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6화 (6/161)

#   6 - 3702578

#

Chapter 5

콰르릉!

천둥과 벼락이 춤을 추는 폭풍의 대지.

마계의 2계층인 그곳의 중심부에 모처럼 손님이 방문했다.

「참으로 놀랍도다. 어찌 나약한 인간 따위가 이곳에 당도할 수 있었는가.」

폭풍의 형상을 두른 2계층의 관리자 단탈리온.

그는 정면의 손님을 향한, 순수한 감탄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영생을 부여받지 못한 필멸자가 그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인간.

그들 관리자에게는 ‘나약한 자’라 지칭되는 동물.

설마 이 동물이 1계층도 아니고 2계층의 관리자 영역까지 도달할 수 있다니.

「하지만 그 여정도 여기서 끝이다, 나약한 자여.」

콰콰콰콰콰-

폭풍을 부르는 마검 스톰브링어를 소환하여 손에 쥔다.

눈앞 존재의 여정을 끝내기 위하여.

“크큭.”

그러나 그 거친 기세에도 아서는 비틀린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1계층의 관리자 녀석도 똑같은 소릴 내뱉더군.”

불가능이라 여겼던 안드로말리우스도 쓰러뜨렸다.

물론 눈앞에 있는 단탈리온이 안드로말리우스보다 훨씬 더 강하다. 그러나 1계층에서의 싸움은 아서의 한계를 부수는 계기가 되었고, 그 순간 그의 가능성은 무한히 확장되었다.

「헤어나올 수 없는 절망을 맛보아라!」

휘잉- 건방진 인간을 향한 폭풍의 마력이 개방되었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그 강대한 마력은 한낱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것.

피피핏!

칼날과도 같은 바람이 육신을 스치고 지나간다.

연약한 살점이 떨어져 나가고 그곳으로부터 선혈이 새어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아서의 육신은 그가 흘린 피로 인해 혈인이 되었고, 살점은 다 떨어져 나가 하안 뼈가 드러났다.

과연 자신감을 보일 만큼 안드로말리우스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강함.

“...”

그러나 그 강함을 목도한 아서의 눈빛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나약한 자여. 그대는 어찌하여 불가능에 도전하는가.」

그 의지에 감탄한 단탈리온이 물었다.

“...약속했다.”

「무엇을 말이냐?」

“이 빌어먹을 지옥에서 죽어 나간 동료들의 소원들 들어주기로.”

그의 목숨은 하나였으나 지닌바 몫은 하나가 아니다.

999개의 몫이 그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그의 의지는 꺾이지 않는다.

“흐아아압!”

의지는 단단하게 뭉쳐져 그의 검에 덧씌워졌다.

「날카로운 의지의 검이라. 놀랍구나!」

비록 육신은 나약하나 풍파로 연마된 의지는 더없이 날카롭다.

의지의 검을 다룰 수 있는 능력에 다시금 감탄한 단탈리온은 자신의 권능을 쏘아보냈다.

쿠콰콰콰콰!

사방에서 폭풍이 몰아친다.

단탈리온이 개방한 마력은 자연재해와도 같아서 감히 인간 따위가 저항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서는 저항했다.

육신이 찢기고 뼈가 갈리고 있었지만, 그의 의지는 더욱더 공고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한없이 나약한 인간은 폭풍을 뚫고 단탈리온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찰나의 순간.

「끝이다.」

단탈리언이 선고했다.

푸욱!

더없이 날카로운 스토브링어의 검끝이 아서의 왼쪽 가슴을 관통했다.

「어찌?!」

그러나 정작 찌른 단탈리온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놀랍게도 스톰브링어는 아서의 육신을 꿰뚫지 못했다.

츠츠츠-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유백색 갑옷이 그를 보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투기(鬪氣)의 갑옷?!」

믿을 수 없게도 그것은 의지를 넘은 투기의 형상.

관리자 중에서도 소수의 이들만이 다룰 수 있는 특별한 권능이었다.

「한낱 인간 따위가 어찌...」

하지만 마냥 감탄만 하고 있을 수 없다.

푸욱!

투기가 씌워진 검이 단탈리온의 폭풍 마력을 꿰뚫고 그의 진체(眞體)에 타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크아악!」

억겁이 넘는 시간 동안 들리지 않았던 관리자 단탈리온의 비명이 폭풍의 대지 곳곳에 울려 퍼졌다.

*

“음. 오랜만에 마검을 쥐어서 그런가. 잡생각이 떠오르네?”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상념을 털어냈다.

그건 마검에 깃든 본래의 주인, 관리자 단탈리온이 남긴 감정의 편린이었다.

전해지는 감정의 대부분은 온통 놀람과 당황, 그리고 경악뿐이었다.

하긴. 난데없이 나타난 인간 녀석이 관리자들을 쓰러뜨리니 놀랍기도 했겠지.

그나저나 갑자기 궁금하네.

마계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으려나.

관리자들이 모두 사라져 질서가 무너졌으니 완전 개판이 되지 않았을까?

뭐, 그쪽이 어떻게 되든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지만.

쉬익- 상념을 털어낸 후 좀 더 속도를 높였다.

도착한 곳은 왕궁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 왕이 기거하는 침소였다.

“누구냐!”

나를 발견한 듯 입구를 지키던 왕실 근위병 둘이 검을 빼내며 위협한다.

“나다.”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어 나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1왕자 전하.”

“이 야심한 시각에는 어쩐 일이신지?”

나를 본 녀석들의 눈빛에 경계가 깃든다.

공작의 사주를 받아 아버지를 감금하고 있는 상태니 내 등장이 달갑지 않겠지.

“아들이 아버질 보려고 왔는데 이유가 필요해?”

“폐하께서는 막 잠이 드셨습니다.”

“아무리 1왕자 전하라 해도 왕의 침소에는 함부로...”

퍼퍽!

인지하지도 못한 사이 두 근위병이 쓰러졌다.

“말싸움하기 귀찮으니까 잠시 자고 있어라.”

귀찮은 근위병 녀석들을 물리친 후 문을 열었다.

끼익- 어둠에 잠긴 방 안. 그러나 대륙의 어둠은 내 시야를 방해할 수 없었다.

“폐하.”

뒤척이고 있는 아버지를 불렀다.

“누, 누구...?”

잔뜩 겁에 질린 아버지가 몸을 일으킨다.

언제든 공작이 자신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여 매일 잠을 못 이루셨겠지.

“접니다. 아서.”

“아서? 네가 어찌하여 이곳에?”

암살자가 아닌 것에 안심하며 불을 켠다.

그리곤 나를 발견한 아버지는 힘이 없는 미소를 지었다.

아침에는 몰랐는데 무척 수척해지신 것 같다.

“근위병들이 지키고 있었을 터인데?”

“시리우스 백작도 일격에 쓰러뜨렸는데, 그들이 문제겠습니까.”

“그도 그렇군. 허나 왕자여, 힘만 믿고 너무 멋대로 행동해선 곤란하다. 공작의 힘은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툭-

나는 아공간에 고이 보관하고 있던 그것을 꺼냈다.

“고, 공작?!”

놀란 아버지가 뒷걸음질 친다.

지면에 떨어진 건 엉망진창 얻어맞은 세그릭 공작이었다.

“공작은 제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와, 왕자여. 그러나 그의 세력은...”

“그가 자랑하는 흑철 기사단을 모두 죽였습니다. 그리고 병력 또한 달리 행동할 수 없도록 모두 구금해 두었습니다.”

“...”

입을 쩍 벌린 아버지는 말을 잇질 못했다.

“정녕, 정녕 그게 사실이냐?”

“네. 단 하나의 거짓도 없는 사실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혜안이 깃든 눈동자가 나를 훑는다.

“공작이 나를 죽이려 암살자를 고용했고, 저는 반역죄를 물어 그를 체포하였습니다. 그리고 죄 없는 백성들을 죽이려 한 기사단을 몰살시키고, 사사로이 운영하던 그의 병력을 모두 해체했습니다.”

“허어!”

믿을 수 없는 사실에 감탄사가 새어 나왔다.

쉽게 믿을 수 없는 말. 그러나 엉망진창으로 당한 공작이 있으니 믿지 않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게 정말 사실이냐?”

“금방 들킬 일을 뭣하러 제가 거짓으로 고하겠습니까.”

“그럼 그 일을...왕자 네가 혼자 이루어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하하. 짐이 수십 년간 이루고자 했던 숙원을 어찌 이리도 허무하게...”

회한이 어린 그 미소가 가슴에 박힌다.

이룰 수 없는 줄 알면서도 항상 꿈꿔 오셨을 꿈. 그것이 이리 허무하게 이루어지니 기쁘면서도 한 편으로는 슬플 것이다.

“왕자. 짐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아버지가 날 빤히 응시했다.

공작과 그 세력을 정리한 후 본인을 찾아온 것에 어떠한 이유가 있을 것으로 짐작하셨을 터.

“폐하, 아니 아버지.”

나 또한 아버지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리고.

“선위(禪位)를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감당하지 못했던 왕관의 무게를 지금부터는 제가 감당하겠습니다.

*

크라우스 왕이 주최한 어전회의를 위해 귀족들이 속속 왕궁에 입장하기 시작했다.

사실 주기적인 이 회의의 출석률은 그리 높지 않은 편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어쩐 일에선지 많은 귀족, 아니 단 한 명의 귀족도 빼놓지 않고 모두 모여드는 중이었다.

그럴 수밖에.

전날 늦은 시각에 도착한 초대장에 찍힌 클루이안 공작가의 인장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소튼 왕국을 다스리는 공작가의 인장이 찍혀 있다는 건 반드시 출석하라는 의미. 그렇기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귀족 모두가 모일 수밖에 없었고.

“후우...”

그중에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어대는 시리우스 백작도 포함되어 있었다.

마치 똥이라도 씹은 것처럼 안색이 푸르죽죽한 그는 평소와는 달리 고개도 들지 못한 채 걸어가는 중이었다.

수군수군- 지나갈 때마다 귀족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들었어?

뭘?

시리우스 백작.

시리우스 백작이 왜?

아 글쎄 어제 연무장에서 망나니 왕자에게 얻어 맞았다고 하더라고.

하나같이 다 똑같은 내용 뿐이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과장되는 부분도 있었다.

망나니 왕자에게 맞고 울었다더라.

사실은 5성이 아니라 3성도 안 된다는 것 같더라.

“...”

하지만 시리우스는 떠한 변명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묵묵히 길을 걸어갔다.

소문이 과장은 되었어도 망나니 왕자에게 패했다는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것 하나만으로 모든 변명의 거리가 사라졌다.

그렇기에 멋대로 수군대는 그들의 말에도 아무 말 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시리우스 백작!”

고개 숙인 시리우스를 향해 다가온 이.

정돈되지 않은 수염을 기른 그는 2m가 넘는 신장을 자랑하는 사내였다.

“페리튼 백작...”

하필이면 시리우스가 가장 만나기 싫은 이였다.

“으하하! 시리우스 백작, 망나니 왕자에게 크게 당했다면서?”

“말조심하시오. 망나니 왕자라니!”

“망나니를 망나니라 부르지. 그럼 뭐라고 부른단 말이오?”

“허어!”

그가 꺼려지는 이유는 뇌를 거치지 않고 뱉어내는 말때문이었다.

아무리 왕권이 바닥에 추락했어도 왕자는 왕자다.

보는 눈이 이렇게 많은데도 불구하고 1왕자를 망나니라 부를 수 있는 건 페리튼 백작을 제외하면 없을 것이다.

“그보다 실망이오. 아니, 내 강력한 라이벌인 백작이 망나니 왕자에게 당하다니. 이거 창피해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있나.”

오래전부터 라이벌 가문이었던 두 가문.

하지만 시리우스와 페리튼의 대결에서는 항상 시리우스가 한발 앞서 있었다.

그렇기에 항상 시리우스를 뛰어넘을 날을 꿈꾸고 있었던 페리튼에게 망나니 왕자에게 당했다는 소문은 큰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말 망나니 왕자에게 당한 것이오? 도무지 믿을 수가 있어야지...”

“그 일이라면 더는 할 말이 없소.”

그렇지 않아도 머릿속이 복잡한데 괜히 머저리 페리튼과 상대할 생각이 없다.

거구를 지나친 시리우스는 어전회의가 열릴 회의장 안으로 들어갔고.

“같이 가십시다!”

페리튼 또한 쿵쾅거리는 걸음으로 시리우스를 따랐다.

“어서 오시오.”

그런 두 사람을 비롯하여 귀족들을 반기는 이가 있었다.

“아, 아서 왕자님?”

“망나...아니, 그게 아니로 1왕자 전하가 어째서?”

두 사람의 의문은 회의장 안에 들어온 귀족들의 의문을 대표하는 것이기도 했다.

길게 이어진 타원형 테이블의 상석에는 두 다릴 척하니 올린 아서 왕자가 앉아 있었다.

“왜긴 왜겠소. 회의를 주최한 이가 바로 나이기 때문이지.”

그제야 장내의 귀족들은 깨달았다.

이 망나니 왕자가 또 장난을 친 모양이다.

클루이안 공작가의 인장이 찍혀 철썩 같이 그것을 믿었더니 아마 어떻게든 위조를 한 모양.

“1왕자 전하. 바쁜 사람들을 이리 모으시다니. 참으로 철이 없으십니다.”

“에잉! 괜히 시간만 낭비했군.”

“자, 다들 가십시다.”

콧방귀를 낀 귀족들이 다들 회의장을 나가려고 했지만.

쾅!

분명 아무도 손대지 않은 회의장의 문이 닫혔다.

“한 번 더 말해주겠소. 내 허락 없이는 아무도 회의장을 빠져나갈 순 없소. 회의가 정상적으로 종료되기 전까지는.”

말을 끝낸 아서 왕자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그리고 그 순간.

부르르- 시리우스는 갑자기 찾아온 오한에 몸을 떨어야만 했다.

‘이거 큰일 났구나!’

다른 귀족은 망나니 왕자의 협박 아닌 협박에 콧방귀를 뀌고 있다.

그러나 아서 왕자의 진면목 일부를 들여다본 시리우스는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위협적이고 공포스러운 것인지 깨닫고 있었다.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