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15화 (15/161)

#   15 - 3720156

#

Chapter 14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은 노기사가 검을 쥔 채로 전방을 응시했다.

두두두두- 흙먼지를 동반한 굉음이 점차 가까워진다.

“으으...”

곁에 있던 한 병사가, 어린 나이에 징집된 병사 하나가 두려움에 몸을 떤다.

“두려우냐?”

어느새 병사의 옆에 선 노기사의 말에.

“아, 아닙니다!”

습관적으로 아니라고 말했다.

어느 누가 지휘관 앞에서 적 병력이 두렵다고 말하겠는가.

“나는 두렵다.”

하지만 정작 지휘관인 노기사는 두렵다며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드러냈다.

“수많은 전장을 돌아다녔으나 여전히 나는 전쟁이 무섭다. 사람들이 내는 비명과 신음, 그리고 대지에 뿌려지는 살점과 피. 잠이 들 때면 늘 그것이 악몽처럼 나를 괴롭혔다.”

노기사는 수많은 전장에서 활약한 전쟁 영웅이었다.

물론 신분이 비천한 탓에 공을 인정받지 못했지만, 최근 총리대신인 펠리드의 눈에 띄어 남작, 그리고 봉토를 받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말년에 운이 좀 트이는 건가.

그리 생각한 적도 있으나 역시 불운의 여신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전쟁터에서 수많은 이를 죽였으니 그 죄를 받는 것이겠지.’

비록 살기 위하여, 상관의 명령으로 어쩔 수 없이 그랬다고는 하지만, 그는 수많은 인명을 살해했다.

어쩌면 저기 다가오고 있는 적국의 병사들은 그러한 죄를 묻기 위하여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려워해도 된다. 사람인 이상 어찌 두렵지 않겠느냐. 우리 병력은 고작 300인데 적 병력은 5천은 넘으니.”

국경지대를 향해 다가오는 적 병력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5천은 되어 보였다.

하지만 이를 막아서야 하는 아군의 병력은 고작 300.

그것도 노기사와 함께 이곳으로 온 병사들을 제외하면 제대로 전투도 겪지 않은 애송이 병사들이 대부분이었다.

전투가 일어나는 순간 그들을 무참히 살해당할 것이다.

“그러나 물러서면 안 된다. 우리가 시간을 벌지 않으면 도주하고 있을 무고한 백성들이 적들에 의해 살해당할 것이니.”

질 거라는 걸 알면서도 막아선 이유.

그것은 국경지대를 벗어나고 있을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서다.

단단히 준비한 적 병력은 지나가는 모든 곳마다 학살을 자행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조금이나마 시간을 지연시킨다면 그 피해가 줄어들게 될 터.

노기사는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해 두려움을 떨쳐내고 있었다.

“어차피 죽는다면 백성들을 위하여 값어치 있는 죽음을 맞이하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

병사의 등을 한 차례 두드리며 그를 위로한 노기사가 다시금 말 위에 올라탔다.

“소튼 왕국의 기사 더슨 글라이든. 폐하께 하사받은 이 영광스러운 이름의 명예를 걸고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더슨의 외침은 죽음의 공포에 몸을 떨던 병사들의 심신을 조금이나마 안정시켜 주었다.

꽈악- 결심을 굳힌 병사들이 각기 손에 쥔 무기를 꼬나쥔다.

그리고 잠시 후.

“멈춰라!”

웅후한 외침이 울려 퍼지자 무서운 기세로 전진하던 트리안 왕국의 병력이 멈췄다.

따각- 순백의 백마에 탑승한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왔다.

피처럼 붉은 갑옷 중앙에는 비상하는 독수리를 문양이 새겨져 있다.

율리스 더글리안 백작.

트리안 왕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무장 중 한 명이었다.

“소튼 왕국들은 들어라!”

우우웅!

분명 꽤 먼 거리에 있었으나 그 외침은 모두의 귀에 똑똑히 박혔다.

“너희의 왕 아서는 대 트리안 왕국의 사신인 셸린 백작의 목을 베었다. 오늘 이렇게 병력을 일으키게 된 것은 그에 대한 합당한 처벌을 위한 것. 괜한 반항일랑 할 생각 말고 순순히 투항해라. 그리하면 목숨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쓸어버려도 상관없을 전력의 차였지만, 율리스 백작은 명분을 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원래 전쟁이란 게 그렇다.

아무리 압도적인 전력의 차이가 있어도 명분이 없으면 후에 화를 입는 법.

이러한 점을 간과하지 않았기에 적국의 모두에게 그러한 점을 분명히 인지시킨 것이다.

“허허허허!”

이에 대응하여 더슨도 마나를 운용했다.

물론 그 웃음소리는 율리스 백작처럼 웅후하진 않았다. 그러나 분명 모두가 똑똑히 들을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사신으로 온 셸린 백작은 폐하를 모욕하였고, 또한 소튼 왕국의 백성을 능멸하였다. 당연히 그 자리에서 참수해도 이상하지 않은 큰 죄를 지었거늘 어찌하여 그대는 폐하에게 누명을 씌우려 하는가.”

사신 참수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다.

물론 대다수가 무책임하게 사신의 목을 벤 아서 왕을 욕하고 있었으나 더슨의 생각은 달랐다.

소튼 왕국은 매번 트리안 왕국의 눈치를 봤으며, 또한 매번 양보했다.

속국이라도 해도 믿을 정도로 항상 저자세를 보이며 그들에게 굴종했다.

그런데 아서 왕은 어떤가.

즉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무례한 사신의 목을 베어버렸다.

이 얼마나 통쾌한 일이란 말인가!

대다수 귀족과는 달리 더슨은 아서 왕을 진심으로 응원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고.

“무엄하구나!”

물론 율리스 백작의 생각은 달랐지만 말이다.

“내 아량을 베풀어 목숨만은 살려주려 했건만. 감히 셸린 백작을 모욕하고도 살아 돌아갈 생각은 하지 마라.”

“허허. 이미 살아 돌아갈 생각은 없으니 더는 우리를 모욕하지 말라.”

병력이 온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부터 이미 죽음을 초월하였다.

“죽여라!”

그 당당한 모습을 본 율리스 백작은 죽음을 선고했다.

두두두두!

단숨에 쓸어버리기 위한 수백 기의 기마병이 맹렬한 속도로 쇄도한다.

“아서 폐하 만세! 위대한 소튼 왕국에 영광 있으라!”

손에 쥔 검에 마나를 주입한 더슨이 맹렬한 함성을 내지르며 선두에 섰다.

“엄마...”

“으아아아!”

절규에 가까운 외침을 토하는 병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오직 죽음만이 존재하는 길. 병사들은 더슨을 따라 죽음의 문을 향해 다가갔다.

「수고했다.」

막 충돌하기 직전 아련하게 들려온 누군가의 의지.

그 순간 더슨을 비롯한 소튼 왕국의 병사들은 믿을 수 없는 광경, 기적을 목격할 수 있었다.

털썩, 털썩!

말과 함께 세로로 동강 난 적 기마병 수백이 단숨에 허물어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스윽- 더슨은 자신의 어깨에 올라오는 따뜻한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누구...?”

고개를 돌린 순간.

“아아!”

감격에 벅찬 더슨은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폐하!”

그의 앞에는 소튼 왕국의 왕 아서가 희미한 미소를 띤 채로 서 있었다.

*

“짐이 모두 보았다.”

나는 진심으로 더슨과 병사들에게 경의를 표하였다.

“수천의 병력 앞에서도 기개를 굽히지 않았고, 또한 죽음의 공포에 굴복하지도 않았다.”

저벅- 마음고생을 했을 병사들을 한 명씩 위로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대들은 자랑스러운 소튼 왕국의 백성이며 짐은 백성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가장 높은 자리에 앉은 이.”

그들을 지나치며 트리안 왕국의 병력과 마주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아직도 그들은 수백의 기마병이 단숨에 두 동강 난 그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병력을 이끌어야 하는 율리슨지 뭔지 하는 백작도 마찬가지.

“자,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들을 노려보고 있을 무렵 플레아가 다급하게 내 앞을 막아섰다.

“뭐지?”

“제가, 제가 저들을 설득해 보겠습니다. 다행히 아직 백성들이 피해를 받지 않았으니 조금만 참아주실 수 없는지요?”

그나마 내 일부를 엿본 그녀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나섰을 때의 파장을, 오직 피만이 가득할 그 참상의 현장을 말이다.

그렇기에 슬쩍 물러섰다.

살짝 열이 받긴 했지만, 대화로 해결할 수 있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아무리 오랜 마계 생활로 ‘살인’에 대한 감각이 무뎌졌다곤 해도 나도 살인 기계는 아니거든.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인 플레아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전방을 응시했다.

“율리스 백작!”

마나를 실은 그녀의 외침에.

“프, 플레아 공주님...”

“그래도 모른 척하지는 않는군요.”

“...”

자기를 죽이러 왔을 게 빤한 데 저리 대화를 나누는 것도 참 대단하다.

뭐, 무의미한 병력의 희생을 원하지 않는 거겠지.

그녀가 왕위에 오르게 되면 저들 또한 백성이 될 테니 말이다.

“율리스 백작. 왕가의 공주로써, 트리안 왕국의 한 사람으로써 부탁하겠습니다. 제발 병력을 돌리세요.”

“...”

플레아는 진심을 담아, 간곡히 부탁했다.

아니, 표면적으로는 그리 말하면서.

뻥긋뻥긋- 입술을 달싹이며 비밀 대화를 나눴다.

아마 본인이 확인한 내 전력에 관한 내용을 전달하는 중이겠지.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번 병력 출정의 목적은 감히 왕국의 사신을 벤 아서 왕의 처벌함과 동시에 반역을 꾀한 플레아 공주님을 체포하는 것. 괜한 거짓으로 저를 현혹하려 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통하지 않은 것 같다.

“아니...”

“무엇 하느냐. 두 죄인이 눈앞에 있다. 당장 진군하여 트리안 왕국의 저력을 보여주어라!”

어딜 봐도 더는 플레아의 말을 듣지 않겠다는 명확한 의사 표시다.

눈 돌아갔네.

조금 전에 기마병이 죽은 것을 확인했으면 조금의 의심이라도 해볼 만한 건만.

“율리스...”

“그만!”

나는 플레아의 앞에 서며 그녀의 입을 막았다.

“기회는 주었다. 하지만 짐이 준 기회를 그들이 차버렸다.

“폐하! 부디, 보디 손속에 사정을 둬 주십시오.”

“웃기는군. 너는 누군가가 칼을 들고 와서 겁박하는데 손속에 사정을 두는가?”

“...”

“저들을 보라. 살의를 일으키며 짐과 짐의 백성들을 살해 하려한다. 그런데 어째서 짐이 손속에 사정을 두어야만 하지?”

“...”

마땅히 변명할 말이 없겠지.

그러니 그만 닥치고 있어라.

“쏴라!”

거리를 확보한 병사들이 화살과 마법으로 나와 플레아, 그리고 뒤의 병사들을 노렸다.

그러나.

콰쾅!

매섭게 쇄도하던 그 모든 공격은 투명한 벽에 막힌 것처럼 모두 튕겨 나가거나 폭발했다.

“무, 무슨?!”

아아, 그것은 마투기(魔鬪氣)라는 것이다.

의지에 물리력을 부여하는 아주 고-오급 기술이지.

티티팅- 날아오는 화살을 모두 마투기로 튕겨내며 한 발자국 걸음을 옮긴다.

“쏴라, 계속 쏴라.”

하지만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한 듯 계속 원거리 공격을 시도한다.

“적국의 병사들이여. 그대들은 칼의 노래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음성에 힘을 실어 보냈다.

“현혹되지 마라. 계속 공격해라. 녀석도 사람인 이상 금방 바닥을 드러낼 것이다!”

그런 헛된 희망을 품고 있었다고?

그렇다면 현실을 깨닫게 해줘야지.

「그는 홀로 마계의 군단과 맞서 싸웠다.」

의지가 꿈틀거린다.

「수백 년간 이어진 전투에도 쓰러지지 않았고.」

그것은 마계에서 행한 나의 업(業)이 새겨진 노래.

「초월의 영역에 닿은 72 마신과의 승부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모르는, 오직 나만이 알고 있는 마계에서 쓰여진 신화.

「그의 검은 태산보다 거대하고, 파도보다 거칠지니.」

그리고 그 신화는 하나의 검을, 칼의 노래를 완성하였다.

쿠쿠쿠쿠쿵!

창공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 대지에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검.

“아...”

“꾸, 꿈인가...?”

지면을 향해 하강하는 의지의 검 모글레이(Morgelai).

마계의 1개 군단을 박살 내버린 대살상의 검이 마침내 트리안 왕국의 군대를 덮쳤고.

쿠콰콰콰콰쾅!

대폭발이 일어났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