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419화 (419/425)

만화 단행본의 왕 (3)

“삼백······ 만이요?”

내가 입을 떡 벌렸다.

지금 내 모습은 미국만화 속 개그 캐릭터처럼 턱이 바닥에 떨어져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와중에도 그런 걸 떠올리다니.

나도 참.

그나저나 이런 내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전화기 너머의 이즈미가 웃음기를 먹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래요.

“아니, 그래도 300만이면, 너무 과한 거 아닙니까?”

과한 정도가 아니다.

지나치다.

미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들었어요? 소년점프 쪽 이야기.

“아니요.”

하지만 점프라고 말하는 순간, 예상되는 게 없지는 않다.

바로 드래곤볼.

-드래곤볼이에요.

역시.

지금쯤 아마 17권이 발매되려는 순간일 것이다.

17권이면 드래곤볼Z로 넘어가는 부분이다.

그러니까 손오공이 외계인이고, 형인 라데츠가 지구로 오면서 시작되는 이야기.

음. 그 부분이 재밌기는 했지.

아마 이후로 이어지는 프리저와의 싸움부분은 개인적으로도 가장 재미있게 본 부분이고.

하지만, 내가 알기론 200만부가 조금 안 되는 수준일 텐데.

-궁금하지 않아요?

“대충 알 것 같아서요.”

-어? 진짜? 그거 250만부 팔린 것도 알아요? 정보가 빠르네.

“네?”

250만부?

정말?

내가 알기론 200만부가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정말로 250만부입니까?”

-그래요.

“확실합니까?”

-음, 정확히는 몇 만부는 조금 덜 팔렸을 수도······. 그보다 정확한 게 중요한가. 250만부를 찍어내고, 거의 다 팔렸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

내가 기억하는 드래곤볼의 초판 판매부수를 크게 넘겨버렸다.

솔직히 그동안 드래곤볼에도 전혀 변화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디테일한 부분에서 내 기억과 다른 장면이 어느 정도 있기는 했으니까.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연재속도라든가, 혹은 내용에서는 거의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판매량도 기억과 별로 다르지는 않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17권에서 250만부라니.

“그럼 300만부를 결정한 이유가······.”

-맞아요. 그쪽에서 250만부를 뽑았으니까. 우리는 더 나가야죠. 앞전에 찍어낸 양도 꽤 됐었고.

“그때는 광고를 좀 무리하게 했잖습니까. 그리고 다 판 것도 아니었고.”

-자신의 작품인데 왜 그렇게 자신이 없어요?

“네?”

-저번보다 더 재밌잖아. 그런데 왜 그렇게 겁이 많냐고요.

겁이 많다고?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온다.

“이야기에 대한 자신감은 있어요. 하지만, 이게 무슨 도박판도 아니고. 이건 비즈니스 아닙니까. 무작정 재미있다고 막 찍어낸다는 게 말이 됩니까?”

-비즈니스는 우리가 전문이잖아요. 그걸 그쪽에 왜 걱정하는 거예요?

“비즈니스라고 하니까 하나만 물어보죠.”

-해봐요.

“출판사 쪽 사람들은 뭐라던가요?”

-그야······.

갑자기 이즈미가 머뭇거린다.

대충 알 것 같은 전개.

“반대 많이 했죠?”

-뭐, 안 했다고는 말 안할게요. 아니, 그쪽 말대로 많이 했어요.

역시.

-하지만 반대한 사람들은 대부분 잘 모르는 임원들이니까.

“나카야 씨도 임원 아닙니까? 그리고 전문가도 아니고.”

-하지만 오너는 반대하지 않았어요.

“사장님이요?”

-그래요. 나처럼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니까요.

의외다.

히로유키 사장은 사업에 관해서는 꽤 냉정해 보였는데.

어쩌면 이즈미처럼 무모한 사람이었나?

다시 생각해보고는 머리를 내저었다.

절대 그런 느낌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튼 그렇게 결정 났으니까 미리 알고 있으라고 전화한 거니까.

“······.”

-그건 그렇고······.

갑자기 이즈미의 음성이 거칠어졌다.

-너무한 거 아닌가?

“뭐가 말입니까?”

-그렇잖아요. 그쪽의 만화를 인정해서 300만부에 도전하는 건데, 당사자가 그렇게 반대하면 어쩌자는 거예요?

갑자기 할 말이 없어진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니까.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하는 쪽은 회사잖아요. 그쪽은 그냥 만화만 열심히 그리면 되는 거고. 아, 그리는 건 아닌가. 아무튼, 열심히 만들면 되잖아요. 내 말 틀려요?

“뭐 그렇기는 합니다만.”

-거 봐요.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면서.

“하지만, 제 말은 너무 무모한 결정으로 회사에 피해를 끼칠 수 있으니까······.”

내 말에 잠시 뜸을 들이던 이즈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에요?

“네?”

-혹시 재고가 생기면 제가 망하기라도 할까봐?

물론 그렇지는 않겠지.

그녀의 입장에서 푼돈으로 하는 장난정도일 테니까.

그래도 그녀의 입장에서 보자면 내가 하는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을 테지.

물론 그게 나를 위한건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뭐 할 말을 다했으니까 끊을게요.

그렇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

귀에서 전화기를 떼고는 잠시 바라보다가 내려놓았다.

그 모습을 보던 이대봉이 낄낄거리고 웃었다.

“또 한방 먹은 얼굴이네.”

그렇게 말하더니 곧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변했다.

“그나저나, 300만부로 바뀐 거야?”

그 말에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자 어시들도 모두 놀라는 표정이다.

“250만부도 엄청난데, 거기다가 50만부를 더 찍는 거예요?”

“그럴 거라는군요.”

“와, 그게 가능해요? 250만부도 기록이라면서요.”

“이번에 드래곤볼 17권이 250만부를 찍었던 모양이에요.”

“드래곤볼요? 진짜요?”

“네.”

“점프가 아무래도 저번에 자존심이 팍 상했던 모양이네.”

실버의 말에 이대봉이 머리를 갸웃거렸다.

“단행본이면 드래곤볼보다 초판 더 찍어내는 만화가 없는 것도 아닌데, 왜?”

“출판사 이름값도 있고, 작가가 한국인이라는 것도 있겠지. 그리고 지금의 드래곤볼 인기는 그야말로 최고니까. 물론 연재인기에 비해 단행본이 덜 팔린다는 문제도 있지만, 어쨌건 머신건 잭을 이겨야 한다는 여론도 있다니까.”

실버의 말대로다.

예전엔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인기를 얻으면 얻을수록 이곳저곳에서 말이 나오고 있으니까.

물론 그 말이라는 게, 거의 다 한국인이 그렸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지만.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드래곤볼 작가인 토리야마와는 가끔씩 연락을 주고받는 친분이 있는 사이긴 하다.

“그래서 나카야 씨가 자존심 때문에 300만부를 찍는 건가요?”

차미정의 물음에 실버가 머리를 끄덕였다.

“뭐, 그렇지 않겠어?”

그때 이대봉이 좌우로 흔들며 끼어들었다.

“에이, 그건 아니다.”

“그럼 뭔데?”

“자존심정도면 10만부 정도면 되지, 위험하게 굳이 50만부나 늘릴 필요는 없잖아.”

“솔직히 250만부를 찍어도 다 팔린다는 보장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출판사에서도 가능성이 있다고 했잖아.”

“말 그대로 가능성이다. 가능성. 뜻 몰라?”

“뜻 정도는 알거든.”

“그런데 뭔 헛소리야?”

“그 아가씨, 네가 보기에 어떤 사람 같아 보이는데?”

그 말에 실버가 피식 웃었다.

“고집불통에 제멋대로인 느낌이지.”

“그럼, 일에 관해서는?”

그 말에 실버가 잠시 머뭇거렸다.

그 모습을 빤히 보던 이대봉이 싱글거리며 웃었다.

“앞전에 찍은 9권을 생각해봐. 그때는 지금보다 더 미쳤었잖아.”

그 말에 다른 이들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런데 9권 이후로 보라고. 머신건 잭의 인기가 어때?”

“인기가 더 올랐다고 들었어요.”

김기철의 말에 이대봉이 머리를 끄덕였다.

“바로 그거야. 그 여자 평소 행동은 좀 이상하지만.”

“많이 이상하지.”

내 말에 이대봉이 금방 머리를 끄덕였다.

“아, 뭐. 그래 네 말대로 많이 이상해. 하지만 일에서 만큼은 재능이 뛰어나다는 건 모두 인정하잖아. 그 아가씨, 지금 미국에서 하는 사업도 엄청 잘 나간다며.”

그건 맞는 말이다.

자세한 건 모르지만, 유럽에서도 사업을 크게 한다고 들었었다. 거기에 만화관련 사업도 포함되었다고 하던데.

“그러니까, 그 아가씨 느낌엔 우리 만화가 그만큼 팔릴 거라고 생각한 거겠지.”

그런가?

그런데 이대봉이 마지막에 엉뚱한 말을 끼어 넣었다.

“뭐, 우리 윤환이에 대한 개인적 관심이 지나친 것일 수도 있고.”

그 말에 진지하게 듣고 있던 어시들이 갑자기 크게 웃었다.

“어휴, 그럼 그렇지. 어째 진중하게 말하더라니.”

“오빠, 이 번건 정말 웃겼어. 인정해 줄게.”

“맞아요.”

어시들이 크게 웃어대자 이대봉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나 지금 진지하게 말하고 있는 거거든.”

“네, 네.”

“요 근래 들은 것 중에 제일 재미있었어.”

“맞아요, 맞아.”

그렇게 어시들의 웃음소리에 이야기는 묻혀버렸다.

*

책이 드디어 출간이 되었다.

듣기론, 갑자기 늘어난 50만부의 물량 때문에 출판사의 직원 상당수가 인쇄공장에 투입되고, 그것도 모자라 다른 인쇄공장에도 오더를 냈다고 들었다.

평소에 100만부니, 200만부니 가볍게 말하기는 했지만, 당장 일선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겐 그 물량이 장난이 아니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담당인 지로도 이번 결정 때문에 인쇄공장에서 살다시피 했던 모양이고.

일단 한 번에 찍어내는 것이 아니다보니 먼저 책이 출고가 되고 계속 책은 찍어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키도도 이번 사건(?)에 대해 관심이 많은지 전화가 걸려왔다.

-오, ‘300만 부의 사나이’ 잠은 잘 잤어?

작년부터 새롭게 재방영중인 ‘600만 달러의 사나이’ 패러딘가?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재고 100만 부 망한 사나이‘가 될지도 몰라.”

그 말에 키도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너도 그런 농담을 할 줄 알고. 많이 성장했구나.

“이게 농담으로 들려? 난 심각한데.”

-이미 200만 부를 훌쩍 넘어본 녀석이 엄살은. 난 부러워 죽겠는데.

“그럼 형도 도전해 보면 되지.”

-하고 싶다고 그게 가능하면 걱정도 없지. 테고시 녀석에게 그런 말을 하면 날 비웃을 거다. 니시다는 뭐 말할 것도 없고. 아참, 이번 300만 부 최종 결정한 사람이 그 유별난 아가씨라며.

“맞아. 안 그래도 300만 부 결정됐을 때 직접 알려주더라고.”

내 말에 키도가 깜짝 놀랐다.

-뭐야, 정말로?

“어.”

-너를 정신적으로 압박하려는 속셈이었나?

“글쎄. 아마 그럴지도 모르지.”

-그 여자도 머리 썼군.

“머리를 쓰다니, 무슨 말이야?”

-그렇잖아. 평소에도 너에게 시비를 종종 걸었다며. 그러니까, 이참에 너를 정신적으로 무너뜨리려는 속셈으로······.

“역시 형도 300만부는 무리라고 생각하지?”

그 순간 전화기 너머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는 곧 떨떠름한 말이 이어졌다.

-뭐, 솔직하게 말하면 좀 무리라고 생각은 하고 있어. 250만부라면 뭐 받아들이긴 하겠는데.

“역시 그렇지?”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긴 하지.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라면 어쩜 가능할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말이라도 고마워.”

-그런데 니시다, 이 녀석은 무조건 가능하다고 하더군. 뭐, 평소 네 팬이라고 자처하는 녀석이니 당연한 반응이겠지만.

그런데 주변에서 ‘제대로 판단한 거 맞습니다만’이라고 하는 소리가 들린다.

니시다가 곁에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기에서 ‘어? 왜 이래?’라는 키도의 음성이 들려오더니 곧 니시다의 소리가 들려왔다.

-연재에선 몰라도 단행본이라면 선생님 만화와 드래곤볼은 충분히 50만부의 격차가 있습니다.

그렇게 확신에 찬 음성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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