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411화 (411/425)
  • 스튜디오 느루 (2)

    다음날.

    화실 식구들과 다시 스튜디오 느루로 찾아갔다.

    문을 열고 사무실로 들어간 우리들은 깜짝 놀랐다.

    어제 봤던 그 사무실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완벽하게 바뀐 모습 때문이었다.

    그 많은 사무실 책상과 의자, 소파 등을 모조리 어디로 치웠는지 모르고 왔다면 그냥 호텔의 유명 뷔페 레스토랑에 왔다고 믿을 정도의 분위기였다.

    멋들어진 테이블이 잔뜩 깔려있고, 그 위엔 이름도 알 수 없는 음식들이 놓여있다.

    그리고 요리들의 뒤편엔 10여명의 흰옷을 입은 요리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더불어 호텔 직원 복을 입은 사람들도 10여명가량 서서 대기 중이다.

    우리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들어서다가 한쪽 식탁 테이블에 모여 있는 느루의 직원들을 확인하고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이대봉이 신난 얼굴로 그들에게 물었다.

    “이, 이게 다 뭐야? 형, 여기 느루 사무실 맞아?”

    그 말에 그들도 어색하게 웃었다.

    “나도 처음엔 잘 못 들어온 줄 알았다.”

    그렇게 대답한 김영호가 우리들을 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게 다 뭐죠?”

    “글쎄요.”

    이대봉이 실내를 둘러보며 황당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밤사이 도대체 사무실에다 무슨 짓을 한 거야?”

    “모른다니까. 어제 열쇠를 달라고 했을 땐 그냥 간단하게 준비하겠거니 했었을 뿐이지, 이렇게 요란할 줄 우리가 어떻게 알았겠냐?”

    주변을 둘러보던 실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여자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러게요. 그냥 간단한 식사 정도만 기대했는데.”

    “나도.”

    박소미가 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건 뭐야? 바닷가재?”

    “뭐라더라? 아, 맞다. 랍스터!”

    “저거 한 마리 먹으면 한 달 굶어야 한다는 그거 아니야?”

    “뭘 그렇게 씩이나.”

    “맞아. 무슨 한 달이야.”

    “와, 냄새가 장난이 아니야.”

    “우리끼리 저 많은 음식 다 먹을 수 없겠는데?”

    자리에 앉지도 않고 주변을 둘러보며 사람들이 떠들었다.

    그때 책임자로 보이는 턱시도 사내가 우리 쪽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돌아가실 때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모두 놀란 눈이 되었다.

    “정말 싸가도 돼요?”

    “네.”

    “잔뜩?”

    “네.”

    “공짜로요?”

    “돈은 다 지불이 된 상태입니다.”

    그 말에 사람들이 더 환호했다.

    그리고는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각자 접시를 들고 돌면서 값비싼 음식들을 가져다가 먹으며 즐거운 대화가 이어졌다.

    쌍둥이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펄떡거리며 준비된 음식들을 거의 다 맛보고 있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접시가 쌓여가고 있지만 바쁜 입은 멈출 줄을 몰랐다.

    특히 선희의 경우엔 정말로 말 한마디 없이 먹기만 했다.

    더 없이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적당히 먹어라. 배 터지겠다.”

    튀어나온 배를 두드리던 이대봉이 선희를 보며 말했지만, 들은 채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그 쪼그만 몸 어디에 그게 다 들어가니?”

    옆에서 떠들거나 말거나.

    대부분 사람들은 벌써 늘어진 몸으로 계속 꺼억 거리며 트림만 뱉어낼 뿐이었다.

    그럼에도 경희와 선희는 마치 경쟁이라도 하는 듯 새 접시를 들고 음식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와, 진짜 대단하다.”

    “평소엔 많이 안 드시면서.”

    “누가 보면 뱃속에 한 달 버티려고 뱃속에 비축하는 줄 알겠다.”

    “한 달이 뭐야? 저 정도 양이면 반년도 버티겠다.”

    “일년은 좀 오바고.”

    “그런가?”

    그 말을 하면서 사람들이 웃었다.

    식사를 끝내고 각자 집에 가져갈 음식을 싸들고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들어갈 때와는 달리 모두 뒤뚱거리고 있다.

    “와 걷지도 못하겠어.”

    “꺼억, 나가는 길에 약국에 들러야겠다. 소화제 사러.”

    “나도 그래야겠어.”

    “두 분은 괜찮아요? 너무 많이 드신 것 같은데.”

    걱정스러워하는 차미정의 말에 경희가 트림을 한번 하고는 손을 휘적거렸다.

    “괘, 괜찮아요.”

    딱 봐도 안 괜찮은 것 같은데.

    그런 경희와 마찬가지인 선희도 연신 꺼억 거리고 있다.

    괴물처럼 먹어대는 얘네들에게도 오늘은 좀 무리였던 모양이다.

    하기야 무슨 음식 먹는 기계처럼 보였을 정도니.

    저러고도 탈이 나지 않는 걸 보면 소화력이 좋다고 해야 할지.

    “그럼 저희들은 이만 가볼게요.”

    “그래요.”

    “나도 간다.”

    “어.”

    “내일 보자.”

    “그래.”

    그렇게 화실식구들과 헤어지자마자 택시를 잡았다.

    그리고 차에 타자마자 경희가 배를 두드리며 말했다.

    “어후, 배불러. 숨도 못 쉬겠어.”

    “나도.”

    이 와중에도 둘 다 엄청 행복한 표정이구만.

    “적당히 좀 먹지. 그러다 정말로 탈나면 어쩌려고.”

    “괜찮아, 괜찮아. 이정도로는 끄떡없어.”

    “숨도 못 쉬겠다며?”

    “참을 만 해.”

    “나도.”

    “그러다 진짜 큰일 나, 이 녀석들아!”

    그 와중에도 행복한 얼굴의 쌍둥이들을 보니 어이가 없어 피식 웃고 말았다.

    그리고는 조수석에서 차창 밖으로 시선을 보냈다.

    이제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는 거리.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풍경처럼 느껴지고 있다.

    내가 살던 시절에 비해 촌스럽기만 한 거리의 풍경.

    하지만 언제부턴가 익숙해지고, 더불어 친숙해지고 있었다.

    그런 곳을 어쩌면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해졌다.

    물론 요즘엔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아서 확실한 건 아니지만.

    “또 저런다.”

    경희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응? 뭐?”

    “오빠 말이야. 요즘 따라 정말 이상해졌어.”

    “내가?”

    “그래. 매일 뭘 그렇게 심각한 생각을 하는 건지. 스토리를 생각할 때랑은 전혀 달라. 그치?”

    경희의 말에 선희가 머리를 끄덕였다.

    “정말로 뭔 일 있어?”

    “그런 거 없다.”

    내 말에 경희가 미간을 찌푸리며 빤히 쳐다봤다.

    “너무 단정적으로 말하니까 더 불안하네.”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러자 머리를 끄덕이며 안심한 표정이 되었다.

    “아니면 다행이지만. 그나저나 나카야 씨말인데.”

    “그 여자가 왜?”

    “정말로 오빠에게 관심 있나봐.”

    그 말에 화들짝 놀랐다.

    “야, 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 그 여자 성격 몰라서 그래?”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요즘 들어 이상할 정도로 우리에게 잘 해주잖아. 특히 오빠에게.”

    “야, 말이라도 무서운 소리 하지마라. 그리고 그 여자 성격이 원래 이상해서 행동이 예측불허야. 쓸데없는 착각이다.”

    내 말에 경희가 머리를 갸웃거렸다.

    “그런가?”

    “그렇다니까.”

    “넌 어때?”

    경희가 선희 쪽으로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자 선희가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입을 열었다.

    “착각이야!”

    “아이고 깜짝이야!”

    “억!”

    운전기사 아저씨도 움찔하며 놀랄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왜 갑자기 큰소리야!”

    “착각이 맞아!”

    “알았으니까, 그만해! 꺼억!”

    “꺼억!”

    쌍둥이라 그런지 트림도 같이 하네.

    황당한 표정으로 둘을 쳐다봤다가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그런데 그때 창밖에서 뭔가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스쳐지나가는 장면에 시선을 고정시켰다가 곧장 운전기사에게 말했다.

    “여기 앞에서 좀 세워주세요.”

    그렇게 말하자 택시가 적당한 자리에 멈춰 섰다.

    “너희들은 먼저 돌아가라.”

    “갑자기 왜? 무슨 일 있어?”

    경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 여기 근처에 일이 있어서.”

    적당히 둘러대고는 다시 말했다.

    “아, 그리고 너희들 택시비는 있지?”

    “그 정도는 당연히 있지. 걱정하지 말고 일 보고 천천히 와.”

    “그래. 그럼.”

    그렇게 말하고는 차에서 내렸다.

    택시가 출발하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곧장 아까 봤던 곳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택시에서 봤던 장소에 도착했다.

    얼마 전에 문을 연 맥도날드 가게 앞.

    가족들과 몇 번 와본 적이 있는 장소다.

    그런 가게의 창문 안에서는 햄버거를 먹으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이 보인다.

    물론 내가 정신이 나가서 이런 모습을 보려고 택시에서 갑자기 내린 건 아니다.

    안에 있는 사람.

    바로 젊은 시절의 엄마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햄버거를 먹으며 행복해 하는 그녀의 모습.

    젊은 시절의 엄마가 햄버거를 맛있게 먹고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남자가 눈에 더 들어왔다.

    그런데 그 남자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었다.

    젊어서 못 알아보는 게 아니라,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물론 이것만으로 뭔가 바뀌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태어나려면 아직 5년 후의 일이니까.

    그렇다면 아직은 아버지와 만나기 전인가?

    역시 아버지는 첫사랑이 아니었던 모양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두 사람을 쳐다보는데, 어째 그들 모습이 묘하게 느껴진다.

    엄마가 쳐다보는 눈빛, 그리고 남자가 쳐다보는 눈빛에 온도차가 심하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엄마를 냉랭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도 엄마는 뭐가 좋은지 연신 미소만을 지어보이고 있다.

    엄마의 일방통행인가?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씁쓸하다.

    엄마가 안쓰럽게 느껴져서.

    그렇게 한동안 두 사람을 쳐다보다가 곧 발길을 돌렸다.

    어쨌든 엄마 인생에 개입해서 좋을 건 없다.

    어쩌면 나라는 존재 자체가 소멸될 지도 모르니까.

    *

    며칠 후.

    스튜디오 느루에 야스히코 선생이 합류했다는 소식과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이대봉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느루의 첫 작품은 ‘게이머’라는 제목의 이야기다.

    미래를 배경으로 게임을 직업으로 삼은 프로게이머들의 이야기다.

    거대한 돔형 경기장에 사람들이 모여 있고, 중앙에선 많은 우주병기들이 싸우는 모습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홀로그램을 기반으로 한 프로게이머들의 대결.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을 보며 열광한다.

    주인공은 현재 아마추어 경기를 주로 하고 있지만 언젠가 최고의 프로게이머가 되기를 희망하는 소년이다.

    그런 주인공이 어떤 계기로 세계최고의 프로게이머와 경기를 하게 된다는 그런 얘기다.

    기본 베이스는 영화 록키와 닮아있지만, 진행이나 에피소드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그리고 내가 살던 시절엔 당연히 존재하는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으로 만든 이야기지만, 지금 시대엔 생소하지만 흥미가 있을 거라 판단하고 만든 이야기다.

    처음 스토리의 기본 뼈대를 이야기했을 때 박상식도 흥미를 보였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본 것이다.

    거기다가 이 스토리를 야스히코 선생도 꽤 관심을 가졌고.

    물론 이 스토리를 그대로 만들지는 않고, 인물작화와 감독을 맡을 야스히코 선생의 의견이 최대한 반영이 될 예정이다.

    나야 스토리의 초안까지만 담당하기로 했으니까.

    한국에서 TV에 먼저 방영하고, 일본에선 비디오로 제작되어 판매가 될 예정이다.

    당연히 그쪽 유통은 나카야그룹에서 맡을 것이고.

    게이머의 반응이 좋다면 TV시리즈나 극장판도 가능성이 있다.

    어쨌거나 첫 작품이라 스텝들은 목숨을 걸 작정이라는데.

    뭘 그렇게까지.

    아무튼, 비장한 마음으로 시작했다.

    올 가을쯤에 방영될 ‘2020 우주 원더보이’야 순수 한국의 힘으로 제작하는 거지만, 우리는 합작의 개념이라 별로 주목을 받고 있는 형편은 아니지만.

    아무튼, 나름 이번작품을 느루가 오랜 기간 생존해서 많은 노하우를 쌓아가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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