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83 전생 만화왕-392화 (392/425)

하이테커 (4)

지로의 전화를 받은 내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토리야마 선생님이 일부러 편집부로 찾아오셨다는 겁니까?”

-네.

지로의 대답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쿄로 가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성격이라고 들었는데, 그런 사람이 일부러 자신의 출판사도 아닌 곳을 변장까지 하고서 찾아갔다니.

거기다가 가명에 데생원고까지 준비해서.

그런데 갑자기 그 데생원고가 어떤 건지 궁금해졌다.

아마도 내가 알지 못하는 원고인 모양인데.

갑자기 이게 궁금해지는 걸 보면, 내가 덕후긴 덕후인 모양이다.

-어지간히도 궁금하셨던 모양입니다.

그 말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다시 생각하니 어쩐지 눈에 선한 느낌이라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하이테커의 정체에 대해선 일부러 스포일러 할 생각이 없다. 그건 존중이 절대 아니니까.

궁금한 채로 있는 것이 오히려 더 행복할 수도 있거든.

뭐, 직접 전화를 해온다면 마음이 약해질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행동을 할 정도로 하이테커의 정체가 궁금했다니.

-안 그래도 요즘 하이테커에 대해 물어오는 전화가 많습니다. 하지만 저를 빼고는 아는 직원이 없으니 대답해 줄 수도 없죠.

대충 사정을 들으니, 지로 역시 개인적 친분이 있는 사람들도 간혹 물어오는 경우가 있단다. 그러나 고지식한 지로에게 통할 리 만무하지, 천하의 토리야마 아키라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데.

그러고 보니 하이테커가 첫 등장하고부터 더 극성스럽다고 했다.

그 묘한 중성적인 분위기가 주는 매력에 빠졌다는 팬들도 많다는 모양이었다.

-아, 그런데 며칠 전에 니시다 선생님이 담당이랑 오셔서 하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좀 놀랐었습니다.

“놀라요?”

-네. 니시다 선생님이 좀 예리하셔서 삼사라 때부터 숨겨진 것을 잘 찾아내셨거든요.

나도 그 얘기는 들어서 알고 있다.

선희가 가끔 만화 속에 이런 저런 것을 숨겨두는데, 그 중 몇 개를 찾아냈을 정도니까.

심지어 나보다 일찍 찾아낸 것도 있던 모양이고.

이 정도면 우리만화 덕후인 건지, 아니면 원래 만화덕후여서 그런 건지.

아무튼, 만화의 숨겨진 내용을 잘 꿰뚫어 보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덕분에 선희도 니시다를 좀 의식한다는 느낌도 있고.

왜 그렇게 생각을 하냐면, 최근 들어 더 깊이 숨겨두는 것 같으니까.

그러다보니, 이젠 나도 찾기가 힘들다.

대놓고 찾는다고 해도 쉽지가 않을 정도로.

그런데 설마, 그 양반이 또 뭔가 눈치를 챘다는 건가?

-하이테커가 인간이 아닐 것 같다고 하시더니, 포지션이 중립이고 너무 많은 것을 아는 뉘앙스라고 하시더군요.

응? 진짜 그걸 눈치 챘다고?

머릿속을 뒤져 눈치 챌 만한 장면이 있었나, 떠올려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건 떠오르지 않는다.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제 생각엔 만화에서 그런 묘사를 않으셔서 눈치 채기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어떻게 아신 걸까요.

내 말이.

-처음엔 선생님께서 직접 니시다 선생님께 알려주신 게 아닐까 생각을 했을 정도니까요.

“그랬다면 키도 형도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 말에 지로가 웃었다.

-그러니까요.

“다른 얘기는 더 안하시던가요?”

-글쎄요. 실은 근처에서 얘기하시는 바람에 저도 깜짝 놀라서 그때부터 들은 거라서요.

“근처에서요?”

-네.

흐음.

근처라.

일부러 들으라고 한 얘기였나?

어쩌면 지로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서였을지도.

툭 던져보고, 지로의 반응을 보면 확신을 더 가질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다가 곧 피식 웃어버렸다.

말이 안 되니까.

이런 걸 그냥 아무런 근거도 없이 알아챌 수는 없으니까.

아니, 알아냈다손 치더라도.

이게 뭐라고.

겨우 그런걸 알자고, 그런 짓까지 할까.

아니지.

그러고 보면 토리야마 아키라도 신인인척 하며 데생원고까지 들고 왔었다고 했었으니······.

에이, 그래도 설마.

니시다의 평소 반듯한 모습을 떠올리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역시 착각이겠지.

* * *

“엣취!”

갑자기 키도의 화실로 찾아온 니시다가 소파에 앉자마자 재채기를 했다.

그러더니 니시다가 머리를 갸웃거렸다.

“누가 내 얘기를 하나?”

그 모습을 보던 키도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나저나 자네는 안 바빠?”

“네?”

“요즘 너무 자주 오는 것 같으니까.”

“오늘 일은 다 했어요. 그러니까 괜찮습니다.”

그 말에 키도가 콧바람을 푹 날렸다.

“아니, 내가 안 괜찮거든.”

“아, 그리고 중요한 얘기가 있어서 온 거예요.”

“내 말은 듣지도 않는구만.”

키도가 투덜거렸지만, 니시다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이야기를 했다.

“혹시나 했는데, 제 말이 맞았습니다.”

흥분한 어투로 말했지만 이미 시선을 거둔 키도가 작업을 하며 가볍게 머리만 끄덕였다.

“응 맞았겠지.”

“뭔지 물어보시지 않습니까?”

“궁금해야 하는 거야?”

“하이테커에 대한 건데.”

그 말에 키도가 멈칫했다. 그리고는 머리를 슬쩍 들어올렸다.

“하이테커? 새로운 정보야?”

“아니요.”

“······아니라고?”

“네. 제가 전에 말씀드렸던 내용이 맞더군요.”

니시다의 말에 키도가 눈알을 굴리며 기억을 떠올렸다.

“중립이니, 인간이 아니니,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니 했던 그거?”

키도가 그렇게 말하며 떨떠름한 표정을 짓자 니시다는 만족한 얼굴로 머리를 끄덕였다.

“네. 며칠 전에 오오타케를 만나러 편집부로 갔었거든요.”

그렇게 말하더니 뭘 떠올렸는지 혼자 낄낄거린다.

그 모습을 가늘게 뜬 눈으로 보던 키도가 말했다.

“같이 좀 웃자.”

“아, 죄송해요.”

“······.”

“아무튼 편집부에 가서는 오오타케를 데리고 일부러 아카기 씨 근처에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했거든요.”

니시다의 말에 키도가 살짝 놀랐다.

“아카기? 써니 담당?”

“네.”

“그래서?”

“일부러 아카기 씨가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목소리 톤으로 이야기를 했는데, 반응이 오더라고요.”

“여기서 했던 그 이야기를?”

“네.”

“······너, 그런 짓도 했냐?”

“솔직히 반신반의 했었는데. 솔직히 그 장면이 없었다면 저도 전혀 몰랐을 겁니다.”

“그 장면?”

키도의 물음에 움찔한 니시다가 곧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 뭐. 아무튼, 일부러 오오타케를 찾아간 보람이 있었어요.”

그런 니시다를 키도가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자 니시다가 그런 그의 시선을 피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 모습을 보던 키도가 가볍게 한숨을 쉬더니 의자등받이에 몸을 툭 기대며 말했다.

“그래서 반응을 보고 확신했다는 거군.”

“네. 그렇죠.”

키도도 궁금했던 내용이긴 하지만, 그것을 알겠다고 저런 짓까지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저런 아이디어 자체가 떠오를 리도 없었겠지만.

“어쨌거나, 그 때문에 오오타케가 반가워 했겠군.”

“네?”

“네가 직접 담당자인 자신을 보겠다고 편집부로 찾아왔으니까. 자네 평소에 그러지 않잖아.”

그 말에 니시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제가 그랬나요?”

“그랬지.”

“그럼, 앞으로는 자주 찾아가야겠군요. 안 그래도 머신건 잭에 대해 궁금한 것도 많았는데.”

“아니, 그런 일로는 가지 말고.”

“네?”

“네 작품 이야기를 하러 가란 말이야. 멍청한 인간아.”

“······.”

* * *

-그럼 다음에 또 전화 드리겠습니다.

지로와의 통화를 끝내고 나서 뭔가 떠오른 것이 있어서 이제까지 연재된 분량의 복사원고를 살펴봤다.

니시다의 이야기도 있고 해서.

요즘 원고를 세세하게 살피지 않았는데, 뭔가 놓친 것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한 장, 한 장 한참을 살펴봤지만 눈에 띄는 건 없었다.

그래서 다시 디테일한 장면만 따로 살펴보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 그것을 찾아냈다. 그 다음 찾은 페이지의 복사원고를 들고 한창 작업 중이던 선희에게 다가갔다.

일단 집중을 시작하면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애라서,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작업에 끝나자 내 기척을 느꼈는지 선희가 날 올려다봤다.

“······왜?”

“네가 힌트를 줬구나.”

“힌트?”

“그래. 이 장면.”

그렇게 말하며 특정 장면에 손가락을 가져가서는 툭툭 두드렸다.

“이 문장, 공식 맵에 나왔던 그 문장이지?”

“······.”

내 질문에 선희가 시선을 살짝 피했다.

잡았다, 이 녀석.

혹시나 했는데 반응을 보니 확실하다.

“맞구나.”

“······.”

“어쩐지 공식 맵에 딱 한번 등장했던 문장이 하이테커 첫 등장 때 왜 뜬금없이 한쪽 귀퉁이 벽에 붙어있나 했다.”

“······.”

“와,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하다. 진짜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다면 놓쳤을 거야.”

“······.”

“일부러 그런 거야? 이거?”

“재미있을 것 같아서.”

확실히 선희 말대로 재미가 있다.

내가 숨겨놓은 게 아님에도 이렇게 재밌는데, 숨긴 당사자야 오죽 재미있었을까.

선희가 볼이 살짝 툭 튀어 나온 얼굴로 말했다.

“안 돼?”

“어, 뭐. 그건 아니고.”

안될 것까지야 없지만.

다만, 일부러 숨겨서 가끔 날 당황스럽게 만드는 게 좀 그런 거지.

아마도 자신의 방법으로 만화 속에 힌트를 넣어 둔 모양이었다.

하긴, 선희는 가끔 내가 넘겨준 스토리를 가지고 살짝 가공을 하는 습성이 있다. 그 덕분에 나도 몰랐던 새로운 재미가 있기도 하다.

써니연구회라는 모임에서는 선희의 그런 숨겨진 정보를 찾아 공유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솔직히 나도 선희가 숨겨놓은 것을 다 찾지는 못해서, 한번 그곳에 들러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

왜냐하면, 선희는 그냥 물어보면 그런 건 잘 가르쳐주지 않으니까.

내가 찾아내면 그제야 대답해주는 정도.

아마도 이 녀석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은근히 즐기는 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생각하며 선희를 빤히 쳐다봤더니, 내 표정에서 뭘 받는지 다시 내 시선을 슬쩍 피한다.

“나 원고 바쁜데.”

그렇게 말하며 나를 힐끔거리다 외면하고는 곧 데생작업을 시작했다.

“······.”

그런 모습을 보니 볼을 꼬집어 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이 녀석.

그런데, 어시들은 나와 선희의 대화를 듣고 나더니, 서둘러 자기들끼리 모여 수군거렸다.

뭔가 싶어서 봤더니, 소년 히어로를 꺼내놓고 그것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리고 곧 떠들기 시작했다.

“오, 이거네, 이거.”

“정말이네? 이 장면이 그런 뜻이었어?”

“와, 진짜 소름 돋는다. 이런 건 정말 생각도 못했는데.”

“공식 맵에 딱 한번 등장했던 문장이라서 전혀 눈치도 못 챘어요. 이 정도면 완전 숨은그림찾기지.”

“이런 걸 찾아낸 니시다 선생님도 진짜 대단하다.”

“작은 선생님의 이런 디테일이 더 대단하지.”

“하긴, 그야 그렇죠.”

“그나저나 달부 오빠는 이걸 직접 그렸으면서 몰랐어요?”

차미정이 김달부를 쳐다보며 묻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김달부가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도 실은······. 어디서 본 문장이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몰랐어. 그냥 그림만 그리느라 바빠서.”

“우와, 배경을 그린 달부 오빠도 모를 정도면 진짜.”

“그러게.”

모두가 놀라며 혀를 차더니 다시 선희를 돌아봤다.

그런 시선에도 선희는 아무런 미동도 없이 그림에만 열중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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