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402화 (402/425)
  • 만화왕 (7)

    “몰랐습니다.”

    지로가 대답하자 편집장이 머리를 갸웃거렸다.

    “나카야그룹 홍보팀이 알려줬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처음 듣는 얘깁니다. 그나저나 설마 그 야외공연, 나카야그룹에서 만든 겁니까?”

    지로의 말에 편집장이 피식 웃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만든 건 토에이지. 지금 가면라이더 블랙의 후속편이 방영중이잖아. 그거 만든 곳.”

    “아. 거기요.”

    “토에이에 대해서 알아?”

    “토에이 쪽이면 횡포가 심하다고 들었는데.”

    지로의 말에 편집장이 피식 웃었다.

    “그건 애니메이션 쪽이고. 이건 특촬 쪽이잖아.”

    “아.”

    지로가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고는 다시 물었다.

    “그럼 공연은 어디서 하는데요?”

    “내일 우에노 공원에서 한다고 하던데.”

    그 말에 지로가 깜짝 놀랐다.

    “내일요? 그렇게 빨리 말입니까?”

    “그래. 자세한 건 여기로 전화를 걸어서 담당자에게 물어봐.”

    그렇게 말한 편집장이 자신의 지갑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 지로에게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든 지로가 곧장 자신의 자리로 가서 전화기를 들었다.

    * * *

    -우에노 공원에서 오늘부터 일주일간 매일 2차례 공연을 한 뒤, 무도관에서 대규모 세트를 지어 3일 동안 열린다고 합니다.

    지로의 말에 놀라 반사적으로 입이 벌어졌다.

    개인적으로 특촬 공연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소규모에 어린이들 앞에서 각양각색의 쫄쫄이를 입은 남녀들이 괴물 탈을 쓴 악당들과 과한 동작으로 싸우는 장면이 떠오른다.

    대부분 어린 아이들만 좋아하는 그런 거.

    주변은 아이랑 엄마 소리에 분주한 분위기.

    그런데 머신건 잭으로 그런 특촬 공연을?

    그것도 대규모 콘서트나 스포츠 행사가 열리는 무도관에서?

    “특촬공연을 무도관에서 열어요?”

    -저도 그 때문에 놀라기는 했습니다만, 한편으로는 나카야그룹의 능력에 상당히 놀랐습니다. 역시 돈 많은 대기업이 나서면 안 되는 일이 없구나하고요.

    지로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솔직히 내가 걱정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인생 최대의 흑역사가 탄생되지나 않을까싶어서다.

    하지만 이미 결정된 일이니.

    한숨을 쉬고 난 뒤 지로에게 물었다.

    “오늘 공연이 있었다고 했죠?”

    -네. 그렇습니다. 안 그래도 직접 보고 오는 길입니다.

    “보셨어요?”

    -네.

    두근두근.

    내가 만든 것도 아닌데 괜히 긴장돼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공연은 어땠습니까? 괜찮았어요?”

    -네. 의외로 꽤 괜찮은 공연이었습니다. 세트는 조촐했습니다만, 복장이 꽤 정밀하고, 등장했던 배우들의 연기가 좋았습니다.

    다행이다.

    그래도 재미있었다니.

    그나저나 내가 왜 이런 걸로 긴장해야 하는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 아, 그리고 몽으로 등장한 여배우는 작년에 아이돌로 데뷔한 신인가수라고 들었습니다.

    “아, 아이돌요?”

    -네. 이름이 뭐라더라. 잠시 만요.

    뭔가 뒤적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다시 지로의 말이 이어졌다.

    -아, 네. 이름은 사카이 노리코라고 하더군요.

    사카이 노리코?

    -저도 잘 몰라서 좀 알아봤는데, 요즘 꽤 인기를 얻고 있던 모양이더군요. 방송에도 조금씩 나오는 모양이고. 저는 뭐 아이돌이라면 마쯔다 세이코 밖에 몰라서. 아무튼, 팬도 꽤 많은 모양인지 공연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렸습니다.

    “톱을 노려라, 건버스터 주제가인 ‘액티브 하트’를 부른 그 사카이 노리코요?”

    내 질문에 지로가 깜짝 놀랐다.

    -며칠 전에 출시된 OVA 작품인데. 역시 가이낙스에 아는 분이 계시다더니, 잘 알고 계시네요. 네, 말씀하신 바로 그 가수가 맞습니다. 저도 방금 안 사실인데.

    깜짝 놀랐다.

    내가 좋아하는 몇 안 되는 일본 가수중 하나인데.

    곧 시작될 90년대엔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게 될 것이다.

    물론 내가 살던 시절엔 이미 중년의 가수에다가 각종 사건으로 구설수에 오르긴 했지만.

    그래도 88년인 지금은 갓 데뷔한 상큼한 신인일 테고.

    “그런데 그분이 왜 몽으로······?”

    -소속사인 선뮤직 측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더군요. 머신건 잭의 팬인데, 사카이 씨가 몽 역할을 하고 싶어 했답니다.

    “······몽의 역할을요?”

    “네.”

    팬이었던 사카이 노리코가 몽의 역할이라니.

    아기자기한 복장을 한 아이돌 가수라······.

    뭔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그보다 뭐지?

    이정도면 엄청난 대규모 프로젝트일 텐데.

    돈은 또 얼마나 들어갔을지.

    아무리 거품이 끓어오르던 시대라고는 하지만 지나치게 과한 거 아닌가?

    -비디오 촬영 본은 오늘 중으로 한국에 도착할 겁니다. 물론 제가 찍은 건 아니고, 주최 측에서 따로 방송용으로 촬영한 겁니다.

    “방송으로 나가는 건가요?”

    -그런 모양입니다. 휴일 어린이 방송시간에 나간다고 들었습니다. 무도관에서 열리는 공연의 홍보차원으로요. 아, 무도관에서는 제대로 세트도 만들고, 캐릭터도 더 많이 등장한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에피소드에요?”

    설마 오리지널 스토리는 아니겠지.

    -최근 가장 인기 있었던 하이테커와 함께 맵을 공약하는 내용입니다. 감독은 가면라이더 시리즈에서 활동 중인 분이시고, 극본은 올 초까지 광전대 마스크맨을 쓰셨던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극본은 누군지 알만하다.

    이쪽 계통에서는 꽤 유명한 사람이니까.

    물론 나 같은 덕후들에게 말이다.

    -아, 그리고 무도관 공연 촬영 본도 전달받기로 했으니, 그것도 따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내가 만든 얘기라고는 하지만, 공연이 어떨지 너무 궁금하다.

    그렇다고 그걸 보려고 일본에 갈 생각은 없지만.

    그냥 비디오로 만족해야지.

    -어쨌건 이게 단행본 판매량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오늘 공연을 시작했으니 반응이 나오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말입니다.

    혹시나 해서 물었다.

    “이런 경우가 전에도 있었습니까?”

    -전혀요. 그래서 사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대놓고 머신건 잭만 너무 밀어주는 거 아니냐고.

    “그래서요?”

    -뭐, 대주주 개인능력으로 밀어주는 상황이니 그냥 뒷말만 나오고 말 뿐이죠. 하지만 시선이 좋지 않은 건 뭐 여전하고요.

    대주주의 개인능력이 지나치게 좋으니 문제지.

    한숨을 푹 쉬며 어색하게 웃고는 입을 열었다.

    “저 때문에 고생이 많으시네요.”

    -고생은요. 이 만큼 주목을 받는 건 좋은 일이죠.

    그렇게 말하며 웃는다.

    말은 저렇게 해도 꽤 스트레스는 받을 텐데.

    이즈미가 나름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건 고마운 일이지만,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반사적으로 대답한 말이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만화왕이 되겠다는 뜻은 아니었으니까.

    그런 거야 어찌되었건.

    참신한 홍보방법이라 감탄스럽기는 하다.

    지로와 통화를 끝내고난 늦은 오후.

    키도에게서도 전화가 왔다.

    꽤 흥분한 음성이었다.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무슨 짓이라니?”

    -그 여자 말이야. 나카야 이즈미. 둘 사이에 무슨 일 있었어?

    이 양반이 갑자기 왜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

    “뭔 헛소리야.”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짓을 벌여? 이거 다 너 좋으라고 하는 짓 같은데.

    “출판사 대주주잖아, 대주주. 본인 자존심 때문에 그런 모양이지.”

    -야, 아무리 자존심 때문이라도 보통은 이런 짓, 못하지. 돈이 천문학적으로 들어갈 텐데.

    “보통이라면 그렇겠지.”

    내 말에 전화기 너머에서 소리가 뚝 끊어졌다.

    그리고는 곧 화통하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핫! 그래, 네 말이 맞아. 그 여자가 일반적인 사람은 아니지. 돈도 뭐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번다는 소문이 있으니. 요즘 나카야그룹이 잘나가잖아.

    “그러니까.”

    -그래도 늘 네게 으르렁거리던 여자가 이런 식으로 너무 밀어주니까 이상하긴 하다.

    “난 오히려 무서워. 그렇게 밀어주다가 절벽으로 떨어뜨릴까봐.”

    키도의 말에 내가 농담처럼 말했다. 그런데 이게 또 키도에겐 아닌 모양이었다.

    -아. 역시 그런 속셈인가? 뭔가 와 닿는데?

    “와 닿는다고?”

    -그래. 야외공연이 꽤 재미있었거든. 솔직히 난 애들이 보는 유치한 전대물 공연이랑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의외였어. 원작의 느낌을 상당히 잘 살려서 놀랐다. 아무튼 그 정도라면 만화책 판매에도 엄청 도움이 될 거야. 그런 도움이라면 무서울 만 하지.

    “공연을 봤어?”

    -봤지. 니시다랑.

    “니시다 선생님이랑?”

    -그래. 공연까지 볼 생각은 없었는데, 사실 억지로 끌려간 거였거든. 어찌나 같이 가자고 노래를 부르던지. 그 때문에 화실 애들까지 같이 갔다. 니시다 애들이랑도.

    단체관람을 한 모양이군.

    -그나저나 몽 역할을 맡은 여자배우는 엄청 귀엽더라. 마지막엔 노래도 부르던데, 엄청 목소리 좋았어.

    “아이돌 가수잖아. 사카이 노리코.”

    -응? 걔, 아이돌이었냐?

    “어. 요즘 일본에서 뜨고 있는 가수.”

    -이름이 뭐라고?

    “사카이 노리코.”

    -사카이 노리코라······.

    “설마 적고 있냐?”

    -응? 아, 아니.

    아니긴 맞구만.

    -그나저나 넌 그걸 어떻게 알았냐? 혹시 네가 따로 부탁한 사람?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무슨 능력으로. 나도 아카기 씨에게 듣고 깜짝 놀랐는데.”

    -뭔 소리야? 너 정도면 배역정도는 부탁해도 되는데.

    “그래?”

    -잘은 모르지만.

    “······.”

    그런데 갑자기 키도의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왜 그래?”

    -아쉬워서 그러지. 진작 알았으면 사인이라도 받아뒀을 거니까. 아, 니시다는 내일도 보러 갈 거라니까 그때 받아달라고 할까?

    “내일도?”

    -그래. 그 친구 너희들 팬이잖아. 그것도 광팬.

    그렇게 말하며 낄낄거렸다.

    -그나저나 이번 공연 때문에 그런지 머신건 잭이 달라 보이더라. 실제로 배우들이 연기하는 걸 보니까 뭔가 더 재밌는 것 같고.

    “형 만화도 영화 상영했잖아.”

    -젠장, 그 얘기는 하지마라. 속 쓰리니까.

    하긴, 제대로 영화가 망했으니.

    뭐 저예산 영화라서 아무도 기대를 안했다고 듣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도 너무 억지 같은 오버가 난무해서, 보는 게 쉽지 않기도 했었다.

    -아무튼, 공연분위기도 좋아서 뭔가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긴 하더라.

    “좋은 결과?”

    -그래. 기대해도 좋을 것 같은 기분.

    “······.”

    -그럼 다음에 다시 통화하자고.

    키도와의 통화를 끝내고 난 뒤 늦은 오후에 일본에서 소포가 도착했다.

    지로가 말했던 바로 그 야외공연 영상이었다.

    화실 식구들이 모두 영상을 보기위해 모였다.

    그리고 영상이 시작되고 곧 어시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엄청, 잘 만들었는데요?”

    “이거 실제로 보면 더 재밌겠어요.”

    “우리 만화가 이렇게 공연되니까 기분이 이상하네.”

    “잭 역할 맡은 사람은 좀 아쉽다. 차라리 실버오빠가 더 어울릴 것 같은데.”

    “당연하지, 애초에 실버오빠가 모델이었는데.”

    “맞아요.”

    그런 반응에 실버가 인상을 썼다.

    “모두 입 다물어.”

    “넵.”

    *

    키도의 말 대로였다.

    공원에서 열린 일주일간의 공연은 굉장한 관심을 받았다고 한다.

    거기다 TV용 홍보영상도 반응이 좋아서 그런지, 무도관에서 열린 실내공연표가 삽시간에 매진을 했단다. 일주일치 표까지 몽땅.

    암표가 성행할 정도였다고 하는데.

    그리고 3일째인 지금은 그 인기가 엄청나서 연장공연 얘기까지 나온다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공연으로서는 대성공을 이룬 셈이다.

    그런데 어째 주객이 전도된 것 같은 이 느낌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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