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95화 (395/425)
  • 게임의 버그 (2)

    키도가 놀란 표정이 되었다.

    그러다가 다시 머리를 갸웃거렸다.

    “맵이면 지도 아니야? 그런데 설계도라니.”

    “그 맵이라는 게 신들의 게임 장소니까, 일종의 컴퓨터 프로그램 같은 게 아닐까하고 예상하고 있어요. 그 무늬도 솔직히 기판의 느낌 비슷하더라고요.”

    “기판?”

    “네. 전자제품 안에 들어있는 거요.”

    그 말에 키도가 머리를 긁적였다.

    “흐음, 역시 나는 옛날사람인 모양이야,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어.”

    “나 참, 저랑 나이도 비슷하면서 무슨 할아버지 같은 말씀을.”

    “자네는 SF가 전문이니까 다르지. 나처럼 전통 만화 그리는 사람은 잘 몰라.”

    키도의 말에 니시다가 어이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키도 선생님이 무슨 우키요에를 그리는 사람입니까? 전통만화는 무슨.”

    “뭐 나처럼 극화쟁이들의 시대도 끝나가고 있다는 말이지.”

    “그렇게 따지면 저도 마찬가집니다. 순정풍이 미소년 에스퍼 만화는 더 이상 인기가 없으니까.”

    “미소년은 아직 먹히지. 세인트세이야가 있잖아.”

    “에이, 그건 순정그림을 뒤집어 쓴 열혈물이라 다르죠.”

    그렇게 말한 니시다가 갑자기 멈칫하더니 곧 머리를 갸웃거렸다.

    “왜?”

    “말하고 보니까, 어째 키도 선생님 방식의 이야기와 내 그림이 합쳐진 그런 만화 같아서요.”

    그 말을 들은 키도가 눈동자를 굴리더니 피식 웃었다.

    “듣고 보니 그것도 그러네.”

    “그래도 아직은 진짜 정체에 대한 이야기는 좀 미뤄뒀으면 좋겠는데.”

    “왜? 끝날까봐?”

    “네.”

    “그렇게 걱정되면 전화라도 걸어서 만화 길게 연재해달라고 부탁이라도 하던가.”

    “그럴까요?”

    “어? 진심인가보네.”

    “저 지금 심각하거든요.”

    “그럼 전화 걸어봐.”

    그 말에 니시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게 가능하면 제가 왜 걱정을 합니까?”

    “······.”

    * * *

    전화기 너머의 키도가 한참 떠드는 이야기를 듣고 난 뒤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니시다 선생님이?”

    -그래. 그 친구 지금 정말로 심각하다니까. 내가 오죽하면 전화했겠냐?

    혼자 안절부절 못해서 원고작업에 까지 지장을 줄 정도란다.

    “그, 그 정도야?”

    -아이고, 말도 마라. 잭의 진짜 정체가 곧 밝혀질 것 같다느니 하더니, 원고작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해서 담당인 오오타케가 걱정이 많은 모양이더라.

    키도의 말로는 결혼식 때 선희의 스케치 그림을 본 모양인데, 그것만으로 거기까지 추리하다니 대단한 분석이긴 하다.

    나라면 절대로 그렇게 추측하지는 못했을 텐데.

    그보다 머신건 잭이 끝날까봐 만화를 전혀 그리지 못하고 있다니, 이건 좀 심각한데.

    키도가 다시 물었다.

    -혹시 니시다 말대로 만화가 곧 끝나는 거냐?

    무뚝뚝한 음성이지만, 걱정이 잔뜩 묻어있다.

    “잭의 정체가 밝혀지는 건 맞는데, 그렇다고 끝나는 건 아니야.”

    -정말이냐?

    “어. 새로운 에피소드로 넘어갈 거거든. 그러니까 당분간 끝내려는 계획은 가지고 있지 않아.”

    내 말에 키도가 한숨소리를 냈다.

    -그래, 그럼 됐다. 이젠 그 놈도 더 이상 우리 화실로 와서 우는 소리 안하겠네.

    다행이라는 듯 말하는 그의 음성을 들으며 미소 지었다.

    평소엔 그렇게 잡아먹을 듯이 하더니, 그래도 니시다와는 친한 모양이다.

    하긴, 여기도 그런 단짝이 있긴 하지만.

    그렇게 말하며 이대봉과 실버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러자 두 사람이 의아한 눈으로 날 쳐다본다.

    -그럼 또 연락할게. 잘 있어라. 건강하고.

    “어, 그래. 형수님에게 나 대신 안부 전해 줘.”

    -그래, 알았다.

    그렇게 키도와의 통화를 끝내고 나자, 이대봉이 궁금한 얼굴로 다가왔다.

    “머신건 잭이 끝날까봐 걱정이라고?”

    “그렇다고 하네.”

    “혹시 드래곤 수프에 대해서는 궁금해 하지 않아?”

    그 말에 실버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꿈도 야무지네. 드래곤 수프를 왜 궁금해 하냐?”

    그러자 이대봉이 도끼눈을 뜨고 실버로 노려봤다.

    “재미있으면 궁금해 할 수도 있지. 그리고 요즘 드래곤 수프 인기가 얼마나 좋은데.”

    “그 양반들 만화는 인기가 없냐? 오히려 너보다 더 좋지.”

    “네가 창작자의 기분을······.”

    “알고 있거든. 지금은 충분히.”

    실버의 대답에 이대봉이 자신의 머리를 콩콩 때렸다.

    “아, 깜빡했다. 와르다의 별.”

    “이런 말, 내 입으로 하긴 뭐하지만, 네 만화보다 인기가 더 있다.”

    실버가 턱을 바짝 세우며 말하자 이대봉이 심통 난 표정으로 말했다.

    “······젠장. 그거야 쟤가 도와준 덕이잖아. 그건 반칙이지.”

    “그럼 너도 도와달라고 하던가.”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손을 벌릴 수는 없지. 너랑 달라서.”

    “자존심?”

    “뭐, 그런 거지.”

    “패배자가 주로 하는 변명이 그거 아니냐.”

    “패배자? 지금 말 다했어?”

    그 말에 실버는 그저 웃기만 했다.

    승리자의 표정을 지으며.

    “그런 표정 짓지 마. 짜증나.”

    그런 말에도 실버는 계속 웃기만 했다.

    “아우, 속 터져!”

    화가 난 이대봉이 고릴라처럼 자신의 가슴을 퍽퍽 두드렸다.

    그런 두 사람을 보다가 곧 선희가 그린 콘티를 살펴봤다.

    니시다의 예상대로 잭이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는 장면부터 콘티가 시작된다.

    맵과 관련이 있다는 것도 그의 예상이 맞았다.

    실은 잭이 맵의 일부였으니까.

    맵이 만들어 지면서 같이 태어난 존재였지만, 맵에는 버그가 존재해 결국 폐기가 결정되었다. 당연히 맵이 사라지게 되자 잭도 같이 사라질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폐기되는 과정에서 오류로 한 팔을 잃은 채 인간 세상에 떨어졌고, 그 없어진 팔의 자리를 머신건이 대신하게 된 것이다.

    물론 과거에 대한 기억을 잃은 채로.

    잭은 그런 과거를 알게 되지만, 생각보다 큰 충격을 받지는 않는다.

    “내가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라는 것쯤은 예상하고 있었다.”

    잭의 말이었다.

    하이테커는 그런 그에게 말했다.

    “너를 만든 자와 싸워야 한다. 괜찮겠나?”

    “나를 만들었다고는 해도 부모라고 할 수는 없지. 그저 유희거리로 만든 장난감에 불과했으니까.”

    “그렇겠군.”

    “지금 나는 인간이야. 인간을 위협한다면 어쩔 수 없이 싸워야지.”

    잭의 말에 조크가 인상을 썼다.

    “뭐야, 잭 너 이상해.”

    “이상하다니. 뭐가 말이냐?”

    “너 언제부터 이렇게 정의롭게 된 거야? 내가 알던 잭 맞아?”

    “······.”

    “그냥 평소대로 해. 그냥 그놈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 되는 건데.”

    조크의 말에 몽이 끼어들었다.

    “대의명분도 중요한 거야. 거기다 그냥 조크 네 말대로 아무렇게나 말해버리면 멋도 없고.”

    이번엔 파스도 입을 열었다.

    “어쩐지······. 좀 거북한 느낌이 들더라니.”

    “그렇지?”

    그렇게 놀리듯 말하는 세 사람을 잭이 가늘게 눈을 뜨며 쳐다봤다.

    그리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 뭐, 그 놈들 재수 없고 마음에 안 드니까.”

    “그렇지. 그렇게 말해야 잭다워.”

    “그렇다니까.”

    “명분 따위, 개나 줘버려!”

    몽이 손을 치켜들며 소리치자 잭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당연하지!”

    그런 그들을 보며 하이테커가 혀를 찼다.

    “처음으로 내 생각에 의심이 생겼다.”

    그 말에 잭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 생각에 의심이 생겨? 어떤 생각?”

    “네가 정말로 내가 찾던 존재가 맞는가하는 거.”

    “버그라는 그거?”

    “단순한 버그가 아니야. 비밀코드······. 음 그건 뭐 됐고.”

    “······?”

    “아무튼 너희들 지금 상태로는 어림도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각자에게 조그마한 쪽지 한 장씩을 나누어줬다.

    “이게 뭐야?”

    잭의 물음에 하이테커가 웃으며 말했다.

    “이마에 붙여?”

    “뭐?”

    “이마에 붙이라고.”

    “······.”

    잭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하이테커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때 몽이 종이를 아무런 의심 없이 이마에 딱 붙였다. 그러자 종이가 빛을 뿜더니 갑자기 소멸해 버렸다.

    그런데 그 순간 몽의 복장이 바뀌었다.

    원래 가지고 있던 작업복이 좀 더 세련된 느낌으로 변했다.

    “어? 옷이 더 멋지게 변하는 마법이네?”

    몽의 말에 하이테커가 버럭 소리쳤다.

    “무슨 소리! 능력이 올라간 것이다!”

    “능력이 올라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던 몽이 곧 잭의 머신건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어? 내가 혼신을 다해 만든 머신건이 이렇게 허술했었나?”

    곧바로 자신의 능력이 올라갔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조크와 파스도 반사적으로 종이를 이마에 붙였다. 마찬가지로 복장이 변했고, 그들의 능력도 더 올라갔다.

    마지막으로 잭이 이마에 종이를 붙였다.

    잭 역시 복장이 변함은 물론, 가지고 있던 머신건의 형태도 바뀌었다.

    “완벽한 머신건이야!”

    몽이 잭의 머신건을 보자마자 소리쳤다.

    자신의 눈에도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머신건으로 변한 것이다.

    “이제부터는 너희들이 경험을 쌓을수록 능력이 상승하게 될 것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정도야.”

    “충분해, 아주 충분해!”

    몽이 하이테커를 툭툭 치며 소리쳤다.

    * * *

    소년 히어로 편집부.

    의외의 인물이 실내로 들어서자 모두의 시선이 몰렸다.

    “여어. 오오타게 나야.”

    니시다가 손을 휘적거리며 들어오자 직원들이 그런 그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오오타케가 깜짝 놀랐다.

    “어? 니시다 선생님. 편집부엔 무슨 일로?”

    그렇게 물으며 니시다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니시다가 가볍게 인상을 쓰며 말했다.

    “뭐야? 내가 오면 안 되는 거야?”

    “아, 아뇨. 그건 아니지만 너무 뜻밖이라.”

    “그냥 계속 찾아오는 자네를 도와주고 싶어서 내가 원고를 이렇게 직접 가져왔지.”

    “······.”

    “표정이 왜 그래? 내가 원고 가져온 게 마음에 안 들어?”

    “그럴리가요.”

    “그런데 얼굴이 왜 그 모양인데?”

    “글쎄요. 뭘까요 이 찝찝함은?”

    오오타케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하자 니시다가 그런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웃었다.

    “점심때 느끼한 거 먹었어?”

    “아닌데.”

    “그럼 속이 안 좋은 거겠지.”

    “그것도 아니고.”

    그런데 그 순간 또 다른 의외의 인물이 실내로 들어왔다.

    이번엔 키도였다.

    “어? 키도 선생님은 어쩐 일입니까?”

    “니시다, 자네는 어쩐 일인데?”

    “저야 당연히 우리 담당을 만나기 위해 온 거죠.”

    “나도 그래. 그런데 테고시는 어디 갔지?”

    “저 뒤에 있는데요.”

    그 말에 키도가 놀란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뭐야, 자네 거기 있었어?”

    “저기 선생님.”

    “응?”

    “저랑 화실에서 같이 오셨잖아요.”

    “아, 그, 그랬나?”

    “그랬죠.”

    “······.”

    키도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키도와 니시다를 번갈아 쳐다보던 오오타케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을 때였다.

    “샘플 책 나왔습니다!”

    직원 하나가 곧 발행될 잡지 샘플 수십여 권을 들고 나타나자 주변에 있던 직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엔 키도와 니시다도 끼어있었다.

    “나도 한 권 줘!”

    “나도 줘요!”

    마치 백화점 바겐세일에 몰려든 여자들의 모습같이 보였다.

    곧 사람들이 책을 한권씩 집어 들고는 곧바로 펼치기 시작했다.

    물론 키도와 니시다도 마찬가지.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오오타케가 한숨을 푹 쉬었다.

    “역시 그런 거였군요.”

    그 말에 곁에 있던 테고시가 머리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그런 거죠.”

    “어쩐지.”

    “그러니까요.”

    그때 니시다가 책을 살펴보더니 키도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거 보세요. 제 말이 맞잖아요. 관련이 있을 거라니까.”

    “······쩝.”

    “자자 그럼 약속을 지키셔야죠.”

    “······

    결국 두 사람이 편집부로 찾아온 진짜 이유는 바로 신간 책을 빨리 읽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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