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고 있다 (4)
키도의 화실.
요즘 들어 자주 찾아오는 니시다가 심각한 표정으로 키도에게 물었다.
“요즘 무슨 일 있습니까?”
“나? 별로 큰일은 없는데?”
“누가 키도 선생님에 대해 물었습니까? 텐겐, 써니, 두 분 선생님 말입니다.”
니시다의 말에 키도가 인상을 썼다.
“아니, 그런 걸 왜 아침부터 찾아와서는 내게 물어? 엉뚱하게.”
“엉뚱하다뇨. 중요한 건데.”
“그렇게 중요하면 네가 직접 물어보든가.”
“그게······. 아니, 선생님은 두 분이랑 그렇게 친하시다면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떡합니까?”
“뭘 그렇게 말해? 그리고 친한 거랑 무슨 상관이야!”
“상관있죠. 제겐 유일한 통로인데.”
“이 자식이 진짜······.”
화를 버럭 내려던 키도가 잠시 심호흡을 한 뒤 스스로를 진정시키고는 다시 물었다.
“그래. 자세히 말해봐, 도대체 무슨 소식을 들었기에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거야?”
키도의 물음에 니시다가 인상을 썼다.
“아니, 키도 선생님은 지금 써니 선생님의 만화를 보시면서도 아무것도 눈치 채지 못하신 겁니까?”
“무슨 소리야? 요즘 머신건 잭이 얼마나 잘나가는데 그런 소리야? 재미만 있던데.”
키도의 말에 소파에 앉아있던 니시다가 자신 앞에 놓여있는 소년 히어로 잡지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말했다.
“재미 말고요. 진행속도 말입니다.”
“진행속도?”
“네.”
키도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곧장 어시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너희들은 어때? 진행속도에 문제가 있나?”
그 말에 어시들 중 한명이 작업을 멈추고 뭔가 생각났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 그러고 보니 니시다 선생님 말씀대로 머신건 잭, 요즘 이야기 진행이 좀 빨라진 것 같아요.”
그 말에 다른 어시들도 그제야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재미는 있는데 좀 급하게 진행되는 느낌이 들어요.”
“맞아. 좀 급한 느낌이 있긴 하더라.”
“전 오히려 그게 더 좋던데.”
“맞아요. 일주일에 겨우 20페이지 정도 밖에 볼 수 없어서 아쉬운데 이야기가 빠르니까 군더더기도 없고.”
“군더더기? 그건 아니지. 애초에 사소한 이야기들도 얼마나 재밌는데.”
어시들끼리 의견이 나눠지긴 했지만 분명한 것은 진행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모두 느끼고 있다는 점이었다.
키도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잠시 생각하더니, 니시다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의 앞에 있던 소년히어로 최신호를 들고는 뒤적거렸다.
머신건 잭을 찾아 페이지를 훑어보던 그가 머리를 끄덕였다.
“빠른 것 같기는 하네. 볼 땐 잘 몰랐는데.”
그제야 납득했다는 표정으로 말하자 니시다가 팔짱을 끼며 다시 인상을 썼다.
“아니, 그렇게 친하시면서 그런 것도 모릅니까?”
“야, 친하면 그런 것도 알아야 되냐? 아니, 그보다 너 지금 내게 화낸 거 맞냐?”
“화를 내긴 누가 냈다고 그럽니까? 그냥 하는 말이지.”
“화를 내는 거 맞는데.”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는 지금 두 분 선생님께 문제가 생긴 거 아닌지 걱정이 되는데.”
“그렇게 걱정이 되면 직접 전화를 걸어서 물어보던가.”
“또 그런 말씀이세요?”
“너도 계속 같은 말만 하고 있잖아. 근거도 없이.”
“근거가 없다니, 방금까지 내 얘기를 어떻게 들은 겁니까?”
“시끄럽고, 아무튼 답답하면 네가 전화 해.”
그 말에 기세등등하던 니시다가 멈칫하더니 키도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고는 싶은데, 아무래도 예의상······.”
그 말에 키도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한테는 이제껏 하고 싶은 말은 죄다 한 주제에. 유난이나 써니에겐 예의를 찾냐?”
“키도 선생님과는 다르죠.”
“뭐가 다른데. 같은 유명 만화가잖아.”
“같은 유명만화가요?”
“그럼 아니냐? 걔들은 1위, 내가 2위.”
“마치 동급의 레벨처럼 말씀하시다니, 참 양심도 없으시네요. 단행본 판매량이 두 배 이상 차이 나는데.”
니시다의 말에 키도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야, 양심이라고! 너 말 다했냐?”
“제 말이 딱히 틀렸다고 볼 수는 없잖아요. 솔직히 레벨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 나는데.”
“야, 그렇게는 아니지!”
“맞는데요.”
“이 자식이 진짜!”
키도가 흥분하며 날뛰자 그 모습을 본 어시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또 우리 선생님, 니시다 선생님에 말리셨어.”
“어쩔 수 없죠. 아무래도 입심이 다르니까.”
“하아, 요즘 선생님 보면 내가 더 마음이 아프다니까.”
“저도요.”
“야, 이놈들아! 다 들려!”
키도가 버럭 소리치자 움찔한 어시들이 다시 원고작업을 시작했다.
싸우는 와중에도 귀는 귀신같이 밝다고 중얼거리며.
그때 키도부인이 웃으며 간식거리를 들고 화실에 들어왔다.
“모처럼 활기 있는 분위기라 너무 좋네요.”
그렇게 말하며 소파테이블에 접시 몇 개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험악하던 두 사람의 분위기가 일시에 가라앉았다.
특히, 니시다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밝게 웃었다.
“요즘 너무 자주 찾아와서 면목이 없습니다, 사모님.”
“어머, 아니에요. 니시다 선생님께서 자주 오시면 분위기도 좋으니까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더 자주 와야겠습니다.”
“네.”
그렇게 대답한 키도부인이 키도에게 돌아봤다.
“혹시 제가 잘 못 말한 건 아니죠?”
그러자 키도가 대번에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당신이 그렇다면 그런 거니까.”
“어머. 당신도 참.”
웃으며 말한 키도부인이 다시 부엌으로 사라졌다.
그러자 일시적으로 휴전이던 상황이 다시 깨어졌다.
“레벨 낮은 내게 뭘 부탁하려고.”
“뭘 그렇게까지 자기비하를 하십니까?”
“됐어. 그러니까, 네가 바라는 게 전화를 걸라는 거 아니야?”
“그야······.”
니시다의 반응을 본 키도가 콧방귀를 꼈다.
그리고는 쯧 하고 혀를 한번 차고는 말했다.
“뭐, 좋아. 안 그래도 전화를 한번 걸어볼 참이었으니까.”
그런 키도의 말은 들은 니시다가 확 밝아진 표정이 되었다. 그리곤 두 손으로 얼른 하라는 듯 휘적거렸다.
“네. 어서 해보세요.”
그 말에 전화기로 손을 뻗던 키도가 다시 멈칫하며 말했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네가 한 말 때문에 전화를 거는 건 아니야. 알지?”
“네. 알고말고요. 당연하죠.”
“확실하지?”
키도의 물음에 니시다가 짜증이 폭발했다.
“알겠으니까, 어서 전화 걸어요!”
“······.”
니시다의 재촉에 잠깐 콧등을 찌푸린 키도가 곧 전화기를 들었다.
* * *
내가 말했다.
“장면 컷을 좀 늘리면 어떨까?”
“······무슨 문제라도 있어?”
선희가 묘한 눈빛으로 물었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처럼 보인다.
“아니. 문제는 아니고.”
내 말에 선희가 머리를 갸웃거리며 내 눈치를 살짝 보며 말했다.
“요즘 스토리 빨라.”
“그, 그래?”
내 반응을 살피고 나서는 다시 말했다.
“너무 빨라서 걱정.”
“재미는 없냐?”
“재미는 있어.”
“그럼 됐지.”
“그런가?”
“그래.”
대충 설득은 된 모양이다.
하지만, 선희의 말대로 지금 스토리의 진행이 좀 많이 빠른 건 사실이다.
솔직히 내게 지금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알 수 없으니, 급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도 없고.
그나저나······.
내가 돌아가면, 본체에 있던 의식은 어떻게 되는 거지?
혹시 내가 빠져나가면서 원래의 의식이 돌아온다면······.
아, 이것도 정말 큰일인데.
그렇게 잡념에 빠져있을 때였다.
“뭘 그렇게 생각해?”
선희가 날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화들짝 놀란 내가 서둘러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야, 아무것도.”
아, 진짜.
이거 왜 이렇게 신경 쓰이는 것이 많은지 모르겠네.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들 때문에 마음이 급해졌다.
요즘엔 심장도 예전보다 빨리 뛰는 기분이고.
그런데 그때 전화기가 울렸다.
전화를 받은 성준희가 날 보며 말했다.
“키도 선생님이셔.”
“키도 형?”
“응. 뭔가 급한 느낌이던데.”
“급하다고?”
그 양반이 내게 급하게 말할 게 뭐가 있나?
어깨를 으쓱 한 뒤 전화기를 받아들었다.
-뭐하나 물어보자.
다짜고짜 묻는 거 보니 뭔가 급하긴 급한 모양인데.
-너 혹시 무슨 일 있는 거냐?
아이고, 깜짝이야!
이 인간이 어떻게 안 거지?
혹시 연재만화를 보고 눈치 챈 건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물었다.
“왜, 갑자기 그런 걸······, 물어?”
-너 말이야, 문제가 있으면 이 형에게 반드시 말해야 된다. 알겠지?
표정을 관리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무슨 문제.”
-연재속도 말이야. 빨라진 이유가 뭔데?
의외다.
연재속도 만으로 그런 것을 눈치 챈다고?
우리 키도가 정말 변했구나.
평소 키도의 성격이라면 이런 것을 눈치 채기 쉽지 않을 텐데.
하지만 그렇다고 진실을 얘기할 수는 없다.
믿어줄 만한 얘기도 아니지만, 믿어줘도 큰일이니까.
적당히 핑계를 댔다.
“별 뜻은 없어. 그냥 시원시원하게 진행하려고.”
-시원시원?
“어. 독자들이 답답해하지 않게 하려고.”
-······답답한 건 없는데.
“그냥 내 생각에.
-그런 거냐?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조용히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자꾸 이상하다고 하는 녀석이 있어서.
역시 니시다였구나.
그럼 그렇지 어쩐지 예리하다싶더라니.
-아, 잠깐만.
그렇게 말하더니, 곧 음성이 바뀌었다.
-선생님. 저 니시다입니다. 안녕하세요.
같이 있었던 모양이네.
하긴 평소에도 니시다의 화실을 자주 찾는다고 들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이대봉이랑 비슷하네.
아무튼 니시다의 인사에 바로 대답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외람되지만, 정말이십니까? 속도가 빠른 이유가 정말로 시원한 진행 때문인 거요.
적당히 대답하자.
“뭐, 지금 드래곤볼도 그렇잖아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빠른 건.”
-그건······, 그렇습니다만. 선생님의 스토리는 드래곤볼과는 상당히 다른 방식이라. 그리고 그것이 장점이기도 하고요.
장점?
그런가?
“그렇게 생각하세요?”
-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템포를 약간만 조절하시면······. 아,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넘게.
“아뇨. 니시다 선생님이 제 만화를 좋아해주신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의견은 환영이고요.”
-······그러시다면.
꽤나 반가워하는 음성이다.
그리고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여운을 주는 장면이라든가, 두 페이지짜리 스케일 큰 전투장면도 상당히 인상 깊었다면서.
나름 생각지도 못했던 것도 이야기하는 바람에 꽤 놀라기도 했다.
이정도로 내 만화를 관심 있게 봤다는 것도 놀랍고.
아무튼 한동안 니시다의 말을 들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그저 빨리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문제였다는 것을.
그리고 더불어 많은 이야기를 남기는 것만이 중요하진 않다는 것도.
그때 전화기 너머에서 키도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내는 전화비가 아니라 이거냐?
-돈도 많으신 분이 너무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럼, 돌아가서 네 전화로 걸어!
그때 다시 니시다의 음성이 커졌다.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좋은 의견이었습니다. 도움이 되었어요.”
-아, 그렇습니까?
그렇게 간단한 인사말을 몇 마디 더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