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투 더 퓨처 (2)
안되는데, 안되는데.
그렇게 멀어지는 의식을 붙들려 안간힘을 쓰고 있던 그때.
쿵.
뒷머리가 울림과 멀어졌던 의식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통증이 밀려오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눈을 천천히 떴다.
멍한 기분과 함께 밀려드는 두통에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런데 눈을 뜨자마자 멈칫하며 놀랐다.
“······어?”
순간 눈을 크게 뜬 나는 곧장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
여기는······.
버스 안이다.
전에도 이런 꿈을 꾸다가 다시 깨어났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때와는 전혀 다르다.
눈앞의 광경은······, 꿈이 아니었다.
“······.”
익숙하지 않은 세련된 버스의 실내, 사람들의 복장, 헤어스타일도 다르다.
분명 기억에 있음에도 오랜만에 본 탓에 생소한 느낌이다.
그리고 그들이 들고 있는 물건들.
바로 스마트폰이다.
진짜 스마트폰.
많은 이들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것도 오랜만이다.
차창 밖을 보니, 확 실감이 났다.
밤거리.
하지만 익숙한 야경보다 10배는 밝아 보인다.
진짜 와 버린 것이다.
혹시나 했는데, 정말 이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계속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충격은 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낯설까.
6년이라는 짧지 않은 때문이겠지.
어째 마음이 착잡해졌다.
“······?”
그러다가 문득 손에 쥐어진 것을 확인했다.
박카스 빈병이다.
그냥 보면 흔해빠진 빈병일 뿐인데.
이런 조그마한 빈병 때문에 이렇게 마음이 복잡해 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멍한 기분으로 그것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그때였다.
딩동!
[이번 정류소는······.]
“아.”
순간 내려야 할 정류소라는 사실을 깨닫고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들어 건물을 올려다봤다.
오래된 낡은 빌라.
보고 있으려니 오랜 여행 끝에 돌아온 것처럼 반가우면서도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이 내가 살던 집이었지.
그제야 이곳에 엄마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걸음을 재촉해 계단을 올랐다.
2층.
문 앞에 섰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고는 벨을 누르려다가 멈칫했다.
아.
엄마가 자고 있으려나?
벨에서 손을 거두고는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역시 열쇠가 있다.
그래, 늘 열쇠를 가지고 다녔었지.
그렇게 생각하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긴장이 풀려서인지 몸이 축 늘어지고 졸음이 쏟아진다.
몸이 급격하게 무거워지자 힘들게 신발을 벗고는 서둘러 내방으로 들어갔다.
백팩을 바닥에 내려놓고 옷을 벗을 새도 없이 침대위에서 무너졌다.
젠장.
이거, 박카스 후유증인가.
다시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
눈이 떠졌다.
그리고 보이는 천장.
“······.”
멀뚱거리며 바라보다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방안을 둘러봤다.
내 방이다.
칙칙하지만 그래도 정겨운 곳.
하지만 쌍둥이, 누나, 엄마와 살던 때의 내방은 아니었다.
미래에서 엄마와 둘이서 살던 낡은 빌라의 그 방.
컴퓨터를 보니, 더 확실해진다.
잠에서 깰 땐 꿈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아니었다.
정말로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왠지 가슴 한쪽이 텅 비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다.
원래의 내 자리로 돌아왔을 뿐인데.
늘 홀로 남겨진 엄마를 걱정하고 있었는데 차라리 잘 된 일이지.
한동안 그렇게 멍한 채로 앉았다가 머리를 긁적이며 일어났다.
그리고는 침대에서 내려와 방문을 열고 나갔다.
어젠 피곤해서 제대로 못 봤는데.
오랜만이라 그런지 친근하다.
거실을 둘러보고 있는데, 그때 화장실 문이 벌컥 열렸다.
머리에 수건을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엄마다.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엄마는 그런 내 속마음도 모른 채 의외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 벌써 일어났니? 오늘은 쉬는 날인데, 벌써 옷까지 챙겨 입었어?”
내 모습을 살펴봤더니 어젯밤 점퍼를 입고 들어왔던 복장 그대로였다.
벗지도 않고 잠들었는데, 그대로 나왔으니.
그나저나 쉬는 날?
그러고 보니, 내가 공장에 다니고 있었다는 걸 잊고 있었다.
공장이라.
거의 기억나는 것도 없는데.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으려나?
이 와중에도 이런 생각이라니.
그렇게 생각하며 혼자 히죽거리는데, 그런 날 보며 엄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그나저나······.”
엄마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얼마 전에 봤던 젊은 시절과 오버랩 된다.
“응?”
“우리 엄마 많이 늙으셨네.”
역시 이쪽이 더 친근하다.
물론 늙은 쪽이 좋다고 말하면 등짝을 제대로 맞겠지만.
그 말에 멈칫하던 엄마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하지, 지금 내가 몇 학년인데.”
“그래도 나이에 비해 젊어.”
경험상 80년대였다면 저 모습보다 나이가 10년 이상은 더 들어 보였을 거다.
내 말에 엄마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가, 곧 어색하게 웃었다.
“얘가 아침부터 뭐래? 무섭게. 혹시, 어제 독한 술이라도 마셨니? 그래서 아직 안 깬 거야?”
“그런가?”
내 말에 엄마가 양손을 허리에 얹고는 말했다.
“적당히 마셔. 적당히.”
그리고는 휴대폰을 슬쩍 확인하며 다시 말했다.
“해장국이라도 끓여줄까?”
“아니. 그건 됐고, 엄마랑 그냥 밥이나 먹을래.”
내가 같이 먹지 않으면 아마도 아침은 대충 때우고 갈 게 틀림없다.
나도 아침은 잘 먹지 않았으니.
그런데 내 이런 말이 반가웠는지 엄마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럴래?”
“어.”
엄마가 팔을 걷어붙이며 말했다.
“그럼, 아침부터 실력발휘해 볼까?”
“가볍게 차려, 가볍게. 아침부터 요란하게 하지 말고.”
“알았어, 알았어. 그냥 가볍게 삼겹살······.”
“좀.”
“농담이야. 그냥 간단하게 김치찌개면 되겠지? 네 해장국 겸해서. 어때?”
“그건 뭐.”
“오케이.”
사실은 속풀이 할 것도 없지만.
그나저나 엄마가 신나 보인다.
그런데 지금의 엄마 모습······.
“왜?”
“누구랑 닮은 것 같아서.”
“누구?”
“경······.”
그 순간 멈칫했다가 곧장 내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갑자기 왜 말을 하다 말고 들어가니? 경, 다음 뭔데?”
“아무것도 아니야.”
그렇게 말하며 문을 닫고는 컴퓨터를 켰다.
엄마가 방문을 빼꼼 열며 물었다.
“혹시 여자친구?”
“······.”
“그래, 그래. 알았어. 아무튼 밥 다되면 부를 테니까, 그때 나와라.”
“어.”
엄마는 내 대답을 듣더니 은근한 웃음을 짓고는 곧장 방문을 닫았다.
부팅중인 컴퓨터.
한참 쳐다보다가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맞다.
평소엔 잘 쓰지 않은 오래된 컴퓨터라는 걸.
부팅 시간도 길지만, 윈도우가 실행된 이후에도 웹브라우저를 실행시키면 또 한참 걸리는 고물이다.
아, 스마트폰이 있었지.
어제 의자에 벗어둔 점퍼를 뒤적거렸지만, 폰은 보이지 않는다.
이번엔 어제 메고 들어왔던 백팩을 열어봤다.
그런데 백팩안에 두꺼운 책이 들어있다.
보물성.
그것도 1983년 10월호.
내가 그곳에서 마지막에 가지고 있던 책.
역시 박카스 하나만 필요한 게 아니었었나.
그렇게 생각하며 폰을 찾던 건 잊고 책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책 사이에 끼워져 있던 종이를 발견했다.
선희가 그린 머신건 잭의 일러스트.
종이엔 세월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처음 과거로 갔을 때 그 10만원처럼, 이 그림도 같이 따라온 것일까.
선희의 그림을 보며 한참동안 생각에 잠겼을 때였다.
“윤환아, 밥 먹어.”
엄마의 음성을 듣고 정신을 차렸다.
*
“다녀올게.”
“어.”
엄마가 식당에 일하러 나가자마자 다시 휴대폰을 꺼내 검색을 시작했다.
머신건 잭에 대해서.
그런데 만화는 1989년에 미완된 채로 연재가 중단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기야, 갑자기 이렇게 와버렸으니.
그래도 대충 완결 정도는 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물론 애니는 대충 마무리가 된 모양이고, 이게 또 꽤나 고전 명작취급을 받는 모양이다.
미국에서는 몇 년 전에 영화로도 상영했는데, 그럭저럭 괜찮은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그다음은 만화가인 써니에 대해 알아봤다.
머신건 잭 중단 이후로 작품 활동이 뜸하다가 몇 년 후에 일본에서 작품을 냈다는데 단편 위주로 큰 활동은 없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만화가 생활을 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갔다는데 워낙 알려진 게 없어서 정확하지는 않다고 한다.
다른 가족들에 대한 걸 찾아봤지만, 인터넷으로는 거의 확인할 수 있는 게 없다.
지금 기준에서는 30년 가까이 흐른 과거의 일이라 제대로 된 정보가 없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삼사라, 머신건 잭, 절망의 페르소나, 메갈로폴리스 인 캣은 모두 유명하다.
지금도 완전판이니, 양장본이니 하며 계속 나오는 걸 봐서는 아직 꽤 팔리는 모양이고.
인터넷 정보를 뒤적거리다보니, 한국에서는 거의 전설급 만화들로 취급되고 있었고, 일본에서도 상당한 작품으로 대접받고 있었다.
특히, 일본의 수많은 만화가들이 영감을 받은 작품이라고 할 정도였다.
나에 대한 정보도 있다.
전설적인 인물이라며 거창하게 써 놓은 정보들을 읽다보니 전신이 오그라드는 기분이 들었다.
몇 가지 사실은 외곡된 것도 있어서, 수정해야 할 정보도 많다.
사진도 있긴 한데, 외부로 알려진 사진이 거의 없다면서 예전에 일본 출판사에서 기념사진 찍었던 게 올라와 있다.
내 곁에 서 있는 남자는 담당이었던 지로다.
오래된 사진 속 지로와 내 모습.
그리고 눈에 들어온 글.
[사망 : 1989년 10월 13일. 만 25세]
내가 죽은 게 확실하구나.
어쩐지 기분이 묘해진다.
나는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있는데, 세상에는 죽은 사람이 되어 있다니.
뭐, 정확히 말하면 죽은 건 원래 몸이었던 본체였을 테지만.
그래도 기분이 이상한 건 여전하지만.
그런데 그때였다.
창밖에서 유리를 긁는 것 같은 묘한 소음이 들려왔다.
머리를 들어 쳐다봤더니 하얀색 고양이 한 마리가 날 빤히 쳐다보고 있다.
“······저 녀석.”
백설기?
얼핏 보기엔 녀석으로 보이긴 하는데.
창가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그런데 방금까지 있던 하얀 고양이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갔지?
이리저리 머리를 돌려봤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곧 문을 닫고는 다시 휴대폰을 확인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휴대폰에 터치가 먹히지 않았다.
“······어? 이거 왜이래?”
열심히 손가락으로 두드려봤지만, 마찬가지다.
끄려고 했지만, 소용없다.
배터리를 분리했다가 다시 꽂아봤지만 이젠 아예 켜지지도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컴퓨터를 사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컴퓨터 역시 마찬가지로 먹통이었다.
“이게 뭔 일인지.”
황당하다는 생각을 하며 멍하게 있다가 문득 뭔가가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지금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곧바로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어차피 검색이야 나중에 PC방이든 어디서건 하면 되니까.
그보다 지금은 먼저 가봐야 할 곳이 떠올랐다.
80년대에 살던 집과 화실이 인근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문득 묘한 기분에 주변을 둘러봤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우리 동네와 상당히 다른 느낌 때문이다.
처음 보는 건물도 상당히 많이 보이지만, 그보다 도로변의 모습이 내 기억보다 더 번화가가 되어있었다.
길거리에 사람들도 더 많고.
그렇다고는 해도 길을 찾지 못할 정도로 변한 건 아니지만.
어쨌건 지금은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촌놈처럼 두리번거리는 짓을 그만두고 빠르게 뛰었다.
하지만 3분도 채 못 버티고 뛰는 것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숨이 너무 차서 쓰러질 것 같아서.
그제야 잊고 있었던 나에 대한 사실을 떠올렸다.
바로 저질체력의 소유자였다는 것을.
갑자기 과거의 그 몸이 그리워지네.
오늘부터라도 운동을 시작할까.
그렇게 생각하며 힘들게 10여분쯤 걸었을 때, 어느 샌가 목적하던 장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내가 살던 단독주택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곳엔 새 아파트가 자리를 잡고 있다.
“······.”
그럼 가족 모두가 선희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걸까?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찾아야하지?
인터넷에도 정보가 별로 없던데.
동사무소에서 알아봐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다가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이번엔 화실이 있던 곳으로 향했다.
동네가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기억만으로 보자면 어제까지 생활했던 곳이다.
내가 ‘란마1/2’에 등장하는 료가처럼 길치도 아닌 이상 찾지 못할 리는 없다.
그런데 화실 근처까지 왔을 때 사람들이 잔뜩 몰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많은 사람들이 휴대폰을 들고 뭔가를 열심히 찍고 있는 모습도 들리고, 환호소리도 들린다.
근처에 연예인들이라도 떴나보다 싶어서 사람들을 피해 돌아가려는데, 화실이 있던 장소에 가까이 갈수록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진다.
“······.”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을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아, 진짜! 밀지 마요!”
“죄송합니다.”
“왜 이래! 아프잖아요!”
“죄송합니다.”
연신 사과를 하며 몰려있는 사람들을 뚫고 앞으로 전진했다. 그리고 곧 화실 근처에 도착했는데.
“······!”
놀랍게도 화실 건물을 그대로 남아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수리를 한 탓인지, 내가 있던 시절보다 더 새 건물처럼 보인다.
그보다······.
사람들이 화실 대문의 입구 근처에 더 많이 몰려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
일단 여기까지 왔으니 가장 잘 보이는 자리 쪽으로 사람들을 헤집고 들어갔다.
그리고 끝에 다다르자 주변에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 수십 명과 경찰들이 몰려든 인파들을 통제하고 있다.
그들 사이엔 방송국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들도 꽤 보인다.
진짜 오늘 무슨 연예인들 행사가 있는 날인가?
그리고 그들 사이로 화실 대문이 슬쩍 보인다.
그런데 그곳으로 사람들이 들락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화실의 주인이 바뀐 걸까?
하기야, 선희와 가족이 이곳을 떠났다면 굳이 화실을 유지할 이유는 없겠지.
화실건물이 남아있어서, 반갑기는 했지만, 가슴 한편에 씁쓸한 감정이 생겨나는 건 어쩔 수 없다.
흥분해 날뛰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직 나만 축 처진 기분으로 서 있었다.
이제 그만 돌아갈까?
뭐 박상식이나, 이대봉이 아직도 활동하고 있다면 가족들의 소식을 들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보다······.
거의 30년 만에 나타났는데 여전히 젊은 외모를 가졌다면 어떻게 받아들을까.
아니, 문제는 그게 아니다.
본래의 몸이 죽어버렸고, 아마 장례도 치렀을 텐데.
갑자기 30년 만에 나타나 그게 나라고 말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물론 외모야 거의 같으니 믿을 수 있을 지도 모르지만.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을 하다가 곧장 몸을 돌렸다.
그래.
일단 그 문제는 천천히 생각해보기로 하자.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돌아가려고 할 때였다.
“와아아아!”
사람들의 환호소리가 더 커졌다.
나도 모르게 돌아보게 될 정도로 큰 소리였다.
그리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대문 앞으로 들어가려다 이쪽을 향해 인사한다.
그런데 인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익다.
이곳에서 지냈던 때가 꽤나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거리긴 하지만, 오래지 않아 떠올릴 수 있었다.
바로 유명한 웹툰 작가들이었다.
그중 몇 명은 내가 과거로 가기 전 방송에서도 꽤나 얼굴을 자주 비추던 유명인들이었다.
꽤 유명한 프로였는데 제목이 뭐였더라.
아무튼, 웹툰 만화가들이 들어가는 모습까지 보고 났더니 괜스레 호기심이 일었다.
그리고 곧 다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이번엔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이다.
딱 봐도 외국 사람들인 모양인데, 그들 사이에 얼굴이 익숙한 할리우드 배우도 보인다.
그를 확인한 사람들이 다시 크게 환호했다.
도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그리고 잠시 후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사람들 때문에 그 자리에서 몸이 굳어버렸다.
중장년의 모습을 한 이대봉과 실버 때문에.
60대 초반일 그들이었지만, 40대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대봉, 그리고 50대 초반 정도의 외모에 여전히 거대한 몸집을 가지고 있는 실버.
이대봉은 사람들을 둘러보며 손까지 흔드는 여유를 부린다.
그에 반해 실버는 그저 묵묵하게 걸어가다가 사람들에게 정신이 팔려있는 이대봉의 뒷덜미를 잡아끌며 화실의 대문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 다 잘 살고 있었구나.
며칠 전까지 보던 사람들이 갑자기 30년 가까이 나이 들어 버렸다는 것이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지만.
기분 같아선 당장이라도 달려 들어가고 싶지만, 지금 이 모습으로 들어가면 시끄러워 질 테니, 일단 참아야한다.
아무튼 덕분에 가족에 대한 소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희망이 생겼다.
그리고 화실은 적어도 나와 관계있는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곳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나저나 정말 오늘 무슨 날이지?
그렇게 생각하다가 옆에 서 있던 안경 쓴 남자에게 물었다.
“오늘 여기서 무슨 행사가 있나요?”
열심히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찍고 있던 남자가 날 슬쩍 돌아보며 스스로를 가리켰다.
“저요?”
“네.”
“설마, 모르고 오신 거예요?”
“아, 네.”
내 말에 콧등을 찌푸린 남자가 날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천재작가였던 천원(텐겐)의 29주기잖아요.”
“······네?”
오늘이 29주기라고?
“어? 왔다!”
갑자기 내게 설명을 하던 남자가 휴대폰을 들고 다시 뭔가를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시선도 덩달아 같은 곳을 향했다.
몇 대의 고급 승용차가 사람들 사이에 멈춰서고, 차문이 열리며 여러 명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
그런데 그곳에서 내가 그렇게 찾던 사람들이 있었다.
50대의 모습이었지만, 분명히 내 쌍둥이 여동생들.
경희와 선희가 분명했다.
그리고 경희로 보이는 여자 곁엔 내 기억의 속 쌍둥이들과 같은 모습의 쌍둥이 여자애들이 같이 나란히 서 있었다.
경희는 여전히 수다스럽게 쌍둥이 아이들과 떠들며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뒤를 선희가 따라 들어가려다가 뭔가를 발견했는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러더니 곧 몸을 일으키자 그녀의 양팔엔 하얀 고양이 한 마리가 안겨 있었다.
저 녀석.
역시 백설기였구나.
그때 내 옆에 있던 남자가 나를 툭툭 쳤다.
“저 여자, 누군지 알아요?”
남자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곧장 말을 이었다.
“바로 그 유명한 써니에요. 써니. 80년대 일본에서 엄청난 히트를 쳤던 삼사라와 머신건 잭의 만화가. 머신건 잭은 들어봤죠?”
그렇게 말하며 날 힐끔거린다.
“아, 역시 만화는 들어보셨구나. 하지만 얼굴을 처음 보죠? 저도 솔직히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에요. 사진은 뭐 몇 장 보긴 했지만. 아무튼, 이번에 한국에 온 것도 거의 10년만이라던데.”
“10년만······ 인가요?”
“네. 그래서 지금처럼 사람들이 거의 다 못 알아보잖아요.”
그렇구나.
10년 만에 찾아온 거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선희를 쳐다봤다.
그런데 선희의 팔에 얌전히 안겨있던 백설기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그 순간.
선희의 고개도 내 쪽을 향했다.
그리고 눈과 눈이 마주쳤다.
잠시 날 쳐다보던 선희의 눈동자가 점점 커졌다.
나를 빤히 쳐다보던 선희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선희의 눈이 날 보며 말하고 있었다.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 선희의 눈을 보며 나도 미소 지었다.
‘늦어서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