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416화 (416/425)
  • 원대한 꿈 (4)

    강제로 키운 사이즈라니.

    “그럼 정말로 농담이 아닌 겁니까? 진짜 초판 250만 부?”

    내 물음에 지로가 담담한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네. 농담 아닙니다. 뭐, 편집부 내에선 이런저런 의견이 있기는 합니다만.”

    그렇겠지.

    아무리 팬덤이 커지고 있다 해도 또 이런 무모한 물량을 초판으로 한다면.

    잘은 모르지만, 출판부와도 충돌이 있었을 테고.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듣기로도 저번 9권 때 상당한 재고가 생겼다고 들었는데.

    물론, 그 재고라는 것이 시간이 지나면 다 소진될 수도 있는 것들이라고는 했지만.

    그래도 뭔가 찜찜한 느낌이다.

    그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지로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게 결정한 이유가 또 있습니다.”

    또 있어?

    “그게 뭐죠?”

    “얼마 전에 프랑스에서 애니메이션 삼사라가 방영을 시작했는데 인기가 상당히 좋았다고 합니다.”

    “삼사라요?”

    갑자기 뜬금없이 삼사라는 왜?

    거기다 프랑스?

    “해외마케팅 팀에서 머신건 잭의 해외수출 건으로 프랑스와 접촉 중이었는데, 몇 달 전에 수출된 삼사라가 프랑스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덕분에 프랑스어판 삼사라의 단행본 판매량이 늘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더불어 신작인 머신건 잭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답니다. 그런데 그게 또 방송에서 나오는 바람에 다시 머신건 잭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이 은근 일본애니메이션 인기가 높다는 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내가 살던 시절에도 일본만화 팬덤이 상당했으니까.

    이탈리아 같은 곳에선 ‘그랜다이져’가 국민 애니메이션일 정도의 인기가 있었다고 하고, 다른 나라에서도 일본 애니가 상당히 영향을 미치고 있을 정도다.

    그런데 모르는 사이에 내 만화도 거기에 끼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물론 아직 국민만화 따위를 얘기할 시점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놀랍네.

    유럽에서 반응이 좋다니.

    “이걸 계기로 해외마케팅 팀에서 유럽 전역으로 홍보를 나서고 있다 합니다.”

    그나저나 상당히 의외다.

    이렇게 적극 외국시장을 개척하는 일본의 출판사는 거의 없을 텐데.

    왜냐하면 자국의 시장만으로 대부분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확실히 미쯔다쇼텐의 성향은 일반적인 출판사와는 다른 모양이었다.

    하긴, 오너인 미쯔다 히로유키는 야심이 큰 인물로 보였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이상하잖아요. 일본어로 된 만화책을 파는 것도 아닌데, 초판 부수가 늘어나는 건 이해할 수 없는데요.”

    유럽에서 인기가 있다해도 일본에서 단행본 판매량이 늘 리가 없을 텐데.

    “역시 그건 방송의 힘이죠."

    “방송의 힘이요?”

    “얼마 전에 그런 유럽의 반응을 취재한 TV프로가 나왔는데, 그게 또 시청자들 반응이 상당히 좋았던 모양이에요. 자부심을 느끼게 만들어 준 덕분이랄까요.”

    음, 역시 국뽕이라는 건가?

    “그래도 방송 한번 탔다고 단숨에 판매량이 늘까요?”

    내 말에 지로가 웃었다.

    “네. 일본은 다른 나라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니까요. 특히 유럽의 반응이라면 더더욱 그렇죠. 덕분에 ‘저 만화 뭐지? 읽어볼까?’ 뭐 이런 분위기가 생겼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

    그런 습성이야 잘 알고 있다.

    일본은 오래전부터 서양을 동경한 나라였으니까.

    그런 서양에서 자신들이 만든 애니메이션에 열광한다면 국뽕이 생기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지금의 시절이라면 더더욱 그런 경향이 강하고.

    사실 작년에 열린 올림픽만 생각해도 한국 전체가 광란의 도가니였으니.

    2002년 월드컵만 요란한 줄 알았던 나로서도 상당히 충격을 받았을 정도로.

    그런 상황을 생각하면 일본이 특별하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그때 이제까지 말없이 듣고만 있던 이대봉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럼 진짜로 이번엔 기록 깰 수도 있다는 거네?”

    “네. 그렇죠. 저번보다는 확실히 확률도 높고.”

    지로의 말에 이대봉이 눈을 반짝이며 날 돌아보더니 다시 지로 쪽을 쳐다봤다.

    “그럼 진짜로 단행본 출판의 왕이 되는 건가? 만화왕.”

    “네. 이번에야말로 만화왕이 될 거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오, 그렇구나. 우리 윤환이가 만화왕이 되는구나.”

    이대봉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를 보며 말했다.

    “아, 쫌. 그런 말 하지 마. 낯 뜨겁게.”

    “뭐, 어때. 만화왕. 듣기만 좋구만. 모두 안 그러니?”

    그렇게 말하며 어시들을 돌아보자, 모두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저희야 뭐 자부심이 생기는 말이라 좋네요.”

    김기철이 말하자 이대봉이 좋아라했다.

    “역시 그렇지?”

    당신이 왜 그렇게 뿌듯해하는 거야!

    아무튼 저 만화왕이라는 말.

    저건 진짜 오글거려서 영 불편하기만 하다.

    이번엔 분위기를 탄 지로가 말했다.

    “솔직히 일본에서도 텐겐, 써니 선생님의 작품은 인정하지만, 일본인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분위기가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수많은 상 중에서도 선생님의 작품이 후보로 오르지 않은 거고요. 그건 저도 좀 분한 일이었습니다.”

    아, 지로의 어머니가 한국인 출신이라고 했던가?

    어릴 때부터 이런저런 차별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그 때문인지 꽤나 흥분하고 있었다.

    그리고 만화상 문제는······.

    처음부터 그쪽은 전혀 기대하지 않아서 특별히 화가 난다거나 하는 건 없었다.

    아무튼 지금도 흥분해 있는 지로를 빤히 쳐다봤더니 그가 흠칫하고 놀란다.

    “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흥분해서.”

    “아니요. 화를 내는 게 당연한 건데요, 뭐.”

    내 말에 지로가 슬쩍 웃는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어떨 땐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 것.

    그것 때문에 때로는 너무 숨이 막힐 때도 있을 것이다.

    나도 과거로 오기 전까진 그랬으니까.

    “아카기 씨, 그동안 힘들었구나. 괜찮아요, 괜찮아. 여기서는 화를 내도 이해를 해주니까. 그래서 말인데, 우리 윤환이에게도 따질 게 있으면 따져요. 다른 담당들처럼 의견도 좀 자주 이야기하고.”

    이대봉의 말에 지로가 웃었다.

    “늘 하고 있는데요.”

    “응? 하고 있다고? 언제요? 난 못 봤는데.”

    “가끔 대사 같은 건 식자작업하기 전에 의견을 내기도 합니다. 뉘앙스 문제 때문에요. 하지만 스토리에서는 제가 끼어들 정도의 수준이 아니셔서.”

    “역시 좋은 담당이구나. 우리 아카기 씨는.”

    “네 담당이나 신경 써. 엉뚱한 데서 꼬리를 치지 말고.”

    “너는 저열하게 꼬리라는 표현을 왜 쓰고 그리니! 그리고 우리 담당한테도 엄청 신경 쓰고 있거든!”

    “그랬냐?”

    “그랬어!”

    “그럼 됐고.”

    “어후, 짜증나.”

    이대봉이 분한지 머리를 천장으로 치켜들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어시들이 웃었다.

    * * *

    머신건 잭 10권 발매일이 다가오자 편집부로 출간날짜를 물어오는 전화가 늘었다.

    “정확한 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조만간 나올 테니까, 조금만 기다리시면······.”

    “네. 담당이 지금 자리를 비운 상태라······.”

    평소보다 많은 전화가 울려서 직원들이 당혹해했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시끄럽던 전화기들이 잠잠해졌다.

    직원들이 휴게실에서 각자 싸온 도시락으로 식사하면서 떠들기 시작했다.

    “아, 진짜. 요 며칠간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그러게. 전화가 이렇게 많이 온건 처음 삼사라 연재 때 이후로 오랜만이야.”

    “맞아. 그때도 난리가 아니었었지.”

    “삼사라 때요? 그때도 이렇게 시끄러웠어요?”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은 신입이 미니 돈가스 조각을 입에 우물거리며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그땐 더 했지. 편집부 직원도 지금보다 절반 정도라서 더 바빴고.”

    “맞아. 그때에 비하면 널널한 편이긴 해.”

    “저는 그때 대학 다니고 있을 때라서. 물론 저도 그렇지만 삼사라 만화 좋아하는 친구들도 많긴 했어요. 그나저나 써니 선생님은 대단하시네요. 늘 이렇게 이슈를 만들고 있어서.”

    “솔직히 삼사라가 여기 소년 히어로를 성장시킨 장본인이니까. 물론 스토리를 쓴 텐겐 선생님의 조력도 상당했지만.”

    선배의 말에 신입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이번에 250만부는 기록 아니에요?”

    “저번 9권에도 도전했지만 실패해서 이번에도 실패할 거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많지.”

    “선배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난 어렵지만 불가능해 보이진 않아. 최근엔 이어지는 머신건 잭 공연도 인기가 많아서. 듣기론 외국에서도 공연 구경 오는 사람들도 제법 된다고 하더라고. 대부분 대만 쪽인 모양이지만.”

    그때 다른 직원이 끼어들었다.

    “난 어렵다고 생각해. 저번과 달리 공격적인 광고도 없으니까. 솔직히 9권 땐 좀 오버였잖아.”

    “그러는 신입,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선배들의 말을 들은 신입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웃었다.

    “저는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근거는 있고?”

    “그건 아니지만 요즘 만화 좋아하는 친구들의 분위기를 보면 예전과 달라요. 솔직히 9권 사건 이후로 드래곤볼보다 머신건 잭을 더 기다리는 분위기라서.”

    “오, 그래? 오타쿠들 사이에선 그런 분위기라는 거지?”

    선배의 말에 신입이 멈칫하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에이, 오타쿠라니, 그 정도는 아니구요. 그냥 평범하게 좋아하는 친구들이에요.”

    “아, 미안. 사회에서 오타쿠라면 싫어하는 분위기지?”

    그 말에 신입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오타쿠, 아니라니까요.”

    “왜 정색하고 그래? 아니면 아닌 거지.”

    잠시 후 식사가 모두 끝나고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이어가는데,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그리고 여직원 한 명이 휴게실로 들어왔다.

    바로 카와다 미치코.

    건물 아래층에 있는 핑크걸의 직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곳의 아카기 지로 팀장의 보조역할을 겸하고 있는 여직원이었다.

    요즘 들어 머신건 잭의 인기 탓에 그녀는 더욱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미치코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휴게실 내부를 훑었다.

    그러자 직원들이 일제히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다가 신입과 눈이 마주쳤다.

    “너.”

    “네?”

    “나랑 같이 가자.”

    “저······, 오늘은 도야마 선배의 일을 도와야 하는데요?”

    그렇게 말하자 여자의 눈이 도야마라는 직원에게로 향했다.

    “바쁘세요?”

    그러자 화들짝 놀란 도야마가 얼른 손사래를 쳤다.

    “아니. 안 바빠.”

    그 반응을 본 미치코가 다시 신입을 돌아봤다.

    “그렇다는데?”

    “아니, 아깐 분명 오늘 바쁘다고······.”

    “아깐 그랬는데, 생각해보니까 나 혼자 할 수 있을 것 같네.”

    그렇게 말하며 어색하게 웃는다. 그리고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미치코가 웃으며 신입을 잡아끌었다.

    “잘됐네. 그럼 나랑 같이 가자.”

    “어, 어디로요?”

    “인쇄공장.”

    그 말에 신입이 인상을 쓰며 몸을 뺐다.

    “아니, 인쇄공장은 왜요? 머신건 잭 아직 편집 안 끝났다고 들었는데.”

    “그거랑 상관없어. 그리고 편집은 오로지 아카기 선배 몫이라 내가 끼어들 수도 없는 일이고.”

    “그럼요?”

    “삼사라 때문이야, 삼사라. 요즘 다시 재판중이라 인쇄공장이 바쁘거든. 몸으로 일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아니, 전 보시다시피 몸이 약해서······. 그리고 점심시간이 아직 남았는데.”

    “편집부에서 그런 거 일일이 다 찾아 먹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렇지만.”

    “뭔 말이 이렇게 많아. 어서 가자고!”

    그렇게 말하며 신입을 질질 끌고 밖으로 나갔다.

    “아니, 저기 잠깐만요! 선배님들!”

    애처로운 시선으로 직원들을 바라봤지만, 모두는 신입을 외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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