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28화 (28/161)
  • #   28 - 3747733

    #

    Chapter 27

    “끄윽!”

    “커헉!”

    나와 펠리드가 지나갈 때면 어김없이 비명이 터져 나왔다.

    물론 그건 날파리 마냥 달려드는 백작가의 병사들이 내는 소리였다.

    퍼퍽!

    사방에서 달려드는 녀석들을 주먹으로 ‘제압’했다.

    솔직한 마음 같아서는 권능을 발현해 모조리 쓸어버리고 싶었지만.

    ‘이렇게 인간성이 마모되었다고?’

    스스로 그러한 마음을 품었다는 것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원한 관계가 아니라 그저 귀찮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 수십, 아니 수백을 쓸어버리겠다고 생각하다니.

    수백 년의 시간 동안 쌓아온 투기에 적응하고 억누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다.

    「물러서라.」

    그래서 정신력을 소모해가며 의지를 움직였고.

    “크으...”

    “으으으...”

    영역을 넓힌 내 의지는 덤비려는 병사와 기사들의 의지를 속박했다.

    “가자.”

    움직이지 못하는 그들을 뒤로한 채 빠르게 한 곳으로 움직였다.

    그레이 백작. 녀석의 기운이 느껴지는 방.

    끼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소란에도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앉아 있는 사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오셨습니까.”

    들어온 우릴 바라보던 녀석의 눈동자에 많은 감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처음에는 놀람, 당혹, 그리고 초탈.

    짧은 순간에 이루어진 감정의 변화는 많은 것을 뜻하고 있었다.

    “뭔갈 알고 있는 눈치네?”

    내가 물었고.

    “전하의 소문은 전해 들었습니다. 수십 년간 소튼 왕국을 지배했던 공작가와 귀족들을 물리치고 왕위에 올랐으며 홀로 트리안 왕국의 병력을 상대하여 승리하였다는...”

    그래. 사건이 터지고 며칠이 지났으니 소문이 났겠지.

    “그걸 믿는다고?”

    문제는 그 소문을 믿느냐였다.

    누가 듣기에도 과장된, 아니 어떻게 보면 황당무계한 일이지 않은가.

    대부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게 정상이었다.

    “아버지와 숙부의 손에서 벗어나셨으니 그 소문이 사실로 증명된 셈이지요.”

    “...내가 네 아비와 숙부를 죽였다는 사실도?”

    “전하께서 방에 들어온 순간부터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리 담담하다고?

    “아버지와 숙부는 많은 죄를 지었습니다. 언젠가 그것이 돌아올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그것이 지금이라고 예측하지 못했을 뿐이지요.”

    호오?

    두 사람의 죽음에 분개하며 칼을 뽑을 줄 알았건만.

    이건 또 예상 밖의 전개다.

    “그 비밀을 알고 있다는 건 백작, 당신 또한 그 일에 가담했거나 혹은 방관했음을 시인하는 것이로군요.”

    펠리드의 날카로운 지적에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 또한 그분들과 다를 바 없는 죄를 지었고, 언제든 그 벌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때가 온 것 같군요.”

    나는 담담히 말하는 백작을 자세히 살폈다.

    말을 하는 도중에도 한 점의 기세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말과 마음은 거짓을 말할 수 있어도 기세는 거짓을 말하지 못한다.

    ‘누님의 죽음으로 모든 걸 초탈하게 된 건가?’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은 아네타 누님의 죽음이다.

    들리는 이야기나 지금까지의 태도로 봐선 아네타 누님과 꽤 사이가 좋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어떠한 사건으로 누님이 죽게 됐고, 그로 인하여 모든 것을 놓아버린 게 아닐까?

    “하지만 벌을 받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어 이렇게 전하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달관한 눈동자가 내게 향했다.

    “말해라.”

    그가 무엇을 말할지는 빤한 일.

    “부인을, 아네타 공주를 살해한 건 3황자 글레이드 퓨리온입니다.”

    “글레이드 3황자?!”

    놀란 펠리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백작의 입을 통해 나온 인물이 예상 밖의 거물이었기 때문이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제국에서도 유명한 망나니 황자입니다.”

    망나니라는 말에 괜히 뜨끔했다.

    나도 한때는 남 부럽지 않은 망나니였으니 말이다.

    “그는 백작가에 온 부인을 처음 본 순간부터 노골적으로 음심을 드러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가문, 이슈레아 백작가라는 이름 때문에 대놓고 그 음심을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지요.”

    하긴.

    아무리 막 나가는 황자라도 백작가를 쉽게 건드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조금은 안심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그 망나니 녀석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사악한 작자였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건 황태자의 탄생일을 축하하는 황실 연회장에서였다.

    “그는 남몰래 구해 온 수면약을 부인이 먹을 샴페인에 타서 건네주었습니다. 약의 효과로 몸을 가누지 못한 부인은 쓰러졌고, 따로 명령을 받은 황실 근위병이 부인을 3황자의 방으로 옮겼습니다. 아마 약에 취한 부인을 통해 음심을 채우려고 했던 거겠지만, 아마 그는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부인이 사실은 2성의 경지에 이른 기사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약물이 침투한 것을 느낀 아네타 공주는 기를 이용하여 일부 약의 기운을 몰아냈다. 그리고 비극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약 기운을 일부 몰아낸 부인은 음심을 채우려는 3황자에게 저항했고, 그 상황 중 황자의 얼굴에 상처가 생겼습니다. 이에 분노한 그는 자신의 수족이라 할 수 있는 근위병을 불러 부인에게 폭력을 가했습니다. 그리고 충격으로 기절한 부인에게...”

    분한 듯 끝내 말을 잇지 못하는 백작.

    하지만 굳이 뒷말을 들을 필요는 없다.

    누님의 시신에 남은 흔적을 통해 이후 벌어진 일을 짐작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 모든 정황은 어떻게 파악한 거지?”

    아무리 망나니라고 해도 비밀리에 벌인 일이다.

    그런데 그레이 백작은 마치 그곳에서 보고 있었던 것처럼 상황을 너무 자세히 알고 있었다.

    “사건이 일어난 직후 차갑게 식은 부인의 시신을 가져온 그자가 직접 사건의 내막을 알려주었습니다.”

    “뭐?”

    미친!

    아무리 막 나가는 녀석이라고 해도 그걸 자기 입으로 직접 말했다고?

    “마치 기르는 개 한 마리를 죽인 것처럼 미안하게 됐다며, 새로 부인을 구할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며 그렇게 제게 말했습니다.”

    “그걸 네 녀석은, 아니 대단한 백작가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었고?”

    “어쩔 수 없었습니다. 3황자는 제국에서 가장 강력한 위세를 자랑하는 헬리에 황비, 그리고 그라이튼 공작가를 등에 업은 이. 한낱 무가에 불과한 슈레이아 백작가의 저항 따위는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언뜻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망나니 3황자 글레이드.

    헬리에 왕비가 유독 아끼는 황자로, 덕분에 악행이란 악행을 저지르고 다녀도 그 누구도 감히 뭐라할 수 없는 인물.

    “비겁한 변명이로군요.”

    차가운 눈빛의 펠리드.

    녀석은 어쩔 수 없다는 그레이 백작의 말에 냉소했다.

    “어쩔 수 없다? 아니요. 당신은 아네타 누나를 그만큼 소중히 생각하지 않았던 겁니다. 만약 내가 그런 상황에 처했다면 빌어먹을 목숨을 부지하느니 누나를 위해,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바쳤을 겁니다. 그것이 비록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할 수 없는, 아주 사소한 일이라 해도 말입니다.”

    펠리드는 정확한 사실을 말해 주었다.

    “잔혹한 일을 겪고 죽은 부인을 위해 침묵하고 방관했다? 결국 당신에게 아네타 누나의 가치는 그 정도에 불과했다는 겁니다.”

    “...맞습니다. 저는 부인을 위해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한 비겁한 겁쟁이에 불과합니다.”

    아마 그는 계속 자신을 속여왔을 것이다.

    가문 때문에.

    아버지 때문에.

    가신들 때문에 어쩔 수 없었노라고.

    그러나 그건 비겁한 변명이다.

    사실은 그들에게 대항했을 때 잃은 자신의 목숨이 아까웠을 뿐이다.

    “그렇기에 부탁드립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죽은 눈동자가 내게 향했다.

    “부디 억울하게 죽은 부인의 원수를 갚아주십시오.”

    이것 봐라?

    “재밌네. 설마 내가 제국의 3황자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전하라면 그 불가능의 영역을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작 7성의 경지에 있는 기사 따위(?)가 내 내면을 파악할 수는 없을 테고.

    아마 죽기 전에 느끼는 초월적인 감각 같은 건가?

    “뭐, 그러지.”

    녀석이 부탁하지 않아도 해야 할 일. 그렇기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으로 제가 전해드릴 수 있는 건 모두 전해드린 것 같군요.”

    누님의 사인을 모두 밝힌 그레이 백작이 눈을 감았다.

    그것은 명백한 축객령.

    “가자.”

    나는 그 뜻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펠리드와 함께 방문을 나섰다.

    그리고 잠시 후.

    푸욱!

    살을 꿰뚫는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쯧!”

    그레이 백작은 자결했다.

    망나니 황자에 의해 부인을 잃은 순간부터 시작된 무력감은 아비와 숙부의 죽음을 겪으며 강해졌을 터.

    비겁한 겁쟁이는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삶을 끊고 말았다.

    “끝까지 비겁한 자로군요.”

    펠리드 또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원래 사람이 그래. 나약하고 비겁하지.”

    적어도 내가 느낀 인간은 그렇다.

    마계 원정대가 처음으로 마계에 도착한 그 날, 나는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지 똑똑히 확인했었다.

    뭐, 그때에 비하면 이 정도 본성을 드러내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긴 하지.

    “폐하, 그럼 이제부터 어찌할 생각이신지?”

    이슈레아 백작가의 일을 마무리한 후였기에 이후 계획을 묻는다.

    “범행 동기도 파악했고, 범인도 알았는데 무얼 망설일 게 있겠냐.”

    “폐하, 설마...?”

    “그래. 오랜만에 몸 좀 풀어야겠다.”

    딱!

    나는 손가락을 튕겨 펠리드를 소튼 왕국으로 보내버렸다.

    지금부터 벌일 일에 대해서는 그 누구의 참견도 그리고 훼방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망나니라 이거지...”

    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한 혈통에 배경까지 등에 업었으니 누릴 수 있는 걸 모두 누렸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 죽어도 여한은 없겠지.”

    입꼬리를 올리며 마기를, 지금껏 감춰두고 있었던 모든 마기를 방출하였다.

    스으으으-

    보이지 않는 무형의 기운이 영역을 확장했고, 잠시 후 제국 전체를 뒤덮었다.

    내가 원하는 건 누님의 시신에 남아 있는 누군가의 흔적.

    그리고.

    “찾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신에 남은 흔적과 똑같은 기운의 존재를 찾을 수 있었다.

    【공간 이동】

    곧장 공간을 뛰어넘었다.

    츠츠, 츠츠츠!

    그 순간 마나의 간섭이 들어왔다.

    아마 공간 이동과 같은 마법을 방해하기 위한 어떤 결계의 작용인 것 같으나 그 모든 걸 무시했다.

    내가 발현한 마기는 그 모든 것을 무시할 만큼 강력했고, 오히려 간섭하려는 마력을 모조리 먹어 치워버렸다.

    마력의 간섭은 사라졌다.

    주변 사물이 빠르게 변했고, 마침내 도착한 곳은 방이었다.

    온갖 화려한 가구로 도배된, 마치 황제가 머물 법한 으리으리한 곳.

    그리고 화려한 레이스가 달린 침실에는.

    드르렁- 요란하게 코를 골며 자는 젊은 사내가 있었다.

    헝클어진 황금빛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붉게 물든 볼. 아마 어제도 거하게 술을 먹은 듯 취기가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야!”

    툭- 녀석을 깨우기 위해 가볍게 쳤다.

    “으음...”

    하지만 미동만 있을 뿐, 좀처럼 일어날 생각을 하질 않는다.

    그래? 그렇다면.

    뿌득!

    “끄아악!”

    내가 준 힘에 의해 검지가 기이하게 뒤틀려버린 녀석은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끄윽, 이, 이게 무슨...헛! 너, 너는 누구냐?!”

    고통에 몸부리치던 녀석이 나를 발견하고서는 눈을 부라렸다.

    “나? 네 녀석을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럽게 만들어준 사람.”

    나는 씨익 웃으며 녀석의 목을 움켜쥐었다.

    “컥!”

    다른 이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고통에 몸부림치는 녀석.

    이 나약하고 하찮은 벌레 녀석을 처리하는 건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건 아네타 누님이 겪었던 고통과 억울함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스스스- 기세를 확장하여 황실 안을 샅샅이 조사했다.

    ‘오호라?!’

    마침 국정 회의가 열리고 있는 듯 황제를 비롯한 대신들이 모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곧바로 공간을 넘었고.

    쿵!

    회의를 위해 마련된 원형의 테이블 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무, 무슨?!”

    “누구냐!”

    “폐하를 보호해라!”

    갑작스레 나타난 날 발견한 장내에 소란이 일었다.

    “아악! 글레이드!”

    3황자의 어미로 짐작되는 귀부인의 뾰족한 비명이 울려 퍼진다.

    “감히!”

    “녀석을 잡아라!”

    호위를 위하여 대기하고 있던 근위병이 난입하며 나에게 접근하려고 했다.

    하지만.

    「멈춰라,」

    고오오오!

    지금껏 한 번도 진심인 적 없었던 나의 의지를, 그 절대적인 기세를 풀어놓았다.

    “흡!”

    “으읍!”

    그리고 장내의 시간이 멈췄다.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움직일 수 있는 건 나 하나뿐.

    “모두 만나서 반갑다.”

    나는 미소를 지은 채로 주위를 한 번 둘러봤다.

    “내가 여기에 오게 된 건 다른 게 아니라...”

    뿌득!

    “끄아악!”

    말을 하는 도중 녀석의 약지를 부러뜨렸다.

    “꺄, 꺄악!”

    “3황자님!”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그래. 내가 원하는 광경이 이것이다.

    “...벌레보다 못한 빌어먹을 망나니 새끼의 공개처형을 위해서다.”

    아무리 망나니라고 하지만 녀석 또한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존재일 터.

    그렇기에 이곳에 왔다.

    이 망나니 녀석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보는 앞에서 가장 처참하게, 그리고 잔혹하게 처형하기 위해서 말이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