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409화 (409/425)
  • 다가오고 있다 (6)

    내 말이 의외였던 모양이다.

    저렇게 말없이 빤히 날 쳐다보는 걸 보면.

    잠시 그렇게 날 쳐다보던 이즈미가 커피를 한번 홀짝거리고는 물었다.

    “투자로 돈을 벌면? 그중 일부를? 그쪽이 투자 중인 회사에 투자하라는 건가요?”

    “네.”

    내가 끄덕이며 대답하자, 이즈미가 자신의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역시 그 소문이 사실인 모양이네요.”

    “소문이라뇨?”

    “당신이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 기술을 빼가고 있다는 소문.”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헤드헌팅, 뭐 그런 거 말입니까?”

    “아닌가요?”

    “아닌데요. 전 그냥 한국 애니메이터들을 일본에 견학시키는 정도라. 그리고 제가 듣기론 그다지 많이 알려주지도 않는 모양이던데.”

    업계 노하우라고 해봐야, 그저 근처에서 지켜보는 정도가 다라고 한다. 그나마도 신경 쓰인다고 가까이 오게 하지도 않는 모양이고.

    헤드헌팅 따위를 할 이유도 없다.

    목적은 한국 애니메이터의 실력을 향상시키는 거니까.

    하지만 일본에서는 저런 식으로 소문이 돌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기야, 한국에 자신들만의 노하우가 유출되는 건 싫을 테니까.

    그건 뭐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도 당연한 일이고.

    하지만, 난 일본의 입장이 아니니까.

    이즈미가 물었다.

    “뜬소문이라는 건가요?”

    “뭐, 어떻게 소문이 났건 별로 신경 쓰지는 않습니다.”

    “인기 만화가라는 지위를 이용해 협박했다는 소문도 도는데, 정말로 신경 안 써요? 그 얘길 다룬 잡지도 있는 것 같던데.”

    의외인데?

    내가 그렇게 관심을 많이 받고 있었나?

    그래도 뭐 이 정도는 괜찮다.

    “어쩔 수 없죠. 연예인들도 시달리는 일인데. 오히려 내 쪽에서 관심을 가져줘서 영광인데요.”

    “농담으로 들을 만 일은 아니에요.”

    “농담으로 듣지 않아요.”

    “신경 안 쓰이나?”

    “한국에 있어서 잘 알지도 못했어요. 그리고 안다고 하더라도 분위기를 느낄 수도 없고.”

    그래도 이건 약과다.

    인터넷 때문에 온갖 반응을 실시간으로 접하는 미래의 유명인들이 겪는 고통에 비한다면.

    아무튼 일본은 유명인, 특히 연예인들에 대한 사생활을 필요 이상으로 파헤치는 잡지가 많긴 하다.

    뭐, 나야 연예인도 아니라 덜 한 거지만.

    아 그러고 보니 주간루머 기자인 미네와 알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지.

    “그나저나 그런 잡지에 내 기사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읽어보셨나?”

    그 말에 움찔하며 놀라더니 내 시선을 피한다.

    음, 읽었구만 읽었어.

    이 여자 그런 기사를 보면서 얼마나 낄낄거렸을지 눈에 선한 느낌이다.

    이즈미가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아닌데요. 나도 구로다에게 들어서 알고 있는 내용이에요.”

    그 말에 노인 쪽으로 돌아봤다.

    노인도 이즈미처럼 움찔거렸다. 그리고 눈동자가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간다.

    평소의 냉정하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뭔가 서로 사인이 맞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시 이즈미를 돌아봤더니, 그녀의 시선이 노인에게서 잽싸게 나를 향한다.

    “정말이에요. 진짜라니까.”

    “누가 뭐랍니까?”

    내 대답에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믿지 않고 있잖아요. 내가 그딴 책을 읽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구만.”

    “······봤든 안 봤든 신경 안 쓰는데.”

    “신경을 안 써요?”

    “네.”

    내 반응에 잠시 날 내려다보던 이즈미가 주변을 슬쩍 돌아보았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힐끔거리자 쯧 하며 혀를 차더니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데 뭔가 다시 불만 섞인 표정이다.

    “마음에 안 들어.”

    그렇게 중얼거린다.

    도대체 뭘 원하는 건지.

    여전히 알 수 없는 여자다.

    그런 그녀를 보며 말했다.

    “아무튼, 제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아요.”

    “그래도 신경은 좀 써요.”

    “왜요?”

    “자신에 대한 독자들의 평판에도 신경을 써야죠.”

    본인 평판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더니.

    “그런 루머에 일일이 신경 쓰는 건 피곤해서요.”

    “그래도 좀 신경 써요.”

    “싫은데요.”

    “진짜!”

    왜 짜증을 부리는 거지?

    갑자기 이즈미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커피를 홀짝거렸다. 그리고는 인상을 썼다.

    “아, 진짜. 또 식었어. 구로다!”

    “네. 아가씨. 새로 주문하겠습니다.”

    노인의 대답에 손을 휘적거린 이즈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건 됐고, 그냥 돌아가요.”

    “네. 차를 대기시키겠습니다. 아가씨.”

    그렇게 대답한 노인이 이즈미를 따라 나갔다.

    * * *

    나카야그룹의 개인전용기 안.

    이즈미가 소파에 몸을 푹 파묻은 채로 잡지책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옆 소파에 휙 던지더니 짜증 섞인 음성으로 말했다.

    “이렇게 짜증나게 썼는데 신경을 왜 안 쓰는 거야.”

    그렇게 말하며 팔짱을 끼며 한숨을 푹 쉬었다.

    “그나저나 내가 왜 이딴 걸 신경 쓰는 거야.”

    그렇게 혼자 중얼거리는 이즈미를 맞은편 자리에 앉아있던 노인이 힐끔거렸다.

    “왜 그렇게 쳐다봐요?”

    “아닙니다. 아가씨.”

    “뭔가 오해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런 거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노인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다시 인상을 쓰자 노인이 시선을 돌렸다.

    “구로다.”

    이즈미가 부르자 노인이 움찔거리며 놀랐다.

    “네. 아가씨!”

    “혹시 여기 우리 회사 광고 들어가요?”

    그제야 자신을 추궁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는 곧 평소의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들어가고 있습니다. 성인 잡지라서 주로 속옷이나······.”

    “다 빼라고 하세요.”

    갑작스러운 이즈미의 말에 노인이 깜짝 놀랐다.

    “네? 다 말입니까?”

    “그래요.”

    “네, 알겠습니다.”

    노인이 머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또 하나.”

    “네.”

    “그 사람이 말하는 한국의 애니메이션 제작사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아보도록 해요.”

    “네, 알겠습니다.”

    * * *

    “이 부분은 좀 늘어지는 것 같으니까, 건너뛰는 것도 괜찮을 것 같네요. 그리고·····.”

    콘티노트를 넘기다 다시 장면을 확인하고는 손가락으로 짚었다.

    “여긴, 이야기가 갑자기 건너뛰는 느낌이라, 적은 컷을 넣어서 내용을 추가하면 좋겠는데.”

    “네, 알겠습니다.”

    박소미가 머리를 끄덕이며 메모를 했다.

    그리고는 대충 내 이야기가 끝나자 박소미가 콘티노트를 챙기며 일어섰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네.”

    “기철이 너도.”

    “아, 네.”

    이번엔 김기철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원고 종이 몇 장을 들고 다가왔다.

    “여기 있습니다.”

    “어, 앞에 앉아라.”

    “네.”

    소파 맞은편 자리에 긴장한 얼굴로 앉았다.

    김기철이 내민 원고를 받아서 테이블에 올려놓고 한 장씩 천천히 확인하기 시작했다.

    화실 원고가 아닌, 김기철 개인 데생원고다.

    예전엔 내가 직접 원고를 봐주는 일은 없었다.

    보통은 어시들끼리 봐주는 일이 많았다. 물론 그 대부분은 실버였지만.

    그런데 며칠 전부터 내가 직접 틈틈이 콘티나 데생 등을 봐주고 있다.

    펜선이나, 배경 등 마무리 부분은 나보다 어시들이 더 잘하는 부분이라 맡기는 편이지만.

    물론, 이런 것도 데뷔가 목적인 사람들에 한해서지만.

    몇몇은 데뷔보다는 어시로 남길 원하기도 해서 그들은 제외했다.

    갑작스러운 이런 결정에 어시들이 좀 의아하긴 했지만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원고를 여러 장 앞에 쭉 나열한 채로 보다가 몇 장면을 손으로 짚으며 말했다.

    “내 옆으로 와서 봐봐.”

    김기철이 옆으로 와서 앉아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가 가리킨 것을 쳐다봤다.

    “여기 부분이랑 여기. 이어지는 부분이 좀 어색해. 액션장면이라 흐름이 중요한데, 딱딱 끊어지는 느낌이잖아. 그리고 시선처리도······.”

    내 설명이 이어지자 심각한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인다.

    한참동안 그렇게 김기철의 원고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을 때, 전화가 울렸다.

    “선생님, 나카야 씨요.”

    “아, 네.”

    수화기를 받자마자 이즈미가 말했다.

    -바로 투자할게요.

    “네?”

    -전에 그쪽이 말했던 제작사에 투자한다고요.

    “디즈니요?”

    -거긴 지금 알아보고 있는 중이고.

    “그럼······?”

    -한국 제작사요. 그쪽이 투자하고 있다는 그곳.

    갑작스러운 말이라 좀 얼떨떨했다.

    디즈니에 투자하고 돈이 좀 벌리면 그때 투자나 좀 하라고 한 거였는데.

    -어? 반응이 왜이래?

    “네? 반응이라뇨?”

    -환영하는 거 아니었어요?

    “환영이요?”

    -그거 전에 부탁한 거 아니었어요?

    “그렇긴 한데, 좀 갑작스러워서.”

    그 말에 쯧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뭔가 반가워하는 반응이라도 있어야죠.

    “······.”

    -뭐, 그건 됐고. 갑자기 왜 이런 결정을 했는지 궁금하죠?

    “조금은요.”

    -조금?

    이번에도 내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조금 과한 리액션이라도 해줄걸 그랬나?

    하지만 역시 전화상으로는 한계도 있고, 더군다나 화실에 식구들도 이렇게 많으니 거북스럽다.

    -후, 뭘 더 바라겠어요. 어쨌거나 큰돈도 아니니까.

    “갑자기 그렇게 결정한 이유가 뭡니까?”

    -궁금하니까요.

    “궁금하다뇨?”

    -당신이 투자했다는 그 제작사.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 궁금해서요.

    “좀 알아보셨나 보네요.”

    -맞아요. 그리고 좀 실망했어요.

    하기야, 특별할 것 없는 회사니까.

    일본의 기준으로 흔하디흔한 소규모 제작사에 비해서 실력도 부족할 테고.

    실제로 애니메이션 제작 능력을 비교하자면 한참 떨어질 테니까.

    -역시 그거죠?

    “그거요?”

    -애국심. 나라 사랑, 뭐 그런 거 아니에요?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고요. 한국에도 괜찮은 제작사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그게 애국심이지, 뭐.

    “······.”

    -그래서 목표가 뭐예요? 한국 애니메이션을 발전시키려는 건가요?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고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해봐야겠다 싶어서.”

    -그래도 쉽지는 않겠던데. 워낙 문제도 많은 모양이고.

    그동안 대부분 일본애니메이션의 모방작이 대부분이니 저런 생각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

    물론 올림픽 직전부터 한국에도 자체제작 TV애니메이션 열풍이 불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봐야 매년 엄청난 양을 쏟아내는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새 발의 피니까.

    -뭐 좋아요. 그래도 당신이 투자할 정도면 뭐가 있겠지. 어차피 푼돈정도니까.

    저 여자가 말하는 푼돈의 기준은 내가 파악하기 힘들다.

    -아, 그리고 그쪽이 말한 디즈니에 대해 좀 알아봤는데, 지금 ‘인어공주’라는 만화를 제작중이라던데. 알고 있었던 거예요?

    “네.”

    ‘미녀와 야수’의 경우엔 올해 여름부터 제작에 들어갈 테니, 그쪽 정보는 아직 나오지 않은 모양이다.

    -너무 흔한 이야기 아닌가?

    “흔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드는 게 중요한 거죠. 그리고 원래 그쪽 전문이기도 하고.”

    -그건 그렇지만, 어째 시시하던데. 그쪽이 뭔가 대단한 것처럼 얘기해서 좀 기대했거든요. 아무튼, 그쪽이랑 접촉을 시작하고 있어요.

    “벌써요?”

    -뭐 돈이 될 거라면서요. 당연한 거 아닌가. 뭐, 호기심도 있었고.

    역시 이즈미는 사업가가 어울리는 건가?

    아니, 내 한마디에 저렇게 움직이는 걸 보면 사업에 재능이 없는 걸지도.

    소문에 너무 민감한 것도 별로 좋은 습관은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내가 사업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느니, 쓸데없는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기대해 보겠어요. 얼마나 큰 성공을 할지.

    “기대해도 좋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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