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27화 (27/161)

#   27 - 3745738

#

Chapter 26

“너...아니, 당신은...?”

“아서 왕자?”

아무리 소국의 왕자라 해도 명색이 1왕자라 기억은 하는 모양이다.

“그래, 나다.”

“어흠!”

내 태도에 헛기침을 터뜨리며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아서 왕자님. 예의를 지키시지요. 이곳은 소튼 왕국이 아니라 임펠 제국의 이슈레아 백작가입니다.”

기분이 매우 좋지 않다.

이 이상 건드리면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썰어버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수백 년 동안 마족 녀석들을 죽이다 보니 살육에 대해서 무감각해졌다.

살의가 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손이 움직이고 있는 것.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무나 막 죽이는 건 아니지만, 이대로 가다가는 대륙에 내 지인을 제외한 누구도 남지 않을 기세다.

대륙에 있는 모든 이를 죽일 생각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 자제할 필요가 있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그렇다고 말을 예쁘게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예의라는 건 서로를 존중했을 때 나오는 거고. 내가 너희들에게 예의를 차릴 이유가 없는데?”

그리 말한 후 아공간을 열어 관을 꺼냈다.

“자, 이걸 보고 내게 할 말은?”

“...”

관 안에 누가 안치되어 있는지 잘 알고 있을 녀석들은 순간 입을 다물었다.

“왜 말이 없지?”

“...아네타 공주님의 죽음에 관해서는 참으로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건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 원인을 알 수 없는 괴질...”

덜컥!

하지만 나는 녀석의 헛소릴 듣지 않은 채 관의 뚜껑을 열었다.

“으음?!”

드러난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녀석들.

“놀랐어? 하긴 놀랍기도 하겠지. 저 작은 소국에서 8써클의 환영 마법을 지울 줄 예상이나 했겠냔 말이야.”

나는 눈빛에 힘을 담아 흉계를 꾸몄을 이슈레아 백작가의 세 놈을 차례차례 응시했다.

“그러니 예의네 뭐네 지껄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지금 너희가 이렇게 목이 붙어 있는 것만 봐도 내가 충분히 참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으니까.”

“...”

말이 없다.

8써클 환영 마법으로 외상을 숨겼다면 괴질이라고 뻔뻔하게 우겼을 테지만, 이렇게 증거가 명백하니 당황할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녀석들이 놀라건 말건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다.

“그러니까 이제 말해. 대체 왜 누님이 이런 꼴로 죽어야만 했는지.”

내가 원하는 건 진실이다.

녀석들이 말하는 대단한 백작가의 안주인이 왜 이렇게 처참하게 구타를 당했는지.

누가 그런 짓을 했으며 또 왜 이 대단하신 백작가는 괴질이라며 거짓을 말했는지, 그 모든 것에 대한 진실 말이다.

“...모릅니다.”

잠깐 당황한 모습이던 갈리안. 녀석은 어느새 평정을 되찾은 듯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

“모른다?”

“그렇습니다. 분명 아네타 공주님은 원인 불명의 괴질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셨습니다.”

“하하. 아직도 괴질 타령이라고? 저 외상을 봤으면서?”

“정말 모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 알 수 없는 괴질이 외상을 일으키는 특수한 병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아하! 그 괴질이라는 게 손과 발이 달려서 사람을 마구잡이로 때릴 수도 있나 보지?”

“왕자님. 무슨 생각을 품고 이곳에 오셨는지 모르겠으나 우리 또한 아끼는 사람을 잃어 무척 슬픕니다. 괜한 오해로...”

“오해라. 거참 쉽게 말씀을 하시는군요.”

막 손을 쓰려던 날 만류한 건 펠리드였다.

지금껏 뒤에서 관전만 하고 있던 녀석은 내가 언제 손을 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던 듯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소중한 사람이라. 글쎄요.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것 치고는 어떠한 슬픔도, 아니 오히려 지극히 태연해 보이는 건 제 착각입니까?”

“사람은 언젠간 죽게 되는 법. 언제까지 슬픔에 묻혀 살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펠리드의 지적에도 갈리안은 태연했다.

과연 제국이라는 거대한 정치판에서 구른 이답게 뻔뻔함 하나는 정말 끝내주는 것 같다.

“하하. 삶을 초탈하신 그 모습 잘 기억해 두고 있겠습니다. 혹 나중에 형제나 자식이 죽었을 때도 이리 태연하게 반응할 수 있는지 확인할 테니 꼭 초대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하하하. 역시 내 동생!

그래도 제국의 백작에게 저렇게 막 나가다니.

하여간 저 똘끼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그리고 조금 전부터 원인 불명의 괴질이라 자꾸만 우기시는데 말입니다. 제가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누나의 상세를 살폈습니다만, 그건 완전 개소리라는 말이죠.”

평소 차분한 모습의 펠리드가 아니었다.

녀석은 나만큼이나 아네타 누님의 죽음에 분노하고 있었다.

“그 무슨...”

“자, 제가 지금부터 여러분들이 얼마나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는지 짚어드리죠.”

누님의 시신이 안치된 관으로 다가간 펠리드.

“일단 멍이 든 장소를 살펴보죠. 대부분이 얼굴과 복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어딜 봐도 누군가가 가장 쉽게 때릴 수 있는 얼굴과 배를 가격한 것을 알 수 있죠. 아, 물론 아주 특별한 괴질이 있어서 얼굴과 복부에 이런 외상을 보여줄 수도 있겠죠. 그렇지 않습니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펠리드가 갈리안과 이슈레아 가문의 머저리들을 차례로 훑었다.

“...”

하지만 그들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할 뿐 적극적으로 변명이나 다른 행동을 취하진 않았다.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서. 비록 여기서 보여줄 순 없으나 누나의...은밀한 부위가 충격과 마찰 때문에 상당 부분 찢겨 나갔더군요.”

말을 하는 도중에도 입술을 깨문다.

누나의 죽음을 밝히기 위한 녀석의 노력은 광기라고 생각될 정도로 집요한 면이 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는 나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광기 말이다.

“그것은 부부 관계를 하다가...”

“제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중간에 끼어들려는 갈리안의 말을 막은 펠리드가 이번에는 누님의 입술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입술 안. 여길 자세히 보면 혀가 반쯤 잘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리하게 잘려 나간 게 아니라 뜯기듯 거친 단면을 보면 누나 본인이 이를 사용해서 자결을 시도했음을 알 수 있죠.”

펠리드의 말처럼 누님의 혀는 반 정도가 잘려있었다.

그건 어딜 봐도 이를 사용해 스스로 자결하려고 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상처.

“자, 이 모든 단서를 미루어 짐작해 보자면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누님의 시신에서 손을 뗀 펠리드가 일어섰다.

“아네타 누나는 죽기 전 누군가가 요구한 성관계를 거부했고, 그로 인해 구타를 당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억지로 관계를 시도했고, 이에 수치심을 느낀 누나는 자결을 시도했다.”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말을 이어가며 이슈레아 백작가의 세 사람을 차근차근히 훑는다.

“물론 정확한 사인은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 일로 인해 누나는 죽었고, 백작가는 그 사실을 알고서도 환영 마법을 사용해 이를 감추려고 했다. 원인 불명의 괴질이라는 말도 안 되는 변명으로 일관한 채로.”

“...”

펠리드가 결론을 도출하는 순간에도 별다른 말이 없다.

“다시금 묻겠습니다. 여러분, 아직도 누나의 죽음을 괴질로 우기실 작정이십니까?”

“...”

처음에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실은...”

지금껏 단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던 누님의 남편 그레이 백작. 그가 말을 꺼내려고 했다.

“그레이. 너는 나서지 말거라.”

갈리안이 그를 제지했다.

“아버지!”

“나서지 말라고 하였다!”

갈리안의 말에 결국 어깨를 축 내린 그레이는 이내 펠리드와 날 한 차례 응시하더니 등을 돌려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결국, 거기까지 유추하셨군요. 더는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던 갈리안.

“모든 비밀을 털어놓겠습니다. 허나 이곳에서는 좀...”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안내하시죠.”

펠리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갈리안과 카브론이 걸음을 옮겼다.

물론 나와 펠리드는 그 뒤를 따랐다.

“...”

“...”

걸어가는 내내 대화는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곳.

“비밀 대화를 나누기엔 적합하지 않은 장소 같습니다만?”

지하에 마련된 연무장.

펠리드의 말처럼 그곳은 대화를 나누기엔 적합하지 않은 장소였다.

“명을 재촉하는구나 소국의 왕자들이여.”

조금 전과 완전히 태도를 달리한 갈리안이 차갑게 우릴 응시했다.

척척- 그와 함께 모습을 드러내는 백작가의 기사들.

이곳에 오기 전부터 미리 준비한 듯 무장한 녀석들은 매서운 기세를 발산하고 있었다.

“세상에는 알면 안 되는 것들이 있다. 아니, 설령 알고 있다고 해도 모르는 척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지.”

그리 말한 갈리안과 카브론, 두 형제도 살의를 일으키며.

“너희에게 죄가 있다면 알지 말아야 할 비밀을 들추어내려고 한 것.”

스릉- 아예 작정한 듯 검집에서 검을 빼낸다.

“이 씨발 새끼들아!”

그와 함께 분노한 펠리드가 고함을 질렀다.

“누나의, 혈육의 사인을 묻는 건데 뭐? 세상에는 몰라야 하는 비밀이 있다고? 이런 미친 새끼들을 봤나. 이 새끼들아. 너희 형제나 자식을 죽였는데 그게 알면 안 되는 비밀이라고 하면 너희는 아, 그렇구나. 알겠습니다, 그러면서 수긍하겠냐, 씨벌 새끼들아!”

평소에는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녀석이지만, 한 번 폭발하면 그 사나운 본성이 여과 없이 나온다.

어렸을 때도 그랬다.

참고, 참고 또 참다가 한 번 폭발하면 나도 녀석을 말리지 못했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러한 상황이었다.

“감히...”

“감히는 씨발. 염병하고 자빠졌네. 어휴, 이런 병신 같은 새끼들 목숨 하나 살려보자고 내가 그 지랄을 떨었다니. 형님!”

녀석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제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이 씨벌 새끼들은 살려둘 가치가 없는 해충입니다. 이참에 그냥 싹 정리하시죠.”

“어, 물론 그래야지.”

어쩌면 작은 기대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펠리드라면, 이 똑똑한 녀석이라면 그나마 대화로 상황을 잘 이끌어나갈 수 있을 거라고.

그러나 녀석과 나는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대화라는 것도 통하는 사람이 있고, 통하지 않는 부류가 있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녀석들은 대화라는 게 통하지 않는 개새끼들이었다.

“마음껏 발악해라. 어차피 너희는 여기서 죽...”

쿵!

그러나 녀석은 죽음이란 단어를 내뱉지 못했다.

장내를 지배한 내 기세가, 절대적인 의지를 느꼈기 때문이다.

특히 나름 경지에 이른 기사 녀석들이니 곧장 심상치 않은 상황을 감지했을 터.

“이, 이놈...”

“뭣들하고 있느냐. 어서 녀석들을 죽여라!”

녀석들이 곧장 대기하고 있는 기사들에게 명령했고.

파파팟- 20명에 이르는 기사단이 지면을 박차며 내게 쇄도했다.

“머저리들.”

하지만.

스팟- 내 손에서 피어난 궤적이 공간을 갈라버렸고.

투투툭-

육신과 분리된 기사들의 머리가 지면에 떨어졌다.

“어헉?!”

“이, 이 무슨!”

고작 하나의 동작.

그 동작으로 인해 5성 이상의 경지를 자랑하는 기사 수십이 순식간에 죽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눈을 부릅뜬 백작가의 두 형제.

“컥!”

“케, 켁!”

그리고 나는 두 형제의 목을 움켜쥐었다.

비록 어느 정도 경지에 달한 기사 같다만 내 움직임을 방어할 정도의 수준까지는 아니다.

“나는 분명 사실을 말할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그 기회를 걷어찬 것으로도 모자라 나와 펠리드를 죽이려고 해?”

그나마 누님과 인연이 있는 가문이었기에 나름의 인정을 베풀려고 했다.

그런데 녀석들은 그 기회를 걷어찼다.

“사람이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하는 게 세상 이치라더라.”

몸부림치고 있는 갈리안을 응시했다.

녀석은 어떻게든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었지만, 힘의 원천인 기를 통제하고 있기에 어떠한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지금부터 내가 벌을 줄 테니까 달게 받아라.”

뿌드득!

손에 힘을 주어 단숨에 녀석의 목뼈를 박살 냈다.

“커, 커커컥!”

형의 죽음을 목격한 카브론이 격앙된 신음을 토해냈다.

하지만 녀석의 눈동자에 깃든 건 형의 죽음에 대한 분노나 애도가 아니라 공포였다.

이게 바로 야비한 녀석들의 특징이다.

부모나 형제가 죽어도 제 살길만 걱정하는 비열한 성향.

쿵!

“케, 케헥...”

바닥에 내팽개쳐진 녀석은 참았던 숨을 토했다.

“너희 백작가가 자랑하는 기사단도, 그리고 네 형도 죽었다. 이제 사실을 말할 마음이 생겼나?”

나는 홀로 남은 녀석을 향해 물었고.

“네, 네네.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목숨만은...”

“필요 없어.”

“네?”

“필요 없다고!”

콰직!

그와 동시에 녀석의 머릴 밟아 단숨에 목숨을 끊어버렸다.

“비밀을 털어놔야 할 사람은 따로 있거든.”

그레이 백작.

누님의 남편이었던 그의 입을 통해 이 사건의 전말을 들을 것이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