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왕 (2)
이즈미에게 전화를 걸어서, 도대체 왜 그런 제안이 오고 갔는지를 물었더니, 대뜸 이렇게 말했다.
-꿈이 만화왕이라면서요.
“그거야······.”
-본인이 그렇게 대답했으면서, 왜 갑자기 그렇게 소극적이에요?
“소극적이라니. 이쯤 되면 거의 도박판인데.”
-저는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네?”
-가능하다고요.
근거 없는 자신감에 할 말이 없어졌다.
-그리고 제 의견에 30만부를 더 한 사람은 사장님이에요. 그건 들었어요?
“네, 들었습니다. 도대체 그 분은 또 왜 그러셨는지.”
-뭐, 거기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판단을 한 거라고 생각하는데.
“······.”
-요즘 초판 100만부 정도는 꽤 많은 작가들이 달성해서 230만부 정도는 도전해 볼만해요.
이즈미의 말대로다.
실제로 닥터슬럼프 220만부가 1위라는 사실은 내가 알던 예전의 기억과 다를 바가 없지만, 100만부가 넘는 책이 많아졌다는 건 달라진 사실이다.
세인트세이야도 원래라면 100만부 정도였는데, 150만부를 넘겼고, 북두의권도 비슷한 성적이 나왔으니까.
드래곤볼도 원래보다 몇 십 만부 더 높은 상황이다.
그러니까, 원래 이 시절의 만화산업보다 규모가 더 커진 것이다.
그래도 230만부는 너무했다.
“그러다가 엄청난 재고를 떠안으면 어쩌려고요.”
-그건 회사가 감당할 일이지, 만화가가 걱정할 부분은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걱정은 되죠. 출판사에 타격을 줄지도 모르니까.”
그 말에 전화기 너머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왜 웃습니까?”
-아니에요. 그냥.
그렇게 말하더니 곧 웃음소리가 끊어졌다. 그리고는 잠시 동안 아무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여보세요?”
전화기가 끊어졌나 싶어서 말했더니 곧장 대답이 들려왔다.
-아, 뭐 좀 생각하느라.
“뭘 말입니까?”
-뭔가 재미있는 게 떠올라서.
이 와중에 뭐라는 거야?
-뭔지 궁금하지 않아요?
“별로······.”
또 엉뚱한 소리를 할 것 같아서 별로 알고 싶지 않다.
아무튼 내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는 곧 이즈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뭐, 어쨌든 좋아요. 그나저나 재미있네요.
“재미요?”
-그래요. 재미.
또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생각하니까, 어쩐지 인생은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난 좀 무섭다.
이 여자의 행동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어서.
-아무튼, 당신은 좀 더 재미있는 만화를 만들도록 하세요. 초판 판매는 출판사에 맡기고.
“······.”
-아, 써니 선생님한테도 전해 주세요.
“써니요?”
-네. 좀 더 분발해 달라고.
“분발······.”
-그럼 끊어요.
그렇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
끊어진 전화기를 내려다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분발이라니.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선희에게 할 말은 아니다.
너무 의욕이 넘치는 애라서, 이런 말을 함부로 던지면 곤란하니까.
그런데······.
“······내 얘기야?”
갑자기 선희 소리에 깜짝 놀랐다.
“어? 왔냐?”
학교를 마치고 바로 온 모양이다.
“누구?”
“아, 나카야 씨.”
“······?”
“별거 아니야.”
“분발이라고 들었는데.”
거기까지 들어버렸냐?
“부족한가?”
“부족하지 않아. 절대로.”
“······.”
“그 여자 말에 신경 쓰지 마.”
내 말에 선희는 별다른 반응 없이 가볍게 말했다.
“안 써.”
“그, 그랬냐?”
“오빠는?”
“응? 뭐?”
“오빠는 어떻게 생각해? 나 더 분발할까?”
그 말에 내가 피식 웃었다.
“오히려 힘을 좀 빼고 가볍게 그렸으면 좋겠다.”
“가볍게······.”
“그래. 가볍게.”
그 말에 잠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더니 곧 머리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렇게 말하고는 곧장 자신의 책상 쪽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안도했다.
휴.
그런데 그때 마당에서 놀던 아이들의 깔깔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시선을 바깥으로 돌렸다.
아홉 살짜리 준모랑, 열한 살의 미령이가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고 있다.
녀석들은 정미자의 주변에서 놀고 있다.
정확히는 정미자가 안고 있는 아기의 주변이다.
조은별.
이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은별이를 안고 정미자가 남편을 찾아온 것이다.
덕분에 실버는 아까부터 계속 바깥만 신경 쓰고 있다.
아빠 미소를 지으며.
그런 실버의 표정을 보며 어시들이 킥킥거리며 웃고 있다.
“실버오빠, 그렇게 좋아?”
“입 꼬리가 귀에 걸렸네.”
여자 어시들의 놀림에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곧 다시 작업에 몰두했다.
그때 대문이 열리며 이대봉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대봉은 마당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랑 장난을 치다가 정미자가 안고 있는 아기를 보면서도 요상한 표정을 지으며 놀아준다.
그러더니 곧 아기를 넘겨받고는 화실로 들어오며 말했다.
“걱정 많이 했는데, 다행이야.”
그 말에 실버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뭘 걱정해?”
“네 얼굴 많이 닮았다고 해서. 그런데 오히려 미자 씨를 더 닮은 것 같거든.”
“······뭐야?”
“나 우리 은별이 걱정 진짜 많이 했거든.”
“죽을래?”
“쟨, 진짜. 애기 앞에서 상스럽게.”
그 말에 흠칫한 실버가 헛기침을 다시 했다.
그리고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이번엔 날 때리려고? 은별이 앞에서?”
“헛소리 말고 이리 줘.”
그렇게 말하며 눈을 부라리자 움찔거리며 놀란 이대봉이 순순히 애기를 실버에게 넘겼다.
은별이를 건네받은 실버가 밖으로 나갔다.
“왜 나가?”
“시끄러.”
그렇게 말하며 밖으로 나가자, 그때 선희가 입을 열었다.
“여긴 먼지가 많아.”
“응? 뭐?”
“지우개, 스크린톤 가루······.”
“아.”
그제야 납득한 이대봉은 머리를 끄덕였다.
* * *
도쿄 시부야에 있는 거대한 30층 빌딩.
그곳 입구엔 ‘나카야 타워’라는 글자가 커다랗게 적혀있다.
그리고 그곳 가장 꼭대기 층의 회장실.
하얀 머리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노인이 소파의 중앙자리에 앉아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뭐? 만화로 광고를 찍고 싶어?”
그런 그의 질문에 맞은편에 앉아있던 젊은 여자가 머리를 끄덕였다.
“네. 되도록 많이요.”
그녀는 이즈미였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앞에 있는 노인은 나카야 그룹의 회장이었다.
이즈미의 아버지다.
회장이 다시 물었다.
“하나가 아니고 많이?”
“네. 이왕이면 지금 제작중인 광고 모두요.”
“모두······.”
어이없는 말임에도 회장은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팔짱을 끼며 그저 머리를 끄덕일 뿐이었다.
평소 누군가 자신 앞에서 그런 말을 했다면 당장 불호령이 떨어졌을 어이없는 말이다.
그럼에도 오히려 그는 그저 기분이 좋아 보이는 표정으로 이즈미의 이야기를 들었다.
곧 회장은 뭔가 떠올랐는지 알겠다는 표정으로 이즈미에게 말했다.
“음, 그러니까 그게 네가 얼마 전에 주식을 매입한 출판사······, 이름이 뭐였지?”
“미쯔다쇼텐이요. 미쯔다쇼텐.”
이즈미가 콧잔등을 찌푸리며 말하자 노인이 어색하게 웃었다.
“아, 그렇지. 그래. 미쯔다쇼텐.”
“아빠는······.”
“미안하구나. 아빠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 잘 잊어버린단다.”
그 말을 임원들이 들었으면 경악했을 것이다.
회사 전체의 구석구석, 세세한 것까지 직접 챙길 정도로 철저한 그의 입에서 나올 얘기가 아니었으니까.
그런 회장이 자신의 딸 앞에서만은 그저 사람 좋은 노인의 모습으로 그저 웃고만 있으니, 회사 직원들 중 이런 모습을 본 사람은 몇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문 앞에 서 있는 이즈미의 비서 노인인 구로다를 포함해서.
“아무튼 그 출판사의 만화라는 거구나.”
회장의 말에 이즈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맞아요.”
“그래도 이왕이면 네가 그린 만화면 좋겠는데.”
“아빠, 그건 곤란해요.”
이즈미의 말에 회장이 다시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응? 왜 그러냐?”
“왜긴, 내 만화로 하면 망할 거니까.”
“······.”
의외의 말에 회장이 조금 놀랐다.
설마 딸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탓이다.
이즈미가 조금은 성장한 것 같아서 조금 섭섭한 마음도 들었다.
이젠 딸이 자신의 곁을 떠날 나이가 된 것일까?
“아빠, 눈 왜 그래요? 빨갛게 변했는데”
이즈미의 말에 화들짝 놀란 노인이 어색하게 웃었다.
“늙어서 눈까지 많이 건조해진 모양이다.”
그 말에 이즈미가 노인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봤다.
“안약이라도 사줘요?”
“하하, 괜찮다, 괜찮아. 요시다에게 말하면 돼.”
“······.”
“아무튼 네 말은 그 머······.”
“머신건 잭이요.”
“그래. 그거라면 괜찮다는 거니?”
“네. 지금 가장 인기 있는 만화중 하나거든요.”
“가장 인기 있는 만화라······.”
회장이 중얼거리듯 말하자, 이즈미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요?”
“너는 네 만화 이외엔 전혀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의외라서.”
“지금도 관심 없어요. 어디까지나 비즈니스 차원에서 하는 얘기에요.”
“······비즈니스.”
“왜 그런 표정 지어요?”
“어이쿠, 내가 실수라도 한 거니? 미안하구나.”
“아무튼 제 부탁은 들어주실 거죠?”
“누구부탁인데, 당연하지.”
그 말에 이즈미가 만족한 표정으로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오랜만에 왔는데, 섭섭하게. 근처에 네가 좋아하는 프랑스요리 음식점이 있는데 거기라도 같이 가자.”
“저 바쁜 거 알잖아요.”
“알지. 그래도 조금 시간을 내 주면 좋겠는데.”
“다음에. 그럼 가볼게요.”
그 말에 회장이 섭섭한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다.”
몸을 돌린 이즈미가 문 근처에서 회장실 배경처럼 서 있던 노인에게 말했다.
“가요, 쿠로다.”
“네. 아가씨.”
이즈미가 문을 열고 나가자 그녀를 노인이 따라 나섰다. 그때 회장이 노인을 불렀다.
“이보게, 구로다.”
“아, 네. 회장님.”
“아빠, 왜요?”
“아니다. 너는 먼저 가봐라. 구로다와 잠시 얘기 좀 하게.”
“저 바쁜데.”
“금방 보내주마.”
“알겠어요.”
이즈미가 사라지자 곧장 회장이 노인에게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쿠로다.”
“네. 회장님.”
“혹시 그 머······.”
“머신건 잭입니다.”
“아, 그래. 그 만화. 그거 혹시 그거 그린 만화가가 남자인 건가?”
“여자입니다.”
“뭐? 여자?”
“네.”
회장이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아쉽다는 얼굴이 되었다.
“여자란 말이지. 음.”
“스토리는 남자입니다.”
“응? 스토리?”
“네. 남매가 같이 만든다고 들었습니다.”
“아, 그래. 남매. 아무튼 스토리는 남자라는 거지?”
“네.”
“남자라······. 그렇군.”
다시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야, 아무것도. 아 참, 자네는 얼른 가보게. 이즈미가 기다리고 있을 텐데.”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노인이 서둘러 회장에게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회장이 입 꼬리를 슬쩍 끌어 올렸다.
“남자란 말이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머리를 다시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