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26화 (26/161)
  • #   26 - 3743142

    #

    Chapter 25

    『1년 전 어느 날.』

    “1왕자 전하. 시각이 늦었습니다.”

    “공주님께선 내일 먼 길을 떠나셔야 하니 조금은 자중해 주심이...”

    아네타 공주가 머무는 제3 별궁.

    평소라면 적막하기 그지없는 그 공간에 때아닌 소란이 일고 있었다.

    “감히, 이것들이 내가 누군 줄 알고.”

    늘 그렇듯 술에 취한 아서 왕자는 자신을 말리는 시종들을 거칠게 밀어내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누님! 혼인 축하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내일이면 성을 떠나는데 이 동생 얼굴도 보지 않으시는 겁니까!”

    그가 난동을 피우는 이유는 간단했다.

    서운함.

    10명이 넘는 형제자매 중 같은 어머니를 둔 유일한 이 아닌가.

    그런데 내일 혼인을 위해 별궁을, 아니 왕국을 떠나야 하는데 작별의 인사도 없다니.

    아무리 평소에 왕래가 없고, 또한 아네타 쪽에서 아서를 기피하고(사실은 거의 경멸에 가깝지만) 있다고 해도 마지막 작별의 인사쯤은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1왕자 전하. 정말 이러시면 곤란...”

    난색을 보인 시종들이 아서를 제지하려던 그때.

    “되었다.”

    찬 바람이 쌩쌩 부는 한 마디와 함께 아네타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잠옷을 입은 푸른 머리칼의 미녀.

    왕국에서도 소문난 미녀인 아네타는 특유의 무심한 표정으로 아서를 노려보고 있었다.

    “공주마마!”

    지금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 아네타의 등장에 시종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 일찍 임펠 제국으로 떠나야 하는 신부가 어찌 아직도 잠을 자지 않고 있단 말인가.

    만약 왕이, 아니 세그릭 공작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한바탕 폭풍이 몰아치게 될 것이다.

    “공주마마 빨리 잠을 청하셔야...”

    “이셀.”

    하지만 시종은 표독한 아네타의 시선에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네가 공작이 보낸 눈이라는 건 궁 안의 모두가 알고 있으니 그렇게 티를 낼 필욘 없다. 하지만 이건 선을 넘었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꺼라.”

    “...알겠습니다, 마마.”

    고개를 숙인 이셀이 물러나자 아서를 만류하고 있던 시종들 모두가 그 자리를 벗어났다.

    “누님...”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아네타에게 다가간 아서.

    평소 망나니 왕자의 주사(酒邪)를 알고 있는 이라면 곧 행패를 부릴 것으로 생각할 테지만.

    “앉아라.”

    “...네.”

    의외로 아서는 고분고분했다.

    알 만한 사람은 알고 있는 사실.

    아서는 왕은 물론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개망나니 왕자였지만, 오직 아네타의 말은 고분고분히 따랐다.

    “아서.”

    “네, 누님.”

    “서운했니?”

    “...네.”

    평소라면 드러내지 않았을 서운함이 취기를 통해 드러난다.

    “내가 널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을 텐데도?”

    “끅. 누님 말입니까? 그야 벌레로 취급하겠죠.”

    “벌레? 아니. 벌레보다 더 못한 존재지.”

    “크흐흐. 그렇군요...”

    모욕적인 말에도 아서는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었고, 아네타는 그런 아서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아서.”

    “...네.”

    “나는 네가 밉다.”

    “네?”

    “폐하의,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네가 밉고, 사내로 태어나 1왕자가 된 것도, 네가 가진 모든 게 밉다.”

    아네타는 꿈이 많은 여자였다.

    그러나 왕가에서 태어난 여인의 한계는 명확했다.

    고작해야 정략의 도구로 이용되는 신세. 아네타 또한 그 신세를 벗어나지는 못했고,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그랬습니까? 하지만 그건 제가 선택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 그렇지. 너는 죄가 없지. 그저 그 모든 복을 타고났을 뿐.”

    아서에게서 시선을 돌린 아네타는 별이 총총하게 박힌 밤하늘을 바라봤다.

    “아서.”

    “네.”

    “지금처럼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

    갑작스러운 말에 아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개망나니처럼 말입니까?”

    “그래. 어차피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 눈치 볼 것 없이 하고 싶은 것하고 살아.”

    ‘나는 그렇게 살고 싶어도 못 사니까.’

    속마음을 숨긴 아네타는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운했다고 했지? 그러면 여기서 작별하자.”

    아서 쪽으로 몸을 돌린 아네타가 접근해서는 비틀거리는 그를 안아주었다.

    “잘 지내.”

    꼬옥 안고서는 가만히 등을 토닥여준다.

    그것이 아서가 기억하는 아네타와의 마지막 만남이었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누나의 온기를 느껴본 밤이었다.

    *

    잊고 있었던 과거의 편린이 뇌리에 박혀 든다.

    내 기억 속 누님의 얼굴은 세상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여인이었는데, 관속에 반듯이 누운 여인은 창백하기 그지없다.

    “저, 전하...”

    내 기세에 눌린 귀족 녀석이 두려움에 몸을 떤다.

    무의식중에 흘러나온 기운이 녀석의 심신을 제압한 모양이다.

    팟- 기세를 거둔 후 녀석을 노려봤다.

    “말하라.”

    “아네타 알슈타드 공주님께서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보름 전부터 알 수 없는 괴질에 걸려...커,컥!”

    나는 녀석의 말을 다 듣지도 않은 목을 움켜쥐었다.

    항거할 수 없는 힘에 허공에 뜬 녀석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발을 굴렀다.

    그러나 녀석이 내 손아귀를 벗어날 길은 없다.

    “분명히 말했을 텐데. 거짓을 말하면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고.”

    “컥...전 사실을...커헉!”

    “네 녀석 눈에는 저게 괴질에 걸린 것으로 보이나 보지?”

    나는 관에 누워 있는 아네타 누님의 시신을 가리켰다.

    분명 외관상 깨끗해 보이지만, 내 눈은 속일 수 없다.

    스윽- 마기를 발현하여 시신에 펼쳐져 있는 환영을 걷어냈다.

    “이것은?!”

    환영이 걷힌, 누님의 진실한 모습을 본 펠리드가 경악했다.

    어딜 봐도 주먹으로 가격한 폭력의 흔적이 얼굴, 그리고 몸 곳곳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창백한 피부에 찍힌 보랏빛 자국은 너무도 선명하게 대비되어 누님이 느꼈을 고통을 쉽게 짐작하게 해주었다.

    “저, 전 모르는...”

    “모른다?”

    인제 와서 발뺌하려는 녀석을 응시했다.

    “네 녀석은 이슈레아 가문을 대표해서 온 자가 아니냐? 일국의 공주가 이리 처참한 상태로 죽었는데, 모른다고 발뺌하면 해결이 되는 건가?”

    쿵!

    고통스러워 말을 제대로 잇질 못하는 녀석을 지면에 떨어뜨렸다.

    “다시 말해주지. 네가 알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소상히 말해라. 재차 기회를 줬음에도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면...”

    굳이 뒷말을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차, 참으로 무례하십니다!”

    하지만 녀석은 내 기대를 져버렸다.

    단단히 화가 난 듯 씩씩거리며 몸을 일으킨 녀석이 나를 매섭게 노려본다.

    “나는 대 임펠 제국 백작가의 대표로서 이 자리에 온 것입니다. 한데 어찌 이런 취급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대 제국.

    그래. 임펠 제국의 백작가 사람이라면 소국의 왕쯤은 무시할 수 있겠지.

    하지만 네 녀석은 지금 장소를 잘못 찾았다.

    “그 알량한 제국의 백작가로 짐을 위협할 생각이냐?”

    “감히! 아무리 전하라 해도 제국의 백작가를 무시하는 행동을...”

    “시끄럽군.”

    사실을 털어놓지 않을 거라면 더는 대화를 나눌 이유가 없다.

    스윽- 내 손에서 피어난 한 줄기 궤적이 녀석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고.

    툭!

    늘 그렇듯 육신과 분리된 목이 지면을 굴렀다.

    “폐, 폐하!”

    놀란 귀족들이 분리된 시신을 바라본다.

    그리고.

    “폐하, 그는 임펠 제국 백작가의 사람입니다!”

    “어찌, 어찌 손을 쓰셨단 말입니까!”

    “성급하셨습니다. 하아,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펠리드의 추천으로 새로이 중요 귀족에 오른 이들. 그들은 나를 책망하기 바빴다.

    이해는 한다.

    임펠 제국이라는 거대한 국가의 소속원을 건드렸을 때 무슨 일이 생길지는 빤하기 때문이다.

    “펠리드.”

    그렇기에 녀석들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심각한 표정의 펠리드를 불렀다.

    “네, 폐하.”

    “지금 당장 이슈레아 백작가로 이동할 생각이다. 같이 가겠느냐?”

    어떠한 사전 설명 없이 물었고.

    “당연히 그리해야지요.”

    아네타 누님의 시신을 흘깃 바라본 녀석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아마 녀석 또한 나와 같은 마음일 터.

    스윽- 녀석의 대답을 들은 후 누님의 시신이 든 관을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라시아스.」

    곧바로 별궁에 있는 그라시아스에게 의지를 전달했다.

    「부르셨습니까, 만수의 왕이시여.」

    「잠깐 외출할 테니 그동안 별궁을 부탁한다. 혹 무슨 일 있으면 곧바로 부르고.」

    「염려하지 마십시오. 별궁에는 그 누구도 침입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의지를 끊었다.

    적당히 방비도 해놨으니 이제 해야 할 일은 하나.

    누님의 죽음과 연관된 이슈레아 백작가를 터는 것이었다.

    *

    백작가의 집무실.

    이슈레아 백작가를 대표하는 3인의 사내가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이 눈치를 채겠습니까?”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 사내 카브론 이슈레아가 말했고.

    “8써클의 환영 마법이다. 그 작은 왕국에서 고위급 마법을 파훼할 수 있는 이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느냐?”

    전대 가주이자 현 가주인 아비인 갈리안 이슈레아가 답했다.

    이슈레아 백작가를 상징하는 짙은 갈색 머리칼을 단정하게 빗어 넘긴 중년의 사내는 조금은 긴장하고 있는 동생 카브론과는 달리 지극히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

    그의 시선은 조금 전부터 한마디 말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앉은 젊은 사내에게 향했다.

    “그레이. 아직도 이 아비의 결정이 불만인 것이냐?”

    뚜렷한 이목구비 그리고 강직한 인상의 사내는 현 이슈레가 가문의 가주이자 백작의 위를 세습 받은 그레이 백작이었다.

    “...”

    평소와는 달리 아버지 갈리안의 말에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항명의 의지를 나타내고 있는 것.

    “누누이 말하지 않았더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고.”

    “...아뇨. 충분히 선택할 수 있었고, 진실을 밝힐 수도 있었습니다.”

    마침내 입을 뗀 그레이 백작.

    “아버님은 두려웠을 뿐입니다. 그들과 맞섰을 때 가문이 입어야 할 피해를.”

    “당연하지 않으냐!”

    묵묵히 그레이 백작의 말을 듣고 있던 갈리안이 호통쳤다.

    “우리가 어디 보통 가문이더냐. 오랜 세월 동안 임펠 제국을 지탱해 온, 그야말로 역사가 깊은 가문이다. 그런데 고작 계집 하나로 인해 그 모든 것을 잃게 생겼는데, 어찌 그 위험을 감수한단 말이냐!”

    “아버지에게는 그깟 계집일 수 있지만, 제게는 소중한 부인이었습니다.”

    그레이 백작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의 아버지나 숙부가 그녀를 정략의 도구, 고작해야 계집 정도로 생각하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니었다.

    비록 정략으로 인한 결혼이었지만, 그는 그녀를 사랑했다.

    어떨 때는 호기롭고, 또 어떨 때는 요조숙녀와 같은, 온갖 매력이 넘치는 그녀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는 그 ‘사건’으로 사랑하는 부인을 잃었고, 주변의 강요로 인해 침묵해야만 했다.

    이러한 모든 사실이 그를 비참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레이. 정신 차리거라. 고작해야 계집 하나였을 뿐이다. 앞으로 얼마든지...”

    “숙부님!”

    막 숙부의 말에 반박하려던 그때.

    콰앙!

    한 차례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 백작가를 뒤흔들었다.

    “...”

    “...”

    서로 눈을 마주친 세 사람이 동시에 몸을 움직였다.

    스팟- 잔상을 남기는 놀라운 움직임.

    그도 그럴 게 이슈레아 백자가라면 제국에서도 꽤 위상이 높은 무가(武家)였다.

    세 사람 모두 7성의 경지에 오른 검사.

    당연히 그 움직임을 민첩했고, 눈 깜짝할 사이 소란이 일어난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누구냐!”

    “감히 누가 이슈레아 백작가에서 소란을 피우는 것이냐!”

    기를 담은 그들의 음성이 장내를 떨어울릴 무렵.

    “나다, 이 십새끼야!”

    눈앞을 가리는 푸른 머리칼을 쓸어넘긴 사내, 아서가 매서운 눈빛을 발하며 장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