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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25화 (25/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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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24

    “...”

    은빛 사자 가면을 쓴 사내는 할 말도 잊은 채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고정된 곳.

    본래는 클론을 생산하는 비밀 저택이 있어야 할 그곳은 폐허가 되어 있었다.

    아니, 폐허라는 설명으로는 부족하다.

    보이는 것이라곤 엄청난 충격으로 생겨난 크레이터뿐.

    울창한 삼림을 자랑하던 주변 환경도 모조리 파괴되어 본래의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변해버렸다.

    “도대체 누가...?”

    가장 먼저 떠오른 의문은 도대체 누가 이런 광경을 만들어낼 수 있냐는 것이었다.

    이건 어딜 봐도 9써클 마법인 메테오 스트라이크를 통해 생겨난 흔적이었다.

    물론 단순히 9써클 마법의 발현이었다면 이토록 놀라진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캐스팅 속도였다.

    딜레이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수십 발의 운석이 동시에 떨어졌다.

    인간의 영역에서 발휘할 수 있을 만한 권능이 아닌 것.

    ‘이 정도 마력의 파동이라면 적어도 칠계(七界)의 귀족급이 움직여야 하건만.’

    그만한 존재를 소환할 이가 대륙에 있던가?

    아니.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위대한 일원을 제외하면 마땅한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다.

    생각하면 할수록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자.

    【세계의 기억】

    9써클 마법인 세계의 기억을 발현했다.

    비록 그 마법 사용으로 인해 아끼는 클론의 생명력이 대거 빠져나가겠지만, 어차피 인형. 얼마든지 다음 대체를 구할 수 있으니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사아아-

    빛의 입자가 모여들어 특별한 형상을 만든다.

    그것은 그 공간에서 펼쳐졌던 광경, 세계가 지켜보고 있던 기억이었다.

    「빙고!」

    하지만 정작 펼쳐진 건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실루엣과 같이 외형을 확인할 수 없는 무언가가 사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존재의 흔적을 보고 있다는 건 네 녀석이 모든 것의 배후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긴데.」

    그것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남긴 존재의 흔적이었다.

    ‘맙소사!’

    그 순간 사내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9써클 마법인 세계의 기억을 속였다. 그건 단순히 마법을 속인 게 아니라 세계의 기억을 조작했다는 말이기도 했다.

    「본래는 조금 더 기다려서 잡아볼까도 했지만, 이렇게 지저분한 짓거릴 벌이는 녀석이라면 또 클론을 보냈겠지?」

    “...”

    그의 정확한 예측에 사내는 침묵했다.

    어차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존재도 아니니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었다.

    「어차피 네 녀석을 잡아봐야 얻을 건 없을 테고. 그래서 뭘 할까 고민하다가 선물을 하나 준비해 봤어.」

    실루엣만 남은 존재가 웃었다.

    「읏차!」

    힘을 주는 기합성과 함께.

    콰콰콰콰콰콰쾅!

    존재의 흔적이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고.

    “이, 이익!”

    어떤 대응을 할 새도 없이 일어난 폭발에 휘말린 클론은 또 한 번의 소멸을 맞이해야만 했다.

    *

    「...」

    「...」

    곰돌이 봉제 인형과 나는 미꾸라지가 노려보고 있다.

    언뜻 보기엔 우스꽝스러운 광경이라고 볼 수 있지만, 정작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웃음기를 찾아볼 순 없었다.

    마치 무거운 돌덩이가 내려앉은 듯 무거운 장내의 분위기.

    쿠쿠쿠!

    그 근원은 우스꽝스러운 광경을 연출하고 있는 인형과 미꾸라지였다.

    ‘더는 안 되겠다!’

    싸한 분위기를 더는 참을 수 없었던 펠리드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저기...”

    어떻게든 둘의 싸움을 말리려고 했지만.

    「빠져 있어라, 인간. 감히 네가 여기가 어디라고 끼어드는 것이냐!」

    봉제 인형, 1,315호는 무게를 잡으며 말했지만.

    「그 뜻을 따르겠습니다.」

    오히려 난리를 칠 줄 알았던, 대륙을 피로 물들였던 암룡 그라시아스는 그 뜻을 순순히 따랐다.

    「야, 어딜 가. 너 쫄았냐?」

    「어휴. 상대를 말아야지. 수준이 낮아서 원...」

    「쫄았지? 쫄았네! 새끼, 저것 봐라. 그저 대단하신 아빠만 믿는 녀석이 저렇다니까. 그러니까 앞으로 까불지 말고...」

    “인마, 너나 나대지 마.”

    퍽!

    「뛟!」

    어느새 날아온 손에 뒤통수를 맞은 1,315호.

    「감히 어떤 새끼...응?」

    감히 최상급 마족의 뒤통수를 때리다니.

    참을 수 없는 분노를 표출하던 1,315호는 곧 얌전한 고양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마, 마신왕이시여...」

    장내의 그 누구도 언제 접근했는지 인지하지 못했다.

    아서. 그가 1,315호의 뒷덜미를 잡은 채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이 새끼, 내 앞에서는 고분고분한 척 하더니 다 연기였네?”

    이것 봐라, 이것 봐.

    내 앞에서는 얌전한 고양이처럼 연기하더니 자리를 비우기 무섭게 지랄 염병을 하고 앉아 있네.

    하여간 마족 녀석들은 믿을 게 못 된다니까.

    “호랑이 없는 굴에서 왕 노릇 제대로 하고 있더라.”

    「그, 그것이 아니오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내가 아끼고 아끼는 동생에게 대하는 태도 아주 잘 봤다.”

    「...」

    “너 감점 5점. 그리고 그라시아스.”

    「부르셨습니까, 만수의 왕이시여.」

    “넌 그래도 싸가지가 있는 것 같으니까 추가점 3점.”

    「감사합니다!」

    그 점수는 내 마음의 신뢰도.

    물론 녀석들은 그 점수가 정확히 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감점된 인형은 울상, 추가점을 받은 미꾸라지는 화색을 해 보였다.

    “폐하!”

    “폐하!”

    펠리드와 타일로가 기뻐하며 엉겨 붙는다.

    평소에는 잘 그러지 않는 녀석들이 이럴 정도면 어지간히 분위기가 살벌했나 보다.

    “그런데 어딜 그렇게 다녀오신 겁니까?”

    “할 일이 있다고 했잖아. 아, 말이 나온 김에.”

    나는 마기를 움직여 소환 마법을 발현했다.

    슈욱!

    마법의 발현과 함께 장내에 모습을 드러낸 건.

    “여, 여긴...?”

    “엄마!”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에 두려워하고 있는 모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음의 위기에 처해 있었던 조릭 형님의 가족이었다.

    “펠리드.”

    “네, 폐하.”

    “남는 별궁 있지?”

    “남는 별궁이야 많습니다만...”

    펠리드가 의아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다.

    갑작스레 소환된 모자와 별궁의 상관 관계를 연상하기 위하여 애쓰는 모습이다.

    “이분들을 별궁에 모실 거야.”

    “네?!”

    놀란 펠리드가 나와 모자를 번갈아 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별궁은 왕족만이 출입할 수 있는 공간. 외부인은 출입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곳이었다.

    “뭘 그렇게 놀래. 여기 이 가족분들뿐만 만이 아니라 앞으로 객식구가 상당히 많이 늘어날 텐데.”

    원래는 각자 살아가는 대로 내버려 두려고 했지만, 위대한 일원인지 뭔가 하는 녀석들 때문에 불안해서 안 되겠다.

    최소한 원정대원들의 가족들만이라도 별궁으로 모셔 최대한 안전을 확보할 것이다.

    그리고 그 수문장으로 적당한 녀석들도 물색한 상태고 말이다.

    「왜 그렇게 보시는지...?」

    「만수의 왕이시여. 하실 말씀이라도?」

    마신 후보 1,315호와 암룡 그라시아스 정도면 괜찮은 문지기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 * * * * * *

    “삼천이백오십다섯.”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연무장.

    포근한 햇살을 받으며 앉아 타일로의 횡 베기를 지켜보는 중이었다.

    “삼천이백오십여...”

    “아니. 카운트 다시.”

    막 3,256번째 횡베기를 끝마친 녀석에게 지시했다.

    “...네?”

    “동작 틀렸잖아. 조금 전과 달리 힘이 꽤 들어간 거 너도 느꼈을 텐데?”

    “...”

    녀석은 불만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지만.

    “시정하겠습니다.”

    이내 태도를 바꾸었다.

    얼마 전 보여준 칼의 노래가 아직 뇌리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삼천이백오십여섯!”

    이내 정성 가득한 동작으로 횡 베기를 완료한다.

    “그래, 이거지!”

    제대로 된 힘의 분배, 그리고 최적의 동선.

    조금 전부터 슬슬 마음에 들지 않았던 동작을 단번에 교정했다.

    하여간 재수 없다니까.

    뭔 말만 하면 저렇게 짠하고 바꿔 버리니까 가르치는 맛이 없다.

    ‘늑대 새낀 줄 알았더니 호랑이 새끼였어.’

    처음 봤을 때도 굉장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켜보면 볼수록 괴물이다.

    마치 검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가르쳐주는 모든 것을 흡수한다.

    이렇게 1년만 가르친다?

    장담하는데 대륙에서 녀석의 검을 받아낼 수 있는 이는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날씨 참 좋다!”

    동작을 교정한 후 바닥에 드러누웠다.

    햇살 때문에 따근해진 바닥의 온도가 등에 스며든다.

    바람은 선선하고 햇살은 포근한, 그야말로 낮잠 자기에 딱 좋은 날씨다.

    “조-옿타!”

    대륙으로 귀환하고 난 후 모처럼 한가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다.

    생각해 보면 귀환한 직후의 하루를 제외하면 편히 쉴 날이 없었다.

    왕국을 좀 먹고 있는 공작과 귀족 녀석들의 반란을 제압했고, 막 나가는 트리안 왕국의 왕을 죽이고 왕위를 플레아에게 넘겨주었다.

    그 과정 중에 1,315호와 그라시아스를 만나서 별궁의 문지기로 거두기도 했고.

    ‘그리고 녀석들의 소원도 좀 이뤘고 말이야.’

    틈날 때마다 왕궁을 나와 원정대원들의 소원을 이뤄줬다.

    트레날 공국의 인기 사탕인 ‘톡톡 사탕’ 먹기라든지 대륙에서 가장 높은 천공의 마탑에 올라가 그 풍경을 감상한다든지.

    비교적 이루기 쉬운 소원을 이뤄가며 그들의 넋을 달래주었다.

    물론 그 소원을 이룬다고 해서 그들이 살아 돌아온다거나 혹은 어딘가에서 그걸 보고 기뻐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999개의 소원은 반드시 내가 이뤄내야만 하는 사명과 같은 것.

    그것을 이루기 전까지 나는 편히 쉴 수 없었다.

    “읏차!”

    생각해 둔 소원을 이루기 위하여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였다.

    “폐, 폐하!”

    나 대신 한창 업무에 치이고 있어야 할 펠리드가 당황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음. 이 녀석이 이런 표정으로 나타날 때면 뭔가 큰 사건이 터졌다는 이야긴데.

    “왜, 또. 무슨 일인데?”

    “급히 확인해 보셔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이 녀석 봐라?

    표정이 침울한 게 평소와는 너무 다른데?

    “알았어. 가보자.”

    조금은 놀라더라도 항상 침착하기만 한 녀석의 변화에 더는 묻지 않고 안내하는 대로 따라갔다.

    도착한 곳은 알현실.

    그곳에는 처음 보는 타국의 귀족 한 명이 근엄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음?’

    하지만 내가 집중적으로 본 건 그가 아니라 옆에 놓여 있는 나무 관이었다.

    알현실에 관을 들고 찾아왔다?

    뭔가 심상치 않긴 하네.

    하지만 굳이 펠리드에게 그 의문을 묻지 않았고, 곧장 왕좌에 앉았다.

    “이슈레아 가문의 대표 케일 이슈레아가 아서 델 알슈타드 전하를 알현합니다.”

    전하라는 호칭을 쓰는 걸 보니 제국의 귀족이로군.

    “폐하. 이슈레아 가문은 임펠 제국의 백작가입니다.”

    가문에 대해 잘 모르는 날 위해 펠리드가 친절히 설명을 해주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다음에 이어지는 부연 설명이었다.

    “...그리고 아네타 공주와 혼인한 그레이 백작의 가문이기도 합니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임펠 제국의 이슈레아 백작가라면 아네타 누님과 혼약을 맺은 가문이었다.

    가만!

    그런데 그 가문에서 관을 보내왔다는 건?

    “전하. 죄송하오나 오늘 이 자리에서 아네타 알슈타드 공주님의 부고를 전하게 되어...”

    하지만 녀석은 말을 하지 못했다.

    콰아아아- 장내를 지배하는 나의 살의로 인해서.

    덜컹!

    나의 손짓에 의해 관의 뚜껑이 열렸고, 창백한 모습의 시신을, 차갑게 식어버린 아네타 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록 그렇게 살가운 사이는 아니었다 해도 내게 그리 모나게 대하지 않은, 그나마 혈육이라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나는 살의가 담긴 눈을 들어 케일이라 소개한 제국의 귀족 녀석을 노려봤다.

    “단 하나도 빼놓지 말고 소상히 말해라. 만약 일말의 거짓이나 빠지는 내용이 있다면 네 녀석은 여기서 살아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아니, 네 녀석만이 아니다.

    누님의 죽음에 관련된 그 누구도 내 손아귀를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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