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94화 (394/425)

게임의 버그 (1)

뜨거웠던 올림픽의 여름이 끝나고 나니 갑자기 가을이 온 것처럼 공기가 선선해졌다.

그리고 이렇게 활동하기 좋은날 나와 우리 화실식구들은······.

북적되는 결혼식장에 모여 있었다.

바로 강용철의 결혼식이었다.

“오, 정장이 오빠에게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역시 멋지다.”

경희가 정장을 입은 날 보며 칭찬을 했고, 곁에 있던 선희도 동감이라는 듯 머리를 끄덕인다.

하지만 진짜 잘 어울리는 인간은 따로 있지.

“와, 제임스 오빠는 연예인 같아.”

“그러게요. 어지간한 남자배우보다 나아 보여요.”

“제임스 형, 부럽습니다.”

어시들이 이대봉을 보며 한 말이다.

하긴 이대봉이 지금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정장이 잘 어울린다.

마치, 광고에나 나올 것 같은 기럭지에 잘생긴 외모까지 겸비하고 있었으니.

거기다 요즘 돈도 잘 벌어서 양복도 고급을 맞춰 입으니 그야말로 일반인과는 차원이 다른 아우라를 뿜어대고 있다.

나이 30줄에 들어선 인간이 아직 20대 초중반 정도의 사기적인 동안외모까지 겸비하고 있다.

여기서 잠시 집고 넘어가자면, 지금 시대의 30대는 내가 살던 시절과 상당히 다른 외모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30대는 정말 중년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게 대부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 곳에서 이런 동안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정말 연예인 정도나 가능한 느낌인 것이다.

아무튼 이런 외모 덕분에 이대봉을 처음 만난 사람은 왜 만화 따위를 하고 있느냐고 말할 정도라니까.

그래서 여기 결혼식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이 되어버렸다.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랑, 신부보다 더.

주례사가 진행 중인 지금도 많은 하객들이 우리 쪽을 힐끔거리고 있다.

대부분 여자들이고, 그 시선은 열이면 열 모두 이대봉을 쳐다보고 있는 건 당연하다.

신부 측 하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이대봉을 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내 귀가 밝은 것인지, 사람들의 소리가 큰 건지 다 들리고 있었다.

“어머나, 얼굴이 엄청 잘생겼어요. 꼭 알랑드롱처럼 생겼어.”

“장국영 같은데요?”

“신랑 쪽인가?”

“신랑이 만화를 그리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저 외모로 보면 연예인 같아 보이는데.”

“모델일지도 모르죠.”

“와, 인맥이 넓은가보다.”

“저기 봐봐, 정숙이 친구들. 쟤들, 지금 죄다 저 남자만 보고 있네.”

“나중에 결혼식 끝나면 신랑 측 사람들과 어울리겠지.”

“아, 부럽네, 부러워. 내가 결혼만 안했어도.”

“안하면 뭐, 그 얼굴로 어쩌려고?”

“내가 어때서.”

그렇게 말하며 킥킥거리며 뭐가 좋은지 웃느라 정신이 없다.

그 때문에 중년의 주례자가 불편한 얼굴로 그쪽을 쏘아보았다. 그러자 떠들던 사람들이 손을 입을 가리며 머리를 숙였다. 여전히 어깨를 들썩거리면서.

그런 상황을 지켜보던 나와 어시들이 마주보고는 슬쩍 웃었다. 그리고 이대봉을 돌아보니, 이 인간은 그런 주변 시선 따위엔 관심도 없어 보인다.

하긴, 원래 그런 것을 신경 쓰는 인간은 아니니까.

오히려 이 와중에도 실버에게 농담인지 시비인지 구분하기 힘든 장난만 치고 있었다.

“넌 남의 결혼식에 와서 뭐가 좋아 그렇게 헤벌레하고 있냐? 뭐야 지금 너 또 딸내미 사진보고 있어?”

그 말에 실버가 움찔하더니, 서둘러 뭔가를 양복 안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이대봉의 말대로 사진이었던 모양이다.

하긴 요즘 실버는 예전에 내가 알던 실버가 맞나 싶을 정도로 표정이 풀어져 있었다.

딸인 은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늘 저런 표정이다.

거기다 실버의 주변에는 온통 은별이 사진이었다.

작업실 책상엔 은별이 액자.

들어보니, 정미자의 화실에도 마찬가지고.

서랍에도 몇 개가 더 있는 것 같은데다가 지갑에도 따로 넣어다니는 모양이다.

“아주, 그냥 윤환이 표현대로 딸바보로구만, 딸바보. 그렇게 좋냐? 그렇게?”

“너도 애 낳아보면 이 기분 안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하긴.”

“그나저나 그렇게 은별이가 예쁘냐?”

“당연하지.”

“너 닮았다며. 그런데도 예뻐?”

그 말에 실버가 이대봉을 웃으며 돌아봤다.

“은별이 태어나기 전이었으면 넌 사지가 잘려 나갔을 거야.”

살벌한 말을 저런 푸근한 표정으로 잘도 떠든다.

하지만, 평소에도 수없이 협박을 받아왔던 이대봉이 기가 죽을 리 없지.

“이름은 누가 지었냐?”

이대봉의 물음에 실버가 입 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애기 엄마가.”

“미자 씨가?”

“그래.”

“역시 실버의 딸이라 은별이라고 지은 건가? 실버가 만약 골드였으면 금별이었겠군.”

그 말에 모두 ‘아’ 하며 납득하자, 실버가 그런 화실 식구들의 반응을 보며 다시 푸근한 음성으로 이대봉을 돌아보며 말했다.

“네가 정녕 죽으려고 발악을 하는구나. 공개된 장소라고 안심하지 마라. 너 정도는 삽시간에 보낼 수 있으니까.”

실버가 그렇게 말하며 이대봉의 어깨를 슬쩍 잡았다.

그 순간 이대봉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야, 실버. 농담이잖아, 농담. 이렇게 좋은 날 왜 그래?”

“이렇게 좋은날에 죽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겠지.”

주변을 돌아보자 다른 이들이 일제히 시선을 피했다.

곧장 날 돌아보며 울상을 지었다.

“······살려줘. 윤환아.”

나라고해도 실버 같은 인간을 어떻게 할 수는 없는 일.

이대봉의 처량한 시선을 외면해 버렸다.

그때 쭈쭈바를 쪽쪽거리며 빨고 있던 선희가 입을 열었다.

“끝났다.”

모두의 시선이 선희가 보는 곳으로 돌아갔다.

드디어 주례사가 끝난 모양이었다.

그 순간 실버가 손을 거두자 이대봉이 살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

강용철의 결혼식이 끝나고 일주일 뒤, 박상식과 누나의 결혼식도 이어졌다.

이번엔 일본에서도 손님들이 제법 찾아왔다.

니시다와 키도부부.

그리고 담당인 지로, 미치코.

더불어 출판사를 대표해 편집장과 부편집장.

거기다 의외의 인물인 이즈미까지.

“바쁜 시간을 쪼개서 온 거예요.”

“일부러 와줘서 고맙습니다.”

“뭘요.”

그렇게 쿨하게 말하더니, 거금의 축의금을 내놓았다.

돈을 담당하던, 이대봉이 기겁할 정도의 거금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질세라 키도랑 니시다도 적지 않은 거금을 냈다.

지로도 편집부에서 걷은 거금을 내 놓았다.

일본손님들의 축의금만으로도 엄청난 거액이었다.

나중에 그 액수를 안 누나가 숫자 자릿수가 잘못된 거 아니냐고 물어봤을 정도였다.

아무튼, 그렇게 거액의 축의금이 들어오는 결혼식 답지 않게 조촐하게 진행되었다.

그나저나 결혼식 자체의 분위기는 좀 그랬다.

쌍둥이들과 누나, 그리고 엄마의 눈물을 하루 종일 봤으니까.

나도 그런 분위기에 휩쓸린 탓인지 박상식에게 차분한 음성으로 웃으며 이렇게 얘기했었다.

“누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형은 그날로 죽는 거 알지?”

“아, 그래······.”

덕분에 새신랑 협박한다고 엄마에게 한번, 누나에게 여러 번 욕을 먹긴 했지만.

어쨌건 그렇게 요란했던 두 번의 결혼식이 끝났다.

한 달 동안 올림픽부터 시작해, 정말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간 느낌이었다.

* * *

하이테커가 신이라 불리는 그들과 같은 존재였다는 것이 밝혀지자,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출판사로 날아온 수많은 엽서가 바로 그 증거.

[예상도 못했어요. 설마 하이테커가 신들 중 하나였다니.]

[배신하는 건가요? 저 하이테커, 엄청 팬인데.]

[하이테커를 좋아했는데, 적이 되는 거예요? 그럼 안 되는데.]

[어쩐지. 묘하게 많이 알더라니. 그래도 하이테커가 적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하이테커와 싸우는 일 없겠죠? 제발 친구로 남게 해주세요.]

[하이테커 죽이지 마세요. 저 하이테커 죽으면 저 살아갈 희망이 없어요.]

하이테커의 인기가 높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 일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출판사에서도 이런 반응에 놀랐다는 모양이고.

지로의 말에 따르면 회의 중 하이테커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는데, 아무래도 하이테커가 적이 되면 충격 받을 독자가 너무 많을 것을 우려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스토리에 관여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 편집장도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원래라면 하이테커는 다리만 이어주고 사장되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를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몇 년 전에도 일본에서 Z건담에서 샤아가 마지막에 죽는다는 뉘앙스의 결말 때문에 여고생들의 단체자살을 하려한 사건도 있었고.

거기다가 오래전엔 내일의 죠 역시 마지막 장면 때문에 일본전체가 암울한 분위기였고, 한쪽에선 장례식까지 치르는 일도 있었으니.

과몰입 하는 독자가 많은 탓에 어쩔 수 없이 처음 생각을 바꾼 것이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잘한 선택이었다.

하이테커는 스토리를 풀어가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하이테커를 소멸시키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하이테커가 가장 마음에 들어.”

선희의 반응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아무래도 선희가 좋아하는 캐릭터는 쉽게 소멸시키기가 어렵기 때문이었다.

예전 삼사라 시절에 선희가 꽤 마음에 들어 했던 캐릭터를 죽게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때문에 충격에 빠진 선희가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한 일이 있었다.

그렇게 먹는 걸 좋아하는 선희가.

그 이후로는 가족들을 위해서도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차라리 만화가 망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런데, 놀라운 건, 선희가 선호하는 캐릭터는 인기가 있고, 더불어 스토리에도 상당히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하이테커에 무한에 가까운 생명이 생겨버렸다.

선희에게 고마워해라, 이놈아.

* * *

“하이테커의 캐릭터가 점점 생생해지고 있어.”

키도의 말에 니시다가 머리를 끄덕였다.

“네. 외모부터 중성적인 느낌에 중립적인 위치도 절묘하고. 무엇보다 초월자 느낌의 대사가 좋아요. 솔직히 초반엔 아슬아슬한 느낌으로 진행했는데, 이젠 거의 자리를 잡은 것 같군요.”

“그래, 듣기론 하이테커를 계속 가져가려는 모양이야.”

“휴, 다행이네요.”

“다행? 자네 하이테커를 그 정도로 좋아했어?”

“저도 좋아하긴 하지만, 저희 어시들이 더 광적이라. 안 그래도 초반에 소멸을 당할 뻔 한 에피소드가 진행될 땐, 계속 걱정을 하더라고요. 애들이 저에게 텐겐 선생님께 연락을 해서 하이테커를 살려달라고 부탁하면 안 되냐고 묻더라니까요.”

“허어, 그 정도야?”

“네.”

그때 이야기를 듣던 어시들 중 한명이 끼어들었다.

“저도 솔직히 그때 조마조마했어요.”

그러자 다른 어시들도 입을 열었다.

“저도요.”

“저도였는데.”

“이 녀석들이 진짜. 키시 야마토를 그렇게 좋아해봐라.”

“에이, 야마토는 주인공이잖아요. 만화 속에선 절대불사잖아요.”

“맞아요.”

“그럼 치바 료는?”

“걘 뭐, 그냥 빤질거려서 별로······.”

그 말에 키도가 어이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잘도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구나.”

“······.”

그때 니시다가 다시 말했다.

“아무튼, 지금 에피소드도 너무 기대됩니다. 맵이라는 것의 진짜 정체가 곧 밝혀질 것 같으니까요.”

“신들이 하는 컴퓨터 게임 같은 거라며. 대부분 아는 거 아니었어?”

“진짜 중요한 건 따로 있어요.”

“그게 뭔데?”

“맵이 밝혀지면 잭의 비밀도 같이 밝혀질 것 같거든요.”

“어? 정말? 그거 머신건 잭의 가장 중요한 이야기잖아.”

“네. 여행을 하는 진짜 목적이죠.”

“그런 게 그게 맵을 밝히면 알게 될 일이라고?”

“그럴 겁니다.”

“넌 그걸 어떻게 알았어? 또 써니가 숨겨놓은 힌트를 찾은 거야?”

“아니요.”

“그럼?”

“얼마 전에 한국에 갔을 때, 슬쩍 봤거든요.”

“보다니, 뭐를?”

“써니 선생님 스케치요.”

그러고 보니 결혼식장에서도 이선희가 노트를 들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뭘 봤는데.”

“설계도인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기괴한 형태의 기하학적 무늬로 이뤄진 맵이랑 잭이 같은 형태였거든요.”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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