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96화 (396/425)
  • 만화왕 (1)

    이즈미가 물었다.

    -당신은 꿈이 뭐죠?

    갑자기 전화를 걸어서는 엉뚱한 질문이라니.

    “갑자기 그걸 왜 물어요?”

    -궁금하니까요.

    궁금하니까 묻는 건 자연스럽긴 한데.

    -아무런 사심 없어요. 그러니까 대답 해봐요.

    사심이 있건 없건 그런 거야 관심 없지만, 대단한 건 아니니까 대답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꿈을 물으니, 대답할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

    -설마 꿈이 없는 거예요?

    “있어요.”

    -그럼 말해 봐요.

    “만화왕이요.”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와버렸다.

    만화왕이라니, 참 뜬금없네.

    -만화왕이라고요?

    이즈미도 좀 어이없다는 목소리다.

    하기야, 대답한 나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무슨 해적왕도 아니고.

    아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런데 그때 전화기 너머에서 평소처럼 냉랭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렇군요. 알겠어요.

    그렇게 던지듯 말하더니 그냥 끊어버린다.

    “······.”

    이 여자가 진짜.

    그나저나 비웃을 줄 알았는데.

    어쩌면 전화를 끊고 나서 실컷 비웃을지도 모르지.

    아 갑자기 짜증난다.

    * * *

    미쯔다쇼텐 임원회의실.

    임원 중 한명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초판 200만부요?”

    하지만 이즈미는 별다른 표정변화 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네.”

    회의실에 있던 다른 이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부사장도 놀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니, 그래도 초판을 그렇게나 많이 하는 건 부담이 큽니다.”

    “충분히 능력은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야······, 단행본 판매량이 권당 160만부 이상은 나오니까요.”

    “그럼 해봐도 되잖아요. 삼사라 때도 평균 200만부를 훌쩍 넘었다고 들었는데.”

    “그건 누적판매량이니까 그렇죠. 초판은 다릅니다. 거기다 머신건 잭은 아직 삼사라만큼의 인기가 있는 건 아니고요.”

    “지금 분위기를 보면 삼사라는 이길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200만부는 다릅니다. 애초에 초판 200만부를 넘은 건 닥터슬럼프가 유일합니다. 지금 인기 있는 드래곤볼도 아직 깨지 못했고요.”

    부사장의 말에 이즈미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아까부터 말없이 앉아있던 사장 미쯔다 히로유키를 돌아봤다.

    그를 넌지시 바라보던 이즈미가 입을 열었다.

    “사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데요?”

    “······.”

    “역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잠시 침묵하던 히로유키 사장이 고개를 천천히 흔들었다.

    “아뇨.”

    그런 사장의 반응이 부사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깜짝 놀랐다.

    “사, 사장님.”

    “사장님까지 왜 그러십니까?”

    임원들의 그런 반응과 달리 이즈미는 이제야 만족했다는 표정으로 사장에게 물었다.

    “그럼 뭘 그렇게 오랫동안 생각하세요?”

    이즈미의 질문에 잠시 뜸을 들이던 히로유키가 한쪽 손으로 턱을 괸 채 볼펜을 굴리며 말했다.

    “왜 그럴까?”

    “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무슨 소리에요?”

    이즈미가 황당한 얼굴로 쳐다보며 물었다.

    다른 임원들도 묘한 표정으로 히로유키 사장을 돌아봤다.

    테이블 위에서 불펜을 이리저리 굴리던 히로유키 사장이 고개를 들어 이즈미를 바라봤다.

    묘한 눈빛에 이즈미가 살짝 움찔했다.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예요?”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래요.”

    “그런데 왜 머신건 잭의 초판에 그렇게 신경을 쓰시는지.”

    “······.”

    이즈미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그런 그녀를 보며 히로유키 사장이 물었다.

    “혹시 그들을 몰락으로 밀어 넣고 싶어서 회사를 이용하려는 건 아닌가요?”

    그 말에 임원들이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경악한 표정으로 이즈미를 돌아봤다.

    잠시 굳은 표정으로 히로유키 사장을 쏘아보던 이즈미가 큰 소리로 웃었다.

    그리고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젖히더니 고개를 살짝 옆으로 꺾고는 말했다.

    “이젠 저도 사업가예요. 그 정도로 생각이 없지는 않아요.”

    “그런가요?”

    “그래요. 그리고······.”

    잠시 말을 끊은 이즈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이가 좋지 않은 거랑, 싫은 거는 전혀 다른 거니까.”

    히죽거리며 그렇게 말하자 히로유키 사장이 팔짱을 끼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셨군요.”

    그렇게 말하며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

    뭔가 알겠다는 표정으로.

    그러자 그의 얼굴을 보던 이즈미가 미간을 일그러뜨리더니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커다란 창밖으로 번화한 도시의 모습이 보인다.

    그걸 잠시 보던 이즈미가 다시 시선을 임원실로 돌리고는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툭 치며 말했다.

    “이곳은 다 좋은데, 겁이 너무 많아. 이래서야 다른 잡지들을 추월할 수 있겠어요?”

    그 말에 이번엔 부사장이 입을 열었다.

    “초판 100만부가 그 기준이 될 거라는 겁니까?”

    그러자 이즈미가 손가락으로 입술을 슬쩍 문지르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요.”

    그렇게 말하더니 팔짱을 끼며 앉은 채로 다리를 꼬았다.

    “내가 이런 의견을 내는 것에 의심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으니까 제안을 하나 하죠.”

    “제안?”

    “네.”

    “뭡니까?”

    히로유키 사장이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그러자 이즈미가 한쪽 입 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제 주식의 절반을 내 놓겠어요.”

    그 말에 임원들이 웅성거렸다.

    “그 주식을 출판사에 다시 팔겠다는 겁니까?”

    “그래요. 그것도 제가 인수하던 그때 가격으로.”

    지금은 그때보다 두 배는 더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으니, 상당히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이즈미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는 뜸을 들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제 말대로 200만부가 제대로 팔려나간다면, 3% 주식을 더 넘기세요.”

    임원들이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눈치를 보았다.

    이즈미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히로유키 사장을 보며 물었다.

    “어때요?”

    히로유키 사장이 옅은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군요. 하지만 주식 양도는 곤란합니다.”

    “저는 반이나 걸었는데도요?”

    “이번엔 저도 제안을 해볼까요?”

    그 말에 이즈미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말씀해보세요.”

    “230만부는 어떻습니까?”

    그 말에 임원들이 경악했다.

    “사, 사장님!”

    “이, 230만부라니요! 말도 안됩니다!”

    “잘못하면 엄청난 재고 때문에 출판사에서도 타격을 받게 될 지도 몰라요!”

    “저희는 점프 같은 큰 회사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즈미도 상당히 놀랐다는 표정을 지은 채 아무런 말도 없이 멍한 얼굴로 있었다. 그러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는 히로유키 사장을 쳐다보며 물었다.

    “230만부라고 하셨나요?”

    “네. 그렇습니다.”

    “왜, 230만부죠?”

    “이참에 220만부라던 그 기록을 깨버리는 것도 좋을 것 같거든요.”

    “여기 사장님 맞아요?”

    “맞습니다만.”

    “그런 분이 도박판을 벌리려 하시는 건가요?”

    “도박이라뇨.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리고 나카야 씨도 200만부는 가능하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200만부랑 230만부는 단순히 30만부 차이가 아니에요. 한계치에선 1만부 차이도 크니까요.”

    “저에겐 별로 큰 차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히로유키 사장의 대답에 이즈미가 피식 웃었다.

    “이상한 사장님이시네, 정말.”

    그렇게 말하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재밌네요, 정말 재밌어.”

    “만약 230만부를 달성하면 이즈미 씨가 저에게 주식을······.”

    “양도는 안 돼요.”

    그 말에 히로유키 사장이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며 이즈미가 웃었다.

    “좋아요. 모처럼 의견이 일치했네.”

    그 말에 임원 모두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 * *

    “9권, 초판으로 230만부요?”

    내가 깜짝 놀라며 묻자, 전화기 너머에서 흥분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렇게 결정이 났다고 들었습니다.

    “아니 그래도 230만부는 좀.”

    지금 현재 머신건 잭의 인기가 높은 건 사실이다. 몇 달 전에 나온 8권이 120만부를 초판으로 찍었을 때도 기존의 신기록을 세운 결과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230만부라니.

    지금 현재 기록은 몇 년 전에 토리야마 아키라가 연재했던 닥터슬럼프가 세운 220만부다.

    그 기록도 TV애니 방영으로 인기가 치솟았던 덕분이었는데.

    물론 지금 머신건 잭도 방영을 시작했고, 꽤 괜찮은 시청률이 나온다고 들었지만 그래도 230만부는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 수치다.

    -결정이 임원회의에서 났다고 합니다.

    “임원회의요?”

    -네.

    그럼 그렇지.

    임원들이야 현장을 잘 모르니까 그런 결정을 내렸을 수도 있다.

    “보통은 출판부랑 편집부에서 회의를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맞습니다. 보통은 그런데, 이번엔 특별히 임원회의에서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하더군요.

    “설마 거기 사장님이 결정을 내린 건 아니겠죠?”

    -사장님이 최종 결정을 내리신 게 맞습니다.

    “네?”

    그 양반이 그런 결정을?

    내가 보기엔 상당히 똑똑한 사람 같았는데.

    -최종 결정은 사장님이 내리시긴 했는데, 처음 의견을 제시한 분은 따로 있습니다.

    “누군데요?”

    -저도 처음엔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설마, 아니겠지.

    - 나카야 씨라고 하더군요.

    컥.

    나카야 이즈미라고.

    그 여자가 왜?

    그때 갑자기 떠오른 것이 있었다.

    며칠 전 전화를 걸어서 꿈이 어쩌고 하던 거.

    그리고는 내가 얼떨결에 만화왕이라고 대답했었는데.

    이 여자 혹시, 내 대답을 비웃고는 이참에 생매장이라도 하려는 건가?

    -편집장님도 부사장님께 들은 이야기라고 하시던데요. 실은 나카야 씨가 처음 주장한 건 200만부였답니다.

    200만부? 그럼 어디서 30만부가 늘어난 거지?

    “그럼 왜 230만부로 결정이 난겁니까?”

    -그건 사장님 생각이라고 하시더군요.

    사장이 30만부를 더 늘렸다고?

    이 양반들이 회의에서 무슨 짓거리를 한 거야?

    나를 두고 타짜영화라도 찍은 건가?

    “사장님은 또 왜 그런 의견을?”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뭣 때문에 이런 짓을 하는 건가?

    누가 봐도 230만부는 무리다.

    150만부라도 솔직히 버거운 느낌이고.

    일반적연 결정이라면 130만부 정도가 한계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이즈미가 200만부로 밀어붙이고, 그것을 사장이 30만부를 더 얻어서 OK했다고?

    이즈미 혼자의 결정이었다면, 뭔가 꿍꿍이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 여자는 평소에도 또라이 같은 짓을 종종 벌이니까.

    하지만, 사장이 최종 결정을 내렸다니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것도 추가로 30만부를 더해서.

    -그 때문에 출판부에서는 난리가 났다고 들었습니다.

    그야 그렇겠지.

    230만부를 초판에 찍어내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그보다 엄청난 양의 재고가 더 걱정이 될 테니까.

    그리고 재고가 생기면 다시 파쇄공장으로 보내 그 엄청난 양의 책을 갈아버리는 것도 문제일거고.

    내가 출판부장이 아닌데도 벌써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니 당사자는 오죽할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회의에서 그런 결정이 나왔으면 이유가 있었을 테니까요.

    “아카기 씨는 어때요?”

    -네? 뭐가 말입니까?

    “이번 결정. 충분히 200만부는 팔릴 거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70만부의 재고가 생길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양반이 장난하나.

    하지만 저게 현실적인 반응이긴 하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지로가 말을 이었다.

    -예전 같으면 그렇게 말했을 겁니다.

    “네?”

    -하지만, 이상하게 선생님의 만화라 그런지 그 70만부의 갭은 어떻게든 메울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됩니다.

    무슨 저런 근거도 없는 말을.

    물론 기분이 좋긴 하지만.

    그 순간 갑자기 이즈미와 통화중에 했던 내 말이 떠올랐다.

    만화왕.

    그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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