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418화 (418/425)

만화 단행본의 왕 (2)

전화기 너머에서 다소 흥분된 지로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제 3일 후부터 책이 인쇄공장에서 나올 겁니다.

“그렇군요.”

머리를 끄덕였다.

출판사에서도 이번 머신건 10권은 상당히 많은 기대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동안 독자들의 문의가 역대급으로 많았던 것도 있고, 실제 연재 순위에서도 압도적이다.

물론 다른 만화들의 단행본 판매량이 늘었음에도 말이다.

어느 때부턴가 이젠 소년 히어로에서 1위는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잡생각에 빠져 있는데, 지로의 음성이 나를 깨웠다.

-때를 맞춰서 공연도 최근 스토리에 맞춰 새로운 에피소드가 시작되어서 반응도 좋아서, 200만 부는 가볍게 넘어갈 거라는 게 출판부의 예상이기도 하고요.

“기록에 너무 연연해 하고 싶지 않네요.”

내 말에 지로의 웃음소리가 낮게 들렸다.

-네. 너무 신경 쓰시는 것도 좋은 건 아니죠. 괜히 스트레스만 생기니까요.

역대 최고의 단행본 신기록인데, 신경을 쓰지 않을 리가 있나.

하지만 그냥 인사로 그런 말을 한 건 아니다.

요즘 들어 많아진 알 수 없는 불안감 때문이니까.

물론 그런 이야기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무튼, 며칠 동안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것 같습니다. 편집부 직원 몇 명이랑 인쇄공장에서 며칠 동안은 지내야 할 것 같기도 하고요.

저번 때도 고생이 많았던 모양인데.

갑자기 미안해진다.

“저희 때문에 고생이 많으십니다.”

-아닙니다. 이런 역사적인 순간에 담당이 된 것이 오히려 기쁜걸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고맙네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몇 마디의 대화를 더 이어간 뒤 곧 전화를 끊었다.

전화기를 내려놓자 통화 중에 계속 힐끔거리며 쳐다보던 어시들이 하나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젠 드디어 책이 나오는군요.”

“이번 10권은 기록을 세울 수 있을까요?”

“9권부터 흐름을 타서 엄청 재미있어졌잖아.”

“250만 권이 목표죠? 정말 두근두근 거려요.”

“250만권이라니, 쌓아두면 어느 정도의 느낌일까요?”

“집채만 하지 않겠어?”

“집보다 더 클걸? 아파트만 하지 않겠어?”

“그 정도는 아니지 않을까요?”

“어쨌거나 눈앞에서 보면 장관이겠다.”

모두가 흥분해서 난리다.

물론 거기엔 경희도 포함되어 있다.

아니, 다른 어시들보다 반응이 더 격렬하다.

그런데 얘는 목적이 따로 있는 모양이다.

“오빠, 이참에 회식은 어때?”

눈을 반짝거리며 날 쳐다본다.

또 뭐가 먹고 싶어서 저러는 건지.

그보다 그렇게 먹으면서도 몸무게가 늘지 않은 걸 보면 용할 정도다.

선희도 마찬가지고.

아무튼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경희를 보며 말했다.

“그건 네가 기대하는 거잖아. 그리고 아직 책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김칫국 마시는 것도 좀 그렇고.”

내 말에 경희가 검지를 척 내밀며 말했다.

“그러니까, 1등을 하면.”

“1등?”

“그래. 250만 부 다 팔리면.”

그렇게 말하다가 뭔가 찝찝한 지, 내 시선을 살짝 피하며 다시 말을 이었다.

“물론 조금 모자라는 건 봐주는 걸로.”

어이가 없구만.

“네 편한 데로 정하냐?”

그렇게 말하며 슬쩍 돌아봤더니, 다른 이들도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다.

외면하기엔 그 눈빛들이 너무 강렬하다.

누가 보면 굶기면서 일 시키는 줄 알겠다.

그런데 경희가 이번엔 선희를 보며 물었다.

“네 생각은 어때?”

그 말에 그림을 그리던 선희가 멈칫하더니 가늘게 뜬 눈으로 날 쳐다본다.

그리고는 작게 말했다.

“오빠가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런 반응에 경희가 당황하며 선희에게 작게 속삭였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잘 들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대충 알 것 같다.

먹는 게 싫어졌냐?

뭐 이런 말이겠지.

이야기를 들은 선희가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건 아니야.”

역시 내 예상이 맞는 모양이다.

경희가 고릴라처럼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아이고, 답답아. 그럼 왜 오빠에게 결정을 맡겨?”

선희가 날 빤히 쳐다본다.

그리고는 곧 입을 열었다.

“오빠가 잘 결정할 거라고 믿으니까.”

예상외의 말에 경희가 멈칫했다.

선희 녀석.

공개적으로 날 압박하고 있다.

얘도 이젠 속세에 너무 많이 찌들어버린 모양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내심 혀를 찼다.

어쨌건 그런 선희의 뜻을 알아차린 경희가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내 쪽을 쳐다봤다.

이제 결정을 하라는 뜻이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도 느껴진다.

이곳에 있는 모두의 기세가 내게 몰려들었다.

“휴.”

나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알았다는 말을 하려다가 갑자기 멈칫했다.

응?

뭐지?

뭔가 잊고 있던 것 같은데.

지금 일본에서 나올 책이 또 있었는데, 뭐였더라.

그렇게 생각하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그러자 모두가 날 쳐다보며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 * *

“뭐? 250만부?”

소년 히어로 편집장이 깜짝 놀라 묻자 출판부장이 담배 연기를 뿜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서 결과는?”

“뭐, 그쪽 친구에게 전해 듣기론 다 팔릴 것 같다는 모양이야.”

“분명 초판 맞지?”

“그렇다니까.”

출판부장이 머리를 끄덕이자, 편집장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우리가 먼저 250만부를 갈 줄 알았는데, 역시 점프 쪽에서 그냥 앉아서 구경만 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네.”

“아마도 그런 것 같다. 이번에 드래곤볼 17권은 연재 때도 워낙 반응이 좋아서, 점프의 기대를 많이 받았으니까. 그래도 닥터슬럼프 기록을 깰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출판부장이 그렇게 말하며 다시 연기를 빨아들이더니 곧 뱉어내고는 말을 이었다.

“솔직히 200만부 이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난 그 250만부라는 게 마음에 걸려.”

“너도 그렇지? 솔직히 나도 왜 하필이면 250만부 이었을까? 역시 저번에 250만부에 도전한 것 때문이겠지?”

편집장이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렇겠지.”

“점프 녀석들, 이번엔 노리고 들어왔어.”

“단순히 노린다고 될 일은 아니지. 드래곤볼 같은 엄청난 물건이 있으니 그런 계획을 세웠을 거고.”

“그러고 보니 한 달 전부터 TV 광고에 각종 이벤트까지 열더니. 결국, 250만부를 팔기 위해서 그 난리를 떨었던 모양이군.”

“우리는 더 했잖아. 나카야 그룹의 광고에도 엄청나게 나왔으니까.”

“그런 그렇지.”

출판부장이 수긍하며 짧아진 담배를 비벼 끄고는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편집장이 물었다.

“그나저나 위에선 뭐래?”

“자기들끼리 회의하고 있는 모양이더라. 뭐, 뻔하지 않겠어? 만부 정도 더 찍자고 하겠지.”

“만부?”

“당연하지. 조금이라도 더 찍어서 이겨야 한다고 하지 않겠어? 그런데 무작정 10만 부 이상 늘리면 또 다 못 팔고 재고가 될 게 뻔하고. 그러니까, 소심하게 1만 부 정도 늘리자고 결정하겠지.”

“그럴까?”

“당연하지. 그 사람들을 하루 이틀 봐온 것도 아닌데.”

그 말에 편집장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출판부장이 물었다.

“왜? 네 생각은 다르냐?”

편집장이 머리를 끄덕였다.

“예전이라면 솔직히 250만부라는 결정을 내렸을까?”

“그야······, 아니겠지.”

“그럼 역시 나카야 씨가 변수겠군.”

그 말에 출판부장이 미간을 찌푸렸다가 다시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불안하네.”

*

회의실에 모였던 임원들이 화들짝 놀랐다.

“300만부요?”

“말도 안 됩니다! 300만 부라니, 250만부도 적지 않은 양입니다!”

“맞습니다! 이건 무리예요!”

“그보다, 지금 그런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추가로 50만부를 더 찍어내는 건 어렵습니다!”

“점프를 이기겠다고 무리수를 둘 수는 없습니다.”

“차라리, 1-2만 부 정도만 늘리셔도 되지 않겠습니까?”

“1만부면 충분하죠, 1만부면.”

임원들이 제각각 요란한 반응을 하고 있었지만 이야기는 모두 같았다.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그런 반응에도 이즈미는 별다른 표정변화가 없었다.

그리고 곧 그녀의 시선이 가장 가까이 앉아있던 부사장에게 향했다.

“그렇게 생각하세요?”

“역시 300만 부는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사장님도 같은 생각이실 겁니다.”

사장인 미쯔다 히로유키는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유럽을 돌면서 세일즈 중이었다.

미쯔다쇼텐의 만화, 특히 삼사라의 인기가 높은 덕분에 머신건 잭을 판매하면서 더불어 다른 만화들도 홍보 중이었던 것이다.

이즈미가 말했다.

“아까, 통화했어요. 특별히 반대하진 않던데.”

“네?”

“사, 사장님께서 반대하지 않으셨다고요?”

“정말입니까?”

임원들이 놀라며 묻자 이즈미가 어깨를 가볍게 으쓱했다.

“네. 조금 많은 것 같기는 하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건 반대한다는 뜻 같은데요?”

“저도 그렇게 느껴집니다만.”

그런 분위기에도 이즈미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모두를 쭉 돌아봤다.

“뉘앙스가 그랬어요, 뉘앙스가. 전혀 반대의 느낌이 아니었다니까.”

“아니, 그래도······.”

그때 듣고 있던 부사장이 입을 열었다.

“제 생각도 그렇군요. 만약 반대하셨다면 좀 더 적극적이셨을 테니까요.”

그 말에 임원들이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라도 맞은 표정을 지었다.

임원들이 격앙된 음성으로 소리쳤다.

“아니, 부사장님!”

“부사장님까지 그렇게 말씀하시면······.”

“300만부는 누가 봐도 말이 안 됩니다!”

“무리에요! 무리!”

임원들이 난리법석을 떨었지만, 부사장은 별다른 표정변화 없이 이즈미를 쳐다봤다.

그런 부사장의 시선을 마주한 이즈미가 한쪽 입꼬리를 슥 올렸다.

“역시 믿는 사람이 있었으니, 유럽에서 그렇게 마음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던 거군요.”

“별로 마음 편하게 돌아다니시는 건 아니······.”

“아무튼 이걸로 결정되었군요. 자, 그럼 난.”

이즈미가 그렇게 말하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아니, 이렇게 그냥 가시면······.”

이즈미와 같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말하던 임원이 멈칫했다.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 때문에.

그 순간 다른 이들도 뭔가 말하려다 이즈미의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정적이 흐른다.

그런 임원들을 돌아본 이즈미가 곧 걸음을 옮겼다.

또각거리는 그녀의 구둣발 소리가 조용한 회의실을 울렸다.

임원들의 눈동자가 데굴거리며 이리저리 움직인다.

문 앞에 도착한 이즈미가 말했다.

“구로다.”

문이 열렸다.

밖에 있던 노인이 문을 열고는 비켜섰다.

문을 통과하려던 이즈미가 걸음을 멈추고 다시 회의실을 돌아보았다.

조용한 회의실 안에서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모습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본 뒤 다시 돌아서서 가자 곧 문이 닫혔다.

그리고 회의실과 멀어지자 다시 회의실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이즈미는 그 소리를 뒤로하며 복도를 걸어갔다.

그리고는 뒤를 슬쩍 돌아보며 노인에게 말했다.

“호텔로 돌아가요.”

“네, 알겠습니다. 아가씨.”

그런데 갑자기 이즈미의 걸음이 멈추었다.

노인도 걸음을 멈추며 이즈미를 바라봤다.

이즈미가 잠시 뭔가를 생각하더니 말했다.

“아, 그리고 지금 전화 걸어봐요.”

“어디로 말입니까?”

“그 사람.”

노인은 이내 알겠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아,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는 곧장 작은 가방에서 전화기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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