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단행본의 왕 (5)
이 새로운 이벤트는 입소문과 함께 잡지, 그리고 방송까지 타며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책으로 만들어진 디테일한 탱크모형이 작가인 써니가 직접 설계했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실제로 써니가 그린 조라탱의 그림과 자세한 조립 설계도가 공개되기도 했다.
그 덕분에 현장에선 그런 팬들을 위해 따로 설계도 그림이 그려져 있는 액자가 판매가 되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탱크, 그리고 코스프레한 사람들 사이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매일같이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물론 파스의 복장으로 나온 우에다 미코의 인기는 그야말로 절정이었다.
그녀를 보기위해 모인 인파, 그리고 그녀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려는 사람들.
사고를 막기 위해 근처 경찰들까지 투입되어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때문에 경찰 측에선 행사를 중단하라는 요청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 와중에 행사소식을 듣고 취재차 온 방송국이 이 모습을 영상에 담았고, 그것이 전국방송을 타고 말았다.
몰려든 사람과 경찰들이 대치한 묘한 긴장감 영상이 저녁 TV뉴스로 나가자 만화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더불어 여배우가 코스프레를 한 모습까지 나오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 때문에 출판사에서도 이번 사건을 따로 기사화 시키며 여러 장의 사진까지 실으며 대대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해 주간 루머에서도 이번 사건을 자세히 다루며 행사 시작부터 경찰들과 마찰이 일어나는 모습을 시간 흐름대로 기사화했다.
자세한 사진 수십 여장과 함께.
그렇게 흐름을 탄 판매는 결국 260만부를 넘기며 드래곤볼의 기록을 깨는데 성공했다.
아이디어와 운이 합쳐지며 생긴 기적 같은 일이었다.
* * *
270만 부를 돌파했다.
하지만, 아직 30만부, 아니 그보다는 작겠지만 아무튼 무시할 수 없는 물량이 남아있다.
이게 정말로 팔리게 될까?
미간에 힘을 주며 고민에 빠져버렸다.
“E북이었다면 이렇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텐데.”
내가 살던 시절이었다면 미리 책을 찍어둘 필요가 없을 테니까.
하긴, 그렇게 생각하면 더 적극적으로 홍보할 생각은 안했겠지.
-네? 이북이요? 그게 뭡니까?
갑자기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지로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참, 전화통화 중이었지.
나도 모르게 쓸데없는 말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나저나, 생각이상으로 홍보가 잘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서둘러 이야기를 넘기자 지로도 더 이상 궁금해 하지 않고 내 말을 받았다.
-역시, 우에다 씨의 파스 코스프레가 화룡점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지.
“이번 뉴스로 방송 일에 차질이 있는 건 아닐까요? 괜히 우리 때문에.”
-아뇨. 오히려 주목을 너무 많이 받아서, 나와 달라는 방송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실망했다는 팬들도 간혹 있는 모양이지만, 반대로 새로 생긴 팬들이 월등하게 많았던 모양입니다.
듣기론 이번 코스프레 때 그녀의 매니지먼트 회사가 반대하는 바람에 몰래 강행한 일이라고.
하지만 결과가 나쁘지 않아, 지금은 회사에서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모양이다.
이참에 머신건 잭을 이용한 화보 촬영까지 계획 중이란다.
뭐, 그래준다면 이쪽이 더 고맙지만.
-아무튼, 출판사에서도 이정도면 충분히 잘했다는 분위깁니다. 솔직히 250만부도 무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남은 30만부네요.”
-그렇죠. 하지만 이정도로도 충분하다는 게 출판사의 분위기입니다. 충분히 광고도 되었으니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이즈미는 받아들일까?
그리고 그 예상은 맞았다.
다음날 아침.
이즈미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이걸로 만족할 리가 없잖아요.
“역시.”
-역시라니, 무슨 말이에요?
“아니요. 그냥 혼잣말입니다.”
-나······ 놀리는 것 같은데.
“아뇨, 그럴 리가.”
-그 반응이 더 수상하네.
눈을 가늘게 뜬 이즈미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다.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그래, 무슨 방법이 있는 겁니까?”
-그건 뭐······.
이 이상 판매부수가 올라간다는 건 어려울 것이다.
이미 예상을 몇 번이나 깼으니까.
아직은 신드롬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여러 가지를 준비했으니까.
“그게 뭔데요?”
-결과가 나오면 말하죠.
그렇게 말하더니 전화기 너머에서 간사한 느낌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
-역시 궁금한 모양이네. 말해 줄까?
“결과가 나오면 말해주세요.”
그 말에 이즈미가 발끈하며 소리쳤다.
-정말 재미없어!
*
그런데 며칠 후.
지로가 다시 새로운 소식을 전해왔다.
-미국의 영화제작사에서 ‘절망의 페르소나’ 판권을 사들이고 싶다는 제의를 해왔습니다.
“네?”
전혀 뜻밖의 소식이었다.
영화제작사라니.
-제법 유명한 영화를 만든 제작사라고 하던데, 방사능 문제를 현실적으로 다뤄서 흥미롭다는 모양입니다.
만화의 내용이 그리 길지 않은데다가 현실적이라 영화에 어울리는 스토리긴 하다.
물론, 미국에서 만든다면 미국의 사정에 맞게 각색되긴 하겠지.
지금은 윤색이라고 하던가?
물론 판권만 사놓고 흐지부지 제작이 미뤄지거나 결국 제작이 취소되거나 다른 곳에 판권을 팔아버릴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미래엔 일본만화의 판권이 많이 팔렸음에도 제작을 하는 경우는 상당히 드문 편이었으니.
그보다, 일본만화를 영화화해서 성공한 케이스가 드문 게 가장 큰 이유겠지만.
물론 그런 거야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어떻게 알고 연락을 해온 겁니까?”
-글쎄요. 그것까진 저도······.
미국에 절망의 페르소나가 수출된 건 아닌 모양이던데.
지금은 미래처럼 인터넷 같은 게 발달한 시기도 아니라서, 작품이 알려지는 게 쉽지도 않을 거고.
-아무튼, 그 때문에 몇 군데 방송국에서 연락이 오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의 기존 작품에 대해 방송을 하고 싶다고 합니다.
이내 씁쓸한 투로 말을 이었다.
-물론 선생님을 직접 인터뷰하겠다는 말은 없었습니다.
그렇겠지.
일본 작품이라는 것만 알리고, 작가가 한국인이라는 건, 일본인들 자존심 때문에 숨기려하겠지.
뭐 출판사에서도 그런 분위기 때문에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굳이 적극적으로 알리지는 않는다고 들었다.
아무튼, 지로와의 통화가 끝나고 난 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이즈미에게서도 전화가 왔다.
-소식 들었어요?
“절망의 페르소나 말입니까?”
짧은 순간 이즈미의 말이 끊어졌다.
그리고는 어쩐지 바람 빠진 것 같은 그녀의 음성이 들렸다.
-뭐야, 알고 있었네요. 내가 힘들······.
뒷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
갑자기 전화기 상태가 나빠진 건가?
“네? 여보세요?”
-내 말 안 들려요?
“이제 잘 들리네요.”
-아무튼, 판권료는 얼마 안돼서 좀 실망했어요. 그쪽도 그렇죠?
“네, 뭐.”
사실은 얼마인지 모르지만, 굳이 묻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이즈미 입장에선 판권료가 얼마가 되었건 푼돈일 테고.
그런 걸로 또 길게 이야기하면 머리가 아플지도.
잠시 생각하다가 먼저 떠오르는 것을 말했다.
“그보다 어떻게 알고 연락이 왔는지 그게 더 궁금하네요.”
내 말에 갑자기 전화기 너머에서 웃음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지금 웃고 있어요?”
-아뇨. 누가요?
잡아떼고 있다는 느낌이다.
“아니면 됐고요.”
-궁금하지 않아요?
“웃은 거 아니라면서요.”
-그거 말고요.
“그럼 뭐가 궁금해요?”
-미국 영화제작사요. 거기서 갑자기 판권을 사겠다고 한 이유요.
“알고 있는 겁니까!”
-앗! 깜짝이야!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 어떡해요?
날카로운 음성이 내 귀를 찔렀다.
그리고 이내 이즈미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웃지 말고 말해 봐요.”
-사정청취(취조)라도 하는 거예요? 다그치니까 말하기 싫잖아.
은근히 즐기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어쩐지 말린 듯한 기분인데.
-이봐요. 여보세요?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말을 안 해요?
“말하기 싫다고 해서요.”
“꼭 그렇다는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말하기 싫으면 굳이······.”
알기 쉬운 성격이라 다행이네.
이즈미가 조급한 음성으로 서둘러 말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미국에 갔을 때······.
“아니, 그러니까, 이야기하기 싫으시면······.”
이즈미가 흥분한 음성으로 버럭 소리쳤다.
-어우, 진짜! 그냥 입 좀 다물고 들어봐요! 욕먹기 싫으면.
“······네.”
내 대답과 동시에 이즈미가 말했다.
-미국 LA에 갔을 때.
뭔가 내가 살던 시절에 과거 유명했던 메이저리그 선수가 떠오르는 말이라,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왜 웃어요? 사람 말하는데.
“아, 미안요.”
-예의를 갖춰요, 정말.
“네.”
잠시 뜸을 들인 이즈미가 다시 말했다.
-아무튼, 영화 제작사 몇 곳의 임원들과 만난일이 있었어요. 그때 제가 선물했거든요. 그거, 그거.
“그거?”
“만화책이요.”
“······설마, 절망의 페르소나요?”
-그래요. 그거. 갈 때 그쪽 작품 몇 개 영문판으로 번역한 책을 좀 가져갔는데, 그쪽 코믹북 출판사 몇 곳도 돌면서 좀 뿌렸죠.
이즈미가 영업을 했다고?
그것도 내 만화를 가지고?
영 어울리지 않는 느낌인데.
-지금······, 그쪽 놀라고 있는 거예요?
“좀 많이요.”
-왜요? 회사 임원이자 대주주로서 당연한 걸 하는 건데.
뭔가 우쭐거리는 느낌이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네요.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죠.”
-그쪽한테 고맙다는 말도 다 들어보네요.
기분이 좋은 듯한 음성이다.
아무튼 놀랐다.
미국 영화제작사에서 연락이 온 이유가 이즈미 때문이었다니.
-아무튼, TV 쪽이나 신문, 잡지 등에도 내용을 흘려놨으니까, 조만간 알아서 방송을 할 거예요. 그럼 우리는 자연스럽게 홍보가 될 거고.
“그래서요?”
-그래서라니, 당연히 머신건 잭 300만 권 모조리 팔아치워야죠. 그러려고 한 일인데.
“이게 다 머신건 잭을 팔기위한 거라고요?”
-그래요. 일본은 서양 사람들이 관심보인다면 환장하거든. 특히 미국이라면 더. 거기다 할리우드에서 판권을 사가는 만화. 원작자의 다른 만화도 자연스럽게 홍보가 될 거고.
대단한 여자다.
저번에도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더니.
이번엔 미국까지 가서 준비했던 모양이다.
만화에도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거 이상으로 비즈니스에도 천부적인 것 같다.
그런 그녀에게 말했다.
“부동산은 얼마나 있어요?”
-많죠. 그런데 왜요?
“올해 안으로 정리하세요.”
-네?
하지만 구체적이 말은 그만두었다.
내가 뭐 이쪽 전문가도 아니라서, 잘 아는 게 없지만 대충 90년대부터 거품이 터지기 시작한다는 건 잘 알고 있으니까.
-전에도 비슷한 소릴 하더니, 뭘 근거로 그런 황당한 소리를 하는 거예요?
“결정은 알아서 판단하세요.”
-아, 정말. 신경 쓰이게. 자세하게 말해 봐요.
“다음에 통화하죠.”
-어? 잠깐······.
전화를 끊었다.
내 말을 듣던 안 듣던 알아서 결정하겠지.
나야 뭐, 신세를 졌으니 대충 갚는다는 생각으로 한 말이니까.
나머지는 그녀의 결정에 달렸다.
어찌되든 그건 이즈미의 복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