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420화 (420/425)

만화 단행본의 왕 (4)

머신건 잭 10권이 일본전역에 뿌려지고 난 뒤, 대도시 출판사들을 중심으로 책을 사려는 행렬이 이어졌다고 한다.

이전보다 더 많은 팬들이 몰린 모양인데.

일단 분위기로 보면 200만 부 정도는 그런대로 판매가 확실해 보이는 흐름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일 것이다.

아직 시장의 규모는 누구도 300만 부를 개척한 적이 없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머신건 잭이 이걸 개척해야 한다는 건데.

그만한 인기의 힘이 머신건 잭에게 있냐는 거다.

많은 매니아 팬들이 있고, 대중적인 인기도 같이 얻기는 했지만, 300만 부라는 수치는 200만부와는 아예 다른 영역인 것이다.

물론 미래엔 원피스 같은 작품이 400만 부의 영역까지 개척해버리는 괴물 같은 힘을 발휘하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앞으로 20년 정도는 후의 일이고.

드래곤볼의 경우도 알아봤더니, 소년점프 자체에서 많은 이벤트까지 열었던 모양이었다.

자필 사인이 든 오리지널 일러스트 열장을 추첨으로 걸기도 하면서.

그 외에도 출판사가 250만 부를 달성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송 이벤트까지 했던 모양이고.

원래라면 그렇게까지 홍보는 하지 않았었다.

대작이 쏟아지던 이 시기의 소년점프는 다른 잡지사에겐 그만큼 넘사벽이었으니.

그런 소년점프에게 이젠 라이벌이 생겼다.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지만, 성장속도가 너무 빨라서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출판사.

미쯔다쇼텐의 소년 히어로.

만화계에서도 이젠 소년점프와 소년 히어로 양대 진영의 싸움이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는 시점이다.

그렇다보니, 소년 히어로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250만 부나 찍어내고, 그것을 판 것은 대단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어쨌건 그만큼 시장이 커졌다는 건 반가운 일이기도 하니까.

“왜 그런 표정이야? 긴장이 너무 되는 거니?”

이대봉이 한쪽 손으로 턱이 괸 채 삐딱한 얼굴로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자 박소미가 이대봉을 타박하듯 말했다.

“오빠는. 그럼 긴장이 안 되겠어?”

“뭐, 처음도 아니잖아. 이제 200만 부 정도는 일상 아니야?”

“농담도 적당히 해. 어떻게 그게 일상이 돼? 그리고 지금은 300만 부에 대한 고민이지.”

그렇게 말한 박소미가 나를 힐끔 쳐다본다.

그러자 이대봉도 이해가 간다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하긴, 300만 부는 긴장할 만하지.”

그 말에 다른 어시들도 머리를 끄덕였다.

그때 경희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다가와서는 작게 말했다.

“설마, 재고가 생기면 우리에게 떠넘기는 건 아니겠지?”

그 말을 들은 이대봉이 버럭 했다.

“그걸 왜 떠 넘겨? 그리고 가져오는 비용이 더 크겠다.”

“꼭 가져올 필요 있나? 창고비용까지 청구하면 되지.”

“어? 그러네?”

그 모습을 본 실버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뭘 납득하고 지랄이야. 미친놈.”

“넌, 왜 나한테만 그래? 말 꺼낸 건 경희잖아.”

“쟨 아직 어려서 분별력이 없으니까. 하지만 서른이 넘은 녀석이 그런 말에 홀라당 넘어가면 되겠냐?”

그 말에 경희가 머리를 끄덕이다가 화들짝 놀랐다.

“어? 나도 어른이야!”

그때 선희도 작업을 멈추고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나도.”

모두의 시선이 잠시 선희 쪽에 몰렸다.

선희는 다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림에 몰두하자, 이번엔 이대봉이 팔짱을 끼며 소파 등받이에 몸을 털썩 기댔다.

그리고 곧장 날 보며 물었다.

“그럼 역시 300만 부에 대한 부담감이니?”

“뭐, 그렇지.”

내가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이대봉이 실실 웃었다.

“나라면 그냥 좋기만 할 것 같은데.”

“너는 양심이 없으니까.”

실버의 말에 이대봉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야!”

그때였다.

화실 문이 열리며 미네가 들어왔다.

아직 일 때문에 한국에서 계속 머무르고 있던 모양이다.

아무튼 이젠 친분이 생긴 탓에 초인종은 누르지 않고 바로 들어온다.

“모두 안뇬하시무니까.”

어설픈 한국어로 인사를 한다.

그런 그녀를 사람들이 반갑게 맞이했다.

대충 인사가 끝나고 나자 내게로 다가왔다.

“축하드려요. 300만부.”

“축하는요. 오히려 엄청난 재고가 생길 분위긴데.”

“뭐, 그거야 만화가가 고민할 필요는 없는 거 아니에요? 어차피 출판사에서 결정한 거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신경은 쓰이니까.”

“그렇기는 하겠네요.”

머리를 끄덕인 이즈미가 가방을 뒤적거렸다.

그리고는 잡지책 하나를 꺼냈다.

“뭐예요? 불륜기사?”

내 말에 미네가 쀼루퉁한 얼굴이 되었다.

“제가 뭐, 그런 것만 취급하는 줄 아세요?”

그렇게 말하더니 잡지를 뒤적거리고는 뭔가를 찾았는지 펼친 채로 내게 내밀었다.

“이거.”

“······?”

뭔가 해서 봤더니 일본의 유명 여자배우의 사진이다.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여배우에요? 이름은 우에다 미쿠. 인기야 뭐 엄청나죠. 혹시 아세요?”

당연히 잘 알고 있다.

일본에 갔을 때 거리에서 가장 많이 보이던 사진 속 여자이기도 하고, 소년 히어로에 화보사진도 몇 번 올라온 적이 있었으니까.

한국에도 이 여배우의 머리스타일이 인기라고 얼핏 들은 것도 같다.

“그런데 왜요?”

“그 사람. 써니 씨의 엄청난 팬이라고 하네요. 여기.”

그렇게 말하며 잡지 한쪽에 써진 글자를 가리킨다.

[······삼사라, 머신건 잭의 열렬한 팬이에요. 혹시 이걸 보시면 언제라도 불러주세요.]라고 쓰여 있다.

“우와, 정말이야, 이거?”

언제 다가왔는지 미네가 가리킨 글자를 읽은 경희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네. 제가 직접 인터뷰도 해봤는데. 농담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써니 씨의 행사가 있으면 꼭 좀 불러달라고 부탁까지 하던걸요.”

미네의 대답에 경희가 화들짝 놀랐다.

“진짜요?”

그렇게 말하더니, 선희를 돌아보며 웃었다.

“와, 선희는 좋겠다. 이렇게 예쁜 여자배우가 네 팬이라서.”

하지만 선희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

모두 퇴근한 저녁시간.

아직 작업에 몰두한 선희를 기다리며 머신건 잭의 새로운 파트부분에 몰두했다.

그때 부엌청소를 끝낸 경희가 선희 곁으로 다가가서는 평소처럼 그림 그리는 모습을 구경했다.

그런데

“어? 이거 뭘 그린거야?”

경희가 뭘 봤는지 저렇게 묻는다.

선희는 잠깐 뜸을 들이고는 대답했다.

“조라탱.”

“이게?”

뭘 본거야?

궁금한 마음에 선희 자리로 갔다.

그리고 무슨 그림인가싶어서 경희 곁에서 봤더니······ 선희의 말대로 조라탱이 맞다.

그런데 경희가 왜 놀랐는지 알 것 같다.

사각형 블록 같은 걸로 만들어진 모양의 조라탱이니까.

“레고야?”

물었더니 선희가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

“그럼?”

“책으로 만든 거.”

선희의 말을 듣고 보니, 책을 쌓아서 만든 걸로 보이기는 한다.

이야기를 들은 경희가 감탄한 음성으로 말했다.

“우와, 진짜네. 책으로 이렇게 쌓아서 만들면 신기하긴 하겠다.”

“그러네.”

나도 경희와 같은 생각이었다.

진짜 이런 걸 만든다면 굉장한······.

어?

순간 멈칫하고는 다시 그림을 살펴봤다. 그리고 선희에게 물었다.

“이거 현실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지?”

“아마.”

“그렇구나.”

머리를 끄덕이고는 곧장 전화기 쪽으로 다가갔다.

* * *

도쿄시내의 대형 서점 앞.

어제부터 생긴 이상한 천막의 주변에 사람들이 잔뜩 몰려있었다.

그 곳에 키도와 그의 담당인 테고시가 나와 있었다.

“이게 뭔데?”

“저도 모르겠다니까요.”

“출판사 행사 같은 건가? 뭘 준비하는 거지?”

그렇게 말하다가 다시 테고시를 돌아보며 물었다.

“2시에 오픈이라고 했지?”

“네. 그렇게 들었어요.”

그때 군중사이에서 니시다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 키도 선생님도 오셨네요.”

“자네도 담당 따라 온 거야?”

“아뇨. 오오타케는 지금 고향에 가 있어요. 어머니께서 편찮으시다고.”

“저런.”

그렇게 말한 키도가 미간을 찌푸렸다.

“병원 쪽에는 알아봤는데, 큰 병은 아니라니까.”

“그건 불행 중 다행이네.”

“네.”

“그나저나 자네는 그럼 어떻게 알고 온 건데?”

“여기 서점에 저랑 친분이 있는 사람이 여럿 있잖아요.”

니시다가 자랑하듯이 말하자 키도가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 인맥 넓어서 좋겠구만.”

“왜, 비꼬고 그러세요. 꽈배기도 아니고.”

“뭐야, 밖에서도 시비냐?”

“에이, 시비라뇨. 그냥 하는 말인데.”

“시끄럽고, 무슨 행사인지나 말해봐. 별거 아니면 그냥 돌아가야 하니까.”

“어? 여기까지 오셨는데, 그냥 가신다고요?”

“나랑 관계없는 거면 돌아가야지.”

“아닐걸요.”

“아니야? 그럼 뭔데?”

그 말에 니시다가 히죽거리며 웃었다.

“뭐야? 뭘 숨기는 거야?”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곧 저 천막이 치워지면 알 테니까.”

“뭐야, 대단한 거라도 있어?”

“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겐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요.”

계속 놀리듯 말하는 니시다를 키도가 노려보더니 곧 한숨을 푹 쉬었다.

“넌, 어째 나이를 먹을수록 더 밉상이냐?”

“······네?”

그때 천막 주변에 있던 서점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어, 시작하려나보다.”

“저 안에 뭐가 들어 있는 거야?”

“모르지. 소년 히어로 메인이벤트라는 말만 듣고 왔는데.”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거 아닐까?”

“그럼 뭐 돌아가야지.”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은 키도가 머리를 갸웃거리더니 곁에 있던 테고시에게 물었다.

“소년 히어로의 메인이벤트였냐?”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언제? 그냥 단순한 행사라며?”

“처음 화실에서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그때 선생님 만화책 보시느라 제대로 안 들으셨나 보네요.”

“······.”

“시작되는 모양인데요.”

니시다의 말에 키도가 다시 시선을 천막 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잠시 후.

분주하게 움직이던 직원들이 동시에 천막에 달라붙었다. 그리고는 ‘하나, 둘, 셋!’을 외치며 동시에 천막을 걷어냈다.

그리고 순식간에 천막의 뼈대와 같이 해체가 되며 커다란 형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

“우와!”

“저게 뭐야!”

놀랍게도 천막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책을 쌓아 만든 탱크의 모습이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그리고 누군가 소리쳤다.

“저거, 조라탱이다!”

“어? 진짜네!”

머신건 잭에 등장하는 신형 조라탱.

놀랍도록 정교하게 쌓아 만든 모습에 모두가 감탄하며 소리쳤다.

“와, 대단하다! 저걸 책으로 만들었네?”

“진짜 대단해.”

그런데 그 탱크가 공개되자마자 사람들 사이에 길이 열리더니, 몇 사람이 등장했다.

바로 머신건 잭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복장을 한 사람들.

그들이 탱크 주변에 모여들더니 각종 포즈를 취하기 시작했다.

복장도 꽤나 정교하게 만들어져,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모습을 놀랜 표정으로 멍하게 바라보던 키도를 니시다가 툭툭 건드렸다.

“대단하죠?”

“······어. 그, 그러네.”

“이거 디자인 써니 선생님이 직접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어? 정말?”

“네.”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

“아카기 씨에게 물어봤으니까요.”

“그 친구는 왜 내게는 말 안한 거야?”

“물어봐야 대답하죠. 전 직접 전화를 해서 물어본 거고. 요즘 얼마나 바쁘신데.”

그 말에 키도가 인상을 팍 썼다.

“그래도 내가 걔네들 의형제인데.”

“저도 비슷하거든요.”

“비슷은 무슨.”

“맞거든요.”

그때였다.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길이 열렸다.

직원들이 길을 터주고 그들 사이에 나타난 인물.

얼마 전에 방영한 드라마 ‘인연의 고리’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여배우 우에다 미쿠였다.

그런 그녀가 머신건 잭의 캐릭터인 궁수 ‘파스’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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