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417화 (417/425)
  • 만화 단행본의 왕 (1)

    “모두 식사하세요!”

    경희의 말에 어시들이 작업을 멈추고 자리를 정리했다. 그리고 하나둘 의자에서 일어난다.

    때마침 현관문이 열리며 이대봉이 들어왔다.

    “아직 안 늦었지?”

    그 모습을 본 박소미가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밥 시간은 정말 철저하네.”

    “당연하지. 밖에서 먹는 것보다, 우리 어머님께서 해주신 음식 맛이 최고잖아.”

    “어째서 네 어머님이냐.”

    실버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하자, 이대봉이 실실 웃었다.

    “내 어머님이 맞지. 전에도 어머님한테 ‘저 아들 맞죠?’하고 물었을 때, ‘그럼, 맞지. 우리 제임스.’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중간에 엄마 흉내까지 내며 말한다.

    그런데 그 동작이 너무 괴상해서 어시들이 큰 소리로 웃었다.

    “제임스 오빠, 이참에 개그맨 시험이라도 치는 게 어때? 재능이 있어 보이는데.”

    “맞아요. 제임스 형이라면 충분히 붙을 것 같은데. 어쩌면 쓰리랑 부부 인기도 넘을지 모르고.”

    “에이, 그건 아니지. 쓰리랑 부부는 작년에 크리스마스 캐롤송도 냈다고.”

    “나 그거 샀는데.”

    “저도요.”

    어시들이 웃고 떠들며 부엌에 있는 식탁으로 모여들었다.

    이미 차려진 식탁에 어시들이 자리를 잡으며 앉았다.

    “잘 먹겠습니다.”

    “오늘 못 도와드려서 죄송해요.”

    “내일부턴 제대로 할게요.”

    어시들의 말에 남은 반찬을 올리던 엄마가 웃으며 말했다.

    “아유, 괜찮아. 바쁜데 시간 아껴야지. 그리고 이렇게 모두 고생해서 내가 더 미안해.”

    “에이, 아니에요. 저희야말로 여기서 일할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데요. 제 친구들도 여기 화실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애들도 많고요.”

    “그럼요. 다른 화실이랑 비교해도 열 배는 좋은걸요. 의료보험이랑 연금보험도 해주는 곳은 여기밖에 없어요.”

    “이건 진짜 대한민국 화실 전체를 뒤져봐도 없을 거예요.”

    원래라면 4대 보험, 아니 정확히는 5대 보험을 모두 다 해결해 주고 싶었지만, 아직 시행되는 건 두 개뿐이라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전액 화실에서 지급하고 있다.

    어시들 덕분에 많은 돈을 벌었으니, 그 정도는 당연하다.

    아니 아직도 부족한 감이 있다.

    나름 복지 부분은 더 고민 중이다.

    물론 그 문제는 항상 경희와 얘기 중이다.

    요즘엔 경희에게 화실 운영비를 맡기고 있으니까.

    “아참, 아까 선생님 통화 중에 삼사라 얘기는 뭐예요?”

    박소미가 물었다.

    점심시간 직전에 지로에게서 온 전화 통화 내용을 조금 들었던 모양이다.

    나도 금방 점심시간이 되는 바람에 까먹고 있었다.

    “아, 그거요. 삼사라가 꽤 많이 증쇄한다고 해서요.”

    “네? 갑자기 왜요? 머신건 잭 때문에 다시 주목받는 건가?”

    “그런 것도 있고, 최근 유럽 쪽에서 삼사라 애니의 인기가 높은 모양이더라고요.”

    그 말에 이대봉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 유럽에서 인기가 있는데, 왜 일본에서 삼사라가 많이 팔려요?”

    이번엔 실버가 대신 대답했다.

    “유럽에서 인기가 있으니까. 일본인들도 관심이 있는 거지.”

    “전혀 이해가 안 되는데?”

    이대봉이 머리를 갸웃거리자 실버가 답답한지 냉수를 한 컵 들이키고는 입을 열었다.

    “탈아입구(??入?) 몰라? 탈아입구. 걔네들은 유럽에 대한 동경이 예전부터 컸다고.”

    “탈아입구? 그게 뭔데?”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에 들어간다는 뜻이야. 지금 1만 엔권 지폐에 들어있는 인물인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인간이 주장한 거고. 아무튼,, 그놈들 오래전부터 백인들 동경하는 건 요란했다고.”

    실버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흔든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본 어시들은 거의 동시에 ‘오~!’하는 소리를 냈다.

    “역시 실버 오빠의 넘치는 지식에 감복합니다.”

    “형은 인간백과사전이라니까.”

    “지식인이야, 지식인.”

    사람들의 반응에 실버가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지식인이라고 하니까 어째 초록색 검색엔진이 생각나네.

    “아무튼 일본인들은 서양 사람들은 엄청나게 동경하나 봐요.”

    “그렇게 따지면 지금 한국도 일본 동경하고 있잖아. 그런 거나 마찬가지지.”

    “맞아요. 옛날 일을 생각하면 화가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동경하고 있다는 게 좀 아이러니하긴 해요.”

    “죽기 전에 일본만큼 잘 사는 나라가 될 수 있을까요?”

    “잘사는 건 가능해도 일본만큼은 불가능하겠지.”

    “그렇겠죠?”

    “그렇지. 일본이야 뭐 미국 다음으로 부자나라잖아. 조만간 미국도 따라잡을 거라는 얘기도 있고. 지금 일본 얼마나 잘 나가는데. 반도체, 전자제품, 자동차, 조선까지. 전 세계 싹쓸이 중인데. 그리고 미국 부동산들도 마구 사들이는 모양이고.”

    “세상을 모두 집어삼킬 분위기라니까. 진주만 공습 이후로 최대의 공격이라고 하던데.”

    “2000년 이후엔 미국을 따라잡을 거라던데.”

    “앞으론 외국과 거래할 때 달러 말고, 엔화로 한다는 얘기도 있어.”

    갑자기 일본에 관한 이야기로 시끌벅적해졌다.

    하기야 지금의 일본은 그야말로 누구도 막지 못할 것 같은 분위기다.

    지금의 한국인 입장에선 외계인이 세운 제국처럼 넘을 수 없는 사차원 벽이나 다름없는 곳이 일본이니까.

    “그런 곳에서 우리 만화가 최고의 성적을 내고 있으니, 얼마나 뿌듯한지 몰라요.”

    “이쯤 되면 방송에서 한번 관심을 둘 것도 같은데.”

    “에이, 방송 타서 좋은 것만 있는 것도 아니야. 괜히 대표로 학부모들한테 공격당할 수도 있어.”

    “한국에 만화를 연재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얼마 전에 한국 출판사에서 일본만화를 수입 시작했다는 거 몰라? 드래곤볼도 곧 한국에서 연재 시작한다던데?”

    “정말요?”

    박소미가 날 돌아보며 물었다.

    “그래. 머신건 잭에 관한 이야기는 없어요?”

    내가 머리를 내저었다.

    “아직은 없어요.”

    “한국에서 연재하면 한국 팬도 엄청 생기겠다.”

    “지금도 은근히 아는 사람 많아.”

    “그거야 해적판 때문이잖아요.”

    “어쩔 수 없잖아. 정식 수입이 안 되니까.”

    “불법 복제하는 놈들만 돈 벌고 있겠네요.”

    “그렇겠지.”

    아직은 그래도 해적판 시장이 우려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조만간 드래곤볼이 정식 수입이 되면서 폭발적으로 일본수입만화가 늘어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한국만화들은 일본만화와의 경쟁에 조금씩 밀리게 될 것이고.

    그렇게 90년대 중반을 넘고, IMF 이후엔······.

    뭐, 그렇게 끝없이 추락하게 될 것이다.

    나중에야 웹툰이라는 형태로 다시 부활하게 될 테지만, 어쨌건 상당히 오랜 기간 암흑기가 진행될 것이다.

    아, 또 생각하니까 답답하네.

    “그래도 우리 만화가 벌써 유럽까지 건너갔다니, 정말 대답하네요. 우리 만화를 보는 서양인이라······. 쉽게 상상이 안 되네.”

    “코쟁이들은 사람 아닌가? 재밌는 건 다 똑같지.”

    “그래도 신기한 건 신기해. 애니메이션 인기가 높다는 것도 신기하고.”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드는데 그때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나가려고 하자, 경희가 벌떡 일어났다.

    “내가 나가볼게, 엄마.”

    그렇게 말하고는 후다닥 움직이자 엄마가 잔소리했다.

    “뛰지 마. 먼지 난다.”

    “알았어, 알았어.”

    입에 넣은 밥을 서둘러 삼키며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나가더니 곧 뛰는 소리가 들려왔다.

    “쟤도 참.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이젠 손님이 오는 것도 흔한 일이라, 엄마도 예전보다 느긋하시다.

    잠시 후.

    경희가 들어오더니 날 보며 말했다.

    “오빠, 미녀 손님.”

    미녀라니.

    “누구? 나카야 씨?”

    “아니. 주간 루머 기자.”

    “미네 씨?”

    “응.”

    그 여자가 갑자기 무슨 일이지?

    곧 경희 뒤에서 얼굴을 내민 미네가 웃으며 말했다.

    “모두 안녕하세요.”

    그러자 엄마가 제일 반가워한다.

    “어서 와요. 식사는 하셨어요?”

    그 말을 경희가 통역하자, 미네가 웃으며 머리를 내저었다.

    “아뇨. 오늘 아무것도 못 먹었어요.”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드셨대.”

    “어머나, 저런. 어서 자리에 앉아요. 제임스 너 다 먹었으면 자리 좀 비워줘.”

    그렇게 말하며 앉아서 히죽거리던 이대봉을 엄마가 일으켰다.

    얼떨결에 자리에서 일어난 이대봉이 인상을 쓰며 물러났다.

    “어머니, 어떻게 저에게 이럴 수가······.”

    “알았어. 미안. 밥 다 먹은 사람은 제임스뿐이라서.”

    “······.”

    떫은 감을 씹은 얼굴이 된 이대봉이 물러나자 그곳에 미네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서둘러 그 자리에 새 공깃밥 한 그릇을 올려놓자, 미네가 웃으며 말했다.

    “잘 먹겠습니다.”

    “그래, 많이 먹어요.”

    미네는 자신의 말대로 식사를 전혀 못했다는 걸 온몸으로 입증이라도 하듯이 허겁지겁 먹었다.

    “맛있어요.”

    “맛있데.”

    “그건 알아들어.”

    미네가 먹는 모습이 신기한지 모두가 묘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그녀 가장 가까이 있던 김기철이 곁에 있던 핑크 소시지를 슬쩍 밀어준다.

    그러자 미네의 젓가락이 더 분주해졌다.

    이 여자 어제도 굶은 거 아니야?

    진짜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먹어대더니 곧 밥을 다 비우고는 물 한잔을 쭉 들이키고는 그제야 ‘푸아’ 하면 숨을 내쉰다.

    “잘 먹었습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어제도 밥 못 먹었어요?”

    “어제 점심부터 쭉 걸렀어요.”

    “아, 어쩐지.”

    그제야 이해가 된다.

    아니지.

    왜 그렇게 굶은 거야?

    “어디에 갇혀 있다가 탈출이라도 한 겁니까?”

    “비슷해요.”

    “또 호텔입니까?”

    “어머, 잘 아시네요. 맞아요. 정치인 불륜사건 취재 중이거든요.”

    “······.”

    주변 사람들도 눈알을 데굴거릴 뿐이다.

    아무래도 불륜이라는 말이 주는 묘한 거부감 때문에 대놓고 관심을 보이기는 어려울 테니.

    다만 이대봉은 다른 사람과 달리 눈이 초롱초롱하다.

    이대봉이 물었다.

    “상대는 누구예요?”

    “22살의 여배우에요.”

    “와, 정말이요? 그래서요?”

    “아직 제대로 된 증거는 잡지 못했어요.”

    “와, 쓰릴 있겠다.”

    이대봉은 뭐가 좋은지 호들갑을 떨었다.

    이대봉과 미네가 열심히 대화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듣느라 정신이 없다.

    역시 이런 이야기는 대놓고 관심을 드러내긴 힘들어도 상당히 재미는 있지.

    다만, 선희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고, 엄마는 아예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튼 신나게 떠들던 미네가 날 돌아보며 말했다.

    “아, 참. 그리고 얘기 들었어요. 이번에 다시 250만 부 찍는다면서요?”

    “네. 소식 빠르군요. 잡지사만 알고 있는 건데.”

    “그 정도야 비밀이라고 할 수도 없죠.”

    그렇게 말하며 싱글거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에야말로 단행본 만화왕이 될지도 모른다던데. 아무튼 기대할게요.”

    그녀의 말에 내가 미간을 찌푸렸다.

    또 만화왕이라니.

    도대체 이 여자는 어디서 들은 거야?

    그때 갑자기 경희가 양손을 번쩍 들고 소리쳤다.

    “만세, 만화왕!”

    갑자기 경희가 소리쳤다.

    덕분에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가 곧 사람들이 양팔을 번쩍 들며 같이 소리쳤다.

    “만세, 만화왕!”

    아, 진짜 도망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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