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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33화 (33/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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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2

쉬익!

나를 향해 쇄도하는 검을 빤히 응시했다.

생명력을 갉아먹는 강력한 포션까지 먹어가며 근력과 순발력을 높였지만.

‘느려.’

하품이 나올 정도로 너무 느리다.

애초에 주변을 포위한 녀석들과 나는 다른 시간 속에 있다.

시간의 차이마저 발생시킬 수 있는 절정의 감각. 그것은 수백 년간의 수련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스윽.

살짝 고개를 옆으로 까닥이며 미간을 향한 녀석의 검을 피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쉭, 쉬쉬쉭!

사방에서 검과 창, 철퇴 등이 쇄도했다.

상당한 훈련을 받은 듯 공격과 공격 사이를 정확히 알고 그 빈틈을 메꾼다.

아마 일반적인 상대, 대륙에서 말하는 성이라는 기준에 묶인 존재라면 저들의 합공에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녀석들에게는 지극히 애석하게도 나는 그 기준에 들어가지 않는다.

파파파팟!

가볍게 뻗은 주먹이 잔상을 만들었고.

퍼억!

내게 무기를 들이댄 어리석은 녀석의 머리통을 부숴버렸다.

비명은 없었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죽었고, 그 죽음의 흔적으로 시뻘건 피와 허연 뇌수를 남겼을 뿐이다.

“으아아!”

“죽엇!”

동료의 죽음을 보면서도 겁 없이 달려든다.

어차피 누군가를 상대하기 위해 길러진 공작가의 개.

저 음흉한 늙은이의 명이 떨어졌으니 설사 목숨을 잃는 한이 있어도 덤벼들 것이다.

퍼억!

그래서 죽였다.

퍽, 퍼퍽!

죽음을 향해 달려드는 모든 개를 단숨에 쳐 죽였다.

“...”

찰나의 시간이 흐른 뒤, 그곳에 서 있는 건 나밖에 없었다.

“이럴 수가...”

아, 정정.

율리안 공작. 저 음흉한 늙은이도 여전히 살아 있다.

허망한 시선이 뒤따른다.

나를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 자부하던 그는 생기를 잃어버린 눈동자를 들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너는 정녕 인간이 맞긴 한 건가?”

“알아서 뭐 하게? 내가 인간이든, 혹은 드래곤이든, 아니면 마족이든 어차피 네가 여기서 죽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텐데.”

저벅- 그리 말하며 한 걸음을 내디뎠다.

“자, 잠깐!”

그러자 공작의 가면이 벗겨졌다.

“내 목숨을 보전해 줄 수는 없겠나?”

조금 전까지만 해도 초탈한 듯 연기하던 그는 목숨이 위험해지자 비굴한 자신의 내면을 보였다.

보통 그렇다.

높은 자리에 앉아 있을수록, 가진 게 많을수록 생에 대한 미련은 더 큰 법.

특히 그게 제국의 공작이라면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싫다면?”

그 말을 무시하며 걸음을 옮겼다.

“잠깐, 잠깐 기다려 보게. 자네가 소중히 여기는 누나의 죽음으로 많이 분노했음은 익히 짐작하는 바일세. 물론 그 일과 관련해서 나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사실을 먼저 밝힘세.”

거짓말이다.

권력의 중심에 있는 공작가에 3황자의 사건이 들어가지 않았을 턱이 있나.

저벅- 그의 말을 무시한 채 다시금 발걸음을 옮겼다.

“그, 그래. 누나가 그렇게 억울하게 죽었으니 충분히 이성을 잃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잘 생각해 보게. 이미 죽은 사람은 되돌아올 수 없는 법이야. 여기서 중요한 건 남겨진 사람들 아니겠는가.”

잠시 걸음을 멈추며 그를 바라봤다.

그 말이 통했다고 여겼기 때문일까.

얼굴을 핀 공작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누나의 죽음을 애도하는 뜻에서 억만금에 달하는 보물과 제국의 미녀들을 모두 주겠네. 그것만 가질 수 있다면 황제가 부럽지 않은...”

스윽!

더는 들을 이유가 없어 녀석의 목을 그어버렸다.

툭, 데구르르-

육신과 분리된 목이 지면을 구른다.

그리고.

푸확!

절단된 단면에서 피 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

말없이 주위를 둘러보며 남겨진 잔해들을 응시했다.

같은 인간을 죽였다는 떨림, 죄악감, 그런 종류의 감정이 들지 않는다.

무심(無心).

마치 지나가다가 개미를 밟아 죽인 것처럼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쯧!’

덕분에 다시금 나의 문제를 떠올릴 수 있었다.

마모된 인간성.

솔직히 말해 지금은 내가 이들과 같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렇기에 조금은 두렵다.

조금 전 그림이 언급했던 ‘세계의 멸망’. 그 대학살이 여기서도 벌어지지 말란 보장은 없다.

“그래도 죽일 녀석은 죽여야지.”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걱정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한 가지 철칙을 정했었다.

호의에는 호의로.

적의에는 그보다 더 큰 적의로.

내게 칼을 들이민 자들에게 줄 수 있는 건 죽음뿐.

설령 그것이 제국의 최고위 귀족인 공작이라도, 그리고 황제의 부인인 황비라 해도 말이다.

*

“그라탄. 정말 가만히 있을 생각이냐?”

흑발의 사내 슈아드의 물음에 황제 그라탄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물론 가만히 있을 생각입니다.”

“허!”

황제의 냉혹한 말에 슈아드는 헛바람을 들이켰다.

“공작가를 견제한다는 네 생각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황비는 너의 부인이자 제국의 어머니다. 어찌 그녀가 죽는 것을 방치한단 말이냐.”

율리안 공작이야 워낙 음흉한 인물인 데다가 최근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언제든 황제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이였기에 그를 견제하는 건 합당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황비는 아니었다.

비록 공작가와 연루되어 있다고 해도 그녀는 제국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 그런데 지금 황제는 그녀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그녀의 죽음을 묵과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글쎄요. 그녀가 과연 그만한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라 생각하십니까?”

하지만 황제의 생각은 달랐다.

애초에 그녀와의 혼인은 공작가와의 정략을 위해서였을 뿐.

사실 헬리에라는 여인은 황비와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아시지 않습니까. 글레이드. 그 녀석이 제 친아들이 아니란 사실을.”

그것은 그 누구에게도 밝히지 못했던 비사.

사실 3황자인 글레이드는 황제와 황비 사이가 아니라 헬리에 황비의 불륜을 통해 태어난 사생아였다.

헬리에 본인은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황제는 그 모든 일을 알고 있었다.

“욕심은 많고 게으르며, 이기적이고, 심지어 순간의 본능도 이기지 못하는 멍청하고 더러운 년. 그런 년을 언제까지 황비의 자리에 앉힐 순 없는 노릇 아닙니까.”

충분히 분노할 만한 상황에서도 미소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 일 때문에 황비를 죽게 내버려 둘 셈이다?”

“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황제는 바보가 아니다.

아무리 그녀에 대한 정이 없어도 현재는 국모(國母)가 아닌가.

제국의 위상이 마냥 떨어지도록 방관할 정도로 어리석은 판단을 할 이가 아니었다.

“이참에 황제의 권위를 바로 세우려고 합니다.”

“권위?”

“그렇습니다. 최근 황제인 저보다 공작가, 그리고 황비의 눈치를 보는 귀족들이 많이 보이더군요. 귀족들이 그러할진 데 백성들은 어떻겠습니까. 나날이 세를 확장하는 공작가를 두려워했지, 그들에게서 황제인 저의 위상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선왕의 지병으로 어린 나이에 황제에 즉위한 그라탄.

자연스레 왕권은 약화 될 수밖에 없었고, 귀족들이 자신의 권력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그럼 내게 맡기지 그랬냐. 그들에게 너의, 황제의 위상을 확실히 새겨줄 수 있었을 터인데.”

“물론 슈아드님이 나서주셨다면 그들을 쉽게 굴복시킬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왜?”

“겉으로 하는 복종 따위는 필요 없으니까요.”

슈아드가 있으니 무력으로 무릎을 꿇리는 건 너무도 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건 진정한 굴복이 아니었다.

언제고 틈을 보이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반복될 터.

그렇기에 이번 기회에 확실히 황제의 권위를 다지고 싶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냐? 시원하게 속마음을 말해 봐라.”

좀처럼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황제가 답답했던지 물었고.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그라이튼 공작가를 무너뜨리고, 황궁에 침입하여 황비까지 살해한 흉수를 황제가 처단하였다. 그럼 귀족들이, 백성들이 절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아!”

그제야 황제의 계획을 눈치챈 슈아드가 짧게 감탄사를 뱉어냈다.

“눈엣가시 같던 공작과 황비도 남의 손을 빌려 처리하고, 그 흉수를 제거하여 황제의 권위를 세우겠다?”

“바로 보셨습니다.”

“...”

잠시 말을 멈춘 슈아드가 짧게 황제를 응시했다.

“확실히 네가 황제의 그릇이 맞긴 한 것 같구나. 아무리 그래도 황비와 관련된 일을 이리 냉철하게 처리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후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제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이끄는 황제라는 자리가 인외의 영역이라는 것을.”

“그도 그렇지. 아마 나라면 여기에 앉으라고 해도 거부할 것 같은데. 인간들은 무엇이 그리 이곳에 탐욕을 부리는지 원..

“원래 인간이란 존재가 그렇습니다. 끝없이 위를 바라보는 탐욕. 그 탐욕이야말로 짧은 생을 사는 인간이 발전할 수 있는 동기가 되는 셈이죠.”

“뭐, 그도 그렇...음?!”

말을 하던 도중 슈아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온다!”

어느새 황제의 앞을 막아선 그의 눈이 정면을 향했고.

츠츠츠-

마치 찢기듯 공간이 어그러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건...?”

놀란 황제가 그 광경을 응시하고 있을 때였다.

차앙!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공간이 찢겨 나갔다.

보이는 것이라곤 어둠밖에 없는 미지의 영역.

저벅- 그곳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건 안면이 있는 얼굴이었다.

“어서 오시오, 아서 왕.”

이런 화려한 등장을 예측하지는 못했으나 그렇다고 당황하진 않았다.

그 자신감의 근원은 곁에 있는 슈아드였다.

이 든든한 존재가 자신을 지켜주고 있는 이상 그 누구도 자신을 건드릴 수 없다.

그렇기에 황제는 지극히 태연하게 아서의 등장을 반겨주었다.

툭.

짧게 황제를 응시한 아서는 손에 든 무언가를 발치에 던졌다.

“...”

그것은 눈을 부릅뜬 율리안 공작과 헬리에 황비의 머리였다.

“이런, 이런.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군.”

입가에 가득한 건 냉소.

그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인 멍청이에 대한 비웃음이었다.

“그대의 누나를 해한 죄가 있기에 3황자의 일은 묻어두려 했다. 허나 아무리 그 일과 관련이 있었다 해도 제국의 황비와 공작을 시해하다니. 실로 오만하기 그지없구나.”

황제의 위엄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거대한 제국이라는 나라를 다스리는 그 절대의 위엄은 가벼이 볼 수 없는 것.

“아서 왕. 그대는 짐의 아량에도 불구하고 사사로운 감정에 휘말려 제국의 황비와 공작을 시해하였다. 그 죄가 엄중한바, 짐이 직접 그대의 죄를 물어 처단하리라!”

황비와 공작의 죽음으로 무대는 완성되었다.

이제 클라이맥스를 장식할 슈아드의 활약만이 남은 상황.

“임펠 제국의 수호룡인 흑룡 슈아드님. 저 오만하고 어리석은 왕에게 제국의 위엄을...”

하지만 황제는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덜덜덜덜.

그의 앞을 막아선 슈아드는 눈을 부릅뜬 채로 몸을 떨고 있었다.

그건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슈아드가 누구인가.

지상최강의 생물체인 드래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흑룡이었다.

“슈아드님...?”

무언가 일이 잘못됐음을 깨달은 황제가 물었다.

“그라탄. 도, 도망쳐라...”

사력을 다하여 간신히 뱉은 마지막 말과 함께.

촤촤촤촤촥!

수백, 수천 갈래로 조각 난 슈아드의 육신이 지면을 굴렀다.

“...”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눈을 부릅뜬 황제.

“야, 다시 말해 봐. 뭐? 오만방자함이 어쩌고 저째?”

그리고 그를 향하여 아서가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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