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14화 (14/161)
  • #   14 - 3718088

    #

    Chapter 13

    “우왁!”

    정작 비명을 지른 건 플레아가 아닌 펠리드였다.

    “혀, 형님...아니, 폐하. 지금 제가 보고 있는 게 꿈은 아니죠? 폐하의 써클이 9, 9...”

    “맞아, 9써클.”

    “맙소사!”

    펠리드는 신기한지 허공에 생성된 9쌍의 푸른 불꽃의 마력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일전에 보여준 모습 때문에 영락없이 검사인 줄 알았습니다.”

    “검사도 맞고, 마법사도 맞지. 정확히 말하자면 마검사라고 해야 하려나?”

    “우와! 그 전설의 드래곤 슬레이어 드락이나 초대 제국의 황제였던 레이안과 같은 그 마검사 말입니까?!”

    마치 신비한 동물을 보듯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나마 녀석은 내 동생이라 이런 반응이지.

    “...”

    입을 다물지 못한 플레아가 몽롱한 눈빛으로 나를, 아니 정확히는 9개의 마력 불꽃을 바라보고 있다.

    저 표정을 보아하니 마검사 이야기는 듣지도 못한 것 같다.

    그도 그럴 게 모든 마법사가 꿈꾸는 경지의 증거를 눈앞에서 보고 있다.

    정신을 놓아버리는 건 너무도 당연한 현상이었다.

    “짐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을 셈인가?”

    하지만 언제까지 기다릴 수 없기에 그녀의 상념을 깨웠다.

    “아!”

    그제야 정신을 차린 그녀가 마력의 불꽃이 아니라 나를 응시했다.

    “...”

    눈빛에 담긴 감정이 실시간으로 변한다.

    처음에는 불신, 당혹, 그리고 경악으로 이어지는 감정의 행진.

    “위, 위대한 초월의 대마도사를 뵙습니다!”

    이내 현실을 받아들이며 예를 표한다.

    그건 형식상으로 보여주는 예의가 아니었다.

    한 점의 가식도 없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부복으로 내게 존경심을 표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왕이 아니라 고작해야 아카데미의 동기로 보던 그 눈빛은 아예 다른 사람을 보는 듯했다.

    “어떻게 한 나라의 왕을 대하는 것보다 더 존경심이 우러나오는 것 같지?”

    “죄, 죄송합니다. 미천한 제가 감히 위대한 대마도사의 힘을 의심했습니다.”

    “죄송할 것까지야. 그보다 아직도 짐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묻겠다. 짐이 몇 명의 병사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가?”

    “능히 일국의 전력을 홀로 감당하실 수 있습니다.”

    에게?

    고작 일국은 무슨.

    정답은 아니지만, 굳이 그 점을 지적하진 않았다.

    “그런 짐이 그대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나?”

    “실언이었습니다. 폐하께서 대업을 도우신다면 능히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상황 파악은 빠르네.

    “그럼 의문을 풀린 것으로 하지. 자, 그럼 묻겠다. 그대를 도우면 짐이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인가?”

    원래 세상이란 게 그렇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 하는 법.

    특히 나는 공짜로 움직이는 걸 극도로 꺼리는 사람이다.

    “...”

    쉬이 대답하지 못한 플레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의 고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정리한 듯.

    “만약 폐하께서 직접 움직여 주신다면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트리안 왕국과 제게 해가 되지 않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들어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조금 전과는 달리 꽤 흥분한 음성이다.

    하긴, 9써클 마법사가 돕는다고 하니 벌써 왕위에 올라선 기분이겠지.

    “그 말씀, 제 머릿속에 잘 넣어두었습니다.”

    나를 대신해 나선 것은 펠리드였다.

    이미 사전에 협상에 관한 건 녀석이 담당하기로 했었다.

    “그럼 이번 협상에 관한 거래 조건 체결을 위해 이동하실까요?”

    “그리하지요.”

    펠리드가 이끄는 대로 자리를 떠나는 플레아.

    하지만 몇 걸음 걷기 무섭게 멈춘 후 뒤로 돌아 나를 응시했다.

    “폐하. 기억이 나실진 모르겠으나 과거 아카데미에서 제게 했던 물음에 대한 답을 여기서 드리겠습니다.”

    “음? 짐이 무슨 말을...?”

    “그 뜻을 받아들이겠습니다. 그것이 제 대답입니다.”

    자신의 할 말을 다한 플레아는 펠리드와 함께 자리를 옮겼다.

    “뜻을 받아들여?”

    하지만 당최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떠오르질 않았다.

    과거의 망나니 녀석아. 대체 넌 그녀에게 무슨 말을 했던 거냐?

    *

    파앗!

    목검을 휘두를 때마다 타일로의 몸에 맺힌 땀이 사방으로 튄다.

    “이천!”

    왕가 연무장에서 외로이 목검을 휘두르길 2천 번.

    아서가 말한 1만 번까지는 8천 번이나 남았지만, 쉼 없이 휘두른 것을 생각해 보면 그건 정말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덕분에 온몸은 비에 젖은 것처럼 땀으로 젖었고, 팔과 다리는 경련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격하게 떨린다.

    육체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증거였으나.

    “이천일!”

    타일로는 묵묵히 목검을 휘둘렀다.

    그가 고통을 좋아하는 변태라서?

    아니.

    그렇다면 아서의 명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서?

    아니.

    이게 좋아서도, 그리고 아서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었다.

    1천 번을 넘었을 때부터 간질간질한 무언가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건 3성에 머물러 있던 그의 벽을 부숴줄 깨달음의 단서였다.

    17살에 3성의 경지에 오르며 천재 검사란 소릴 들었던 그.

    하지만 벌써 1년 동안이나 4성에 오르지 못했다.

    물론 18세의 나이에 3성의 경지에 오른 것만 해도 정말 대단한 일이다.

    누가 들으면 배부른 소리 한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타일로는 절실했다.

    분명 그의 재능은 3성에 머무르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는데 좀처럼 그것을 넘지 못했다.

    그런데 웬걸?

    강요(?)로 시작된 횡 베기가,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한 그 베기를 통해 서서히 그 벽을 허물고 있었다.

    “이천이!”

    다시금 목검을 휘두른 그는 생각했다.

    어디서부터 꼬였던 걸까.

    굳이 물을 필요가 있나.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 빌어먹을 알트레인 가문의 비전 검법을 익히면서 모든 게 꼬여버렸다.

    한동안 정체되었던 경지의 상승을 위해 ‘비전’이라는 단어에 혹해버렸다.

    굳이 남작의 부하 노릇까지 하며 겨우 얻은 비전은 오히려 족쇄가 되어 비상해야 할 그의 발목을 붙잡고 말았던 것.

    ‘이제야 그 미로를 빠져나오는구나!’

    무의식적으로 검을 휘두를 때마다 머릿속에 남아 있던 알트레인 가문의 비전이, 겉멋만 든 엉터리 검을 잊을 수 있다.

    베고, 베고, 또 베고, 또 벤다.

    머릿속에 든 엉터리 비전을 모두 털어내기 위해 타일로는 자신의 육신을 혹사했고.

    슥!

    처음과는 달리 무척 부드럽게 이어지는 베기를 볼 수 있었다.

    “아!”

    비록 아서가 보여준 신의 한 수 정도는 아니었으나 그건 분명 그의 경지를, 한계를 뛰어넘는 일검이었다.

    부들부들.

    풍랑을 만난 배처럼 육신이 격하게 떨린다.

    하지만 그건 한계에 봉착했을 때의 현상이 아니라 환희로 인한 것.

    “마침내 뛰어넘었다!”

    심상은 고요하며 그 크기는 확장되었다.

    마치 다시 태어난 것과 같은 그 기분은 경지의 상승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

    “이 녀석 봐라?”

    플레아와의 만남을 정리한 후 연무장을 찾았고, 그곳에서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마침내 뛰어넘었다!”

    환희에 젖은 타일로.

    땀에 쩔어 있는 데다가 육신은 곧 죽을 사람처럼 떨리고 있었지만, 그 내면의 심상은 고요하며 또한 거대해졌다.

    3성의 벽을 넘어 4성의 경지에 들어선 것이다.

    ‘이게 말이 돼?’

    물론 횡 베기 1만 번을 시킨 건 경지를 끌어올리려는 과정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이른 시간에 벽을 허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막연히 천재라고 생각했더니 이건 천재의 수준을 넘어선 괴물이 아닌가?

    “거봐라. 내가 하라는 대로 하니까 바로 벽을 허물었지?”

    마치 이 모든 게 다 계획이었던 것처럼 허세를 부리며 다가갔다.

    “폐하!”

    그리고 날 발견한 녀석은 쓰러지듯 부복했다.

    “폐하의 도움으로 마침내 길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건 위대하고 위대하신 폐하의 은공입니다. 모자라지만, 기사 타일로. 폐하를 위한 일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라 해도 목숨 바쳐 따를 것을 이 자리에서 맹세합니다!”

    효과는 대단했다!

    먹힐 줄은 몰랐는데, 정말 이 녀석은 내가 이 모든 걸 계획한 줄 아는 것 같다.

    음. 솔직하게 말하면 네 재능이 미친 듯이 뛰어나서 그런 거지, 사실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물론 네 녀석이 내 생각을 읽을 순 없을 테니 그건 모르겠지만.

    “그래. 나만 믿고 따라와. 그리하면 일전에 보여준 무결점의 검식도 금방 펼칠 수 있을 테니.”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음.

    상당히 감명이 깊었던 것 같다.

    하긴, 그냥 하라고 해서 검 2천 번 베었는데 벽을 넘으면 나 같아도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줬을 것이다.

    덕분에 이 고집불통 천재 녀석을 통제하는 게 무척 쉬워질 것 같다.

    “그럼 요령 피우지 말고 1만번 횡 베기까지 달려야지?”

    “알겠습니다!”

    힘차게 대답한 녀석이 부들부들 떨리는 육신을 억지로 움직여 횡 베기를 다시금 이어갔다.

    나는 가만히 서서 녀석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다시 봐도 어이가 없네. 이게 도대체 무슨 재능이지?’

    그 움직임이 조금 전과는 전혀 달랐다.

    최적의 선을 그리는 궤적, 그리고 적당한 힘의 분배.

    마치 알을 깨고 나온 것처럼 녀석의 동작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아무리 천재여도 이게 말이 되나?

    새삼 녀석의 천재성에 놀라고 있을 무렵이었다.

    “폐, 폐하!”

    협상 테이블에 있어야 할 펠리드와 플레아가 다급하게 다가왔다.

    “협상이 아직 끝나지 않았을 텐데, 무슨 일이지?”

    나는 두 사람을 향해 물었고.

    “지금 협상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기, 긴급 상황입니다!”

    좀처럼 당황하지 않는 펠리드가 말까지 더듬을 정도니 긴급한 상황인 건 분명한 것 같다.

    나는 말해 보라는 의미로 눈짓을 줬고, 정작 대답한 건 펠리드가 아닌 플레아였다.

    “왕국에 있는 제 측근이 급보를 전했습니다.”

    “급보?”

    “네. 폐하. 율리스 백작이 이끄는 병력 5천이 국경을 향해 진군하는 중이라고 급히 연락을 보내왔습니다.”

    그건 나도 예상치 못한 급전개였다.

    “그대가 축하 사절단으로 와 있는 지금 말인가?”

    “...왕국의 제 병력이 반역죄라는 명목하에 모두 구금당했습니다. 손쓸 틈도 없이 빨리 이루어진 것을 봤을 때 이번 기회를 노려 저를 제거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

    분한 듯 볼이 부르르 떨린다.

    “그러니까 정적인 그대를 제거함과 동시에 사신의 목을 벤 짐도 함께 정리하겠다는 속셈이로군.”

    “...분하게도 그렇습니다.”

    입술을 질끈 깨무는 플레아.

    아마 이토록 빨리, 그리고 표면적으로 자신을 제거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폐하! 그보다 빨리 병력을 이끌고 국경지대로 이동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늦으면 그곳의 백성들이 무참히 살해당할 겁니다.”

    펠리드가 발을 동동 굴렀다.

    급보라곤 하지만, 분명 트리안 왕국의 병력이 한발 먼저 도착할 터. 그리되면 무고한 왕국이 백성들이 희생당할 게 빤했다.

    “걱정하지 마라, 펠리드.”

    이 녀석, 아직 내가 누군지 모르는군.

    설마 내가 소중한 동료의 어머니가 계시는 곳을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고 내버려 뒀을까.

    파앗!

    마력을 일으켜 차원의 문을 열었다.

    물론 그 문은 국경지대 마을인 이루일과 연결되어 있었다.

    어머니께 전해준 조각상에 심어진 마력의 씨앗을 통해 순식간에 연결이 가능했던 것.

    “포, 포탈?!”

    8써클 마법인 포탈을 본 플레아가 까무러치려고 한다.

    “플레아. 왕위에 오르고 싶다고 하였느냐?”

    곧바로 그 문을 넘지 않은 채 플레아에게 질문했다.

    뜬금없는 말. 하지만 플레아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폐하. 현재 트리안 왕국의 왕인 블레니오는 간신들과 결탁하여 매일 폭정을 일삼으며 수많은 백성을 불행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폭군은 피의 역사를 쓰는 법. 그의 폭정을 멈추고 왕국이 안정을 되찾으려면 반드시 제가 왕위에 올라야만 합니다.”

    그것이 숭고한 뜻인지 아니면 개인의 야망인지는 관심 없다.

    “그 바람, 지금 이루어주마."

    내게 칼을 들이민 녀석에게 합당한 처벌을 내릴 뿐.

    그러니 오늘이 바로 네가 왕위에 오르는 역사적인 순간이 될 것이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