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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13화 (13/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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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2

누가 욕을 하나.

갑자기 왜 이렇게 귀가 간지럽지?

“하압!”

들려오는 기합성에 상념을 거둔 채 정면을 바라봤다.

그곳에 연습용 목검을 든 타일로가 열심히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가만히 있다가 껑충 뛰질 않나, 갑자기 온 몸을 비틀어 기이하게 검을 꺾어대질 않나, 아주 지랄 염병을 하고 있다.

“후우...”

그렇게 열심히(?) 검을 휘두르던 녀석이 숨을 토해낸 후 나를 바라봤다.

“뭐?”

“폐하께서 실력을 보이라 하셔서 모두 펼쳐 보였습니다.”

어휴.

실력을 보이라고 했지, 누가 춤을 추라고 했나.

“실력을 보였다고? 그럼 그 춤이...아니, 그게 네 실력의 전부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지금 보여드린 게 현재 제가 보여드릴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

그리 말하며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낸다.

새삼 놀랍다.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잘못된 길로 빠지면 이렇게 되는구나.

하긴. 그러니까 남작가의 평기사 노릇이나 하면서 천재라는 소리나 듣고 있었겠지.

“도대체 그 빌어먹을 춤은 어디서 배웠냐?”

“춤? 아닙니다. 이건 남작가에 내려오는 비전의 검술...”

“어디 가서 비전이라는 말 함부로 쓰지 마. 진짜 짱돌에 맞아 죽는 수가 있다?”

“...그렇게 형편없었습니까?”

내 박한 평가에 살짝 반항을 보인다.

“이건 형편없는 수준이 아니야. 애초에 그걸 검식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검한테 모욕하는 거야. 빨리 네가 든 목검에게 사과해. 미안하다고.”

그건 놀릴려고 한 말이 아니라 솔직한 감상이었다.

아니, 여기서 그만두면 얘가 정신을 못 차리지.

“마치 남한테 보여주기 위해 티 나게 동작을 크게, 그리고 화려하게 만들었달까? 이건 검식이 아니라 검무, 그것도 아주 싸구려 무희가 추는 검무라 평할 수 있겠네.”

“그럼 진정한 검식이라는 건 어떤 겁니까. 폐하께서 직접 보여주시지 않겠습니까?”

이 새끼 삐졌네.

누가 애송이 아니랄까 봐 박한 평가 좀 들었다고 입이 툭 튀어나와서는.

딱!

“아악!”

그래서 강렬한 꿀밤을 갈겨줬다.

“내가 너 따위에게 시범을 보일 짬이냐. 그리고 내 심오한 검식은 지금의 넌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어. 그러니까 잔말 말고 횡 베기 일만 번이나 시작해.”

“일, 일만 번 말입니까?”

“왜 싫어?”

“하지만 이미 기본기는 뗀 지...아악!”

반항하는 녀석에게 다시금 달콤한 꿀밤을 선물했다.

“혹여나 기본기를 뗐다고 말하려고 했으면 뒈진다. 지금 네 녀석의 상태가 어떤지나 알아? 재능은 조금 있는데 그 망할 싸구려 검무가 그걸 다 가려놨어. 그러니까 감춰진 재능이 드러날 때까지 되지도 않는 춤 따위는 머릿속에서 지워버려. 지금부터는 오직 종 베기, 그리고 횡 베기만 할 테니까.”

“그건...”

“왜 싫어? 싫어도 해야 할걸? 내가 보여준 그 일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니까.”

“...알겠습니다.”

그 검식이 눈앞에 아른거리는지 곧장 수긍한다.

단순한 녀석. 하여간 이렇게 검에 미친 녀석들을 다루는 방법은 쉽다니까.

“으아압!”

굴복한 녀석이 발악과도 같은 기합을 내지르며 1만 번의 횡 베기에 들어갔다.

“어허! 힘 너무 들어갔다. 어깨에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한 번을 하더라도 의지를 담아서!”

그리고 나는 녀석을 닦달했다.

물론 괴롭히려는 의도가 아니다.

압도적인 재능에도 불구하고 이제 겨우 3성에 불과한 녀석을 단숨에 바꾸기 위해서는 이러한 물빼기 과정이 필요했다.

“으아아아아!”

비명과도 같은 기합이 들리고 난 뒤에야 만족감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펠리드, 그만 나와.”

여전히 타일로를 바라보며 입을 뗐다.

“헤헤. 폐하, 알고 계셨습니까?”

연무장의 뒤쪽 공간에 숨어 있었던 펠리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너가 숨은 것도 몰랐으면 진즉 죽었겠지.”

“어이쿠, 무슨 그런 험악한 말씀을. 왕위에 오르셨으니 이제 체면을 좀...”

“체면은 개뿔. 왕국이 이 꼴이 났는데 내가 지금 체면 차리게 생겼냐?”

“하긴 그것도 그렇죠. 중요 귀족들은 다 죽은 데다가 그나마 있던 병력도 엄청난 손실을 봤고. 사실 이건 왕국이라고 부르기도 아까운 수준이죠. 부족, 그래. 부족이 딱 맞을 것 같네요. 폐하는 왕이 아니라 부족장이고.”

전에는 몰랐는데 이 녀석도 참 똘끼가 충만하다.

“날 놀리려고 온 건 아니지?”

“에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하라는 일은 다 처리했고? 분명히 내가 오늘 안에 알트레인 남작령에 적합한 인물을 파견하라고 지시했을 텐데.”

녀석은 총리대신.

내각의 수장이기에 내가 지시한 일뿐만 아니라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물론 제게 맡기신 일은 모두 처리했습니다.”

“이렇게 빨리?”

“폐하처럼 육신은 강하지 않지만...”

톡톡- 자신의 머리를 치는 펠리드.

“...머리는 타고나서 말이죠.”

좋겠다.

누구는 두뇌를 타고나지 않아 이렇게 개고생 중인데 말이야.

“할 일을 마쳤으면 뭐.”

혹여 일이 남았다고 해도 똘똘한 녀석이니 알아서 했을 것이다.

나는 시선을 돌려 여전히 횡 베기를 연습하고 있는 타일로를 응시했다.

“폐하. 그런데 묻지 않으시는 겁니까?”

내 옆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펠리드가 물었다.

“뭘?”

“지난번 부탁 말입니다.”

“트리안 왕국으로 가지 말라고 했던 거?”

“그렇습니다.”

“네가 어련히 다 생각하고 말했을까.”

“그래도 이유는 궁금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유라.

하긴 이유가 궁금할 수도 있겠네.

하지만.

“그게 내게 해가 되는 거야?”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럼 그게 내 왕국과 백성에 해가 되는 일이야?”

“아닙니다.”

“그럼 된 거지. 내게, 그리고 왕국과 백성에 해가 되지 않는, 오히려 네가 생각한 거면 오히려 득이 되는 일일 게 분명한데 뭐하러 일일이 물어봐.”

나는 꽤 얍삽한 녀석이라 웬만해선 사람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펠리드는 다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녀석은 나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특히 녀석이라면 분명 왕국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을 터.

그 부탁이 내게 해가 되거나 혹은 뭔가를 희생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면 굳이 들어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

“...폐하께서 절 그렇게 신뢰하는 줄은 몰랐습니다.”

“과거 그날 이후 나는 널 단 한 번도 믿지 못한 적이 없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한 동안 우리는 말을 하질 않았다.

하지만 잠시 후.

“...제가 트리안 왕국으로 가지 못하도록 부탁드린 건 단순히 폐하를 말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럼?”

“이왕 벌인 일. 최대한 얻을 수 있는 걸 모두 챙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마 사신의 목이 떨어진 것을 알면 최근 안달 난 그들이 먼저 접촉을 시도할 겁니다.”

녀석이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꼭 뭔가 꿍꿍일 꾸미고 있을 때 저런 미소를 짓긴 하던데.

아마도 조만간 왕국으로 손님이 찾아올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

“트리안 왕국의 축하 사절단이 도착했습니다!”

시종장의 우렁찬 외침이 알현실에 울려 퍼질 무렵 나는 내 옆에 선 펠리드를 응시했다.

그리고 얼마 전 녀석이 내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아마 트리안 왕국 측에서 당장 병력을 보내는 일은 없을 겁니다. 아주 높은 확률로 축하 사절단을 보낼 겁니다. 물론 사절단의 주축이 될 이는...’

찡긋.

녀석이 한쪽을 눈을 감으며 윙크했다.

하여간 무서운 녀석. 만약 내가 펠리드의 적이었다면 다른 건 다 둘째치고 녀석부터 제거했을 것이다.

고작 17살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예지에 가까운 수읽기.

녀석이 적으로 있다고 생각하면 참으로 곤란할 것 같긴 하다.

‘후에는 적들도 알게 될 테니 타일로를 빨리 키워 놔야겠어.’

타일로를 데려온 건 왕궁의 전력 강화 목적도 있었지만, 펠리드의 호위를 위한 게 더 컸다.

앞으로 적들이 많아질 예정.

그들은 나보다 두뇌인 펠리드를 더 노릴 테고,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보험이 타일로였다.

물론 당장은 아무런 쓸모도 없는, 밥만 축내는 싸구려 무희지만, 좀 더 험하게 굴리면 밥값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저벅!

가까이서 들리는 발소리에 상념을 멈췄다.

정면, 트리안 왕가의 혈통임을 상징하는 붉은 머리칼의 여인이 느릿한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다.

‘음?’

순간 뇌리로 하나의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다.

분명 저기 붉은 로브의 농염한 적발 미녀를 어디서 본 기억이 있는데. 근데 좀처럼 어디서 봤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트리안 왕국의 공주 플레아가 아서 델 알슈타드 폐하를 알현합니다!”

깊숙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그녀를 유심히 바라봤다.

사실 외형보다는 그 이름이 자꾸 뇌리에 남는다.

플레아. 플레아. 플레아라.

그런데 기억의 실마리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어디서 봤더라?

“폐하, 오랜만에 보니 더 신수가 훤해지신 것 같습니다.”

슬쩍 고개를 든 그녀가 나를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오랜만이라. 우리가 언제 본 적이 있던가?”

모르면 고민하지 말고 물어보면 그만.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최근 기억력이 영 좋질 못해서. 그래서 우리가 어디서 봤지?”

“...”

의문 가득한 시선이 꽂힌다.

기억 못한다는 내 말을 믿지 못하는 것 같은데 진짜 기억이 나질 않는 걸 어쩌라고.

“게르티아 황실 아카데미를 같이 다녔었던 인연이 있습니다.”

“아!”

그제야 기억의 편린을 떠올릴 수 있었다.

어디서 봤나 했더니 과거 게르티아 황실 아카데미를 같이 다녔었군.

하지만 당시의 기억 중 남는 건 없었다.

이 사람들이야 겨우 몇 년 전 일일 테지만 내게는 수백 년도 더 지난 일이라서.

“여기서 아카데미를 같이 다닌 이를 만나게 될 줄이야. 그런데 기억이 나질 않는 걸 보니 우리가 별로 마주친 적은 없었나 보군.”

“같은 클래스였습니다.”

“...그랬던가? 하하하. 뭐, 그럴 수도 있지. 클래스에도 워낙 학생들이 많았을 테니까.”

“당시 클래스엔 왕족만이 있었고, 그 수라고 해봐야 고작 다섯을 넘기지 않았습니다.”

“...그럼 우리가 별로 친하지 않은...”

“친한 건 모르겠으나 폐하와 깊은 인연을 맺었다고 혼자 생각은 했었습니다.”

에라이!

기억이 나질 않는 걸 어쩌라고!

“흠흠. 그런가? 짐이 요즘 과도한 업무로 지쳐서 말이야. 아마 푹 쉬고 나면 기억이 돌아올지도 모르겠군.”

여전히 의문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플레아.

이리 곤란할 때는 화제를 돌리는 게 최고다.

“그나저나 사신의 목을 베어 대규모 병력을 보낼 줄 알았는데, 축하 사절단이라. 무척 의외로군.”

물론 펠리드의 설명을 통해 어느 정도 사정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짐짓 모르는 척 화제를 돌렸다.

“축하 사절은 저의 의지였습니다. 아마 왕궁에서는 지금 소튼 왕국에 대한 처벌을 어찌할지 한창 상의하고 있을 것입니다.”

“왕궁과는 다른 본인의 의지였다?”

“그렇습니다.”

“궁금하군. 왕궁에 반하면서까지 축하 사절단을 보낸 그대의 목적이.”

“...”

잠시 말 없이 나를 빤히 응시하는 플레아.

“...본디 목적은 있었으나 아무래도 제가 착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저 즉위를 축하하는 사절단의 임무를...”

“쯧!”

나는 혀를 차며 플레아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이래서 정치라는 건 답답해. 속내를 감춘 채 주거니 받거니. 이거 뭔 간 보기도 아니고 뭐 하는 짓인지.”

정치라는 게 원래 그렇다지만, 역시 내 성미랑은 맞지 않는다.

“플레아. 트리안 왕국의 공주이자 홍염(紅焰)의 마도사라 불리는 그대에게 묻겠다.”

나는 그녀를 똑바로 직시하며 입을 뗐다.

“그대를 왕위에, 여왕으로 올려주면 짐에게 무엇을 해주겠는가?”

“무, 무슨...!”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그녀가 주위를 살핀다.

이럴 줄 알고 알현실에는 펠리드를 제외한 다른 이를 들이지 않았다.

“폭정을 일삼는 올란 왕을 끌어내리고 여왕에 올라서기 위해 힘을 모으는 중 아닌가? 짐이 그것을 이루게 해주겠다는 뜻이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

물론 대륙의 정세에 관심이 없는 내게 그 사실을 말해준 건 펠리드였지만 말이다.

“...”

넋이 나간 듯 멍한 눈빛의 플레아.

하지만 잠시 후, 녀석의 눈빛은 본래의 총명함을 되찾았다.

“...폐하에게, 이 작은 소국의 왕이 무엇을 해주실 수 있다는 말씀이신지 궁금하군요.”

그래. 이렇게 나와야 말이 쉽지.

“짐이 해줄 수 있는 것이라.”

그리 말하며 희미한 미소를 띠웠다.

“플레아. 그대가 몇 써클의 마법사지?”

“5써클입니다.”

“5써클이라. 5써클이면 대략 몇 명의 병사를 감당할 수 있는가?”

“정확하진 않겠지만, 세간의 평에 의하면 5써클의 마법사는 능히 1천의 병사를 감당할 수 있다고 말을 하곤 합니다.”

물론 캐스팅에 필요한 시간의 확보, 여러 가지 제한 조건이 있으나 5써클의 마도사면 기 1천의 병사를 감당할 수 있다는 건 맞다.

“5써클에 1천의 병사라. 그럼 짐은 몇 명의 병사를 감당할 수 있을까?”

“무슨...?”

의문을 표하는 플레아의 말을 듣지 않은 채 내 몸속에 쌓인 마기를 통해 마법을 구현했다.

츠츠츠- 허공에 생성되는 건 푸른색 마력을 띤 마력의 불꽃.

마나를 다룰 줄 아는 이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1써클의 마법이다.

허공에 거대한 불꽃의 원을 만드는 것 말고는 아무런 특수 효과도 없어서 좀처럼 쓰이지 않는 마법이 아직도 사용되는 이유는 하나.

바로 겹쳐지는 원의 개수를 통해 써클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츠츠, 츠츠츠-

내 마력의 움직임에 따라 허공에 생성되는 원의 개수가 늘어난다.

하나, 둘, 셋, 넷...그리고 아홉.

“이, 이럴 수가?!”

경악하며 눈을 부릅 뜨는 플레아.

겹겹이 쌓인 9개의 마력 불꽃이 뜻하는 건 오직 하나기 때문이다.

“다시금 묻겠다, 플레아. 짐이 몇 명의 병사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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