘기 시작했다.

    “...”

    찰나의 순간 빛의 날개를 펼치며 비행하고 있었던 천상의 군대 모두가 소멸을 맞이했다.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세리엘은 할 말을 잃은 채 넋을 놓을 수밖에 없었고.

    “컥!”

    어느새 다가왔는지 모를 손길에 의해 목이 잡힌 채 구속 당했다.

    “넌 뭔데 남의 성에 와서 불장난하고 지랄이냐?”

    고작 목을 잡혔을 뿐인데 어떠한 권능도 일으킬 수 없는 구속의 상태가 된 세리엘.

    고통에 몸부림치던 그는 한 쌍의 눈동자를 확인하곤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심연을 담은 듯한 그 눈동자는 천계의 지배자인 대법관 메타트론(Metatron)을 연상케 하는 거력을 숨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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