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403화 (403/425)
  • 만화왕 (8)

    공연이 끝난 다음날 지로에게서 전화가 왔다.

    -연장공연이 확정되었다고 합니다. 자세한 날짜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아마도 올해 연말쯤이 않을까 생각합니다.

    연말이라고 해봐야 1988년도 이젠 한 달 조금 넘게 남았을 뿐이다.

    -아무튼 최근 공연 때문에 다시 단행본 판매량이 늘었습니다. 지금 영업부의 예측으론 앞으로 30만부 이상은 될 거라고 하더군요. 뭐, 누구나 가능한 예상이긴 합니다만.

    “누구나 가능한 예상이요?”

    -네. 그만큼 많이 팔리고 있으니까요.

    하긴, 이렇게 끝없는 이벤트가 이어지는데 안 팔리면 이상하겠지.

    -그나저나 제임스 선생님이 오셔서 조금 놀랐습니다.

    깜짝 놀랐다.

    그 인간 언제 일본에 간 거야?

    “네? 진짜요?”

    -어? 모르셨습니까?

    어쩐지 요즘 며칠 동안 보이지 않는다했더니.

    “몰랐어요. 그런데 언제······?”

    -어제 오후에 출판사 근처 카페에서 우연히 봤습니다.

    “카페요?”

    -네. 담당이신 야지마 선배랑 같이 계시더군요.

    그렇게 공연보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더니, 결국 혼자 일본에 간 모양이다.

    아마도 담당에게 불러달라고 엄청 졸랐을 테지.

    -작화 담당분이랑 미팅을 하기 위해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작화를 맡은 만화가랑 미팅이 목적이었다고?

    “설마요.”

    -일단 그렇게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순간 지로의 말을 이해했다.

    모른 척 해주겠다는 거다.

    -그나저나 제임스 선생님은 여전히 주변의 관심을 많이 받으시더군요. 특히 여자분들에게 말입니다.

    “그렇겠죠.”

    안 봐도 알 것 같다.

    지금의 일본 여자들은 의외로 상당히 적극적이라 나도 놀랐으니까.

    전에 이대봉과 일본에 갔을 때도 다가오는 여자들 많았다.

    그런 모습을 보며 한편으로 부럽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저렇게 사는 것도 다른 의미로 피곤한 느낌이었다.

    물론 그 인간이야 그런 관심에 익숙해서 그런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고.

    오히려 모르는 사람들과도 친해지는 것을 즐기는 타입이긴 하지만.

    아무튼, 30살인데도 동안이라 한국에서도 잡지모델 요청을 요즘도 종종 받는다고 들었다.

    실제로 예전에 어떤 패션잡지에서 모델 생활도 했었다고 듣긴 했었다.

    잡지를 본 건 아니지만.

    지로와의 통화를 끝내자, 어시들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제임스 오빠가 일본 간 거예요?”

    “네. 그렇다고 하네요. 오늘 공연보고 저녁에 돌아온다는 모양입니다.”

    “와, 그 오빠는 또 언제 거기 갔대?”

    “어쩐지 요즘 며칠 동안 안 온다 싶더라니.”

    “아, 부럽다.”

    *

    무도관의 공연은 꽤 엄청났던 모양이었다.

    특별히 이대봉의 말이 아니더라도, 실제로 일본에서 소포로 온 비디오를 통해 공연을 직접 봤는데, 관객들의 반응도 엄청 좋았다.

    공연을 하던 배우들의 연기력도 좋았고, 무엇보다 야외공연과는 비교할 수 없는 스케일의 무대도 대단했다.

    간간히 주제가를 부르는 몽의 노래도 상당히 좋았고.

    아무튼 그 공연이 시작되고 나서 머신건 잭의 단행본 판매량도 부쩍 늘었다고 들었다.

    그래서 결국 공연이 끝나고 난 뒤 추가로 50만부 정도가 더 판매되었다고 한다.

    그로써 최종 결과는 총 200만부가 팔린 것이다.

    비록 230만부 초판판매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연장공연이 시작되면 또 더 팔리게 될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지금은 이정도 결과가 나왔고, 이것은 정말 예상치 못한 대단한 것이었다.

    물론 이 결과에 만족하지 못한 사람은 있다.

    바로 이즈미였다.

    그녀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실망했나요?

    실망?

    그럴 리가.

    “아뇨. 오히려 이것도 기적 같은 일이라.”

    -전 실망이에요. 충분히 250만부 정도는 될 거라 생각했는데. 역시 홍보와 이벤트가 부족했어요.

    250만부?

    너무 나갔구만.

    그래도 뭐 이즈미니까.

    “그것들은 부족하지 않았어요.”

    -그럼 뭐가 부족했죠?

    “부족한 건 저였습니다. 선희는 충분히 역할을 하고 남았고요.”

    갑자기 전화기 너머에서 말이 없다.

    내 말이 의외였던 모양이다.

    “아무튼 저의 엉뚱한 대답 때문에 이렇게까지 노력해 주신 건 고맙습니다.”

    -만화왕 말인가요?

    “아, 그 말은 흑역사라서.”

    -흑역사······, 그게 뭐죠?

    “않좋은 과거, 정도로 해석하시면 될겁니다.”

    -아. 그렇군요.

    그렇게 말하더니 잠시 뜸을 들이고는 다시 말했다.

    -어쨌건, 고마워 할 필요는 없어요. 그런 말 듣자고 한 것도 아니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 거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쯤은.”

    -신경 쓰지 않는 건 아니······. 아무튼, 다음엔 정말로 230만부 이상을 팔 이벤트를 준비해보죠.

    “아닙니다. 이젠 그만 두세요.”

    -네? 왜요?

    “그런 것에 의존해서 기록을 세우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이래서야 제대로 된 기록이라고 할 수도 없고요.”

    -방법 따윈 상관없지 않나요? 기록만 세우면 되는 거 아닌가?

    “······.”

    -만화왕이 되고 싶다면서요.

    아, 진짜 만화왕이라는 말을 괜히 해가지곤.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물론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하기 싫습니다.”

    내 이즈미가 잠시 조용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역시 당신은 고지식한 사람이네요.

    “별로 그런 건······.”

    -뭐, 본인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뭐 어쩔 수 없죠. 다음엔 혼자 힘으로 해보세요.

    그렇게 말하더니 전화기를 뚝 끊어버렸다.

    진짜 이 여자는 언제나 제멋대로다.

    그보다 좀 이상하다.

    분명 목소리 자체는 별로 기분 상한 것 같이 들리진 않았는데.

    그렇게 생각하다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알게 뭐야.

    그 여자 생각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 그냥 넘기자.

    * * *

    나카야그룹의 임원회의실.

    그룹의 사장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이번 나카야그룹에서 벌인 일들 때문에 불만이 많았다.

    “이럴 수가 있습니까? 아무리 회장님의 따님이라도, 이렇게 그룹의 돈을 그렇게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맞습니다. 조그마한 출판사, 거기에 연재되는 만화책 따위를 더 팔자고 그렇게 일을 크게 벌이다니, 미친 거 아닙니까?”

    “평소에도 회사 일에 이리저리 간섭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사장 중 한명이 입을 열었다.

    “그래도 이즈미 아가씨가 벌인 부동산사업으로 벌어들인 돈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거야 그렇지만, 요즘 부동산이야 사놓기만 하면 돈이 되는 거 아닙니까? 새우로 도미를 낚는 시대잖아요.”

    “맞아요. 거기다 요즘엔 부동산을 하나, 둘 처분하기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돈으로 미국 회사들을 사들인다고 하던데. 오히려 일본부동산 쪽이 더 괜찮잖아요. 그런데도 계속 팔아서 그룹 내에서 말도 많고.”

    “예전에 아가씨가 부동산을 사들일 때도 반대했잖아요.”

    “그거야······.”

    “지금 얘기를 하고 있잖아요. 왜 과거 얘기를 합니까?”

    “나중에 또 딴 소리 할 거 같은데.”

    “딴소리라니! 절대······.”

    그렇게 말하던 사람이 멈칫했다.

    방금 음성은 분명 익숙한 젊은 여자의 것이었으니까.

    놀란 사람들이 소리가 난 쪽으로 돌아봤다.

    언제 들어왔는지 이즈미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화들짝 놀란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그녀에게 목례를 했다.

    그런 사람들을 쭉 돌아본 이즈미가 또각또각 구둣발소리를 내며 중앙에 있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모두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사람들이 그녀의 눈치를 보며 자리에 앉았다.

    그것을 확인한 이즈미가 다리를 꼬고는 느긋하게 의자 등받이에 몸을 파묻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사람들이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그들 중 한명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늘은 어쩐 일로······.”

    “어머, 내가 오면 안 되는 자리였어요?”

    그 말에 놀란 사람들이 황급히 손을 휘저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가씨가 오면 안 되는 곳이 이 그룹 내에 있을 리가 없지요.”

    “맞습니다. 이보시오, 미즈타니 사장! 왜 아가씨께 실례되는 말을 하는 거요.”

    “아, 제가 말실수를 했습니다.”

    “어머, 아니에요. 뭐 제가 갈 수 없는 곳이 없는 건 아니잖아요. 가령, 남자화장실이라든가.”

    그렇게 말하며 혼자 웃는다.

    그 모습을 보던 사람들이 이즈미의 눈치를 보며 억지로 웃기 시작했다.

    그녀의 농담은 언제 들어도 재미가 없다.

    하지만, 재미없다고 말할 담력을 가진 인간이 여기에 있을 리 없다.

    누구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직접 나서서 달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나저나, 도대체 이렇게들 모이셔서 무슨 얘기를 하셨을까?”

    그녀의 말에 실내의 웃음소리가 뚝 끊어졌다.

    그리고 모두가 눈알을 데굴거리며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설마, 제 얘기 한 거예요?”

    “아, 아닙니다. 최근 그룹 확장에 대한 얘기로 모여 회의를 한 겁니다.”

    “맞습니다. 요즘 아가씨 덕분에 회사도 많이 커져서 어떻게 하면 그룹을 좀 더 안정시킬까 고민 중이랍니다.”

    “그래요?”

    “그럼요.”

    “맞습니다.”

    “당연합니다.”

    사람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그런 그들을 보던 이즈미가 곧 머리를 끄덕였다.

    “스페인에 가신 아빠가 들으시면 기뻐하실 거예요.”

    그렇게 말하자 모두 안심한 얼굴로 티가 나지 않게 한숨을 쉬었다.

    “아참, 이번에 한 광고들 말이에요.”

    “아, 그건 괜찮습니다. 이번의 손해쯤은 뭐······.”

    “손해라니, 무슨 손해요?”

    “네? 그야 TV광고와 무도관 공연······.”

    그 말에 이즈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확실해요?”

    “네? 뭐가 말입니까?”

    “방금 말씀하신 거요. 광고랑 공연.”

    “그야 당연히······.”

    임원중 한명이 대답하려하자 이즈미가 인상을 쓰더니 문 앞에 서 있는 노인을 불렀다.

    “구로다.”

    “네, 아가씨.”

    그렇게 대답한 노인이 문을 열었다.

    그러자 밖에 대기하고 있던 직원이 쭈뼛거리며 안으로 들어왔다.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의 직위에 기가 눌린 남자가 들어오며 어깨를 잔뜩 움츠렸다.

    그런 그에게 이즈미가 말했다.

    “아까 그거 다시 말해보세요.”

    “아, 네. 알겠습니다.”

    머리를 숙이며 대답한 직원이 이어서 입을 열었다.

    “이번 머신건 잭의 홍보로 인해 관련 제품들의 판매량이 증가했습니다.”

    “그리고요?”

    “그리고 공연으로 인한 수익과 이로 인한 홍보로 회사브랜드 이미지 순위가 두 계단 상승했습니다.”

    그 말에 회의실에 있던 임원들이 깜짝 놀라더니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조용.”

    이즈미의 말에 다시 실내가 조용해지자 머리를 끄덕인 이즈미가 직원에게 더해보라며 손짓했다.

    “특히 TV쪽 반응이 상당히 좋아서, 차후에도 만화캐릭터를 이용한 광고를 더 늘리는 것을 홍보팀에서도 추천하고 있습니다.”

    “좋아요. 그럼 나가보세요.”

    “네.”

    직원이 머리를 넙죽 숙이며 인사를 하고 난 뒤 밖으로 나가자 놀란 임원들이 모두 이즈미를 돌아봤다.

    그러자 그런 그들의 모습에 만족한 표정을 지은 이즈미가 팔짱을 끼며 히죽 웃었다.

    그런 그녀에게 임원 중 한명이 물었다.

    “그럼 앞으로 더 광고를 늘릴 계획이신가요?”

    그 말에 다른 임원이 끼어들었다.

    “당연하지 않소. 이렇게 효과가 큰다고 하는데.”

    “맞아요. 구체적인 성과는 따로 보고받아봐야 알겠지만, 어쨌거나 광고효과가 있다면 안할 이유가 없지.”

    “당연하지요.”

    그렇게 임원들이 떠들기 시작하자 이즈미가 테이블을 탁 하고 가볍게 내리쳤다. 그러자 다시 실내가 조용해졌다.

    잠시 사람들을 쭉 돌아보던 이즈미가 입을 열었다.

    “이젠 더 이상 안 해요.”

    그 말에 사람들이 다른 의미로 놀랐다.

    “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갑자기 왜?”

    다시 탁하고 내려치자 모두 입을 다물었다.

    이즈미가 다시 말했다.

    “그냥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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