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98화 (398/425)

만화왕 (3)

키도의 화실.

“뭐? 진짜?”

“네. 그렇게 결정이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테고시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하자 키도가 큰 소리로 웃었다.

“진짜 대단하구만. 230만부라니. 역시 내 동생들이라니까. 100만부 넘긴지 얼마나 되었다고.”

하지만 니시다는 한참을 웃고 있는 키도를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곧 마른 입술을 핥더니 팔짱을 끼며 생각에 잠겼다.

그 모습을 본 키도가 자신 앞에 있는 차를 홀짝거리며 니시다에게 말했다.

“자네는 또 왜, 그렇게 심각해? 문제 있어?”

“키도 선생님은 왜 그렇게 웃으신 겁니까?”

“나야 당연히 기분 좋아서지. 230만부면 기록이잖아, 기록. 독주하는 소년점프의 작품들에게 한방 먹일 수 있으니까.”

“한방이요? 이게 무슨 스포츠도 아니고.”

그 말에 키도가 눈살을 찌푸렸다.

“왜 그렇게 심술이야. 같은 잡지에서 연재하는 만화가라면 응원할 줄도 알아야지. 그리고 평소엔 써니 팬이라고 그렇게 떠들더니. 역시 말뿐이었어?”

그 말에 니시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팬 맞습니다. 그리고 텐겐 선생님도 존경하고요.”

“그런데 뭐가 문젠데?”

“냉정하게 생각해보며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니까요.”

“냉정?”

키도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자, 니시다가 한숨을 푹 쉬더니 곧장 물었다.

“키도 선생님은 230만부가 현실적이라 생각하세요?”

“그야······.”

멈칫한 키도가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230만부가 어떤 의미인지 생각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단행본 초판 신기록 정도지만, 한편으로는 그게 얼마나 엄청난 양인지도 알고 있었으니까.

“······.”

키도는 갑자기 복잡해진 표정으로 눈알을 데굴거리기만 했다.

그 모습을 보던 니시다가 코를 슥슥 문지르며 소파의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거 보세요. 키도 선생님도 쉽게 대답 못하시잖아요.”

“나야, 출판사 사람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정확한 건 모르는 게 당연하지.”

“아니, 그건 출판사 직원이 아니라도 알 만한 일이죠. 앞전에 120만부를 찍었던 책을 느닷없이 두 배 가까이 올린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

“거기다 방금 들었잖아요. 그거 주도한 사람이 나카야 씨라고. 맞죠?”

니시다가 그렇게 말하며 테고시를 돌아봤다.

그러자 눈알을 굴리며 두 사람의 대화를 구경만 하던 테고시가 화들짝 놀랐다.

“아, 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이상하다는 겁니다.”

“음······.”

니시다의 말에 키도가 납득한 얼굴로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자네는 그 여자가 무슨 잔꾀를 부린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건 모르지만, 평소 그 여자가 써니 선생님이나 텐겐 선생님께 하는 짓을 보면 의도가 불순한건 아닌가 싶어서요.”

“불순?”

“네.”

“그래도 이젠 미쯔다쇼텐의 대주주라며. 아무리 미친 여자라고 해도 설마 그런 짓이야 하겠어?”

“평소 모습을 보셨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세요?”

“······.”

“그리고 그 여자가 나카야 그룹 회장의 외동딸이에요. 미쯔다쇼텐의 주식쯤이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일겁니다.”

“에이, 그건 아니지. 지금 미쯔다쇼텐이 얼마나 컸는데. 그렇지 테고시?”

키도의 물음에 테고시가 머리를 끄덕였다.

“아, 네. 몇 년 동안 10배 이상 성장했다고 들었습니다.”

“거봐. 이젠 미쯔다쇼텐도 작은 출판사가 아니라고.”

그러자 니시다가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며 키도가 인상을 썼다.

“왜 웃어?”

“웃기니까요.”

“뭐가 웃겨.”

“나카야그룹에서 부동산으로 번 돈이 천문학적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사람들 요즘엔 미국에 있는 부동산이랑 건물까지 엄청나게 사들인다고 합니다. 그런 그들에게 미쯔다쇼텐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니, 관심도 없을 걸요?”

그 말에 키도가 입을 떡 벌렸다.

“그, 그 정도야?”

“네.”

“어쩐지 요즘 들어 그 회사 광고가 많아졌다싶더라니.”

“얼마 전엔 반도체회사도 인수했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자동차 회사도 인수할 거라는 얘기도 있고.”

“자네는 나카야그룹에 관심이 왜 그렇게 많아?”

“원래 경제 쪽에도 관심이 많아요. 그리고 나카야그룹은 요즘 가장 잘 나가서 특히 잘 알고요.”

그 말에 니시다를 빤히 쳐다보던 키도가 혼자 중얼거렸다.

“SF 만화가라서 UFO, 미스터리 같은 책만 볼 줄 알았더니.”

“네?”

“아무것도 아니야.”

“······.”

“그나저나 크으음.”

키도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양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아무튼 그 여자가 이번엔 제대로 미친 짓을 하고 있다 생각한다는 거지? 자네는.”

“그렇게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의심된다는 겁니다.”

“흐음.”

그렇게 두 사람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키도부인이 케이크 조각을 들고 다가왔다.

“이번에 새로 만든 케이크랍니다. 맛보세요.”

그렇게 말하며 세 사람 앞에 알록달록한 색깔의 케이크 조각이 담긴 접시를 내려놨다.

한눈에 봐도 먹음직스러운 탓에 저절로 군침이 돌 정도다.

거기다 맛이라면 이미 보장되어있는 키도부인의 솜씨면 말할 필요도 없으니.

“아, 고맙습니다, 사모님.”

“고맙습니다.”

니시다와 테고시가 인사를 하며 케이크 조각을 한 스푼 떠서 입안에 넣었다. 그리고는 곧 표정이 밝아지며 감탄했다.

“정말 맛있습니다.”

“이렇게 맛있는 케이크는 처음 먹어봐요.”

“말씀만이라도 감사해요.”

그렇게 말하며 웃던 키도부인이 갑자기 뭔가 떠올린 표정을 지었다.

“아참, 그리고 아까 말씀하시던 거 말인데요.”

“네?”

“······?”

“무슨 말을 말하는 거요?”

“나카야 씨 말이에요.”

“나카야?”

“네.”

“그 여자가 왜?”

“표현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만큼 악랄한 사람은 아니랍니다.”

그렇게 말하더니 평소처럼 환한 미소를 지으며 부엌으로 성큼성큼 걸으며 돌아갔다.

세 사람은 그 모습을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다 서로를 돌아봤다.

*

미쯔다쇼텐 출판사 빌딩 2층.

격주간 소년지인 스피릿 히어로의 편집부가 있는 곳이다.

한창 바쁠 오전 시간임에도 몇몇 직원들이 모여 수군거리고 있었다.

“얘기 들었어?”

“뭔 얘기?”

“이번에 머신건 잭 9권말이야.”

“그게 왜?”

“발행일이 미뤄졌다는 거.”

그 말에 듣고 있던 직원이 실망했다.

“에이, 난 또 뭔 큰일이라도 있는 줄 알았네.”

“야, 큰일 맞아.”

“머신건 잭이 요즘 인기가 많은 건 알지만, 발행일이 며칠 미뤄졌다는 게 그렇게 큰일은 아니지.”

“뭐라는 거야? 머신건 잭 발행일이 어쩔 수 없이 늦춰진 건데.”

“인쇄 공장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 모양이지.”

“그게 아니야.”

“그게 아니면.”

“소년 히어로에 있는 동기 녀석에게 들었는데, 이번에 머신건 잭 9권은 초판이 200만부를 넘을 거라고 하더라고.”

“뭐?”

이야기를 듣던 직원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요즘 머신건 잭이 잘 나간다는 건 바보도 아는 얘기지만, 그래도 200만부는 말도 안 되지. 8권이 100만부 겨우 넘겼는데.”

“120만부죠.”

후배 직원 하나가 슬쩍 끼어들자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120만부. 그런데 200만부를 넘겨? 소년 히어로가 제일 잘나가긴 하지만, 허풍도 적당히 쳐야지.”

그 말에 다른 직원들도 동의한다는 듯 입을 열었다.

“맞아. 머신건 잭이 200만부를 찍을 정도는 아니지.”

하지만 의견이 다른 직원들도 있다.

“요즘 머신건 잭의 분위기 몰라? 저번 달이랑 완전히 달라. 거기다 다른 만화들도 지금 난리잖아. 특히 진심의 남자랑 에스퍼 존도 판매량이 늘었고.”

“나도 처음엔 뭔 헛소린가 했는데, 다른 부서에서도 그 얘기가 조금씩 돌고 있는 모양이더라고.”

“드래곤 수프도 초반보단 좀 인기가 떨어지긴 했어도 단행본 판매량은 오히려 늘었다고 들었어.”

“그래도 200만부는 아니지. 150만부라고 해도 좀 그런데.”

그때 다른 직원이 그 무리에 다가오며 말했다.

“200만부가 아니라고 하더라.”

“아니라고?”

“역시 헛소문이었나 보다.”

“그럼 그렇지.”

그렇게 납득한 사람들이 머리를 끄덕였다.

“200만부가 아니라, 230만부래.”

“뭐?”

“말도 안 돼!”

모두가 경악했다.

그런데 그때 다른 직원 한명이 무리로 달려와서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모두 들었어요?”

“뭘 들어?”

“방금 나카야그룹에서 사람들이 잔뜩 왔다고 하던데요.”

“나카야그룹 사람들?”

“진짜?”

“그 양반들이 왜?”

“모르지. 아무튼, 그쪽 사람들이 엄청 와서 각부서 책임자들이 모두 불려갔다고 하더라고요.”

“무슨 일이래?”

“그거야 모르지.”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

며칠 후.

다시 키도의 화실.

늦게야 잠에서 깬 키도가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모처럼 만난 고등학교 동창들과 술을 마시느라 늦게 들어온 탓이다.

머리를 깨질 것 같아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앉아 있는데, 그때 방으로 키도부인이 들어왔다.

“키도 씨. 이제 일어나셨어요?”

“아, 그렇소. 내가 늦잠을 잤구만.”

“여기 이거 드세요.”

키도부인이 그릇을 내밀자, 그것을 보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뭐요?”

“해장국이요. 전에 한국에서 배운 거예요.”

“오, 그래?”

그렇게 말하며 호기심어린 표정을 지었다가 쭉 들이켰다.

그리고는 캬아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를 끄덕였다.

“역시 좋구만. 속이 풀리는 기분이야.”

“따뜻한 물 받아놨어요.”

“어, 그래. 고맙소.”

키도부인이 방을 나가자 잠시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키도가 일어나서는 방을 나섰다.

그리고는 화장실로 들어가려다가 화실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었다.

“······왜 이렇게 시끄러워?”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화장실에 들어갔다.

한참 후 화장실에서 나왔는데도 계속 떠드는 소리가 들려오자, 한쪽 눈을 찌푸리며 화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떠들던 어시들이 멈칫했다.

어시들이 키도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이제 일어나신 거예요?”

어시들의 인사를 받은 키도가 머리를 끄덕이고는 아직 덜 깬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왜 이렇게 시끄러워? 뭔 일 있어?”

어시 중 한명이 키도에게 말했다.

“저기 선생님 어제 혹시 TV보셨어요?”

“TV? 요즘 TV 안 본지 꽤 됐는데. 무슨 뉴스 있었어? 연예인 스캔들?”

“그건 아니고요. 광고요.”

“광고? 갑자기 광고는 왜?”

“나카야그룹 광고요.”

그 말을 들은 키도가 머리를 벅벅 긁더니 곧 떠오른 표정이 되었다.

“나카야그룹? 그 여자 아버지가 운영한다는 회사?”

“네.”

“갑자기 거기 광고는 왜? 뭐 광고에 문제라도 있어?”

“이상해서요.”

“그 여자처럼?”

그렇게 말하며 혼자 낄낄거리며 웃었다.

얼마 전에 할리우드 스타가 출연한 정신 나간 것 같은 내용의 광고까지 떠오른다.

어쩌면 그런 광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혼자 낄낄거리는 키도를 묘한 표정으로 보던 어시가 입을 열었다.

“그게요, 거기 광고들이 모두 다 바뀌었어요.”

“한꺼번에? 걔네들 니시다 말대로 돈 엄청 많나보다.”

그렇게 말하며 다시 낄낄거렸다.

“그냥 바뀐 정도가 아니고요. 바뀐 광고에 모두 머신건 잭이 나오던데요?”

그 말에 낄낄거리던 키도가 멈칫했다.

그리고 황당한 얼굴로 변했다.

“뭐가 나와?”

“머신건 잭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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