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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만에 절대자로 귀환-5화 (5/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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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4

    모두가 잠들어 있을 야심한 시각에도 세그릭 공작의 집무실에는 마법의 등불이 켜져 있었다.

    “아서 왕자...”

    그가 손에 든 종이에는 한 사람의 인적 사항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1왕자 아서 델 알슈타드.』

    세그릭 공작이 유심히 보고 있던 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혀 관심이 없었던 왕국의 1왕자 아서에 관한 것이었다.

    “도대체 언제?”

    아무리 봐도 그가 어떻게 경지에 올랐는지 알 수 없다.

    딱히 살펴보진 않았어도 나름 대업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었기에 감시를 소홀히 하진 않았다.

    그렇기에 이 많은 종이에 그 행적이 적혀 있지 않은가.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언제, 어떻게 실력을 쌓았는지 알 수 없다.

    매일 놀고, 매일 여자를 끼고, 매일 먹었다.

    수련을 한다고 해도 시간이 필요할진 데 도무지 몰래 수련할 만한 시간이 보이질 않았다.

    “하지만 이제 상관없는 일이지.”

    화르륵!

    손에 든 종이를 등불에 가져다 대어 태워버렸다.

    이미 왕자에게 1급 암살자를 보냈다.

    지금껏 그의 의뢰를 받아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암살자이니 더는 왕자에 대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나마 목숨을 연명시켜 줬건만. 건방진 녀석.’

    지금까지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망나니였기 때문이다.

    펠리드 왕자처럼 왕재(王才)를 보였다면 자라나기도 전에 제거했을 터.

    하지만 오늘 숨기고 있던 이빨을 확인한 이상 더는 살려둘 필요가 없었다.

    ‘대업에 방해가 되는 자는 모두 제거한다. 설사 그것이 왕이라 해도.’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광오하다.

    하지만 그게 왕국의 병권은 물론 권력의 핵심인 귀족파를 이끄는 그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그는 자신에게 방해가 될 만한 수많은 정적을 처리하며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다진 야심가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야심가가 지닌 잔에 또 다른 욕망이 넘쳐 흐르기 시작했다.

    ‘고민이로군. 이참에 크라우스 왕도 제거해야만 하는지.’

    어차피 라휀 왕자의 나이도 찼다.

    충분히 왕위를 계승할 정도는 되니 이참에 왕을 제거하여 왕위를 물려주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흐음...”

    고심이 깊어지는 밤 공작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잠시 후.

    콰앙!

    인근에서 들려온 굉음.

    “...”

    하지만 공작은 쉽게 엉덩이를 떼지 않았다.

    무언가 변고가 생겼다면 저택의 병사들이 알려줄 터.

    원래 자리가 무거운 사람을 엉덩이도 무거워야 하는 법이었다.

    다다다- 과연 예상했던 대로 누군가 집무실을 향해 달려온다.

    “고, 공작 각하!”

    다급한 음성과 함께 집무실 안으로 들어온 건.

    “알론. 무슨 일인가.”

    검은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중년인은 클루이안 공작가의 관리 집사인 알론이었다.

    “그, 그것이...”

    “호흡을 가다듬고 제대로 말해라.”

    “아, 알겠습니다. 후우, 후우...”

    평소 냉철한 모습을 보이는 그의 당황한 모습에 공작의 미간에 파인 주름이 더 깊어졌다.

    “저택에 손님이 방문하셨습니다.”

    “이 야심한 시각에? 만나지 않을 테니 돌아가라 전해라.”

    “그것이 이미 그렇게 전하였지만, 상대가 완강히 거부하고 있어서...”

    “허어! 경비들은 무얼 하고?”

    “모두 쓰러졌습니다.”

    “뭐라?”

    “저택의 경비 대부분이 그의 손에 쓰러졌습니다.”

    “...”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공작가를 지키는 경비는 엄선된 기사들이었다.

    특히 지금과 같은 야심한 시각의 경비 수준이라고 한다면 적어도 3성 이상의 정예 기사들로 구성되어 있을 터.

    “도대체 누가 우리 공작가에서 행패를...”

    공작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세그릭 공작. 엉덩이가 무거운 건 알겠으나 좋은 선물을 가져왔으니 어서 나와 보시오!”

    익숙한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아서 왕자?!”

    “그, 그렇습니다. 1왕자 전하께서 공작 각하를 꼭 만나야겠다고 떼를 쓰는 바람에...”

    팟- 하지만 이미 그곳에 공작은 없었다.

    한 줄기 바람을 일으킨 그는 절정의 움직임을 보이며 순식간에 저택의 입구로 나아갔다.

    *

    “세그릭 공작. 엉덩이가 무거운 건 알겠으나 좋은 선물을 가져왔으니 어서 나와 보시오!”

    늙은 공작 엉덩일 떼게 하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끄으으...”

    쓰러져 있던 기사 하나가 신음을 내뱉는다.

    “어라? 기절한 거 아녔어?”

    나름 힘을 조절해서 쳤는데 용케 기절하지 않은 것 같다.

    혹시 다른 녀석들도 깨어나는 건 아니겠지?

    슬쩍 주변을 둘러봤다.

    갑옷을 입은 수십 명의 기사. 하지만 한 명을 제외한 그들이 깨어나는 일은 없었다.

    퍽!

    “커흑!”

    눈치도 없이 혼자 깨어난 기사의 뒷목을 쳐서 다시금 기절시켰을 무렵.

    ‘왔네.’

    손을 털며 일어난 후 뒤로 돌았다.

    표정 관리를 하고 있는 세그릭 공작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확실히 연세가 있어서 엉덩이가 참으로 무겁소, 공작.”

    “공작이란 자리가 야심한 시각에 찾아온 사람을 반겨줄 정도로 한가한 자리는 아니라서 말입니다.”

    “왕자라는 자리도 야심한 시각에 공작의 저택을 찾을 정도로 한가한 건 아니오.”

    “허허. 그럼 야심한 시각에 노신의 저택을 방문한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이런 행패까지 부리면서 말입니다.”

    주위를 둘러본 그가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다.

    “공작. 기사들 훈련을 제대로 시켜야 할 것 같소. 이 망나니 왕자 하나 감당하지 못하고 이리 쓰러져서야. 밤손님 한 명이나 감당할 수 있겠소?”

    “본인을 그리 낮추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시리우스 백작을 일격에 쓰러뜨렸다는 건 이미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일이거늘.”

    “그새 소문이 퍼졌소? 이거 참 난감하군.”

    “그런데 왕자님께서 어찌하여 이 야심한 시각에 노신의 저택을 방문하셨는지?”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는 공작을 빤히 응시했다.

    “정말 모르오?”

    “1왕자 전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쿵.

    나는 어깨에 메고 있던 시녀, 아니 시녀로 변장한 암살자를 던졌다.

    “보내 준 선물은 잘 받았소. 맹독 수프가 아주 달달 하더이다.”

    여전히 시녀의 모습을 한 암살자를 본 공작의 눈가가 한순간 떨리는 듯 했으나 이내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온을 되찾았다.

    “선물이라니요? 이 계집은 왕자님의 시녀가 아닙니까?”

    당연히 그렇게 나오겠지.

    하지만 말이야.

    “공작.”

    “네, 전하.”

    “나는 말이오. 답답한 것을 무척 싫어하오.”

    “허허. 예전부터 유명하셨지요. 그 불같은 성미 말입니다.”

    “그리고 내게 칼을 들이댄 적에게 아량을 베풀 정도로 대인배도 아니지.”

    “...무슨 말씀을 하고 싶은 겝니까?”

    이렇게 하겠다는 거지.

    “세그릭 클루이안 공작과 그의 가문에 소속된 모든 이들에게 전한다.”

    콰르릉!

    힘을 줘 낸 소리가 마치 천둥처럼 장내에 울려 퍼졌다.

    “세그릭 클루이안 공작은 나, 1왕자 아서 델 알슈타드를 시해하려는 반역을 획책하였다. 그 죄가 매우 막중하여 즉시 체포하니 반항하지 말고 순순히 따라라. 만약 이를 어길 시 반역죄를 물어 엄히 다스리겠다!”

    욍자를 죽이려는 건 구족을 멸하는 반역죄에 해당한다.

    여기서 즉결 처형해도 이상하지 않을 중범죄지만, 당장 그들을 죽일 마음은 없다.

    그들을 재판대에 새울 것이고 만인이 보는 앞에서 공작가의 추락과 왕권의 회복을 다시금 증명하리라.

    “1왕자 전하. 참으로 광오하십니다!”

    솨아아-

    공작이 날카로운 기세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알량한 실력만 믿고 이리 천방지축으로 날뛰시는 겝니까?”

    “공작보단 덜하오.”

    왕과 왕자를 대신들이 있는 곳에서 깎아내린 주제에 뭐라고 지껄이는지.

    “허허허.”

    역겨운 웃음을 지은 그는 이내 주변을 훑는다.

    스슥- 마치 기다렸다는 듯 저택에서 일단의 무리가 접근해왔다.

    “호오?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오?”

    “건방 떨지 마라.”

    어이쿠, 무서워라.

    “왕자. 내가 너 따위가 무서워서 가만히 있었는 줄 아느냐?”

    “세간의 보는 눈이 무서웠겠지. 아무리 권력을 쥐고 있다고 해도 결국 출신의 한계라는 게 있는 법이거든. 반역으로 왕위에 올라서는 건 아무리 그대라 해도 찝찝할 테니까 말이야.”

    “그걸 잘 아는 녀석이 이따위 짓을 벌이다니. 참으로 어리석구나.”

    “그걸 잘 아니까 이렇게 해야지. 언제까지 그대의 목줄에 속박되어 살 수는 없잖아? 나와 아버지가 무슨 개도 아니고 말이야.”

    “노옴!”

    결국 터졌다.

    “가지고 태어난 것이라곤 왕자라는 신분 하나밖에 없는 망나니 녀석이 참으로 건방지구나. 네 녀석이 그 잘난 신분 하나만을 믿고 건방을 떠나 본데. 오늘 이후로 네 녀석이 왕자라 불릴 일은 없을 것이다.”

    쿠쿠쿠!

    본색을 드러낸 공작의 기세가 나를 위협했다.

    그건 진득한 살의. 아마도 지금 이 자리에서 나를 죽이기로 마음을 먹은 모양이다.

    그리고 그건 내 주위로 다가오는 공작가의 기사들도 마찬가지.

    “어이쿠. 이 망나니 왕자 하나가 무서워서 이렇게 많은 기사를 동원하는 거야?”

    확실히 철두철미한 양반이긴 하다.

    고작 나 하나를 잡기 위해, 혹시 모를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가문의 기사들을 모조리 동원하다니.

    물론 이 일이 밖으로 새 나가지 않게 처리하려는 것도 있겠지만, 혹시 모를 내 실력을 경계한 것일 터.

    “이제 후회해도 소용없다. 네 녀석을 죽이기로 마음먹은 이상 너는 물론 근방에 있는 모두가 죽음을 면치 못할 테니.”

    “...설마 살인멸구를 할 셈인가?”

    아닌 게 아니라 주변 기사들중 일부가 인가를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비록 밖으로 나온 이는 없다지만, 소란에 의해 깨어난 이가 있을 터.

    이 미친 늙은이는 자신 영지에 있는 영지민들을 죽여 살인멸구를 할 셈이었다.

    물론 그 모든 죄를 나에게 덮어 씌울 셈이겠지.

    “허허. 꼴값지 않은 동정심이라도 보일 요량이냐? 네 손에 죽은 평민들이 산을 이루고도 남을 터인데?”

    그래. 그 말이 맞다.

    과거 나는 툭 하면 평민들을 죽였던 망나니 왕자였다.

    “틀린 말은 아니지.”

    과거의 나는 평민들을 노예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마계, 그 지옥 속에서 나의 유일한 지기가 되어준 이들은 모두 평민들이었다.

    억지로 원정대에 끌려온 평민 병사들. 그들 하나하나가 내게는 너무도 소중했고, 지금 이들이 죽이려고 하는 이들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이들일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들을 용서할 수가 없다.

    「멈춰.」

    그저 한 마디를 내뱉었을 뿐이지만.

    뚝!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인가를 향해 접근하던 기사들의 움직임이 멈췄다.

    “으으으...”

    “으아...”

    녀석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고오오오-

    대기가 찢어질 듯 울부짖으며.

    드드드드-

    대지는 지진이 난 듯 들썩인다.

    그 모든 현상은 내가 일으킨 기세 때문이었다.

    본신의 힘이 아니라 일부만을 발현한 것만으로도 장내의 모든 의지를 내 지배하에 놓았다.

    “늙은이. 넘어야 할 선이 있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어. 그런데 너는 그 선을 한참이나 지나버렸어.”

    그러니 보아라.

    네 녀석이 자초한 일이 어떠한 결과를 불러일으키는지.

    와라.

    츠츠츠츠-

    내게 허락된 유일의 공간, 아공간이 열리고 그곳에서 하나의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륙에서는 볼 수 없는 연녹색 검신과 바람을 형상화한 검은 손잡이의 검.

    폭풍의 마검 스톰브링어(Stormbringer).

    마계의 진정한 주인, 2계층을 지배하고 있는 관리자 중 하나인 단탈리온의 검이다.

    휘잉!

    검을 휘두르자 폭풍이 일었다.

    그 폭풍은 인가를 향해 접근하던 공작의 기사단을 휩쓸었고.

    파파파파팟!

    다음 순간 살아 있는 생명체는 없었다.

    남아 있는 거라곤 잘게 찢긴 살점과 뼈, 그리고 핏방울뿐.

    “무, 무슨?!”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한 공작이 털썩 주저앉는다.

    감히 맞설 의욕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초월의 영역에 닿은 그 힘은 인간인 그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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